[영진공 60호]장애인의 성(性)과 성인용품

구국의 소리
2006년 10월 15일

군대를 제대했을 때 난, 지구 정복이라도 할 수 있을지 알았다. -.-; 그러나 그 마음은 금새 접히고, 그냥 착하게 사는 방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97년도이니까, 벌써 10년이 다 된 이야기다. 군대를 제대하고 갓 복학을 했던 나는 이 사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하겠다라는 거창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학교 근처의 모 장애인 센터였다. 내가 배우던 전공이 사회복지 관련 학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교양 과목의 학점 이수 때문에 찾아간 것도 아니었기에,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찾아온 내가 반가웠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덩치도 남들 이상인 것이 힘도 잘 쓰게 생겼겠다, 군대가 갓 갔다 와서 빠리빠리하겠다 싶었는지,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센터의 여러 가지 일들을 맡아 했었다.

지금이라면 “돈은 시간당 얼마?”라고 묻고 시작했을 일들을 군소리 없이 했던 나를 돌이켜 보면, 그때 어렸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내가 찌들어(-.-) 버린 것인지 아리까리하지만, 하여간 그때는 상당한 보람을 느끼며 여러 일들을 쫒아 다니며 열심히 했었다. 정신보건 센터의 사무일도 했었고 (군대에서 행정병이었다. 군대에서는 워드를 잘 쳐서 신의 손이라고 불렸었다. ^^), 취미를 살려 행사장에서 사진도 찍었고, 센터의 낮 병원에서 팔자에도 없는 선생 노릇도 했었다. 비록 8개월 만에 센터 안의 비리를 직접 목격하고 실망 가득한 마음으로 때려 치고 나왔지만, 나름대로 보람 있는 경험이었고, 즐거웠던 추억이었다. 특히나 장애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같이 생활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 된 시간이었다.

( 글의 표현 중에서 장애인에 대한 거리감이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나름대로는 선입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의 오만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느끼는 나도 모르는 이질감이 어쩌면, 아니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표현으로 나왔다면 제 잘못입니다. 부디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성적 욕구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경험이 일말의 영향을 끼쳤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애인들에게 성적인 욕구가 존재하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들도 야한 거 보면 꼴리고, 꼴리다 보면 하고 싶어 한다. 자원 봉사를 할 때, 정신지체 장애인에게 가정방문을 갔던 경험담을 한 젊은 여자 워커에게 들은 적이 있다. 육체 나이는 20대 중반이지만, 정신연령은 7세에 불과했던 그 정신지체 장애인은 자신의 집에 방문한 20대 중반의 그 여성 워커를 보자 바로 발기를 해 버렸단다. 체육복 앞으로 갑자기 툭 튀어 나온 물체(?)에 놀란 그 여자 워커는 어쩔 줄 몰라 당황을 했고, 정신지체 장애인의 어머니는 “이 놈이 오래간만에 젊은 여자 분을 봐서 그런다고. 정말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했단다. 같이 갔던 나이 많은 여자 워커분이 젊은 여성분을 집 밖으로 내보내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해 버려 더 이상 아무 일도 없었지만, 그 여성분도 그제서야 피부로 느꼈단다. 장애인의 성이 하나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정신지체 장애인도 성욕을 주체 하지 못하는데, 육체에만 장애가 있는 분들은 오죽 하겠는가? 남들과 똑 같이 성을 느끼고, 똑 같은 성적 판타지를 가지는데, 막상 솟아오르는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내 자신이 지금과 같은 정신과 일반적인 섹스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데, 비장애인과 함께 섹스를 공유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섹스금치산자라고 생각해 보자. 만약 그렇다면 그런 상항을 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겠는가?

1986년 황진이 포스터 ... 딱 20년 전 장미희씨 얼굴이네..

수 십 년간 도를 닦아도 얻기 힘든 것이 색(色)에 대한 도(道)다. 오죽했으면 30년간 벽을 보며 도를 닦았던 조선의 지족선사가 다른 모든 욕구를 이겨냈으면서도, 황진이의 유혹 만큼은 떨쳐내지 못했겠는가? 또 오죽했으면 카톨릭에서 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오거스틴 (St. Augustine) 조차 성적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어 하느님께 “나에게 성적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주지 마십시오.”라고 기도를 했겠는가? 오랜 수련을 한 동서양의 종교인들조차 자신의 욕망을 이겨내기 힘든 것이 현실인데,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그게 가능하기나 한 것이겠는가?

장애를 가진 분들이 도를 닦는 분들이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도를 닦아가며 금욕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한 문제라는 것을 뜻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장애인을 도인으로 만들 수는 없는 문제이지 않은가? 예전에 자원 봉사할 때 만났던 뇌성 마비 형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러다 나 죽으면, 사리 나오지 않을까?”라는 자조 섞인 농담은, 농담이기 이전에 무언가 대답이 필요한 질문인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장애인의 성은 성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분들에게 약방의 감초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매매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하고, 성인 비디오 산업 쪽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장사를 하며 “장애인의 성”을 이야기한다. 이번 섹스포에서도, 그리고 성인용품 협회의 정관에도 “장애인의 성”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주요한 해결 과제로 끼워 놓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일들이, 자신들이 먹고사는 것들이, 세간의 우려와는 다르게 모두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이렇게 장애인의 성을 상업적으로 팔아먹고 있다고 꼭 비난할일만은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 상업적으로 접근하는 그 분들이 아닌 이상, 장애인의 성에까지 관심을 가져줄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지 않은가? 솔직히 말해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관심이 있는가?

아직도 가야할 길이 많은 장애인의 복지와 처우 정책에 비추어 본다면, 장애인의 성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인 논의는 어쩌면, 대략 500년 정도는 지나야 제대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앞서 그 분들이 거의 유일하게 장애인의 성 문제에 진지하게 ( 조금 다른 의미겠지만) 접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게다가 장애인의 성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장애인에게 성적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일일 텐데, 비장애인에게 성적 욕망이 있다는 것도 제대로 인정받기 힘든 이 사회에서 이게 쉽게 가능한 일이겠는가?

유일한 대안은 성인용품인가?

현실적으로 장애인들이 자신의 성적 욕구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인용품을 통해서다. 외국에서처럼 공창 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국가에서 시험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섹스 자원봉사 : 말 그대로 섹스를 해 주는 자원봉사자”가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앞서 말한 이런 제도를 옹호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각해 볼만한 필요가 있다.), 성인용품만이 장애인 분들의 성적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솔루션이 된다. ( 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사회 인식이 바뀌어,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서로의 성을 탐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경우다. 사람들이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성을 만나 섹스를 하듯, 장애인들도 성적 매력에 패널티를 받지 않고 다른 이성과 즐길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 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또 500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일이겠지만. )

문제는 현실적인 유일한 대안인 성인용품마저 장애인 분들에게는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성인용품점은 비장애인 분들도 들어가기 꺼려하는 곳인지라, 장애인 분들이 쉽게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대부분의 성인용품점들이 교통이 불편한 외진 곳의 2, 3층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웹 기획에 있어 고려해야 하는 것 중에 웹 접근성 규약 (Web Accessibility Guidelines) 이라는 것이 있다. 장애인이나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손쉽게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도록 사이트를 설계하고, 제작하는 기본적인 규약을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을 위해 모든 이미지에 간단한 설명 (alt) 부분을 덧붙이는 일들이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 사이트도 웹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시도가 된다. 그러나 모든 성인용품점이 장애인을 우대한다고 하지만, 그리고 장애인의 성을 고민한다고 광고하지만, 실상 장애인이 접근 가능하도록 해 주는 기본적인 규약인 웹 접근성의 가이드라인을 조금이라도 지키고 있는 곳은 하나도 없다.

내가 운영하고 있는 짬지닷컴도 마찬가지다. -.-; 내 얼굴에 침 뱉는 이야기라, 꺼려지기도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그런 규약을 지키기 위해 들이는 노력은 그 댓가에 비해 너무나 보잘 것이 없기 때문이다. ( 써 놓고 보니 정말 죄송하다. ) 그렇지만 또 변명하자면, 대법원 사이트와 같은 일부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국가의 관공서 사이트 그 어떤 사이트도 웹 접근성을 적절하게 지키는 곳이 없다. 심지어는 장애인 관련 사이트들조차 웹 접근성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실제 성인용품의 구매자 분들 가운데서 장애인의 비율은 극히 적으며, 구매하시는 분들조차도 제품의 정확한 사용방법을 인지하지 못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인용품점에서 장애인을 위한다고 떠드는 것은 실상은 이렇게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 그런 면에서 차라리 섹스포와 같은 박람회가 더 효과적이다. ) 앞서 말했듯이 짬지닷컴이라고 이런 장삿속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니 나름대로 의식(?)을 갖춘 성인용품점을 표방한 곳이기에, 고개 숙여 반성을 해야 옳을 것이다. 사장 입장에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더 많은 노력으로, 더 많은 곳을 살피는 쇼핑몰로 거듭 나도록 노력하겠다.

( 이상하게도, 글이 자아비판 쪽으로 흘러 버렸다. 이게 아니었는데.. -.-; )

장애인의 성 문제는, 다른 산적한 장애인의 문제에 비하면 소소해 보이는 문제다. 최하단의 생존의 욕구조차 채 실현되지 않았는데, 더 상위 단계인 섹스의 욕구를 거론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배부른 고민일 수도 있다. 갈 길 바쁜 장애인 복지 정책에 “왜 섹스는 이야기하지 않나요?”라고 묻는 것은, 꼭 철없는 아이가 밥 해먹이기도 바쁜 가난한 엄마에게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조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질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그 어떤 방법도 현실적으로 현명한 대안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애인의 성적 문제를 해결한 마땅한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난 해결 방법을 찾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애인들에게도 성적인 욕구와 고민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들의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은 다음 문제다. 정말 500년 정도 지난 다음에 생각해 볼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 오늘 이 글을 쓰며 쪽팔린 마음에, 짬지닷컴 메인에 시각 장애인들에게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음성 파일 하나를 심었다. 그리고 장애인 10% 할인 제도를 만들어 붙였다. 더 노력해야겠지만, 솔직하게 이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쇼핑몰 운영을 하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메인 페이지의 로딩 속도를 0.1초라도 빠르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현실에서 음성 파일 하나를 연결 시켜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날로 작아지고 있는 사이트의 이익을 생각한다면 10%라는 금액이 얼마나 큰 금액인지. 내가 잘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현실의 제약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이 글은 비장애인 입장에서, 비장애인들을 향해 쓴 글이다. 에이블 신문등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느끼는 장애인 성문제와 비장애인들이 느끼는 장애인의 성문제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어느 정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고가지만, 비장애인에게 있어서는 딴나라 이야기일 따름이다. 성 가치라는 것은 비단 한 집단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회 전체의 가치 속에서 부분으로 존재하는 것이며, 특히나 성에 민감한 우리 사회에서는 장애인 집단의 논의 만으로 장애인 성문제가 해결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 글은 그런 의미에서 한번 짚어 보자는 이야기를 쓴 것이다.

잠시 구국의 소리로 마실 나온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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