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진공 61호]여성 유방에 대한 단상

명랑성과학연구회
2006년 10월 24일

1.

유방 확대 산업이 나날이 그 인기를 확대해가고 있다. 1963년 미국의 다우코닝사가 실리콘 백을 개발하면서 유방 확대술을 시작했을 때에는 단순히 크기를 키우는 작업 정도에 머물러 있던 유방확대산업은 이제 눈부시도록 발전한 과학기술에 힘입어, 통계학적으로 인정된 아름다운 가슴을 섬세하게 조각해내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 방법도 다양해져서, 실리콘 젤을 사용하는 기존의 방법부터, 식염수 팩을 사용하는 방법, 심지어는 다른 곳의 살을 떼어 내어 가슴에 가져다 붙이는 인체 구조조정의 기술까지 사용되고 있을 정도다. 얼마 전, 한국에 원천기술이 있다며 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줄기세포를 활용하여 가슴이 스스로 커지는 연구까지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다니, 유방에 쏟아 붇는 전 세계 과학자들의 노력은 놀랍기만 하다.

같은… 사람이다.

유방 확대 산업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 것은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의 과학이 어디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던가. 자본에 종속된 지 한참이며, 장사의 밑천이 된지 오래다. 장사가 되는 것은 사람들이 그만큼 찾고 있다는 이야기다. 몸에 칼을 대어야 한다는 공포 때문에 확대술이 걱정인 분들을 위해 발 빠른 장사꾼들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구라 100%의 신 개념 제품인 뽕까지 제작해 팔고 있을 정도다. 뽕 산업 역시, 유방 확대 수술과 더불어 확대 일변도를 걷고 있는 산업이 된지 오래이며, 첨단 소재인 실리콘을 동원한 차세대 뽕이 인기를 얻고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여성의 유방 확대 산업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남자이지만, 아름다워지기 위한 여성들의 큰 가슴에 대한 욕망을 비난할 만큼 내 가슴이 작지는 않다. 오히려 삶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라 생각하고, 또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감의 발로라 여기며, 그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분들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바이다.

유명 연예인의 사진 중에서 …

여성들이 부동산도 아닌 유방을 투자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것 역시, 아름다운 유방이 팔리기 때문이다. 유방은 본능적으로 남성에게 섹시어필하게 만드는 기관이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모유 수유로 이어지는 종족번식의 과정들이 수 만 년의 역사를 거쳐 남성들의 유전자 어딘가에 아로새겨지며 유방을 성적인 대상의 하나로 인식하여 왔을 것이다. 여기에 아름다움의 한 축으로 오래전부터 유방이 널리 인정되면서, 아름다움을 가꾸고자 하는 여성 특유의 본능이 자극되며 유방 확대 산업이 호황을 맞이한 것이리라. 덧붙여 섹시함이 미(美)의 평가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유방을 통해 아름다움을 발산하고자 하는 여성분들의 수요가 공급의 확대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2.

컴퓨터와 LCD 브라운관 산업, 그리고 광학기술의 발전은 터무니없게도, 유방의 섹시함을 공고히 하는데 크나큰 이바지를 하게 된다. 모니터 속에 섹시한 유방이 비춰지면서, 사람들은 여성의 유방을 비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알맞은 크기로 봉긋이 솟은 유방이 적당한 위치에 놓인 모양새는 – 비록 그 위에 옷을 입고 있다고 할지라도 – 자체만으로 섹시함을 불러일으키는 최대의 소스가 되었으며, 살짝 살짝 노출되는 앙가슴은 대한민국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섹시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성의 유방은 19세 인증과 청소년 관람가 사이의 애매한 비무장지대가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슴가”는 여성의 가슴을 부르는 인터넷 상의 말이다. 가슴을 가꾸러 발음한 것에 불과한 것이기에, 일부의 비난처럼 비속어라기보다는 유행어 쪽에 가까운 이 말은, 남자들이 많은 인터넷 동호회에서 은밀히 여성의 유방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발 빠른 우리네 포털들은 슴가가 가진 섹슈얼리티를 포착해내고, 일찌감치 19세 마크를 달아 슴가를 검색하기 위해서는 어른임을 증명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게 만들었다. ( 다음(daum)은 성인인증을 하고 슴가를 검색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보이는 페이지가 다른데 반해, 네이버는 슴가라는 단어를 통째로 19세로 막아 버렸다. 조금 있으면, 네이버는 19세 이상만 이용하는 성인 사이트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슴가 성형 논란이 일자, 기자회견을 통해 “진짜”임을 확인시켜주셨던 이지혜씨.
가수도 가슴이 예뻐야 서렁받는 가수가 된다. 게다가 자연산이기까지 해야 한다.
슴가를 검색하면 나온다.

유방이 19세 인증을 통과해야 하는 섹시함의 대명사가 된 것은 무엇보다 유방 장사꾼들이 유방을 21세기 최대의 장사 밑천인 섹스와 함께 패키지로 묶어서 팔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른 생식기관들이 사회적 심의에 걸려 노출이 불가능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의 노출이 허용되는 유방의 교환가치가 상승해 버렸고, 뉴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보여주는 유방의 가치가 점차 고평가되기 시작하면서, 현재와 같이 여성의 섹시함을 대표하는 대표 기관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으리라.

국기에 대한 새로운 경례

3.

조금 더 사용하기 편한 “가슴”이라는 단어를 두고, 이 글에서 계속 “유방 (乳房)”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이유는 “유방은 젖을 주기 위한 기관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였다. 미의 기준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 여성의 성감대로서 섹시함의 표현이 되는 것도 현실이지만, 사실 유방의 본래 기능은 젖을 주는데 있다. 젖 주는 기능에 이미지가 붙여지다 보니, 이게 미의 기준이 되어 버린 것이며, 섹시함의 대상물이 된 것일 뿐이다.

조선시대 여인들의 모습.. 젖을 주기 위해 가슴을 노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서구의 섹슈얼리티가 인식되면서, 유방은 19세 접근불가 대상이 된다.

유방은 신이 처음 만들어 줄 때부터, “젖 줄 때” 사용하라고 만들어 준 것이다. 인간을 동물 속에서 분류할 때 포유류로 포함시키는데, 포유류(Mammalia)라는 말도 유방(Mammae)에 어원을 둔 “젖 주는 동물”이라는 뜻일 정도로 젖이 나오는 유방은, 인간을 규정하는 강력한 근거다. 젖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는 생명수라는 점에서, 그리고 인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희망수라는 점에서, 여성의 유방은 축복과 풍요의 대상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인간이라는 동물에게 여성의 유방이 없었다면, 어떻게 인류가 수천 년간 유구한 역사를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재미있는 것은 서양은 오히려 이런 종류의 노출에 우리보다 덜 민감하다.
서구적 합리주의와 유교가 만남이 만들어낸 한국식 노출기준이라고나 할까
.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젖 주는 엄마의 모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버스에서, 혹은 지하철에서 간간히 젖을 주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지만, 언젠가부터 “성의식이 굉장히 높아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러니까 텔레비전에서 섹스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하며 성도덕이 점차 강화되기 시작한 이후부터” 아기에게 젖을 주는 엄마의 모습은 섹시함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제는 텔레비전 같은 곳에 젖 주는 광경만 나와도 시청자 게시판에 “너무 야하다!”라는 의견이 올라올 정도로, 젖 주는 기관으로서의 가치는 없어지고, 단순히 미의 기준으로, 혹은 섹슈얼함의 표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유방의 현실인 것이다.

4.

모유수유중인 필리핀 여성들

인간은 진화한다. 일부 종교인들과 일부 사회학자들은 인정하지 않겠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인간은 분명 진화하고 있다. 여성의 유방은 이러한 생물학적, 사회학적인 진화를 뛰어넘어 과학을 통한 진화를 꾀하고 있다. 오랜 시간 갖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우성 유전자에 아로새겨졌던 진화의 과정을 뛰어 넘어, 과학과 의학과 그리고 뽕으로, 커지고, 예뻐지고, 모아지고, 미끈해지고, 봉긋해지는 진화를 순식간에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러한 진화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심이다. 아무리 젖을 주는 기관이라 하지만, 유방 역시 사회 속에서 평가 되는 하나의 가치일 따름이다. 예쁜 가슴이 우대 받는 사회에서 예뻐지기 위한 노력이 왜 비난 받아야 하는 것인가? 다만, 그 본연의 임무인 모유 수유가 유방의 상업화에 휩쓸려 가치가 경도되고, 더불어 아기에게 젖을 주는 행위마저도 섹시함으로 인식되어 창피해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유방의 외적 진화 과정 속에서 퇴화하고 있는 그 본연의 임무가 아쉬운 것이다.

인간의 그 어떤 조직도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모든 생물학적인 기관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을 이토록 철저하게 이기적인 모양새로 설계한 것은, 인간과는 다르게 언제나 인간을 위해 희생하며 사랑하는 신을 더 경외하라는, 조물주의 깊은 계산에 의한 것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은 사용하지 못하고, 오직 다른 사람을 위해서만 사용 가능한 여성의 유방”을 같이 만들었던 것은, 신이 베푸는 희생과 사랑을 인간끼리도 느끼며 살아가도록 했던 신의 작은 배려에서 비롯된 것이지 않을까? 우리는 그러한 신의 희생과 사랑에 대한 배려마저도 상업화된 과학으로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

영진공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산하
성역사연구회 과장
짬지(http://zzamziblog.com)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