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해방전선>, 그래도 3천원씩은 꼭 주고 싶은 영화



에, Milky way liberation front의 직역은 은하해방‘젖’선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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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질르면 졸라 커짐



1. 꿈, 상실


대통령, 우주과학자, 육군대장 등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주입당해야 했던 국민학교 4학년의 나는 당시로서는 매우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5층짜리 건물을 사서 5층은 자택, 4, 3층은 독서실, 2층은 만화가게, 1층은 오락실, 지하는 분식집으로 임대하는 임대사업자는 내가 평생에 걸쳐 이룩하고 싶은 꿈이었다. 독서실에 다니는 학생들을 만화가게, 오락실, 분식집이 주 수입원으로 삼으면 절대 망할 수 없는 임대 이데아가 구축될 것으로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내 꿈은 비현실적인 꿈인 대통령 따위를 꿈꾸던 현실의 반작용이었고 그에 반해 임대업은 실존적인 레토릭을 구축하기 용이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문제는,




5층짜리 상가 건물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대단한 사실인지를 깨닫게 된 후 나타나는 상실감이었다. 소박한 꿈이 아니라 로또 정도는 당첨이 되어야(그것도 1위가 3명 이내) 이룰 수 있는 1/6,000,000의 꿈이었다.




2. 소통, 가역반응


화학에서 가역반응은 외부적 조건이 조작되었을 때 정반응과 역반응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연애역시 일종의 화학반응으로 일어나며 가역반응의 법칙이 적용된다. 암컷과 수컷은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결합했다가 그 외부적 조건에 의해서 분리되며 대개의 외부적 요인은 소통과 환경에 기인한다.




우량 DNA를 쫒아 교미를 하는 “지적 생명체”와는 달리 인간은 유전적 진화에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가령, 단순히 고기를 많이 생산하기 위해 단일개체의 동일한 DNA를 무차별 복사해 조류독감, 광우병 등으로 개체를 괴멸시키는가하면 유전자 변이를 통한 농산물의 과잉 복제로 다양한 해충 및 병원균을 양생한다. 유전적 진화뿐만 아니라 사회적 진화도 현저하게 떨어져서 어떤 나라는 기름공장 집안의 가세 확장을 위해 한 나라를 초토화시키는 일도 서슴치 않고 있고 또 어떤 나라는 열거하기 힘들만큼 온갖 부패를 뒤집어 쓴 대통령 후보가 단지 한 기업체의 사장으로서 건설업 수주 아도를 쳤다는 이유와 시장 재직시 국민의 의견수렴없이 수로를 만들고 버스로를 단일화해 수백억의 누적적자를 지금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40%가 넘는 지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로 만든 일등공신은 현정부와 국민의 소통을 방해한 조중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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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하해방젖선, 영재


영재의 꿈은 영화감독이 아니다.


영재의 꿈은 영화감독으로서 디렉터스체어에 앉아 부리는 똥기마이다.


우리가 삼성전자의 지펠냉장고를 사는 이유는 보다 넓은 냉장창고 때문이 아니라 지펠냉장고를 삼으로써 고현정처럼 우아하게 살수 있다는 착각을 사는 것처럼 영재의 꿈은 현실의 소통과 괴리되었다.




자본이 소비를 강요하는 촉매는 이미지다. 필요하지 않은 것을 필요하게 하는 것. 쓸데없는 경쟁을 야기하는 것. 박민규식으로 말하면 프로를 강요하는 것이고 맑스 입을 빌리면 ‘어차피 노동은 부자들을 위해서는 멋진 것을 만들어내지만 가난한 자들에게는 불행만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요컨대 착각의 죄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현실과의 괴리감이다.




영재가 겪는 소통의 부재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영재가 닿고자 하는 이상은 자신의 손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위의 권력자와 그 위의 권력자의 입맛대로 변질되고 포장된다. 그의 시나리오가 상품으로서 가치를 가질 때, 창작물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된다. 더군다나 자신을 쫒아다니던 배우에게서 조차 영재는 자신의 입을 빼앗기고 만다.




시나리오가 가차없이 변질될 때 아무말도 못하고 있는 영재가 집착하는 것은 결국 디렉터스체어 밖에 남지 않는다.




오롯이 남은 단 하나의 집착.




4. 멜로가 되고 싶은 코미디


결국 사랑은 코미디다.




이 간단한 명제를 되도 않는 무수한 영화에서 지랄을 해대며 숭고화 시켰고 감독은 이 뒤엉킨 타래의 오류를 직관적으로 꿰뚫고 풀어냈다.




엉킨 실 풀 생각 안하고 그냥 잘라버렸다. 얼마나 통쾌해?




그래서, 난 이영화에 3천원 더 주고 싶다. 썩 내키지 않지만 혀만 넣지 않는다면 뽀뽀라도 한번 받아줄만 하다. 이렇게 슬픈 이미지와 현실과의 괴리를 유쾌하게 풀어낼 감독, 얼마 없다. 별난 것 없는 2007년 한국 영화에게 건진 두 번째 영화로 은하해방전선을 꼽는다.


영진공 그럴껄

“<은하해방전선>, 그래도 3천원씩은 꼭 주고 싶은 영화”의 4개의 생각

    1. 하긴, 저도 여러 사람이랑 같이 봤으면 좀 더 재미있었을 거예요.
      그랬더라면 5백원 더 해서 3천5백원은 줄 수 있었을텐데.

  1. 저도 혼자 가서 봤는데요 음 사람이 열명 정도밖에 안되서 아쉬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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