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 (Iron Man)], 존 파브로 –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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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직접 영웅되다.
<아이언맨>이 처음 기자시사회를 갖고나서 프레시안무비에서 최광희 선배(여기, 혹은 여기)는 “정치적으론 별로, 블록버스터로서는 재미있다”라고 평했는데, 어째 나는 정반대였다. “정치적으로 진일보, 블록버스터로는 별로.” (세 번째 보러 갔을 땐 힘들더라, 결국 30분 가량 잤다.) 이후 나오는 대부분의 평에서도 아이언맨이 각성하는 척하지만 결국 미국식의 위선적인 영웅이라며 비판하는 글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이건 원작이 있을 뿐 아니라, ‘블록버스터’다. 대체 블록버스터, 그것도 원작이 있는 블록버스터에서 신랄하고 예민한 정치적 감성을 기대하는 건 좀 과하지 않나? 게다가 실은 이 영화, 굉장히 신랄하고 예민한 정치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게 한국 관객들이 바라는 측면에선 좀더 ‘은근하게’ 표현돼 있을 뿐.

물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자신을 도와줬던 잉센의 고향 굴미라가 바로 자신이 개발한 무기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걸 보고 분개하지만 그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이 개발한 미사일인 제리코를 폭파시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오버다이어(제프 브리지스)가 지적한 대로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 사람이 하고 다니는 건 정말 영웅적 각성이라기보다 어째 ‘영웅놀이’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무기들을 제거하고 다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얘가 헛스러운 영웅놀이를 한다기보다 정말 뭔가에 책임지려는 태도로 보이지 않나? 게다가 아이언 맨 수트를 입은 토니 스타크는 그 누구도 아닌 미국 공군에 의해 쫓기고 공격을 당하며 적으로 규정된다. 오버다이어와 토니 스타크가 대결한 다음 토니 스타크의 군수공장 건물 지붕이 날아가 버리기까지 한다. 최종적으로 폭파되는 건 결국 차례대로 토니 스타크가 만든 무기들, 그리고 그 원자로와 건물이다. 이건 매우 상징적인 파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미국 군수산업에 대해 이렇게까지 공격을 들이대는 영화가 과연 있었던가. 더더욱 중요한 것. 이 영화가 줄곧 취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빈정대는 태도. 이게 정말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



토니 스타크의 외모가 참 비열하고 뻔뻔한 특유의 그 악당 수염을 고수하는 것도 그렇고(이는 심지어 수트를 입고 출동하는 토니의 얼굴을 극클로즈업하면서 함께 확대된다), 심지어 토니의 컴퓨터들마저 토니에 대해 사정없이 사카스틱한 비아냥을 날려댄다(예컨대 수트에 정열적인 빨간색을 칠하라고 하자 “주인님의 ‘은둔자적’ 성격을 잘 반영해 드리죠.”라며 대꾸하는 등.). 폼잡고 싸우던 토니 스타크의 ‘가오가 무너지는’ 유머 장면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단순히 토니 스타크를 놀려먹는 것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키들거리는 사카스틱한 농담의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스스로 자조하는 듯한 유머가 무수히 많이 깔려있다. 나는 이것이, 블록버스터로서 정치적 감각이란 걸 대단히 제한된 형태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이 영화가 스스로의 처지와 한계에 대해 빈정거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영화 스스로가, 그런 미국식 위선적인 영웅심 자체를 비아냥대고 있다는 얘기다. 혹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힘과 능력과 재력이 있긴 있는데 토니 스타크 같은 막돼먹은(?) 인간이라며 자조하고 있거나. 이 정도까지 간다면, 이 영화의 정치적 감수성이란 실은 대단히 예민하고 신랄하며 유머감각까지 갖춘 것으로 인정해 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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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뻔뻔하고 웃긴 남자, 매력적이다.


사실 이 영화는 토니 스타크의 영웅적인 행적과 그의 놀라운 아이언 맨의 수트와 같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의 활동상보다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호감과 관심으로 지탱되는 영화다. 일단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당대 최고의 첨단 기술로 당대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내 엄청난 수의 인명을 살상하고 이것을 직접 개발한 것이 토니 스타크이건 말건, 우리는 토니 스타크에게 직접 죄를 묻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그가 경영자가 아니라 그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가 책임감있고 성숙한 성인 남자라기보다 몸은 어른인지 몰라도 정신세계와 하는 짓은 딱 ‘철딱서니 없는 어린 남자애’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런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그려낼 배우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그는 매우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토니 스타크를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게 자조하는 한편, 그럼에도 (주인공인 만큼) 엄청난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한다. 나이도 있고 돈도 많으며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성인남자의 매력과, 그럼에도 부잣집 도련님 출신으로 어쩔 수 없이 철없는 ‘애’의 모습을 가진 남자의 매력을 복합적으로 매우 잘 살려냈다.


먼저 이 영화는 맨하탄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오펜하이머와 그에 관한 세간의 논쟁을 노골적으로 가져오면서 이를 슬쩍 비틀어 토니와 그의 아버지에게 투사시킨다. 과연 과학자는 혹은 엔지니어의 윤리는 지금 눈앞의 신기술이 전세계에 미치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정치, 외교적) 영향들을 고려하는 것까지 포함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참가 제안을 받았던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였으며 종전 후 보다 폭넓은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논쟁됐던 주제 중 하나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이들 과학자들에게도 윤리와 책임을 물으며 비판하지만, 세간의 우리들은 대체로 실험실 안에만 갇혀 연구만 일삼는 ‘순진한 천재들’이 정치적으로 무지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이 이용당한 면이 크다며 손쉽게 이해와 용서를 하는 편이다. 이는 ‘순진한 천재’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종종 천재들이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는 오히려 바보처럼 행동했다는 여러 우스개 에피소드들과 함께 퍼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의 ‘천진난만하고 철없는 어린애다운’ 모습도 바로 이런 환상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다. 안 씻고 외모에 전혀 신경 안 쓰고 하는 것보다야 여자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게 훨씬 이해받기 쉽고 호감으로 전화되기 쉬우니까. 굴미라 마을을 공격한 용병들에게 무기를 제공해줬다는 오버다이어에게 쫓아가 ‘무력한 표정으로’ 항의하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바로 이런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결정적인 알리바이 장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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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전 여자보다도 뚝딱거리는 조립놀이가 더 좋답니다.


놀기 좋아하는 어린애스러운 면이 있는 남자는 보통 바람둥이 남자를 매력적인 존재로 그리는 데에 가장 자주 동원되는 수법이다. 사실, 그렇게 천진난만한 어린애이기 때문에 ‘어른의 관계’에 대한 기대 없이 (여자들도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여러 여자를 전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여자들에게 매력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뭐든 하나씩 흘리고 다치고 하는 저 남자를 챙겨주고 싶다는 식의 모성본능 포함). 첫 시작부터 영화는 토니 스타크를 여자와 술과 파티를 좋아하는 한량으로 그려내는데, 사실 토니 스타크가 여자보다도 좋아하는 건 ‘조립 놀이’이다. 다만 그가 워낙 돈이 많고 기계천재다 보니 뚝딱뚝딱 갖고 노는 게 첨단기술을 응용한 무기가 되는 것일 뿐. 사실 그가 갖춰놓은 지하의 ‘작업실’은 어릴 적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무선라디오를 만든 경험이 있는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에겐 궁극의 로망일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토니 스타크의 ‘철없는 애스러운’ 성격을 보여주는 정점이다. 보통의 다른 슈퍼히어로와 달리 자신이 바로 아이언맨임을 밝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사실 “나 이렇게 대단해, 봐줘 봐줘” 하는 어린애들의 과시욕과 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것이 토니 스타크의 매력이며, <아이언 맨>의 매력의 98%는 바로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고, 이런 캐릭터를 ‘진상’이 아닌 ‘매력적인 남주’로 승화시킨 건 결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공이라 하겠다. 사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솔직함은 그 결과가 설사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 해도 일단 호감을 가지게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재력과 매력을 능력을 갖춘 남자라면, 웬만한 여자들의 눈에는 그런 애스러운 철딱서니없음도 또 하나의 매력이자 다른 매력들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곤 하니까. 하지만 <인크레더블 헐크>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와 달리 어딘가 악당 포스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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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고철덩이로 둘러싸인 이런 랩에서 이런 옷을 입고 있어도 섹시하다.



나는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로서 별로라고 했는데, 이건 보통 슈퍼히어로를 다룬 블록버스터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는 기대와, 이 영화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슨무슨 맨 시리즈라 하면 당연하게도 화려한 액션과 활약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이전, 즉 아이언맨이 탄생하는 과정, 특히 그 수트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의 활약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영화 전체가 다음 편을 위한 예고편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테렌스 하워드나 기네스 펠트로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도 그들이 연기하는 제임스 로드나 페퍼 포츠를 그런 식의 철저히 들러리로만 설정한 것도 이 영화가 실은 속편을 위한 거대한 떡밥에 불과하다는 인상과 실망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다만 이 영화가 철저히 ‘아이언맨의 탄생’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긍해 버리고 나면, 뚝딱거리며 아이언맨 수트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거기에 토니 스타크라는 좀 철없으면서도 매력적인 왕자님이 보여주는 캐릭터 유머에서 잔재미들을 꽤 찾을 수 있고, 고백하자면 그 잔재미들은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만 속편을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 게 문제라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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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력적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영진공 노바리

ps1. 각종 마약사건 때문에 재능에 비해 너무 묻혀있던 다우니 씨, 이제 제발 활활 날개를 펴삼.

ps2. 사실 다우니는 이런 블록버스터 주인공도 잘 하지만, 예컨대 <구름 저편에>에서 그 맑은 눈을 깜박이며 소녀에게 대쉬하던 역 같은 섬세한 연기가 정말 짱… 게다가 난 이 사람 목소리도, 발음도 너무 좋아.

“[아이언 맨 (Iron Man)], 존 파브로 –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재미””의 3개의 생각

  1. 후속편이 너무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이 것도 스파이더맨 시리즈처럼 시리즈물로
    계속 계속 업그레이드 하면서 나오겠죠? ㅎㅎ;

  2.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영화를 즐기고 리뷰도 자주 쓰는 편인데, 눈과 귀로 느껴지는 부분 이외의 정치적인 혹은 철학적인 색깔들은 아직 집어내기가 힘드네요. 그런 면에서 리뷰 참 재미있게 잘 쓰신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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