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보는 쾌감 뒤에 남는 미미한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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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가 훨씬 맘에 듭니다.
널따란 벌판에서 말 달리며 총질만 해대면 다 서부영화 혹은 웨스턴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차피 존 포드와 존 웨인으로 대표되는 정통 서부극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건 미국도 아닌 이탈리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가 만든 이른바 마카로니 웨스턴이 아니었던가. ‘정의로운’ 주인공들이 땅과 여자와 집과 마을을 지키는 정통 웨스턴에서 적은 소위 ‘미개하고 야만적인 인디언’이라 불리던 네이티브 아메리칸이나 텍사스 저쪽에서 넘어온 뮬라토나 히스패닉, 혹은 더럽고 비열한 수를 쓰는 다른 백인 무법자들이었고, 이들은 우리의 정의로운 주인공들의 집과 땅과 여자와 가축들을 호시탐탐 노리는 침략자였다. 이들의 정의는 백인의 정의였으며 이것은 ‘보안관 뱃지’로 보증되었고 이들이 정의를 관철하는 방식은 결국 ‘총’이었다. 그러나 마카로니 웨스턴의 시대로 오면 정의로운 자와 무작정 악인의 구별이 그렇게까지 또렷해지지 않는다. 물론 정의로운 주인공도 악인도 나오지만, 여기에서의 정의는 백인의 정의라기보다는 보다 개인화된 정의에 가깝고, 이 공간을 실질적으로 하게 지배하는 것은 돈의 힘, 돈의 룰이다. 이 공간은 오히려 법이 법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가장 훌륭한 총질솜씨로 서열이 매겨지는 공간이며, 온갖 무법자들이 자신의 유명세를 각인시키고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다투는 무국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미국인), 무법천지의 공간이다. 주인공은 여전히 백인들이지만 이들의 혈통이 앵글로 색슨계인지 아일랜드계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들은 인디언에게서 이미 뺏은 땅을 자기들끼리 누가 더 많이 갖는가를 두고 다투고, 부모와 형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가방 하나만 둘러맨 채 벌판을 떠돈다.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것이 마카로니 웨스턴이었기에 변종 웨스턴으로는 그토록 마카로니 웨스턴만이 언급되지만, 사실 전 세계적으로 저 서부영화의 틀을 변형한 각종 로컬화된 웨스턴들은 지역마다 나왔다. 한국에서도, 홍콩에서도 유명 감독들이 웨스턴을 만들었다. 이 중에는 신상옥도, 이만희도 포함돼 있다. 타란티노보다 훨씬 많은 홍콩 무협영화 및 (국적불문의) 아류들을 보고 자라며 영화의 자양분을 얻었을 류승완 감독이, 타란티노가 <킬빌>을 내놓고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후에야 용기를 내어 소위 퓨전/로컬화된 현대무협극 <짝패>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 혹은 그럼에도 홍콩 무협의 현대적 변용의 대표명사는 여전히 타란티노인 것. 그것은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이 미국에서 미국인 배우와 유럽인 배우를 섞어 영화를 만들고 이것이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뒤에야 세계 각지에서 로컬화된 변종 웨스턴들이 쏟아져나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됐든,


이렇게 웨스턴이 다종다양한 방향으로 변형, 지역화된 역사가 이미 존재한다면, 그럼에도 웨스턴의 어떤 특징들이 보인다면, 그 영화를 웨스턴이 아니라 칭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더이상 웨스턴처럼 보이지 않음에도 그럼에도 웨스턴처럼 보이게 만드는 어떤 특징들, 그것을 뭘로 꼽을 것인가. 즉, 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을 한국식 웨스턴이라기보다 홍콩누아르의 변형에 웨스턴의 향을 슬쩍 덧입혔다고 무비스트에서 단평을 내린 바 있는데, 그럼에도 <놈놈놈>을 이런 식의 변종 웨스턴이 아니라고는 또 말을 못 하게 할 요소들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것을, “근대화된 법과 국가의 힘보다 물리력과 생존기술이 더 우위에 있는 공간, 특히 흙먼지가 날리는 너른 벌판에서 총을 무기로 치러지는 투쟁”이 아닌가 한다. 이런 공간에서는 당연히 국적도 출신도 중요하지 않으며, 법과 근대적 제도가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받지는 못 하는 아나키 상태가 주를 이룬다. 성문화된 법보다는 소위 ‘선수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형성돼온 관습법이 훨씬 중요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서부와 마찬가지로, 만주는 너무나 훌륭한 웨스턴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어딜 가나 산이 솟아있고 남쪽은 바다로, 북쪽은 휴전선으로 막혀있는 좁디좁은 남한땅에서는 불가능한 ‘벌판을 떠도는 유랑인’의 존재가 만주에서는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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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쾌감, 한국관객들에겐 드물게 맛보는 것. 아울러 정우성은 그림도 된다.


만약 <놈놈놈>이 이 공간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면, 나는 별다른 아쉬움 없이 <놈놈놈>을 현대식, 한국식으로 변용되고 로컬화된 변종 웨스턴으로서 아무 거리낌없이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는 온갖 패거리가 몰려들어와 맨앞에 가는 한놈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이는, 다양한 집단이 얽히고 꼬이는 플롯이 ‘도입되다가 말고’, 그 와중에 모두가 각자 오해를 하고 이 오해를 향해 달려가며 벌어지는 코미디 플롯이 ‘도입되다가 말고’, 한다. 넣으려면 제대로 넣고 말려면 말던가, 하려다 말고 하려다 말고 하는 설정들 때문에 오히려 영화에 아쉬움만 잔뜩 커졌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까지의 꼬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예컨대 온갖 집단들이 윤태구(송강호)를 쫓아가는 벌판 육박씬을 보자. 사실 서부영화에서 그토록 폭탄들이 뻥뻥 터지고 그토록 스피디하게 질주하는 것도 좀 낯설긴 했지만 어쨌건 박력은 있었으니 그렇다 쳐도, 병춘(윤제문)이 속한 마적단과 박창이(이병헌)가 이끄는 마적단, 일본제국군, 만주국 군인,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정우성)까지 얽힌 이 추격전에서는 오로지 물량과 속도만이 강조된다. 과연 이 씬의 엄청난 속도감과 박력, 그리고 물량을 때려박으며 뻥뻥 터뜨려 만든 폭발력은 시각적, 청각적 쾌감이 상당한 편이다. 그렇게 대규모의 박력있는 말발굽 소리를 한국영화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나 이 씬이야말로 그 ‘다양한 집단의 꼬임’이 폭발해야 하고, 각자 오해로 인한 동상이몽들이 맞부닥치며 벌어지는 코미디가 작렬해야 하는 씬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런 것들을 ‘하려다 말고’ 버려둔 뒤, 영화의 코미디는 그저 송강호의 개인기와 캐릭터 유머에만 의존하고 있다. 나아가 저 만주라는 공간이 그 국적불문 무법천지의 혼란스러운 아나키의 느낌을 살리고 있던가. 별로 그런 것같지는 않다. 사실 이것도 ‘하려다 만’ 느낌이 더 강하다. 그리고선 기어코 세 주인공의 총싸움씬을 집어넣는다. 결국 이 영화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거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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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웨스턴’을 드러내는 캐릭터는 이 캐릭터뿐이다.


아니, 이 정도라도 좋다. 사실 <놈놈놈>은 굳이 간지럼을 태워놓고 긁어주지는 않아 계속 미미하게 남는 아쉬움을 제외하면 그래도 썩 보는 쾌감이 있는 한국식 블록버스터다. 기럭지와 폼으로만 버티기엔 이제 나이를 먹어버린 정우성이 아무리 국어책을 읽는다고 해도, 적어도 그가 달리는 말에서 엉덩이를 뗀 채 양 다리로만 말 옆구리에 딱 붙인 채 몸을 지탱하며 라이플을 쏜달지, 가끔 힘에 부치는 티가 나기는 해도 한손으로 멋지게 라이플을 돌려가며 장전하고 밧줄을 타고 날아다니며 쏘는 장면도 그림이 어느 정도 나온다. 이병헌이 고풍스러운 양복으로 멋을 부리는 무법자라기보다는 역시 홍콩누아르의 조직 두목처럼 보이기는 해도, 한류팬들을 위한 팬서비스용으로 잘 단련된 전신 근육을 까서 보여준 건 한류팬이 아니라도 분명 효과가 있었다. 골목과 지붕위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총격씬, 벌판 질주씬도 분명 쾌감이 있었고. 카메라가 가끔 너무 심하게 흔들리는 걸 빼면,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돈 들인 티’가 난다. 100억을 들이고도 ‘100억원짜리 저예산’ 운운의 소리를 듣고 있는 모 영화를 생각해 본다면, 이 영화가 화면에 확실히 드러낸 돈발은 과연 칭찬할 만하다. 그런데 만주. 만주는 과연 저렇게 묘사돼도 좋은 것일까.


미국의 웨스턴들은, 그 영화가 불러낸 시기가 ‘서부개척사’라 불리는 데에서 드러나듯, 실질적으론 침략의 땅따먹기를 ‘개척’으로 표현하는 제국주의적 속성을 가진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는 은둔고수가 숨어들기에 좋은, ‘너무나 넒기에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이기도 하며, 모든 것을 잃고 정착의 의지마저 잃어버린, 그리하여 결코 제도화된 근대 국가 안으로 포섭될 수 없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들이 자신의 몸을 숨기거나 떠돌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영화가 만주를 표현하는 방식에서, 굳이 정통 웨스턴에서 안 가져와도 될 그 제국적 속성을 가져온 게 아닌가 싶어 우려스럽다. 물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위해” 만주에 왔다는 태구의 말에서 익명과 유랑의 공간으로서 만주의 성격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벌판 질주씬에서 이 느낌은 다른 것에 완전히 압도된다. 그 다른 것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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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누아르의 중간보스가 타임머신을 잘못 탄 듯한. 비주얼은 멋지다만.


윤태구의 지도를 뺏으려고 국경 근처에 진을 친 아편굴의 아편장사치(손병호)가 “만주와 간도는 원래 발해 땅” 운운하는 건, 영화 속 무수한 캐릭터 중 한 명의 대사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이 영화가 그토록 벌판에서 ‘지축을 울리는 어마어마한 말발굽들의 질주’를 강조한 것에서, 조갑제 씨가 한사코 우리 본성이라며 강조하는 ‘만주벌판 말 달리는’ 기마민족의 꿈을 내가 떠올려 버린 것은 나의 과민함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상영장에서 있었던 기자간담회장에서 김지운 감독이 분명 그런 식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원래 우리 땅이었던 만주땅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느낌. 김지운이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다고 한다. 170억의 어마어마한 제작비에 한국만이 아닌 일본과 동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대규모의 이런 블록버스터가 결국 꿈꾸고 있는 것은 제국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현재 지구상 그 어느 국가보다도 가장 순수한 형태로 가장 진취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밀어부치며 미국에게 오히려 한미FTA의 조속 비준을 요구하는 한국이 꿈꾸고 있는 ‘제국의 꿈’, ‘제국을 향한 욕망’과 닮아있지 않은가.


영진공 노바리


ps1. 사실 내가 남자배우였으면… 무조건 한다고 덤볐을 거다. 세상에 한국에서 말타고 총쏘며 폼잡을 수 있는 영화란 게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 이건 완전 남자의 로망 아닌가. (나같은 여자의 로망이기도 한데, 실은, 쩝.)

ps2. 고생은 정말 많이 했겠더라. 그러고보면 또 서부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열차’, 흔한 소재가 되는 ‘열차강도 씬’도 있다…

ps3. 사실 김지운 감독의 영화들에 대한 내 판단은 저 버디님 글과 정확히 똑같다. 표절도 오마쥬도 아닌데 어디서 많이 본 그림들로 온통 짜깁기 돼 있는 듯한 이 느낌은 참… 영화를 만들고 나면 크게는 아니어도 항상 표절 운운 얘기(그것도 항상 일본영화)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100년이 넘은 현대 영화란 게 따지고 보면 다 어디서 본 장면들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영화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얼마나 자기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느냐, 그리고 한 영화 내에서 어떻게 톤의 일관성을 유지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미디어 관련분야 학자들이 해야 할 일

 

다 아시겠지만 조중동이 다음에 기사 공급을 중단하였습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list.htm?linkid=473&dt=1214920060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나 그 결정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 없습니다.

단지, 이 사건은 사회과학자 특히 언론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될거라는 생각입니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과연 2008년 6월 현재 3대 인터넷포털 중 하나와 3대 일간지의 영향력, 어느 쪽이 더 클까요?
대답은 이 실험의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기왕이면 네이버도 같이 넣었으면 더 좋겠지만, 상황이 그렇게는 되지 않으니…

조중동은 자기들이 더 무게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자기들의 힘에 따라 다음이 타격을 받을거라 보겠습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 포털에서 뜨는 기사들 중에서 정치관련 기사는 조중동의 인기가 낮고 문화쪽 기획기사(특히 조선쪽의 강점)는 오래 전부터 웹포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블로거들이 만들어낸 포스트들이 주로 대신하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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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네티즌들이 주로 보는 소위 ‘연성’ 기사들(연예인들의 신변잡담, TV 프로그램에 대한 주저리들…)은 오히려 주류매체에서 블로거들의 기사나 인터넷 게시판의 동향을 보고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비중이 비슷비슷하다는 거죠.

따라서 제 예상은 다음이 타격을 약간 받겠으나 그 타격은 별로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모르는 변수들이 많으니 결과가 나와봐야 현재의 지형을 확실히 알 수 있겠죠.

물론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이나 실험 도중에 중단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한쪽이 항복을 하는 거죠.
그때도 어느 쪽이 먼저 중단을 요청하느냐를 보면 대충의 결과는 확인되겠지요.

참, 언론관련 학과에서는 이런 연구 안합니까?

“과연 조중동의 광우병 및 미국쇠고기 관련 보도태도가 정권교체에 따라 바뀌었는가?”

이 문제는 적어도 당사자인 조중동의 주장과 네티즌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주제입니다. 날짜별로 기사를 분석해서 긍정/부정의 비중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대답이 나올 수 있을겁니다. 누군가 한번 해주면 확실이 주목 받을 수 있을텐데요.

사회과학자들, 이럴 때 뜨지 언제 뜹니까.
빨랑 연구좀 하셈.

아, 그러는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청소년들에 대한 심층조사는 올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_-


영진공 짱가

여름 휴가를 위한 다섯 장의 음악 앨범

 

바야흐로 7월이다. 7월에는 여름휴가를 생각해야 하고 또 떠나야 한다. 모든 여행이 마찬가지지만 특히 여름 휴가에는 좋은 음악이 함께 해주면 더욱 좋다. 목적지까지 가고 오는 길 위에서 듣는 음악은 기분을 한층 상쾌하게 해주고 또 지루함을 덜어주곤 하지 않던가. 여름 휴가 길에 듣기 좋은 음악 앨범 몇 장을 골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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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베르겐 출신의 두 청년, 쾌적함의 제왕 Kings of Convenience의 두번째 앨범 <Riot on an Empty Street>이다. 2004년 앨범인데도 아직까지 이 만큼 파릇파릇한 음악을 못들어봤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연주를 기본으로 곡에 따라 트럼본(Live Long)이나 첼로(Cayman Islands), 여성 보컬 게스트 Feist(Misread)와의 주옥같은 협연이 펼쳐지기도 한다. Kings of Convenience의 최고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Erlend Øye와 Eirik Glambek Bøe 두 남성 보컬의 읖조리는 듯한 음색이다. 사이먼 앤 가펑클도 울고 갈 이들의 음악은 세련된 기교를 뽑내기 보다는 담백함과 편안함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의 시원한 바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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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한 Paris Match의 2002년 세번째 앨범 <Type III>다. 두 남자가 곡을 만들고 연주하면 그 위에 청량감 만점의 여성 보컬이 얹히는 식이다. 여자 친구와 드라이브하는 기분으로 만들었다는 말처럼 앨범 자켓에는 연두색 매니큐어를 칠한 맨발 두 짝이 얹혀있고 차창에는 조금전에 그친 빗방울과 저 멀리 바닷새 몇 마리가 보인다. 앨범의 컨셉 자체가 여행인데 여행길에 듣는 기분은 오죽 하겠는가. 특히 Saturday와 Soft Paradise On Sunset은 처음부터 귀에 휘감길 뿐만 아니라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 최고의 트랙이다. 무엇보다 중독성 강한 미즈노 마리의 목소리가 최고의 청량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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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도 잘 만들고 기타 연주와 보컬 실력도 수준급인 John Mayer의 2001년 데뷔 앨범 <Room For Squares>다. 원래 <Inside Wants Out>이라는 EP로 데뷔했다가 메이저 음반사에 픽업되어 새로운 편곡으로 녹음하고 여기에 새로운 곡들도 몇 곡 추가해서 다시 내놓은 앨범이다. 특히 Back To You는 누가 들어도 단연 No. 1으로 꼽게 되는 명곡. 언듯 데이브 매튜스와 비슷한 음색의 목소리라서 듣는 이에 따라 약간 취향을 탈 수도 있겠지만 워낙 곡들이 발랄하고 좋아서 전반적으로 듣기에 부담이 없다. 이거 듣고 마음에 들면 <Heavier Things>(2003)와 <Continuum>(2006), 그리고 라이브 앨범들도 있으니 계속 달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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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쪽은 DJ 출신의 남성 듀오가 많은데 그 중 영국 런던 출신인 Zero 7의 음악성은 단연 돋보이는 편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고 다른 재능있는 신인 가수들을 불러다가 시켜 버릇한다. 그래서 보컬이 없는 연주곡도 있다. 시아 풀러가 부른 Destiny가 수록된 데뷔 앨범 <Simple Things>(2001)을 귀에 꽂으면 그 순간 주변 환경이 달리 보이고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기본적으로 일렉트로닉 라운지 계열이라고 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배합이 Zero 7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드라이브용 음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휴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비상 상비약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겠다. Zero 7의 다른 앨범으로는 <When It Falls>(2004)와 <The Garden>(2006)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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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때아닌 젊은 남성 재즈 보컬리스트 붐이 일어났었는데(그게 뭔 소리냐고 하신다면 패스) 캐나다 출신인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와 영국 출신 제이미 컬럼(Jamie Cullum)이 그 주인공이었다. 좀 더 스탠다드한 스타일의 마이클 부블레과 달리 제이미 컬럼은 라디오헤드나 다른 장르의 곡들을 편곡해서 부르는 등 좀 더 대중적인 팝재즈를 구사한다고 할 수 있겠다. 피아노를 직접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제이미 컬럼의 데뷔 앨범 <Twentysomething>에는 빌리 조엘을 연상케 하는 These Are The Days, 다이나 워싱턴의 노래로 유명했던 What A Difference A Day Made 등이 수록되어 있다. 2005년에 두번째 앨범 <Catching Tales>도 함께 들어볼만 하다.

이외에 Jack Johnson이나 Jason Mraz 등도 여행길에 좋은 동행이 되어줄 수 있는 음악을 들려준다. 사실 여행용 음악이 따로 있는 건 아니겠지만 기왕이면 듣는 이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또 누가 함께 들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악이 좀 더 낫지 않나 싶다. 평소 Radiohead나 Depeche Mode 등을 즐겨 듣지만 여행 중에는 잘 안꺼내 들게 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 것 같다.

영진공 신어지

2100년


일요일.
태수와 동네 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반색하며 뛰어왔다.

“와, 개다.”
“응. (태수를 보며) 누나다, 누나.”

“(태수를 쓰다듬으며) 저, 개 좋아해요. 근데 개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건 귀찮아 해요.
그래서 키우긴 싫고요, 같이 있는 건 좋아해요.”
“그래. 언니도 항상 똥을 치우지. (손에 든 봉지를 내밀며) 이것도 똥이야. 좀 아까 치운 거야.”

“얘 겁 많아요? 안 짖네요?”
“응. 겁쟁이야.”
“꼬리도 흔들어요? 지금은 안 흔드는데?”
“원래 반가우면 흔드는데, 지금은 누나를 처음 봐서 어색한가 봐.”

“(계속 태수를 쓰다듬고 만지며) 귀엽다. 몇 살이에요?”
“한 살도 안 됐어.”
“(갸우뚱) 영 살이에요?”
“응. 올해가 이천 팔년이지? 얘는 이천 칠년, 작년 겨울에 태어났어.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됐지.”
“그래도 얘가 더 크면 새끼도 낳겠죠?”
“얘는 남자야.”
“그럼 아빠만 되는 건가? 새끼는 못 낳고?”
“응, 그치.”
“(아쉬워 하며) 새끼도 낳으면 좋을텐데.”

“그래도 얘가 더 크면 멋있겠다, 그죠? (팔을 크게 벌리며) 나중에 한 이만해져요?”
“아니. 얘는 그렇겐 안 커. 더 작아. (팔을 작게 벌리고) 한 이만큼?”
“그래도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더 크겠죠.”
“ㅎㅎ 그래.”

“(태수에게 손을 내밀며) 손. 손. 얜 손 달라고 해도 안 줘요?”
“아직 안 가르쳤어.”
“그래서 못해요? 지금 가르치면 안되나?”
“응. 머리도 좀 나빠. ㅎㅎ”
“더 크면 하겠네요.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하겠죠.”
“ㅎㅎ 그래.”
“(앞발을 가리키며) 이건 손이고 (뒷발을 가리키며) 저건 발이에요?”
“사실 개는 전부 발이야. 발이 네 개라 네 발 동물이라고 해.
앞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손이라고 하는 거지, 이건 전부 발이야.”

“(태수 이름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이 동네 사네요?”
“응. 언니는 저기 위에 살아.”
“아 저쪽이요? 나도 가봤어요. 저기 슈퍼에 맨날 간 적도 있어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었어요.
난 여기 앞에 살아요. 저기 살면 학교가 멀겠다. 난 여기 살아도 먼데.
제가요, 여덟 살이라 학교 다녀요.”
“아, 그럼 일학년인가?”
“네. 제가 나이를 여덟 살이나 먹었거든요. 그래가지고요.”
“ㅎㅎ 그래?”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이 이천 팔년이잖아요. 그럼 이천 십삼년에 얘는 몇 살이에요?”
“다섯 살쯤?”
“나는요?”
“지금 여덟 살이니까, 열 세 살?”
“나두요? 나이를 같이 먹네요?”
“그치. 다 똑같이 먹지. 어른들도 같이 먹지.”
“그럼 이천 백년에 얜 몇 살이에요?”
“그땐 벌써 죽었겠네. (아차 싶어서) 개는 사람보다 오래 못 살아.
이십년 쯤 살면 되게 오래 산 거고, 보통은 십년 넘게 살다 가.”
“그렇구나. 난 이천 백년까지 살 건데. 근데 전 할머니 되는 건 싫어요. 안 되면 좋겠어요.
왜냐면요, 할머니 되면 엄마랑 떨어져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 싫으니깐.”
“그래?”
“네. 그래도 나는 이천 백년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깐. 그때까지 많이 남아서 좋아요.”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많이 남았네. 좋겠다.”

태수와 아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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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도대체

<원티드>와 <언더월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전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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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티드>는 적어도 시각적인 측면에서는 최근에 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물론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영상도 있었고, 더 박진감이 넘치거나 참신한 영상도 있었습니다만, 영화속의 상상력을 한 차원 높였다는 점에서 저는 <원티드>가 <매트릭스> 만큼이나 대단하다고 봅니다.

핵심은 오우삼이 <영웅본색>에서 시작한 총격발레를 진정한 발레의 경지로 승화시킨 그 총격 액션입니다. 총알을 멈추게 만드는 <매트릭스>의 네오조차도 손대지 못했던 총알의 궤적을 변형시키는 경지를 보여주죠.

이 영화를 보면서 제가 떠올린 다른 영화는 바로 <언더월드>입니다.
케이트 베킨세일 여사가 전신 고무옷을 입고 눈 돌아가게 해주시던 바로 그 영화.
<매트릭스>를 비교적 충실하게 계승한 와이어 액션과 슬로모션 액션을 보여준 그 영화.
하지만 <원티드>를 보고 나니 뭐가 부족했는지 확실하게 보이는 바로 그 영화죠.


아, 언더월드…

<언더월드>는 늑대인간과 뱀파이어 사이에서 수백 년간 계속되어온 전쟁이야기입니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지하에서는 이 두 괴물 종족들간의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던 거죠.

문제는 이겁니다. 애초에 힘만 쎈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늑대인간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야만적이라고 치죠. 그 우아하고 빠르고 힘도 세고 머리까지 좋은 뱀파이어들은 그동안 뭐 했답니까. 죽지도 않는 이 뱀파이어들은 수백년간 늑대인간들에게 총질을 해왔습니다. 특수부대원들이라 할지라도 몇 년 이상 경험하기 힘든 실전사격의 경험이 이들에게는 수백년 어치가 축적된 것이죠. 수백년의 사격 수련과 인간보다 수십배 강한 근력과 스피드까지 겸비했으니 이들은 적어도 사격에 있어서 신의 경지에 올라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렇던가요.

이 영화의 처음을 장식하는 지하철 액션을 생각해보세요. 그 높은 성당 첨탑에서 시크하게 뛰어내릴 때만 해도 폭풍처럼 뿜어내던 베킨세일양의 간지는 지하철에 들어가 다 망가집니다. 어떻게 수십 발을 난사하면서 한 놈도 못 맞출 수가 있답니까. 총기역사의 초창기부터 총질을 해온 이들이라면 안보고 쏴도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로보캅도 그 정도는 할 줄 압니다. 몇 발은 맞았는데 워낙 상대가 강해서 멀쩡한 거라구요? 그럼 뭐 하러 총을 쏜대요? 이 영화에서는 그 이후에도 이런 총기 난사가 계속됩니다. 베트남 전쟁터의 미군도 아니고, 이게 뭔 짓입니까. 창피하지도 않습니까?


이때만 해도 폭풍간지…


쌍권총 쏘면 뭐하나효. 하나도 안 맞는데…뭐 몸매는 참 보기 좋으십니다만 …

게다가 이들이 다루는 총들은 과연 이들이 그 우아하고 고상한 뱀파이어인지 의심하게 만듭니다. 수백년간 총을 쏴온 전문가들이라면 자기만의 역사가 담긴 총 하나쯤은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선 어떻게 된 게 역사와 전통을 단 한 점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죄다 신형 총들만 쓰거든요. 그래도 약간 보는 눈은 있어서 HK나 발터 같은 유럽제 총을 쓰긴 씁니다만, 뭐 모르는 촌시러운 애들이야 이런 신형 총들에 뻑가죠.


삶의 다른 부분은 이렇게 고풍스러운데…


어째서 총은 플라스틱제 G36이나


역시 플라스틱제 월터 P99인가요

옛날 총이라고 나 후진 게 아니고, 신형 총이라고 다 좋은 게 아닙니다.
요즘 총기회사들이 총을 설계할 때 고심하는 부분은 비용과 성능의 균형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아질 수 있더라도 비용이 많이 들면 포기해요. 너무 생산단가가 높은 총을 만들면 이윤이 적어지고, 그러면 망하거나 주주들에게 사장이 쫒겨나거든요. 칼 발터 사에서 양산 총 중에서는 극한의 성능이라는 P88을 만들고 망한 이유가 그겁니다. 마우저 C96 같은 총이 퇴출된 가장 큰 이유도 성능의 부족이 아니라 지나치게 높은 단가였습니다. 발터 P88이 과연 P99보다 못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P99는 싸게 만든 중급품에 해당합니다(물론 독일제답게 잘 맞기는 하지만 최고. 지그P210 같은 권총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마우저 C96, 성능은 괜찮은데 너무 크고 무겁고 복잡한게 문제였던 총…


지금까지 나온 중 가장 비싼 양산형 권총중의 하나, 발터 P88.. 이거 안팔려서 발터사가 한번 망했다는…

현대 총기의 또 다른 제약은 그 총을 쏘는 인간의 능력입니다.
미군이 강력한 사거리와 위력을 자랑하는 자동소총 M14를 포기하고 적당한 사거리와 위력을 가진 돌격소총 M16을 채용한 이유도 그겁니다. 인간의 근력으로는 M14 같이 위력 센 총은 연발로 사격할 때 반동을 제대로 제어하기 힘들거든요. 아무리 위력이 강하면 뭐합니까. 어차피 인간의 시력으로 교전가능 한 거리는 3-400미터 내외이고, 그 정도의 거리에서 충분한 위력을 발휘하되 연발로 사격이 가능한 총(M16)이 6-700미터의 유효사정거리를 가졌으나 연발사격이 어려운 총(M14)보다는 훨씬 더 나은 걸요.


M16이 좋은 이유는 인간의 체력과 근력에 적당하기 때문이죠


도대체 뱀파이어의 밤눈을 가지고서도 왜 이렇게 플래시를 켜대는 거임?

물론 M14로 연발사격을 하면 총 자체에도 무리가 많이 갑니다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역시 인간의 능력 때문입니다. 사람이 들고 다니려면 어느 정도 무게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맞추려다 보니 총을 충분하게 튼튼히 만들 수 없었던 거죠. 2차 대전 때의 브라우닝 BAR 같은 총은 M14보다 약간 더 쎈 탄환을 연발로 쏴대도 멀쩡한 총인데 무게가 자그마치 8.8kg 입니다. M16이 4kg이 채 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해보면 얼마나 무거운지 실감나실 겁니다. M14도 이 정도 무게로 만들었더라면 연발사격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죠.


총 무게가 9kg라도 상관없었다면 아마 이런 BAR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결국 이런 모든 제약은 인간에 대해서만 유효한 겁니다. 그 총의 주인이 인간보다 체력과 감각 모두 뛰어난 뱀파이어에겐 아무 의미 없는 문제죠. 총의 무게가 10kg면 어떻습니까? 반동이 강하다 한들 그 억센 근육으로 잡아주면 삼각대에 얹은 것만큼 정확하게 쏠 수 있겠고요. 그러니 이 뱀파이어 분들은 나약한 인간들이 들고 댕기는 플라스틱 돌격소총이 아니라 금속으로 만든 M14 단축형이던가, 칼이 달린 권총 같은 걸 들고댕겨도 큰 문제가 없겠죠.


요즘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많이 쓴다는 트로이제 M14 변형. 길이는 짧고 무게는 무겁고 위력은 M16보다 훨씬 센…


뱀파이어의 근력과 스피드와 감각이라면 이런 아예 유탄발사기를 쓰는 것도…


육박전 용으로는 이런 권총+단도 스타일도 나쁘지 않죠. 물론 이건 장식용이지만


실제로 최근엔 이런 모델도 나오긴 합니다.

어쨌든,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주제넘게도 인간 주제에 신의 경지에 도달한 놈들이 등장해버렸습니다. <원티드>의 킬러들이 바로 그들이죠. 물론 이들은 분당 맥박수가 400에 도달해야 초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제약이 있지만 뱀파이어들이 했어야 하는 것이 뭐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총알 스핀먹이기는 그 중의 하나일 뿐이죠.
(사족이지만, 어떤 생물학자는 모든 생명체의 수명은 시간이 아니라 심장의 박동수에 의해 한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즉 우리의 심장이 평생 뛸 수 있는 횟수가 이미 정해져있다는 거죠. 느릿느릿 흥분하지 않고 살면 그만큼 심장이 천천히 뛸 것이니 오래 살고, 흥분해가며 급하게 살면 그만큼 빨리 죽는다는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뭔 일 있을때마다 분당 맥박수 4백을 끊는 이들의 신조는 아마도 “짧고 굵게 살기”가 되겠지요)

게다가 이들은 총알도 평범한 것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문장이 있고 메시지까지 담죠. 게다가 총 자체에 대한 조예도 깊어서 수도파이프 같아 보이는 자작총으로 초장거리 저격을 합니다. 물론 총기역사의 초창기를 장식한 휠록식 총을 자그마치 연발형태로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하고요. 물론 오랫동안 총질한 인간들답게 각자의 애총은 고유한 문양이 새겨진 독특한 물건들입니다.


졸리 누님의 문양 가득한 콜트45


이게 휠록식 총…


휠록식 총의 작동구조… 그래봤자 옛날 부싯돌식 화승총이라는 …

이 얼마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뼈대있는 고상함입니까.
그러니 <언더월드>의 뱀파이어들, <원티드>를 보며 열심히 반성하기 바랍니다.


액션의 끝은 <원티드>가 봤다는…

아참, <원티드>의 킬러들도 가끔은 최신형 장비를 쓰는데, 대표적인 것이 졸리 여사가 쇼핑센터에서 난장칠 때 사용한 “코너샷”이죠. 이스라엘의 한 발명가가 개발한 물건으로 “나는 몸을 숨긴 채로 상대방을 쏘고 싶다” 는 인간의 오랜 숙원을 전자기술을 이용해 달성한 제품입니다. 말 그대로 총을 꺾어서 쏠 수 있게 해줍니다. 총 앞에 비디오카메라를 달아서 사수는 엄폐물 뒤에 숨어 모니터로 적을 보며 겨냥할 수 있죠. 지금 생각해보면 졸리 누님의 실력 정도라면 굳이 그런 물건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뭐 감독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이 코너샷이 생각만큼 장사가 안돼서 고생한다더니 마케팅을 이렇게 하는군요.


쇼핑센터에서의 총격전


여기 등장하는 장비는 바로 이 코너샷


앞에 권총을 꽂아서 쓰면 됩니다.


유탄발사기가 달린 것도 있죠.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