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의 겨울


얼마 전이었소. 며칠째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구석에 박혀 있으니


느는 건 잠이요, 나오는 건 하품뿐이었소.



나는 내 신세가 처량하여 누님을 졸랐소.
“어서 나갑시다! 바깥 구경 좀 하고 삽시다!”


누님은 진짜 진짜 추운 날씨라며 나에게 외투를 입혔소.
“자, 어서 나갑시다!”
그러나 누님은 자꾸 꼼지락거렸소.


나는 발끈하여 외쳤소.
“아, 쫌!!! 언능 갑시다!!!”


드디어 밖으로 나갔소. 진짜 춥긴 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동네를 돌아다녔소.


며칠 쉰 사이에 다른 개들이 내 영역을 가로채었던 것이오.
부지런히 영역표시를 하며 내 위엄을 되찾았소.


그러나 귀가하니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목욕을 해야 했소.


목욕하는 것까진 그럭저럭 참아도, 털 말리는 건 못 참겠소.
헤어드라이언지 뭔지 정말 싫은 놈이 하나 있소.
웅-웅- 더운 입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있는 거라곤 입밖에 없는 괴상한 놈이오.


나는 그놈이 너무 얄미워서, 식구들이 없는 사이에
몰래 그놈 전선을 잘근잘근 씹어 숨통을 끊어놓기도 했소.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소. 식구들이 그놈을 되살렸던 것이오.


아효, 목욕이 싫소! 드라이어도 싫소! 산책만 좋소!
언능 겨울이 지나가서 따뜻한 봄이 오면 좋겠소!



영진공 태수(시츄, 만2세)






2100년


일요일.
태수와 동네 산책길을 걷고 있는데 한 여자아이가 반색하며 뛰어왔다.

“와, 개다.”
“응. (태수를 보며) 누나다, 누나.”

“(태수를 쓰다듬으며) 저, 개 좋아해요. 근데 개 똥 치우고 오줌 치우는 건 귀찮아 해요.
그래서 키우긴 싫고요, 같이 있는 건 좋아해요.”
“그래. 언니도 항상 똥을 치우지. (손에 든 봉지를 내밀며) 이것도 똥이야. 좀 아까 치운 거야.”

“얘 겁 많아요? 안 짖네요?”
“응. 겁쟁이야.”
“꼬리도 흔들어요? 지금은 안 흔드는데?”
“원래 반가우면 흔드는데, 지금은 누나를 처음 봐서 어색한가 봐.”

“(계속 태수를 쓰다듬고 만지며) 귀엽다. 몇 살이에요?”
“한 살도 안 됐어.”
“(갸우뚱) 영 살이에요?”
“응. 올해가 이천 팔년이지? 얘는 이천 칠년, 작년 겨울에 태어났어. 태어난 지 일 년도 안 됐지.”
“그래도 얘가 더 크면 새끼도 낳겠죠?”
“얘는 남자야.”
“그럼 아빠만 되는 건가? 새끼는 못 낳고?”
“응, 그치.”
“(아쉬워 하며) 새끼도 낳으면 좋을텐데.”

“그래도 얘가 더 크면 멋있겠다, 그죠? (팔을 크게 벌리며) 나중에 한 이만해져요?”
“아니. 얘는 그렇겐 안 커. 더 작아. (팔을 작게 벌리고) 한 이만큼?”
“그래도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더 크겠죠.”
“ㅎㅎ 그래.”

“(태수에게 손을 내밀며) 손. 손. 얜 손 달라고 해도 안 줘요?”
“아직 안 가르쳤어.”
“그래서 못해요? 지금 가르치면 안되나?”
“응. 머리도 좀 나빠. ㅎㅎ”
“더 크면 하겠네요. 일곱 살, 여덟 살 되면 하겠죠.”
“ㅎㅎ 그래.”
“(앞발을 가리키며) 이건 손이고 (뒷발을 가리키며) 저건 발이에요?”
“사실 개는 전부 발이야. 발이 네 개라 네 발 동물이라고 해.
앞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그냥 손이라고 하는 거지, 이건 전부 발이야.”

“(태수 이름표에 적힌 주소를 보고) 이 동네 사네요?”
“응. 언니는 저기 위에 살아.”
“아 저쪽이요? 나도 가봤어요. 저기 슈퍼에 맨날 간 적도 있어요.
엄마가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라고 했었어요.
난 여기 앞에 살아요. 저기 살면 학교가 멀겠다. 난 여기 살아도 먼데.
제가요, 여덟 살이라 학교 다녀요.”
“아, 그럼 일학년인가?”
“네. 제가 나이를 여덟 살이나 먹었거든요. 그래가지고요.”
“ㅎㅎ 그래?”

같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이 이천 팔년이잖아요. 그럼 이천 십삼년에 얘는 몇 살이에요?”
“다섯 살쯤?”
“나는요?”
“지금 여덟 살이니까, 열 세 살?”
“나두요? 나이를 같이 먹네요?”
“그치. 다 똑같이 먹지. 어른들도 같이 먹지.”
“그럼 이천 백년에 얜 몇 살이에요?”
“그땐 벌써 죽었겠네. (아차 싶어서) 개는 사람보다 오래 못 살아.
이십년 쯤 살면 되게 오래 산 거고, 보통은 십년 넘게 살다 가.”
“그렇구나. 난 이천 백년까지 살 건데. 근데 전 할머니 되는 건 싫어요. 안 되면 좋겠어요.
왜냐면요, 할머니 되면 엄마랑 떨어져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럼 싫으니깐.”
“그래?”
“네. 그래도 나는 이천 백년 되려면 아직 멀었으니깐. 그때까지 많이 남아서 좋아요.”

웃음을 터뜨리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많이 남았네. 좋겠다.”

태수와 아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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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