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수의 겨울


얼마 전이었소. 며칠째 밖에 나가지 못하고 집구석에 박혀 있으니


느는 건 잠이요, 나오는 건 하품뿐이었소.



나는 내 신세가 처량하여 누님을 졸랐소.
“어서 나갑시다! 바깥 구경 좀 하고 삽시다!”


누님은 진짜 진짜 추운 날씨라며 나에게 외투를 입혔소.
“자, 어서 나갑시다!”
그러나 누님은 자꾸 꼼지락거렸소.


나는 발끈하여 외쳤소.
“아, 쫌!!! 언능 갑시다!!!”


드디어 밖으로 나갔소. 진짜 춥긴 했지만 굴하지 않고
열심히 동네를 돌아다녔소.


며칠 쉰 사이에 다른 개들이 내 영역을 가로채었던 것이오.
부지런히 영역표시를 하며 내 위엄을 되찾았소.


그러나 귀가하니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소.
나는 저항 한 번 제대로 못한 채 목욕을 해야 했소.


목욕하는 것까진 그럭저럭 참아도, 털 말리는 건 못 참겠소.
헤어드라이언지 뭔지 정말 싫은 놈이 하나 있소.
웅-웅- 더운 입김을 뿜으며 달려드는, 있는 거라곤 입밖에 없는 괴상한 놈이오.


나는 그놈이 너무 얄미워서, 식구들이 없는 사이에
몰래 그놈 전선을 잘근잘근 씹어 숨통을 끊어놓기도 했소.


그러나 소용없는 짓이었소. 식구들이 그놈을 되살렸던 것이오.


아효, 목욕이 싫소! 드라이어도 싫소! 산책만 좋소!
언능 겨울이 지나가서 따뜻한 봄이 오면 좋겠소!



영진공 태수(시츄, 만2세)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테리 길리엄표 영화 딱 그만큼 …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은 알려진 바대로 지난 2008년 초에 요절한 호주 출신 배우 히스 레저의 마지막 출연작이기도 합니다.

같은 해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다크 나이트>(2008)는 촬영을 완전히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이 오히려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조를 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악재를 맞게 된 경우였죠. 다행히 영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더라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판타지물이었던지라, 히스 레저가 남겨둔 촬영 분량을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 조금씩 맡아 출연하는 것으로 수정되면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촬영 기간이 지연되는 등의 사정이 그리 쉽게 극복되기는 어려웠던 탓인지 기대했던 것보다 꽤 늦어져서 완성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 우연찮게도 네 명의 남자 배우들은 영국, 미국, 호주, 아일랜드 출신으로 골고루 포진되었습니다 – 블럭버스터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역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작품입니다.

악마(톰 웨이츠)와의 거래로 천년의 세월 동안 영생을 누려온 파르나서스 박사(크리스토퍼 플러머)가 16살 생일을 맞은 딸 발렌티나(릴리 콜)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도전에 나서는 상상초월의 판타지 동화라고 할까요. 아날로그 취향이 팍팍 뭍어나는 세트 미술이 보기 좋고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등장 인물 각자의 욕망이 투영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장면들도 무척 보기가 좋았습니다.

시점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닙니다만 의외로 동시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점이 이색적이었고 그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영국식 액센트를 실컷 들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가 내러티브 측면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비평이나 해설의 도움 없이도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기준점으로 삼았을 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누군가의 해설이 있더라도 그닥 도움이 안될 정도로 플롯의 전개가 산만하고 때로는 몹시 지루하기까지 한 편입니다. 화제가 된 히스 레저와 세 명의 남자 배우들의 역할 보다는 파르나서스 박사가 성장한 딸을 보내고 싶지 않은 그 심정에 집중을 하는 편이 그나마 줄거리를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나 가능할 뿐,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아무래도 히스 레저의 마지막 모습과 그를 대신한 다른 배우들이 행동으로 보여준 십시일반의 정신에만 집중하게 될 따름입니다.

히스 레저가 촬영한 분량은 어디까지였을까? 조니 뎁이다! 쥬드 로가 나왔다! 드디어 콜린 패럴이네! 아, 영화 끝이네.

테리 길리엄 감독이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졸작을 내놓았다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만 상상극장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아주 환상적인 2시간을 선사하지는 못한다고 할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히스 레저를 배우로서 발견을 하게 해준 작품이 바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2005년작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이었습니다. 히스 레저가 자신에게 부여된 기존 이미지에 매이지 않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기꺼이 변신할 줄 아는 진정한 연기자의 길을 가기 위해 절치부심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였다고 할까요.

그 이후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아임 낫 데어>(2007), <다크 나이트>(2008)에서의 성공에 이어 다시 한번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것은 그리 많은 출연료를 주기 힘든 사정을 감안할 때 보은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완성된 영화는 역시나 히스 레저를 앞세워 제법 많은 상영관에 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뜨거운 관객 반응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의 오랜 팬들과 히스 레저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관람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전우치”, 도술의 정신을 살리다

최동훈 감독이 새로 내놓은 영화 <전우치>에 대해 실망이라거나 혼란스럽다는 평이 많던데 … 물론 영화가 좀 늘어지는 부분이 있고 방향을 잃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것 같은 지점도 있다.

감독의 전작인 <범죄의 재구성>이나 <타짜>의 대사빨과 치밀한 구성을 기대한 이들이
그래서 실망을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실은 <전우치>도 대사빨 좀 살리는 영화다.
이번에는 시대극 대사빨을 시도한 건데 … 일단 관객들이 적응하는데 버퍼링이 필요하지만 뭐 그럭저럭 먹히는 농담들 있다.
그 중 몇 개는 관객들이 자지러지기도 하던데 … 특히 유해진의 역할이 컸다.

“턱주가리”, “장사치들에게 나라를 맡긴다니, 우환이…” 등등의 대사는 어긋나는 두 시대를 관통하는 대사빨이 아니던가. 물론 그것이 대사빨로 끝난 것이 좀 아쉽지만.

그러나!
이 영화에는 대사빨이나 구성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도술의 기본을 이해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컨셉으로 비교되는  <아라한 장풍대작전>보다 낫다. <아라한>은 도의 한 부분인 마음을 비우고 꾸준히 수련한 자의 경지를 슬쩍 보여주긴 했지만, 도의 나머지 부분은 아쉽게도 놓쳤다.

그것이 뭐냐하면 … “세상 뭐 있어?” 정신이다.
도술은 기본적으로 해킹이다.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가 한 것도 바로 도술이다.
세상에 대한 고정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 세상을 주어진 대로 보지 않고 관점을 바꾸는 것.

그렇기에 그림 속으로 도망칠 수도 있고,
그림 속에 암자를 지어놓고 살 수도 있으며,
그림 속에 갇힐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술은 진지함 보다는 경쾌함의 미학이다.
<전우치>는 휘적휘적 액션을 펼치는 강동원을 내세워 이 경쾌한 도술의 분위기를 살려냈다.

그리고 하나 더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복선이다.
역시 이 영화와 비교되는 <화산고>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이거다.
화산고에는 액션만 있고 이해가 없었다. 관객들은 그냥 끝없이 커져가는 액션의 자가폭주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전우치>에는 미친 무당의 예언과 스승님(백윤식)의 예언 같은
몇가지 복선이 이야기의 맥을 잡아준다.

그 결과, 관객들이 “아하! 그렇구나” 하는 경험을 얻을 수 있다.

배우들은 물론 좋다.
영화에 대해 투덜거리는 사람들도 배우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오히려 배우들이 낭비되었다고 투덜거리는 경우는 있지만.

강동원은 무엇보다도 “기럭지!”의 힘이 좋다.(미안하다. 대사는 좀 약했다.)
그 기럭지만으로도 꽤 그럴듯한 화면빨을 발휘하는 배우는 정우성 이후 첨봤다.

임수정은 예쁘고 엉뚱하면서도 생생하고 … 도사들, 특히 김윤석의 카리스마가 좋다.

그래도 아쉬운 것 하나는 조금 더 동시대성을 살렸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점이다.
동시대성이 사라지다보니, 요괴들이 불쌍하더라. 걔네들 그냥 내비뒀으면 환자들 치료하며 잘 지냈을 애들 아닌가.

게다가 “쥐 요괴” !!!
걔는 사실 그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는 거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 않던가?
만약 그렇게만 만들었다면 진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을 터인데 …
그게 가장 아쉽다.

물론 그랬다면 아예 개봉을 못했을 것이고 영화사와 감독은 세무조사 받았으리란 상상을 해보면 지금 이거라도 어디냐 싶다.

하 수상한 시절에 이 정도면 감동이지 뭘 더 바라느냔 생각이다.

영진공 짱가

2010년을 맞이하는 영진공의 자세


“영화진흥공화국”(이하 영진공)은 영화 블로그입니다. 더 정확히 말해 영화 블로거들의 팀블로그인 영진공은 영화를 중심으로 여러 문화 예술 활동을 매개 삼아 세상의 모든 이들과 대화하기 위해 블로깅을 하고 있습니다.

영진공에는 진보와 우파 그리고 중간 어디쯤과 마초 등 여러 시각과 가치과 함께 모여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얼핏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왠지 잘 어울리는 것은 서로의 신념과 가치를 인정하고 공통의 접점을 찾아 교류하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진공은 영화 자체를 가치나 이슈의 중심에 두지 않습니다. 모든 문화 활동이 그러하듯 영화는 사람과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산물이며 세상의 온갖 모습과 바라는 바를 은막에 옮기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세상 많은 이들과 함께 얘기 나누기 위한 매개로 알고 있으며 그러기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들에 대해 굳이 매개체를 의식치 않고 직접 얘기하곤 합니다.

영진공에 있어서도 2008년과 2009년은 여러모로 힘들고 속터지는 시절이었습니다. 우와 좌를 막론하고 공통의 선과 가치가 더럽혀지고 훼손되는 시절이어서 그런 것임에 더해 우리 사회가 그런 야만을 슬쩍 눈감아 용인하는 “탐욕의 공동체”로 전락하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기에 더 그러합니다.

영진공은 사람 사는 사회란 모든 요소가 밀접하게 연관된 유기체라고 생각하며 사회의 목적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데에 있다고 믿습니다. 영진공은 그저 경제가 살아야만 사회가 산다는 단순논리를 거부하며 부자가 돈을 많이 쓰도록 밀어줘야 잘 돌아가는 경제는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어거지가 얼마나 허황되고 파괴적인 것인지 우리의 현대사를 보아 명확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런 주장과 방책을 들이대는 이들의 목적은 적어도 함께 잘 사는 사회와 경제 건설에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거창하게 2010년을 맞는 자세 운운하였지만, 영진공이 신년을 맞는 자세는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제나처럼 영화를 매개로 세상과 대화할 것이고 세상에 대고 우리의 이야기를 던질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나름의 상식과 자아를 보존하면서 이 야만의 시절을 견뎌내려합니다. 견디고 단련하다보면 어느새 새출발의 시작점에 서있게 되는 꿈을 간직하면서 말입니다.

여러분,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cfile23.uf.116BEE1E4B3C9F2D0AA2D6.bmp영화진흥공화국 일동 올림

“줄리 & 줄리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보는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이네요.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각본을 썼었고 – 그 동안 로브 라이너 감독과 배우들만 기억해서 미안했습니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유브 갓 메일>(1998)은 직접 연출까지 했었군요.

이번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노라 에프런 감독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작품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크우드>(1983)였는데 메릴 스트립이 주연으로 출연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86년작 <제 2의 연인>(Heartburn)은 노라 에프런 본인의 소설을 직접 각색했던 작품으로 메릴 스트립이 다시 한번 주연으로 출연해 잭 니콜슨과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그렇게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와 주연배우로서 만났었던 두 사람이지만 그때로부터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감독과 주연배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 그간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에는 늘씬한 미녀 배우들만 주연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으로 멕 라이언이 있었고, 앤디 맥도웰, 리사 쿠드로, 그리고 니콜 키드먼까지 나름대로 당대에 가장 잘 나가던 여배우들이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줄리 & 줄리아>는 지금까지 노라 에프런 감독이 작업해왔던 작품들과 특히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발자욱 물러나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니콜 키드먼과 윌 패럴을 캐스팅했던 코미디 <그녀는 요술쟁이>(2005)가 흥행에 참패했던 일이 노라 에프런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요, 내용 면에서도 <줄리 & 줄리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와 동시에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참여했던 작품 <실크우드>와 동질성을 갖게 되기도 하죠.

자막으로 밝히고 있듯이 <줄리 & 줄리아>는 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40년대 후반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살다가 요리를 배운 이후 귀국하여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이고, 다른 한 명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입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책 외에 <프랑스에서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썼고 – 2004년에 돌아가셨는데 책은 2년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 줄리 파웰은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법을 1년간 따라해보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고 – 이 블로그는 정확히 줄리아 차일드의 사망일에 올린 줄리 파웰의 마지막 포스팅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로군요 – 이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묶은 책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을 냈는데 노라 에프런이 두 사람의 책을 각색하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죠.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은 공통점이 많아 보입니다. 두 미국인 여성 모두 요리를 좋아했고 요리와 관련된 출판을 했으며 각자 관계가 좋은 남편이 있었으되 아이는 없었죠 –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모두 요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줄리아 차일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았는데 마침내 출간된 자신의 책 <프랑스 요리 예술 정복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1961)을 받아들고 기뻐하던 마지막 컷은 그 책이 줄리아 차일드에게는 평생을 기다려온 아이와 다름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줄리 & 줄리아>는 훌륭한 프랑스 요리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 출판이나 블로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두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나 통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새로운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인지상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