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테리 길리엄표 영화 딱 그만큼 …

테리 길리엄 감독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 (The Imaginarium of Doctor Parnassus)>은 알려진 바대로 지난 2008년 초에 요절한 호주 출신 배우 히스 레저의 마지막 출연작이기도 합니다.

같은 해 여름 개봉을 앞두고 있었던 <다크 나이트>(2008)는 촬영을 완전히 끝낸 상태였기 때문에 히스 레저의 사망 소식이 오히려 관객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일조를 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이던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악재를 맞게 된 경우였죠. 다행히 영화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더라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을 판타지물이었던지라, 히스 레저가 남겨둔 촬영 분량을 조니 뎁, 주드 로, 콜린 패럴이 조금씩 맡아 출연하는 것으로 수정되면서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촬영 기간이 지연되는 등의 사정이 그리 쉽게 극복되기는 어려웠던 탓인지 기대했던 것보다 꽤 늦어져서 완성된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대 최고의 남자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 우연찮게도 네 명의 남자 배우들은 영국, 미국, 호주, 아일랜드 출신으로 골고루 포진되었습니다 – 블럭버스터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역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작품입니다.

악마(톰 웨이츠)와의 거래로 천년의 세월 동안 영생을 누려온 파르나서스 박사(크리스토퍼 플러머)가 16살 생일을 맞은 딸 발렌티나(릴리 콜)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도전에 나서는 상상초월의 판타지 동화라고 할까요. 아날로그 취향이 팍팍 뭍어나는 세트 미술이 보기 좋고 컴퓨터 그래픽을 활용해 등장 인물 각자의 욕망이 투영된 상상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장면들도 무척 보기가 좋았습니다.

시점이 크게 중요한 작품은 아닙니다만 의외로 동시대의 런던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점이 이색적이었고 그로 인해 생각지도 않았던 영국식 액센트를 실컷 들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가 내러티브 측면에서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을 구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비평이나 해설의 도움 없이도 직관적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기준점으로 삼았을 때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은 누군가의 해설이 있더라도 그닥 도움이 안될 정도로 플롯의 전개가 산만하고 때로는 몹시 지루하기까지 한 편입니다. 화제가 된 히스 레저와 세 명의 남자 배우들의 역할 보다는 파르나서스 박사가 성장한 딸을 보내고 싶지 않은 그 심정에 집중을 하는 편이 그나마 줄거리를 정리하는 데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이것은 영화가 끝난 이후에나 가능할 뿐, 영화를 보는 도중에는 아무래도 히스 레저의 마지막 모습과 그를 대신한 다른 배우들이 행동으로 보여준 십시일반의 정신에만 집중하게 될 따름입니다.

히스 레저가 촬영한 분량은 어디까지였을까? 조니 뎁이다! 쥬드 로가 나왔다! 드디어 콜린 패럴이네! 아, 영화 끝이네.

테리 길리엄 감독이 악재를 극복하지 못하고 졸작을 내놓았다고 할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만 상상극장이라는 제목에 걸맞는 아주 환상적인 2시간을 선사하지는 못한다고 할까요.

기억을 더듬어 보면 히스 레저를 배우로서 발견을 하게 해준 작품이 바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2005년작 <그림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이었습니다. 히스 레저가 자신에게 부여된 기존 이미지에 매이지 않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로 기꺼이 변신할 줄 아는 진정한 연기자의 길을 가기 위해 절치부심 끝에 선택한 것이 바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영화였다고 할까요.

그 이후 <브로크백 마운틴>(2005)과 <아임 낫 데어>(2007), <다크 나이트>(2008)에서의 성공에 이어 다시 한번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에 출연하기로 한 것은 그리 많은 출연료를 주기 힘든 사정을 감안할 때 보은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완성된 영화는 역시나 히스 레저를 앞세워 제법 많은 상영관에 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만 그렇다고 뜨거운 관객 반응까지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테리 길리엄 감독 영화의 오랜 팬들과 히스 레저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고자 하는 관객들에게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관람 기회가 될 것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마이애미 바이스 (Miami Vice, 2006), “몹씨나 액쑌적인 멜로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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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는 그 이름만으로 품질 보증수표나 다름 없다는 생각이다. <라스트 모히칸>을 시작으로 <히트>, <인사이더>, <알리>, 첫번째 HD 영화였던 <콜래트럴>까지 일관된 스타일과 완성도를 보여준다. 스케일이 큰 액션 영화에 강점을 보인다는 점에서 리들리 & 토니 스콧 감독과 유사하지만 <인사이더>와 <알리>는 마이클 만 감독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차별성을 보여준 작품이었다고 생각된다.

TV 연출자 시절 자신의 히트작의 영화 버전인 <마이애미 바이스>는 그러나 TV 시리즈물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여전히 마이애미가 중심이긴 하지만 사실상 ‘월드 와이드 바이스’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로케이션 스케일이 방대하면서도 돈 존슨의 하얀색 여름 양복과 여유 있는 미소 같은 건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마이클 만 감독이 정색을 하고 만든 ‘몹씨 액쑌 영화’가 <마이애미 바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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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액션 이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콜린 패럴과 공리의 멜러 부분이었는데, 이로 인해 마이클 만의 필모그래피에서 <마이애미 바이스>와 가장 유사한 영화로 <라스트 모히칸>과 <히트>를 꼽아야지 싶다. 다시 말하자면 <마이애미 바이스>는 마이클 만의 가장 성공한 장르 영화의 컨벤션을 최대한 답습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매우 환영할 만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마이애미 바이스>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콜래트럴>과 마찬가지로 필름이 아닌 HD 영화라는 부분이다. HD 촬영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이클 만 영화의 전작들에서 얻을 수 있었던 시각적 충일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이애미 바이스>를 보는 동안 여러 장면에서 ‘저게 그림이 필름이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을 곱씹을 수 밖에 없었다.

전체적인 스토리와 캐릭터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는 일일히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훌륭하다. 일부 대중적인 장르 영화의 컨벤션은 충분히 눈감아줄만 한 수준인데 딱 한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리와 콜린 패럴을 바라보는 ‘질투의 눈물 글썽임’과 그것으로 뭔가를 설명하려 했던 부분은 좀 불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공리는 <2046>에서 장즈이의 열연을 무색케 했던 그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공리와 콜린 패럴의 케미스트리가 뿜는 설득력으로 인해 ‘몹씨 액쑌 멜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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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