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Mr. 폭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취향 그대로 …

어느 때부턴가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독립영화들이 거의 매주 한 두 편 이상씩 개봉관에 걸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의 붐은 작년 초 <워낭소리>와 <똥파리>(2009) 를 기점으로 만드는 이들 쪽 보다는 상영관 측의 인식 변화가 큰 요인이 되었던 것 같고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만화대국 일본과 전통적인 강국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면 유럽 쪽에서 만들어진 작품들까지 알게 모르게 개봉되었다가 사라지곤 하더군요.

아무래도 투입 비용 대비 적정 마진이 일정 정도 보장이 되니까 만들기도 하고 그걸 사다가 개봉관을 잡아 관객들 앞에 보여주기도 하는 거겠죠. 어쨌든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는 전부 그게 그 놈인 것처럼 보여서 아주 떠들썩한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유심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부작용도 있는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판타스틱 Mr. 폭스>도 이거 또 어디서 굴러 들어오신 듣보잡 애니메이션이신가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겨 먹었는데 … 그게 아니라 이건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더니 결국 새해 연휴 기간에 <셜록 홈즈>와 <나인>을 제치고 유일한 극장 나들이의 이유가 되어 주셨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왜 갑자기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공동 감독으로 하기로 하셨던 분께서 중도 사퇴를 하게 되어 결국 웨스 앤더슨의 단독 연출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군요. 단독 연출을 맡게 된 시점이 제작 단계에서 어느 시점인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만 <판타스틱 Mr. 폭스>는 당당히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독의 전작들과 적지 않은 연계성을 보여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도 고색창연함이 느껴지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부터 웨스 앤더슨의 아날로그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 그대로 배어나는 듯 합니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주인공 Mr. 폭스(조지 클루니)의 야생 본능 – 이라고 해봐야 인간들의 농장을 털어 도둑질을 하는 것이지만 – 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로얄 테넌바움>(2001)의 Mr. 테넌바움(진 해크먼)이나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 의 Mr. 지소(빌 머레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은근히 유사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를 매번 앵글을 달리하며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번에는 그 가족 공동체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인물을 정면으로 다뤄주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판타스틱 Mr. 폭스>를 통해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에 대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대한 장황한 작품론과는 별개로, <판타스틱 Mr. 폭스>는 다시 한번 웨스 앤더슨 식의 판타스틱함이 넘쳐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만든 동물 인형들을 사용해서 컷마다 털이 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게 보면 볼 수록 은근히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 제이슨 슈왈츠먼 등의 낯익의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얹혀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외 윌렘 데포,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로만 코폴라, 자비스 코커까지 더빙에 참여했고 웨스 앤더슨 자신도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는데 이분들은 사실 듣는 귀만으로는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는 대체 어디서 찾아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고품격 빈티치 취향의 배경 음악들인데 – 그리하여 근사한 OST 앨범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이번 <판타스틱 Mr. 폭스> OST에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제외하면 비치 보이스의 곡이 가장 많이 쓰였고 롤링 스톤스와 자비스 코커의 곡에 아트 테이텀의 연주곡 등이 눈에 띕니다.

전반적으로 영화관 한번 갔다 하면 일생일대의 걸작 아니면 죄다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분들께는 다소 지루하거나 시시한 작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나,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찾는 분들, 특히 웨스 앤더슨 영화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신 분들께는 Must See 리스트에 올리셔도 좋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애들은 애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나름 웃겨주시는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의 원작인 로알드 달의 동화

영진공 신어지

“줄리 & 줄리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보는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이네요.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각본을 썼었고 – 그 동안 로브 라이너 감독과 배우들만 기억해서 미안했습니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유브 갓 메일>(1998)은 직접 연출까지 했었군요.

이번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노라 에프런 감독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작품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크우드>(1983)였는데 메릴 스트립이 주연으로 출연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86년작 <제 2의 연인>(Heartburn)은 노라 에프런 본인의 소설을 직접 각색했던 작품으로 메릴 스트립이 다시 한번 주연으로 출연해 잭 니콜슨과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그렇게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와 주연배우로서 만났었던 두 사람이지만 그때로부터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감독과 주연배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 그간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에는 늘씬한 미녀 배우들만 주연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으로 멕 라이언이 있었고, 앤디 맥도웰, 리사 쿠드로, 그리고 니콜 키드먼까지 나름대로 당대에 가장 잘 나가던 여배우들이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줄리 & 줄리아>는 지금까지 노라 에프런 감독이 작업해왔던 작품들과 특히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발자욱 물러나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니콜 키드먼과 윌 패럴을 캐스팅했던 코미디 <그녀는 요술쟁이>(2005)가 흥행에 참패했던 일이 노라 에프런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요, 내용 면에서도 <줄리 & 줄리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와 동시에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참여했던 작품 <실크우드>와 동질성을 갖게 되기도 하죠.

자막으로 밝히고 있듯이 <줄리 & 줄리아>는 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40년대 후반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살다가 요리를 배운 이후 귀국하여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이고, 다른 한 명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입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책 외에 <프랑스에서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썼고 – 2004년에 돌아가셨는데 책은 2년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 줄리 파웰은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법을 1년간 따라해보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고 – 이 블로그는 정확히 줄리아 차일드의 사망일에 올린 줄리 파웰의 마지막 포스팅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로군요 – 이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묶은 책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을 냈는데 노라 에프런이 두 사람의 책을 각색하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죠.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은 공통점이 많아 보입니다. 두 미국인 여성 모두 요리를 좋아했고 요리와 관련된 출판을 했으며 각자 관계가 좋은 남편이 있었으되 아이는 없었죠 –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모두 요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줄리아 차일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았는데 마침내 출간된 자신의 책 <프랑스 요리 예술 정복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1961)을 받아들고 기뻐하던 마지막 컷은 그 책이 줄리아 차일드에게는 평생을 기다려온 아이와 다름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줄리 & 줄리아>는 훌륭한 프랑스 요리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 출판이나 블로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두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나 통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새로운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인지상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