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큰 플라워” (Broken Flowers), 과거의 나와 대면한다는 것


The Past is gone, I know that. Future isn’t here yet, whatever it’s going to be. So, all there is, this is the present. That’s it.

우리는 시간을 과거 , 현재 , 미래 이 세가지로 분류한다. 그러나 미래는 끊임없이 다가와서 현재가 되고 , 현재는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과거가 되어버리며 , 과거는 잊고 있던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현재가 되기도 한다. 아니 , 정확히는 현재의 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사랑 , 연인 , 그런것들 말이다. 다시 되돌려놓고 싶은 과거는 껍데기만 남아 현재를 위로하며 , 무심하게도 잊고 있던 과거는 종종 어떤 계기로 인해 현재의 나를 괴롭힌다. 돈 존스턴이 어느 날 받은 분홍색 편지. 그것이 괴롭고 귀찮게도 과거의 여인들과 재회해야 하는 퀘스트의 시작이다. 당연히 흔쾌히 찾아나설리가 없다. 나라도 ! 내가 생각하는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일’ 이란 쪽팔려서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일인데 하물며 과거의 연인이라니.

함께 영화를 본 이는 ‘존 돈스턴은 찾아갈 과거의 사랑들이 많아서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라고 했는데, 과연 그럴까?

옛일을 돌이켜 보면 나한테 잘못한 이들도 많았지만 그에 필적할만큼 내 잘못도 많다. 편집증적 기질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이 돼가려는건진 몰라도, 그런 이들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거나 아니면 내가 옛날에 해주지 못했던것을 해주면 어떨까하는 그런 생각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건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나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며 좀 웃기긴 하지만 ‘내가 옛날에 너에게 맛있는거 한 번도 못 사줬으니까 다음주에 내가 밥 한번 살께.’ 라며 용서를 구한다면 이내 ‘*까.’ 라는 대답을 듣고 말 것이다. 과거를 현재에서 고칠순 없다. 다만 끊임없이 뉘우치며 살다보면 미래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잘못이 고쳐져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겠지. (… 라고 제멋대로 결론 내려본다.)

과거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유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당신은 나를 순수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처럼 말도 안되는 오해를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며, 그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고 씁슬하긴 하지만.

영진공 담패설

“판타스틱 Mr. 폭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취향 그대로 …

어느 때부턴가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독립영화들이 거의 매주 한 두 편 이상씩 개봉관에 걸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의 붐은 작년 초 <워낭소리>와 <똥파리>(2009) 를 기점으로 만드는 이들 쪽 보다는 상영관 측의 인식 변화가 큰 요인이 되었던 것 같고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만화대국 일본과 전통적인 강국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면 유럽 쪽에서 만들어진 작품들까지 알게 모르게 개봉되었다가 사라지곤 하더군요.

아무래도 투입 비용 대비 적정 마진이 일정 정도 보장이 되니까 만들기도 하고 그걸 사다가 개봉관을 잡아 관객들 앞에 보여주기도 하는 거겠죠. 어쨌든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는 전부 그게 그 놈인 것처럼 보여서 아주 떠들썩한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유심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부작용도 있는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판타스틱 Mr. 폭스>도 이거 또 어디서 굴러 들어오신 듣보잡 애니메이션이신가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겨 먹었는데 … 그게 아니라 이건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더니 결국 새해 연휴 기간에 <셜록 홈즈>와 <나인>을 제치고 유일한 극장 나들이의 이유가 되어 주셨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왜 갑자기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공동 감독으로 하기로 하셨던 분께서 중도 사퇴를 하게 되어 결국 웨스 앤더슨의 단독 연출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군요. 단독 연출을 맡게 된 시점이 제작 단계에서 어느 시점인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만 <판타스틱 Mr. 폭스>는 당당히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독의 전작들과 적지 않은 연계성을 보여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도 고색창연함이 느껴지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부터 웨스 앤더슨의 아날로그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 그대로 배어나는 듯 합니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주인공 Mr. 폭스(조지 클루니)의 야생 본능 – 이라고 해봐야 인간들의 농장을 털어 도둑질을 하는 것이지만 – 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로얄 테넌바움>(2001)의 Mr. 테넌바움(진 해크먼)이나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 의 Mr. 지소(빌 머레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은근히 유사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를 매번 앵글을 달리하며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번에는 그 가족 공동체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인물을 정면으로 다뤄주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판타스틱 Mr. 폭스>를 통해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에 대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대한 장황한 작품론과는 별개로, <판타스틱 Mr. 폭스>는 다시 한번 웨스 앤더슨 식의 판타스틱함이 넘쳐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만든 동물 인형들을 사용해서 컷마다 털이 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게 보면 볼 수록 은근히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 제이슨 슈왈츠먼 등의 낯익의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얹혀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외 윌렘 데포,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로만 코폴라, 자비스 코커까지 더빙에 참여했고 웨스 앤더슨 자신도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는데 이분들은 사실 듣는 귀만으로는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는 대체 어디서 찾아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고품격 빈티치 취향의 배경 음악들인데 – 그리하여 근사한 OST 앨범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이번 <판타스틱 Mr. 폭스> OST에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제외하면 비치 보이스의 곡이 가장 많이 쓰였고 롤링 스톤스와 자비스 코커의 곡에 아트 테이텀의 연주곡 등이 눈에 띕니다.

전반적으로 영화관 한번 갔다 하면 일생일대의 걸작 아니면 죄다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분들께는 다소 지루하거나 시시한 작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나,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찾는 분들, 특히 웨스 앤더슨 영화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신 분들께는 Must See 리스트에 올리셔도 좋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애들은 애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나름 웃겨주시는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의 원작인 로알드 달의 동화

영진공 신어지

영화 <매드독> 중

당대의 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


알 파치노에게 말랑 멜로 ‘프랭키와 쟈니’가 있다면 로버트 드니로에겐 역시 말랑 멜로 ‘형사 매드독’이 있다.사용자 삽입 이미지


로버트 드니로라는 이미지 때문에 마치 갱스터 형사물인 양 ‘형사 매드독’이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원제는 ‘mad dog and glory’. ‘프랭키와 쟈니’처럼 남녀의 이름이 영화의 제목이다. 또한 그 상대 배우도 ‘프랭키와 쟈니’의 미셸 파이퍼에게 결코 뒤쳐지지 않는 우마 서먼.


덧붙여 마지막.


‘형사 매드독’에는 감성의 자양강장제가 하나 끼어 있다. 로버트 드니로가 사람이 죽은 현장에서 쥬크박스를 통해 듣던 그 노래, 시체를 보고도 그를 노래하게 만들던 그 노래, Louis Prima의 ‘Just a gigolo’다. 사실은 이 노래가 그를 노래하게 만든 건 아닐 테다. 청춘을 쓸쓸히 흘려보내고 뒤늦게 찾아온 사랑이, 아니 사랑에도 남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영화 속 버전과는 다르지만 Louis Prima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귀하게 느껴지는 영상이다. 놀라운 유튜브.





Louis Prima, Just a gigolo

영진공 철구

[영진공 60호]

상벌위원회
2006년 10월 14일

The Past is gone, I know that. Future isn’t here yet, whatever it’s going to be. So, all there is, this is the present. That’s it.

우리는 시간을 과거 , 현재 , 미래 이 세가지로 분류한다 . 그러나 미래는 끊임없이 다가와서 현재가 되고 , 현재는 현재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과거가 되어버리며 , 과거는 잊고 있던 순간에 불쑥 튀어나와 현재가 되기도 한다 . 아니 , 정확히는 현재의 나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

과거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 사랑 , 연인 , 그런것들 말이다 . 다시 되돌려놓고 싶은 과거는 껍데기만 남아 현재를 위로하며 , 무심하게도 잊고 있던 과거는 종종 어떤 계기로 인해 현재의 나를 괴롭힌다 . 돈 존스턴이 어느 날 받은 분홍색 편지 . 그것이 괴롭고 귀찮게도 과거의 여인들과 재회해야 하는 퀘스트의 시작이다 . 당연히 흔쾌히 찾아나설리가 없다 . 나라도 ! 내가 생각하는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일’ 이란 쪽팔려서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일인데 하물며 과거의 연인이라니 .

함께 영화를 본 이는 ‘존 돈스턴은 찾아갈 과거의 사랑들이 많아서 외로운 사람이 아니다.’ , 라고 했는데 , 처음 든 생각은 그랬다 . ‘나는 과거의 연인들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데 … .’
나한테 잘못한 이들도 많았지만 그에 필적할만큼 내 잘못도 많다 . 편집증적 기질 때문인지 아니면 사람이 돼가려는건진 몰라도 , 그런 이들에게 찾아가 용서를 빌거나 아니면 내가 옛날에 해주지 못했던것을 해주면 어떨까하는 그런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

그렇지만 그건 이미 죽은 자식 꼬추만지기에 지나지 않는다 . 그들은 이미 나를 미워하고 있을 것이며 좀 웃기긴 하지만 ‘내가 옛날에 너 사귈때 맛있는거 못 사줬으니까 다음주에 내가 밥 한번 살께.’ 라며 용서를 구한다면 이내 ‘조까.’ 라는 대답을 들을수 있을 것이다 . 과거를 현재에서 고칠순 없다 . 다만 끊임없이 뉘우치며 살다보면 미래 어느 순간에는 과거의 잘못이 고쳐져 있는 것을 발견할수 있겠지 . (… 라고 제멋대로 결론내려본다 .)

과거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하는 이유는 똑같은 실수를 번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 당신은 나를 섹스 파트너로 생각했으니까 ,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으니까 , 같은 말도 안되는 오해를 다시는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끊임없이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야 한다 . 이 모든 것이 결국 자신을 위한 것이며 , 자신을 위할수 밖에 없다는 점이 안타깝고 씁슬하긴 하지만 .

상벌위원회 객원 낭만 해적
담패설(http://dampaesul.ddanzimovi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