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 Mr. 폭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취향 그대로 …

어느 때부턴가 아동용 애니메이션과 우리나라 독립영화들이 거의 매주 한 두 편 이상씩 개봉관에 걸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독립영화의 붐은 작년 초 <워낭소리>와 <똥파리>(2009) 를 기점으로 만드는 이들 쪽 보다는 상영관 측의 인식 변화가 큰 요인이 되었던 것 같고요, 아동용 애니메이션은 만화대국 일본과 전통적인 강국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면 유럽 쪽에서 만들어진 작품들까지 알게 모르게 개봉되었다가 사라지곤 하더군요.

아무래도 투입 비용 대비 적정 마진이 일정 정도 보장이 되니까 만들기도 하고 그걸 사다가 개봉관을 잡아 관객들 앞에 보여주기도 하는 거겠죠. 어쨌든 한 명의 관객 입장에서는 전부 그게 그 놈인 것처럼 보여서 아주 떠들썩한 한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유심히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는 부작용도 있는 풍요 속의 빈곤을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판타스틱 Mr. 폭스>도 이거 또 어디서 굴러 들어오신 듣보잡 애니메이션이신가 오해하기 딱 좋게 생겨 먹었는데 … 그게 아니라 이건 웨스 앤더슨 감독 작품이라고 해서 화들짝 놀라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더니 결국 새해 연휴 기간에 <셜록 홈즈>와 <나인>을 제치고 유일한 극장 나들이의 이유가 되어 주셨습니다.

웨스 앤더슨이 왜 갑자기 애니메이션 연출을 맡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원래 공동 감독으로 하기로 하셨던 분께서 중도 사퇴를 하게 되어 결국 웨스 앤더슨의 단독 연출작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군요. 단독 연출을 맡게 된 시점이 제작 단계에서 어느 시점인지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만 <판타스틱 Mr. 폭스>는 당당히 웨스 앤더슨 필모그래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독의 전작들과 적지 않은 연계성을 보여줍니다. 요즘 유행하는 3D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그 이름만으로도 고색창연함이 느껴지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부터 웨스 앤더슨의 아날로그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 그대로 배어나는 듯 합니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되는 주인공 Mr. 폭스(조지 클루니)의 야생 본능 – 이라고 해봐야 인간들의 농장을 털어 도둑질을 하는 것이지만 – 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간 <로얄 테넌바움>(2001)의 Mr. 테넌바움(진 해크먼)이나 <지소와의 해저 생활>(2004) 의 Mr. 지소(빌 머레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웨스 앤더슨의 작품들은 은근히 유사한 캐릭터들로 구성된 가족의 이야기를 매번 앵글을 달리하며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번에는 그 가족 공동체의 우두머리 격이 되는 인물을 정면으로 다뤄주고 있다는 점에서 어쩌면 <판타스틱 Mr. 폭스>를 통해 웨스 앤더슨의 전작들에 대해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대한 장황한 작품론과는 별개로, <판타스틱 Mr. 폭스>는 다시 한번 웨스 앤더슨 식의 판타스틱함이 넘쳐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면서도 비교적 사실적으로 만든 동물 인형들을 사용해서 컷마다 털이 날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게 보면 볼 수록 은근히 매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조지 클루니, 메릴 스트립, 빌 머레이, 제이슨 슈왈츠먼 등의 낯익의 배우들의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게 얹혀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외 윌렘 데포, 오웬 윌슨, 애드리안 브로디와 로만 코폴라, 자비스 코커까지 더빙에 참여했고 웨스 앤더슨 자신도 직접 목소리 연기를 했는데 이분들은 사실 듣는 귀만으로는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더군요.

웨스 앤더슨 영화에서 빼먹을 수 없는 요소 중에 하나는 대체 어디서 찾아낸 것인지 알 수 없는 고품격 빈티치 취향의 배경 음악들인데 – 그리하여 근사한 OST 앨범을 남겨준다는 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 이번 <판타스틱 Mr. 폭스> OST에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오리지널 스코어를 제외하면 비치 보이스의 곡이 가장 많이 쓰였고 롤링 스톤스와 자비스 코커의 곡에 아트 테이텀의 연주곡 등이 눈에 띕니다.

전반적으로 영화관 한번 갔다 하면 일생일대의 걸작 아니면 죄다 실망스러울 수 밖에 없는 분들께는 다소 지루하거나 시시한 작품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나, 좀 더 다양한 영화를 찾는 분들, 특히 웨스 앤더슨 영화의 팬이라고 자부하는 고품격 빈티지 취향이신 분들께는 Must See 리스트에 올리셔도 좋을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애들은 애들 대로,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나름 웃겨주시는 웨스 앤더슨 감독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영화의 원작인 로알드 달의 동화

영진공 신어지

“줄리 & 줄리아”,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오랜만에 보는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이네요.


필모그래피를 보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각본을 썼었고 – 그 동안 로브 라이너 감독과 배우들만 기억해서 미안했습니다 –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과 <유브 갓 메일>(1998)은 직접 연출까지 했었군요.

이번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아 차일드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노라 에프런 감독의 인연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던 작품은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실크우드>(1983)였는데 메릴 스트립이 주연으로 출연해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었죠.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86년작 <제 2의 연인>(Heartburn)은 노라 에프런 본인의 소설을 직접 각색했던 작품으로 메릴 스트립이 다시 한번 주연으로 출연해 잭 니콜슨과 공연했던 작품입니다.

그렇게 일찌감치 시나리오 작가와 주연배우로서 만났었던 두 사람이지만 그때로부터 20년이 훨씬 더 지난 지금에 와서야 감독과 주연배우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 그간 노라 에프런 감독 작품에는 늘씬한 미녀 배우들만 주연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대표적으로 멕 라이언이 있었고, 앤디 맥도웰, 리사 쿠드로, 그리고 니콜 키드먼까지 나름대로 당대에 가장 잘 나가던 여배우들이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줄리 & 줄리아>는 지금까지 노라 에프런 감독이 작업해왔던 작품들과 특히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발자욱 물러나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니콜 키드먼과 윌 패럴을 캐스팅했던 코미디 <그녀는 요술쟁이>(2005)가 흥행에 참패했던 일이 노라 에프런에게 어떤 전환점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고요, 내용 면에서도 <줄리 & 줄리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노라 에프런 감독의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와 동시에 노라 에프런이 시나리오 작가로서 처음 참여했던 작품 <실크우드>와 동질성을 갖게 되기도 하죠.

자막으로 밝히고 있듯이 <줄리 & 줄리아>는 두 실존 인물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40년대 후반 남편을 따라 프랑스에 가서 살다가 요리를 배운 이후 귀국하여 프랑스 요리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줄리아
차일드(메릴 스트립)이고, 다른 한 명은 삶의 활력을 얻기 위해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다가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줄리
파웰(에이미 아담스)입니다.

줄리아 차일드는 전설적인 프랑스 요리책 외에 <프랑스에서 나의 삶>이라는 자서전을 썼고 – 2004년에 돌아가셨는데 책은 2년 후에 출간되었습니다 – 줄리 파웰은 줄리아 차일드의 요리법을 1년간 따라해보는 요리 블로그를 운영했고 – 이 블로그는 정확히 줄리아 차일드의 사망일에 올린 줄리 파웰의 마지막 포스팅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된 상태로군요 – 이후에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묶은 책 <Julie & Julia: 365 Days, 524 Recipes, 1 Tiny Apartment Kitchen>을 냈는데 노라 에프런이 두 사람의 책을 각색하여 한 편의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죠.

줄리아 차일드와 줄리 파웰은 공통점이 많아 보입니다. 두 미국인 여성 모두 요리를 좋아했고 요리와 관련된 출판을 했으며 각자 관계가 좋은 남편이 있었으되 아이는 없었죠 – 그 덕분에 두 사람은 모두 요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줄리아 차일드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슬픔을 안고 살았는데 마침내 출간된 자신의 책 <프랑스 요리 예술 정복하기>(Mastering the Art of French Cooking, 1961)을 받아들고 기뻐하던 마지막 컷은 그 책이 줄리아 차일드에게는 평생을 기다려온 아이와 다름없는 존재였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 <줄리 & 줄리아>는 훌륭한 프랑스 요리법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고 출판이나 블로깅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결국 우리 모두에 관한 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대상이나 통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그 안에서 새로운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되는 과정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인지상정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요.

영진공 신어지

<로스트 라이언즈> – 바로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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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2007)의 작가이기도 한 매튜 마이클 카나한이 자기가 써놓은 시나리오를 놓고 ‘근데 이런 걸 누가 영화화하겠다고 하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선댄스의 현인에게나 한번 보내보자’고 했다더군요. 애초에 씌여질 때부터 상업적인 고려라곤 별로 없었다는 얘깁니다. 하지만 그런 거 없이 만들었다가 대박이 난 영화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요.1) 로버트 레드포드가 <로스트 라이언즈>를 제작하고 직접 감독과 주연까지 하겠다고 나섰을 때에는 쫄딱 망해도 좋으니 무조건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겠지만(그는 우리가 아는 한 신념의 영화인들 가운데 한 명이니까요)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대선을 앞둔 지금 시점이라면 또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의 용기있는 제작 배경에 흠집을 내려는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의도만 앞세운 듬성듬성한 영화’는 결코 아니란 점을 얘기하는 겁니다. 무미건조한 플롯의 프로파갠다 영화이긴 하지만 상황에 따라 대박이 났을 시에도 최소한 만듬새에 대한 부분에서 만큼은 흠결을 따질 수 없는 영화란 겁니다. 그런 덕에 관객들은 오직 이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내용 자체에 대해서만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2)

등장 인물들의 대사가 무척 많고 빠르기까지 한 영화입니다. 자막으로 읽어야 하는 관객 입장에서는 화면 보랴 정신없이 지나가는 자막 읽으랴 정신이 없습니다. 미국 정치 드라마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영화 속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의 배경 설명에 그다지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행히 <로스트 라이언즈>는 부시 대통령과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도가 땅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라 다가올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이 계속 정권을 유지하기가 몹시 어려운 지금 시점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거 하나만 알면 영화 속 상황과 대화들을 따라가기에는 그다지 어려운 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로스트 라이언즈>는 이렇다할 액션이나 스릴러를 제공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제한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결코 재미있는 영화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영화적 재미와 상관없이 그 영화가 다루고 있는 내용의 중요성과 시급성 때문에 꼭 봐둬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직접 나서서 <로스트 라이언즈>를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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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니멀/흑백 취향이라 그런지 미국 현지 포스터가 참 근사해 보이네요.
포스터만 보면 세 명의 배우들이 마치 ‘나라를 지켜라 3총사’처럼 보입니다만
톰 크루즈의 경우 그 잘생긴 이미지를 역으로 이용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살짝 고개를 숙인 컷이 사용된 국내용 포스터가 영화 내용에 좀 더 유사합니다.
미국에서도 개봉일자가 11월 9일이었군요. 목표한 바를 과연 어느 정도까지
얻어낼 수 있을런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좀 더 일찍 했어야 할 일 아니냐는
아쉬움도 들지만 내용 자체가 절대적으로 맞는 말이기 때문에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늦은 것 같다고 안하는 것 보다는 백번 낫습니다.



같은 시각, 영화는 세 개의 다른 장소와 인물들로 시작합니다. 먼저 이라크. 미군들이 새로운 작전 명령을 전달받습니다. 이라크 내의 고지들을 점령해서 좀 더 확실한 군사적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이에 따라 군인들이 헬기를 타고 눈발이 흩날리는 산 정상으로 이동합니다. 그러나 매복해있던 반군들의 공격에 작전은 실패합니다. 히스패닉계 군인 하나가 헬기에서 떨어지고 그를 구하기 위해 흑인 병사가 자기 몸을 허공으로 던집니다. 눈이 많이 쌓인 산 정상에서 두 병사가 치명상을 입은 채 다가오는 이라크 반군들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됩니다. 작전 본부에서는 전투기를 출격시켜 반군들을 폭격합니다.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대화 보다 액션에 치중하는 부분이 여깁니다. 물론 두 병사도 대화를 하긴 합니다만,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음에도 이들이 과연 살아남을 것이냐 죽을 것이냐가 관객의 궁금증을 붙잡아 맵니다.

또 한 곳은 워싱턴 D.C.에 있는 재스퍼 어빙 상원의원(톰 크루즈) 집무실입니다. 부시, 라이스, 파웰 등과 찍은 어빙의 사진들이 방 안에 가득하네요. 베트남전 당시 대학 학보사 기자였던 베테랑 언론인 제닌 로스(메릴 스트립)가 방문합니다. 톰 크루즈 특유의 매력적인 웃음과 함께, 10년 전 어빙이 공화당의 새로운 희망이라고 써주었던 호의적인 일화를 시작으로 한 시간에 걸친 대담이 시작됩니다. 어빙이 정부의 새로운 군사 전략을 설명하며 특종으로 다뤄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라크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모한 군사 전략과 그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 두 병사가 바로 이 전략의 결과물입니다. 영화의 원제목인 Lions For Lambs는 2차 대전 당시 어느 독일 장교가 영국군을 놓고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멍청한 양들이 지휘하기 때문에 사자들만 떼죽음을 당한다는 거죠. <로스트 라이언즈>에서 어빙 상원위원은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수 만 명의 미국인 청년들을 사지로 내몰았고 지금도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공화당의 정치 엘리트들을 대변합니다. 그 외양은 톰 크루즈의 얼굴을 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눈시울을 붉히기까지 하지만 그 알맹이를 똑바로 봐야한다며 영화 미학이고 뭐고 관객 눈 앞에 노골적으로 들이밀고 있는 영화가 <로스트 라이언즈>입니다.

마지막으로 정치 일번지와 이역만리 전쟁터로부터 한참 떨어져있는 대학 캠퍼스의 스티븐 맬리(로버트 레드포드) 교수실입니다. 최근 출석률이 좋지 않은 정치학 전공 학생과 맬리 교수 간의 또 다른 면담이 시작됩니다. 뺀질뺀질하던 그 학생은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중이었고 이라크 전쟁터에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두 병사는 맬리 교수의 제자들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직접적인 언술이 맬리 교수이 입을 통해 펼쳐집니다. 바꾸려면 참여해야 한다. 해보지도 않고 비판하는 건 도피일 뿐이다.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켜서 등돌리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정치 전략가들의 의도다. 그러므로 젊은 유권자들이여, 강의실 토론이건 그 무엇이건 참여하라! 참여하라! 참여하라! 일반적으로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직접 전달하는 건 가장 낮은 수준의 표현 방식으로 간주됩니다. 가르치려 드는 영화는 반감만 불러일으킬 수 있으므로 더더욱 좋지 않습니다. <로스트 라이언즈>는 그런 고려 사항들을 내팽개친 정치 찌라시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적혀있는 정치 구호에 동의할 수 있다면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할 수가 있습니다. 흥행 리스크와 미학적 비판을 무릅쓴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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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도 영화 이야기로부터 한발 더 나아가고자 합니다. 네, 영화 관객으로서 쓰는 글이 아니라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 쓰는 겁니다. <로스트 라이언즈>가 목표로 하는 건 다가오는 미 대선입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찬반 투표라 할 수 있는 대선에 젊은 영화 관객층을 끌어들이려는 겁니다. 이슈를 불러일으켜 더 많은 사회적 담론을 창출하고 참여시키고자 함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스>가 전해주는 메시지와 그 의미는 미국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대선을 불과 40 여 일 밖에 남겨두지 않은 우리 자신들에게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야기입니다. 정계 은퇴를 선언한지 오래인 노땅 정치인이 3수를 하겠다고 전격 출마 선언을 한 것이 가장 최근의 뉴스입니다. 한마디로 쪽대본에 코미디 정국이 따로 없습니다. 다음 주에는 또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10년간 일궈온 변화들 앞에 도돌이표를 찍으려는 쪽과 그 반대편의 구획이 좀 더 명확해졌다는 것입니다. 부패와 반부패의 대결이 됐든 다른 무엇 간의 대결이 됐든 어느 편이 과거의 것이고 어느 쪽이 미래를 위한 것인지는 이제 덜 헷갈리게 되었습니다.

현 정부가 그간 잘 했다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얘기는 아닙니다. 전쟁 지속이냐 중단이냐를 다투는 미 대선과 우리 대선의 핵심 이슈는 분명히 다른 맥락입니다. <로스트 라이언즈>로부터 있는 그대로 이끌어올 수 있는 내용은 오직 ‘참여하라’는 한 가지입니다. 다 아는 얘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천 번, 만 번을 반복해도 모자름이 없는 대목입니다. 선거를 통한 참정은 가장 기초적인 참여의 방식이고 참여를 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그 만큼 상대방에게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내가 참여하지 않으면 막걸리 한 사발과 꽃장식 공약 앞에 표를 내주던 과거의 이력을 반복하게 됩니다. 어느 쪽에 표를 던질 것인가는 각자의 판단이지만 어디로든 반드시 ‘표를 던져야 한다’는 건 변치않은 진리입니다. 나라가 살기 좋아지면 이쪽이든 저쪽이든 별 차이가 없어지고 투표율도 자연히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닙니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고 그 길을 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줄 리더쉽을 필요로 합니다. 리더쉽이 시원치 않으면 그때 다른 방식으로 참여해서 바로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던 길을 반대 방향으로 바꾸게 되면 그땐 정말 힘든 상황이 됩니다. 지금 되돌아 가기엔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이 아깝습니다. 지난 10년 보다 더 이전에 그들이 과연 어떠했었는지 기억을 되살려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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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투박한 구성의 영화임에도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있는 영화가 <로스트 라이언즈>입니다. 현 집권 여당인 공화당의 위선을 고발하고 그들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상업화된 언론을 꼬집습니다. 더이상 속아서는 안된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고 이라크 전쟁에서 희생된 수많은 전사자들의 실제 무덤들을 보여줍니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정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특히 젊은 유권자들을 돌이켜 세우고자 합니다. 전장에 고립된 두 명의 병사들, 즉 탁상공론으로만 끝내지 않고 ‘바꾸기 위해 먼저 참여한’ 교수의 제자들이 꼭 죽는 것으로 끝내야만 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그게 이라크 전을 통해 벌어진 현실, 욕심 많은 양들로 인해 미래의 사자들이 개죽음을 당한 사회적 손실과 안타까움에 좀 더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마지막 장면은 <로스트 라이언즈>가 선전 선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젊은 관객들을 정면으로 겨냥합니다. 맬리 교수와 면담을 마친 학생이 기숙사로 돌아오고 TV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빗댄 듯한 가십 뉴스가 화면을 메우고 있습니다. 결국 어빙 상원의원의 의도대로 새로운 이라크 전략이 ‘성공리에’ 전개되고 있다는 자막 뉴스가 가십 뉴스 화면 밑에 깔려 지나갑니다. 학생의 흔들리는 눈빛을 담으며 영화는 끝납니다. 학생의 변화를 직접 보여주는 것 보다 훨씬 나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선택은 각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만일 그 학생까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새로운 결심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영화적으로는 통쾌할 수도 있겠지만 <로스트 라이언즈>가 목표한 바는 이루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미 할 얘기는 충분히 전달했으니 남은 부분을 관객의 가슴과 머리 속에 남겨주는 방식입니다. 영화가 의도했던 바를 스크린 속에 박제해버리지 않고 관객들이 극장 밖으로 들고나갈 수 있게 하는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 멜 깁슨이 연출한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그 정도로 흥행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리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멜 깁슨 자신도 상당히 당황스러워 했을 정도였죠.

2) 만듬새부터가 듬성듬성해서는 특히나 이런 내용의 영화는 대박내기가 어렵습니다. 돈을 많이 번다는 의미가 아니라 프로파갠다 영화가 애초에 지향했던 사회적인 파장과 공명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방법론을 공격함으로써 내용의 핵심을 가리며 소모전이 되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주 기초적인 전술 전략이니 만큼, 그런 여지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ps. 의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2)에서 언급한 ‘방법론 공격으로 핵심 논의를 빗겨나가기’의 유사 사례가 있어 링크를 걸어둡니다. 오! 로버트, 당신은 어쩌자고 이런 영화를? [오마이뉴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