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랄랄라] “니 말은 틀려!!!!!”


“집구석 컴퓨터 인근 올로케이션 대작”

“풍자는 풍자일 뿐 오바하지 말자.”


동남아 순회공연을 막 마치고 돌아온 본격 시사풍자 플래쉬 막장 애니메이션 [세상은 랄랄라]

에피소드 16 : “니 말은 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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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자작시

-가을山行-


그대여!
단풍이 아름답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게나.


겨울이 오면
자취를 감춰야 하네.


그대여,
힘이 생겼다고
좋아서 날 뛸 것 없네.


힘은 그렇게 오래
주머니 속에 머물지 않네.


아름다울 때,
서러울 때를 생각 하게나.


있을 때,
없을 때를 생각 하게나.


그대,
오늘 너무 너무 억울해도
그대도,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할 때가 있었음을
생각 하게나.


우리가 오늘 해야 할 것은,
이웃들의 생각을 해야되는 것일세.
이웃들의 생각은 바꾸라는 것일세.


그대가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으이.
이웃들은 그대와 함께
바꾸는 대열에 서라는 것일세.


달이지면
어두워지는 것은 당연하이.
그러나,
곧 해가 뜨는 것 일세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네.
변한다고,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네.


세월이 가는 걸 서러워 말게나.
또 세월이 오고 있네.


가는 세월은 언제나 빠르고,
오는 세월은 언제나 느린 것이네


초조하지 말게나.
서두르지 말게나.
살다보면 세월이 오지 않을 수도 있네.
그렇다고 실망하지 말게나.


지나간 것도,
앞으로 올 것도, 잊고 지내세.


세상은,
할 일이 남아 있는 자를
잊어버리는 일은 없을 걸세.


잊혀진다면, 그대의 할일도 끝났다는 걸세.
그렇다고 서러워 말게나,
그것이 삶의 이치인 것을 어쩌나.


오늘
북한산에 남긴 발자국은
내일이면 또 다른 사람의
발자국으로 덮이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네 .


하늘은
언제나 아름답기만하네
온갖 구름이 갖가지 형상을 그려도
하늘은 하늘이네


가을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하네,
산행은 더욱 그러네!
가을은, 가을이네.
안녕.
<이재오 작시>



이재오 자작시다. 언론은 이 시가 박근혜 측과 갈등을 빚은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성의 뜻을 담았다고 해석하고 있다.

경향신문 기사 링크

그러나 웬걸? 내가 보기엔 오히려 박근혜 측에게 정권교체하는 데 까불지 말고 협조하라는 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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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와 박근혜는 천하의 앙숙이었다. 김문수, 이재오 등은 딴에는 민주화 운동 물 좀 마셨다고 박근혜와 계속 트러블을 일으켰다. 수년 전부터 말이다. 그런 그가 이런 시를 썼다. 특히 이 부분.



그대,
오늘 너무 너무 억울해도
그대도,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할 때가 있었음을
생각 하게나.



그대가 주인공이 아니라도 좋으이.
이웃들은 그대와 함께
바꾸는 대열에 서라는 것일세.



과연 이게 박근혜와 트러블을 일으킨 자신에 대한 자성일까?


아무튼 재밌다. 취미가 술집 가서 주물럭거리는 것이 고작인 천박한 놈들에게 비하자면 시 쓰는 정치인은 충분히 흥미로울 만하다.


같은 당 정두언. 이 양반의 취미는 밴드 보컬이다. 아직도 그 취미 생활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양반 홈페이지에 가면 자신이 부른 노래를 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 7~80년대 밴드 노래들이다. 나쁘지 않다.


하지만 이 양반, 성추행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그 인식 수준이 술 먹고 가슴 주물럭거리는 짓 못지 않게 천박하다.


하긴. 시 쓰는 이재오의 말들과 그 말을 통해 드러나는 그의 세상 또한 하등 아름다울 게 없으니까.


영진공 철구

<식객>, “아쉬운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다.”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식객>에 나름의 기대를 했던 건 그게 허영만의 작품을 원작으로 했기 때문이다.

원작이 그렇게 훌륭하면 <검은 집>처럼 대충 만든다 해도 재미가 있고,

<타짜>는 원작에 버금가는 재미를 선사해주지 않았던가.

하지만 <식객>은 어떤 감독이 메가폰을 잡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단 사실을 내게 가르쳐 준 영화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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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에서 아쉬운 부분은 하나 둘이 아니다.

첫째, 주인공인 김강우(성찬) 편인 정은표와 라이벌인 임원희(오사장)의 편에 선 김상호가 왜 군대 선후배 관계여야 하는가이다.

둘이 친해야 할 이유라곤 억지웃음을 유발하는 것 말고는 없었는데

설정 자체가 무리라 그런지 난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둘째, 오사장을 악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려놨다.

요즘 트렌드는 악인과 선인의 경계가 모호한 게 특징인데,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다해도

목적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가리는 오사장의 모습은 그냥 짜증스럽기만 했다.

게다가 악의 유전성까지 언급하는 것 같아 불편했는데,

이런 류의 선악구도는 좀 시대착오적이 아닐까 싶다.

셋째, 소를 잡은 대목.

좋은 소를 구해오라는 과제가 떨어졌을 때

성찬 주위의 사람들은 성찬이 기르는 소를 잡자고 하나

정은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타이른다.

“저건 소가 아니야… 성찬이 동생이야. 너 같으면 네 가족을 잡아먹고 싶겠니?”

하지만 성찬은 그 소를 잡음으로써 ‘동생론’을 편 정은표를 무안하게 한다.

성찬이 요리대회에 참여하는 계기는 오사장에 대한 경쟁심이 생겨서인데

내가 털 있는 동물을 좋아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자신의 사적 목적을 위해 동생처럼 여기는 소를 꼭 잡아야 했을까?

까짓것 최고의 요리사로 인정 못받으면 어떤가?

그 소와 함께 호형호제하며 사는 게 더 행복하지 않을까?

“너희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며 성찬이 울 때,

난 그게 악어의 눈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 밖에도 <식객>은 잘 만든 영화가 아님을 여러 곳에서 증명하는데,

소의 근출혈을 뒤늦게 발견해 극적 효과를 노리는 유치함도 그 하나다.

만화 <식객>을 딱 두권밖에 못봐서 모르겠지만

원작은 이렇게 이상하진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원작은 성찬이란 청년이 전국을 돌면서 맛을 찾는 거였는데

여기선 그게 요리대회로 탈바꿈하고 만다.

요리가 기술임은 분명하지만

미각이 100미터 달리기처럼 등수를 매길 수 있는 분야가 아닌 것도 사실 아닌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홍대앞 떡볶이를

다른 친구는 자기 동네가 더 맛있다고 우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대회에서 우승을 못한다고 해서 그 요리사가 실력이 없는 건 아닐텐데,

오사장이 종합 2위를 달린다고 해서 매출이 50%로 떨어진다는 발상도 지나치게 유치하다.

게다가 민족주의적인 내용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도

요즘 트렌드로 봐서는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내가 <한반도>를 괜찮게 평가하는 건

그 영화가 애초부터 그런 의도로 기획되었고

내용 자체도 그럭저럭 공감할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낭만자객>에서 난데없이 나오는 민족주의의 발현에 난 뜨악했고

그 비슷한 느낌을 <식객>에서도 받는다.

아무리 잘줘봤자 10점 만점에 7점인 이 영화는

TV에서 추석특선 시리즈로 나올 때 보는 게 나을 듯하다.

 

영진공 서민

<세븐데이즈>, 성공적인 상업 영화의 요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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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를 불문하고 최근에 볼 수 있었던 중에 가장 화려한 오프닝 타이틀로 시작하는 <세븐데이즈>는 비 오는 날의 추격 액션과 영화 후반부의 항공 촬영 장면, 그리고 생각해보면 영화의 제목부터가 데이빗 핀처의 <세븐>(1995)의 스타일을 많이 참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물론 줄거리는 과대망상형 연쇄살인과는 거리가 멀지요. 백전백승을 자랑하는 여자 변호사의 어린 딸이 유괴를 당하고, 이 유괴범은 현재 사형 언도가 거의 확정적인 피의자의 변호를 맡아 무죄 판결을 받아내라고 요구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유괴이지만 실질적인 이야기의 진행은 살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범죄 수사극이 됩니다. 비리 경찰 김성열(박희순)이 위기에 빠진 친구 유지연 변호사(김윤진)을 도와 거친 입담과 액션을 도맡습니다. 살인을 한 진짜 범인이 누구인가, 주인공 변호사는 자기 아이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아이를 유괴한 범인은 도대체 누구이며 왜 그런 요구를 한 것일까. 많은 의문들을 안고 영화는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다가 마침내 최종 목적지에 무난히 도착합니다.

<세븐데이즈>는 국내 극장가에서 흥행에 크게 성공할 수 있을 만한 요건들을 안팎으로 두루 갖췄습니다. 적당히 복잡하면서도 에피소드도 많은 잘 짜여진 추리극(“범인은 절름발이다!”식의 한 마디로 간단히 스포일링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범인의 정체가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을 기본으로 모성애라는 정서적 인입 포인트를 탄탄하게 깔아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에 걸맞는 과감한 신체 훼손 장면의 전시,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지지 않도록 중간중간 양념 구실을 해주는 쌈마이 대사들, 그리고 권력형 비리나 유학생들의 마약 복용 문제와 같은 ‘공공의 적’들에 대한 권선징악에 이르기까지 갖출 건 다 갖추고 나온 영화가 <세븐데이즈>입니다. 12년 전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헐리웃 영화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말거나, 이 정도 내러티브에 안정적이고 속도감 있는 연출이라면 전국의 젊은 관객들로부터 상당한 호평을 받을만 합니다.

<가발>(2005)과 <구타유발자들>(2006)을 통해 좋은 평가를 얻기는 했지만 대중적인 성공은 맛보지 못했던 원신연 감독이 이번에는 아주 작정을 하고 만든 듯한 한국형 블럭버스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제작비가 엄청나게 들어가서 블럭버스터가 아니라 영화의 내용이나 스타일 면에서 상업적인 성공(영화관이 있는 블럭을 구름 같은 관객들로 버스트해버리는)을 가장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는 얘깁니다. 의외의 반전들이 무척 효과적임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들의 캐릭터나 대사 전달 방식이 지극히 전형적이라는 점에서나 관객들의 정서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선택되어진 결말, 그리고 이미 끝난 영화에 도마뱀 꼬리 같은 주석 장면을 굳이 덧붙여 넣은 부분들은 ‘지나친 것이 모자란 것 보다 낫다’는 한국형 대박 영화의 원칙을 충실히 따라준 결과라고 하겠습니다. 기왕에 목표했던 바를 크게 이루어 다음 작품에서는 흥행에 대한 부담에서 좀 더 자유로워진, 원신연 감독 특유의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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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Bob Dylan의 전대기 영화 미국에서 개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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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예고편만 봐도 전율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11월 21일, 미국에서 ‘밥 딜런’의 일대기를 다룬 <I am Not There>영화가 개봉했다. ‘밥 딜런’을 ‘크리스챤 베일’, ‘케이트 블랑쉐’, ‘히스 레져’, ‘리차드 기어’ 등등 6명의 배우가 시대별로 나누어 연기를 했다고 한다. 케이트 블랑쉐는 이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최고 여배우 상을 수상했고 감독 ‘토드 헤인즈'(<파 프롬 헤븐>, <벨벳 골드 마인>)는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IMDB User Rating은 8.2로 꽤 높은편이고, NYT의 기자 A.O. Scott 기사에 따르면 일분도 빼고 싶은 부분이 없다고 언급했다. 다들 ‘케이트 블랑쉐’의 연기가 괄목할만 하다고 하는데 (트레일러에 많이 등장한다.) 예고편만 봐도 잘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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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명의 밥딜런

아 밥 딜런… ‘밥 딜런’에 대해 굳이 얘기하진 않겠다.
이 영화는 그전에 우리가 보아왔던 보통의 일대기 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 6명의 밥딜런… 흑인 소년부터 여자배우 ‘케이트 블랑쉐'(<반지의 제왕>의 그 아리따운 엘프여왕아닌가?) 판의 밥 딜런이라? 매우 흥미롭다.

게다가 ‘리차드 기어’는 제처 두더라도, ‘크리스챤 베일’에다가 <블로큰 백 마운틴>의 ‘히스 레져’라니 조연급에는 근래에 ‘수면의 과학’에 반갑게 얼굴을 보였던 ‘샬롯 갱스부르(밥딜런의 아내)’와 ‘줄리안 무어’까지 한사람의 전기영화라 하기엔 캐스팅이 너무 메가톤급이다. (특히 케이트 블랑쉐는 본좌의 관심여배우 중의 하나다. 짐 자무쉬의 영화 <Coffee and Cigarettes>에서 유명 여배우와 그의 동생을 1인 2역으로 연기했던 것에 소름이 돗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밥 딜런이 ‘Don’t Look Back’을 부르던 시절의 Jude를 흐느적거리는 밥딜런의 톤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았을까 싶다.)

앤디워홀의 이야기를 다룬 (아니 실은 안티 앤디워홀의 이야기) <Factory Girl>에서도 잠시 느낄 수 있듯이 밥 딜런은 유명세를 치르며, 돈과 미디어에 완전히 휘둘러감긴 다른 셀레브리티들과 달리 자신만의 몸짓과 자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주력한 아이콘이다.

나는 밥 딜런의 노래는 난해하며 촌스럽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레일러만 보고 감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는데, 아무래도 그의 유약할 것만 같은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메시지와 그걸 몸으로 실천한 것들에 대한 동경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내가 세상이 변하고 좀 더 나아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몸으로 실천한다거나 나의 메시지를 누군가에게 완전히 전하는 것은 사실 어렵다.

이런 영화를 접할 때마다 가끔씩 한번씩 폭팔하는 문화의 미국이 부러울 따름이다.

New York Times에서는 감독인 토드 헤인즈(Todd Haynes)가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1960년대의 이미지를 수집한 포트폴리오를 감독의 목소리를 통해 슬라이드 쇼와 함께 볼 수 있다. 국내 개봉은 모 영화사에서 내년 1~2월사이 개봉할 확율이 높다 한다. 그때까지 위의 포트폴리오를 보면서 이 영화를 기다려 보자.

아참 들리는 소리로는 역시나 리차드 기어는 기대에 못 미친단다.

영진공 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