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그 노래] “오블리비언”, A Whiter Shade of Pale

 

 


 


 



 


 


2013년 개봉작 “오블리비언”은 제작, 각색, 감독을 맡은 조셉 코신스키의 자작 동명 그래픽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리고 오블리비언(Oblivion)은 망각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톰 크루즈, 모건 프리먼, 올가 쿠릴렌코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킬링타임용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그동안 수도 없이 보아왔던 스토리 라인과 그저 평범한 비쥬얼 그리고 누가 봐도 뻔히 알 수 있는 반전까지 …


 


그래도 나름 시원한 화면과 비행장면의 다이나믹함은 볼만했고, 뻔한 스토리를 매끄럽게 이어나가는 연출력도 괜찮긴 하다.


 


암튼 이 영화에서 주인공인 잭 하퍼와 줄리아가 숲 속 오두막에서 서로의 사랑을 되짚어 나가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가 바로 1967년에 나온 Procol Harum의 “A Whiter Shade of Pale”이다.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오르간과 함께 바하 스타일의 멜로디로 전개되는 이 노래는,


허나 가사를 들여다보면 좀 뜨악해진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서 … 아마 그래서 이 노래를 삽입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


 


일단 들어나 보자, 그 노래.


 


 



 





 



We skipped the light fandango
turned cartwheels ‘cross the floor
I was feeling kinda seasick
but the crowd called out for more
The room was humming harder
as the ceiling flew away


When we called out for another drink
the waiter brought a tray


팬댕고 커플댄스를 폴짝폴짝 뛰고,


객석을 가로질러 물구나무서서 구르기를 하였네,


배멀미가 느껴졌지만,


관객들은 더하라고 조르네,


천정이 날라가 버릴듯이,


방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네,


우리가 술을 더 달라고 하자,


웨이터는 술수레를 끌고 오네,  


 

And so it was that later
as the miller told his tale
that her face, at first just ghostly,
turned a whiter shade of pale


그리고나서 얼마 후,


밀러(옛 이야기에 나오는 주정뱅이)가 설화를 이야기할때,


그녀의 얼굴은 마치 귀신을 보기나 한 것처럼,


창백한 하얀 빛으로 변했지, 


 

She said, ‘There is no reason
and the truth is plain to see.’
But I wandered through my playing cards
and would not let her be
one of sixteen vestal virgins
who were leaving for the coast
and although my eyes were open
they might have just as well’ve been closed


그녀는 말했어,

“이유 따위는 없어, 진실은 보이는 그대로인 거야”

하지만 나는 카드놀이에 빠져서,

그녀가, 바다로 떠나는 열 여섯 베스탈 버진(그리스 신화에 나옴) 처럼,

떠나도록 놔두질 않았지,

내 눈은 크게 뜨여있었지만,

사실 그냥 감겨져있는 거나 다름 없었어,

 

She said, ‘I’m home on shore leave,’
though in truth we were at sea
so I took her by the looking glass
and forced her to agree
saying, ‘You must be the mermaid
who took Neptune for a ride.’
But she smiled at me so sadly
that my anger straightway died


그녀는 또 말했지, “난 상륙허가를 받아서 집에 와 있어”,


하지만 실은 우리 모두 바다에 있었지,


그래서 나는 그녀를 전망경으로 데리고 가서는,


이걸 깨닫도록 했지,


“너는 인어란 말야, 넵튠(바다의 신)이 사랑하는 …”


허나 그녀는 너무도 슬픈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의 분노는 바로 사그라 들었어,


 


If music be the food of love
then laughter is its queen
and likewise if behind is in front
then dirt in truth is clean
My mouth by then like cardboard
seemed to slip straight through my head
So we crash-dived straightway quickly
and attacked the ocean bed


음악이 사랑의 양식이라면,


웃음은 사랑의 여왕이지,


그런 전차로 뒷쪽이 앞이 되면,


더러움은 사실 청결함이지,


그 무렵 나의 입은 마치 골판지처럼,


내 머리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네,


그래서 우리는 급히 탈출 다이빙을 실시하였고,


바다 밑바닥을 공격하였네,


 


 


 


솔직히 뭔 소린지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노래의 가사는 영어가 원어인 영국, 미국에서도 … 이게 도대체 뭔 얘기인가 하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 중 다수를 차지하는 의견은 … Lucy in the Sky with Diamond처럼 분명히 약 빤 기분을 의미하는 거다 … 라고들 한다.


 


그게 맞는지 아닌지는 작사가가 알고 있겠지만, 그는 당연히 … 전혀 그런 거 아니다, 그냥 있는대로 받아 들여달라라고만 한다.


 


이 정도에서 오늘의 포스팅을 마무리하면서 A Whiter Shade of Pale 얘기할 때면 빼놓지 않고 언급되는 바하 옹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를 들어보도록 하자.


 


그럼 즐감~ ^^


 


 



영진공 이규훈


 


 


 


 


 


 


 


 


 


 


 


 


 


 


 


 


 


 


 


 


 


 


 


 


 


 


 


 


 



 

“콜래트럴”, Hands of Time


 


 


 


 



 


2004년 개봉 영화 “콜래트럴”(Collateral),


마이클 만 감독의 수작 중 하나인 이 영화에는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


그리고 제이다 핀켓 스미스 외 재능있는 조연들이 열연을 펼친다.


 


이 영화에는 영화 못지않게 멋진 노래가 삽입되어있는데,


영화의 초반부, Annie(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Max(제이미 폭스)의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L.A.의 밤 거리,
옅은 안개가 낀 듯 우울한 그 거리 여기저기,
높이 솟아있는 빌딩들에서는 불빛이 반짝이는데,
그 사이를 Max의 택시가 달린다.
그리고 흐르는 노래 …

“Hands of Time”

London 출신의 2인조 그룹, Groove Armada의 2003 년 앨범 “Love Box”에 수록되어있는 이 곡, Richie Havens가 피쳐링으로 참여한 이 노래가 문득 듣고 싶어졌다. 


 



 






 


 







 


 



Hands of Time



Groove Armada


Keep looking through the window pane
Just trying to see through the pouring rain
It’s hearing your name, hearing your name
I never really felt quite the same,
Since I’ve lost what I had to gain
No one to blame, no one to blame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Oh it seems to me, can’t back the hands of time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다보고 있네,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 그 너머를 보고자 하네,
당신의 이름이 들려와 … 당신의 이름이 들리는듯 하네 …
내가 가져야만 했던 것을 잃은 이후로,
진정 이런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네,


아무도 탓 할 수 없지, 누구도 탓 할 수 없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아, 정녕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네.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Oh it seems to me, can’t turn back the hands of time
Seems to me, history was left behind

시간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아,
아, 정녕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네.
모든 것이 이젠 과거로 남겨지고 말았네.


 


 


 


 


영진공 이규훈


 


 


 


 


 


 


 


 


 


 


 


 


 


 


 


 


 


 


 


 


 


 


 


 


 


 


 


 


 


 


 


 


 


 


 


 


 

“잭 리처”, 행동하는 보수의 표상

 

 


 


 



 


 


포스터 카피 보소.


‘법은 한계가 있다. 그에게는 (한계가) 없다.’


이런 Fox TV 잭 바우어 같으니라고 … 모든 히어로 ‘잭’은 다 이런가 싶기도 하다.


 


이번 대선에 표창원 전 교수께서 상당한 ‘히트’를 치시고, 그 뒤로도 계속 인기(?)를 지속중이신데, ‘참다운 보수’가 무엇인지 표방하는 모습이 참 좋아보인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중요한 가치’를 고수하려는 참다운 보수를 보기 어려운 것일까?


 


어릴 때 나는 마치 홈쇼핑 운동기구 광고에 나오는 듯한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배웠다. ‘불의를 못 참으십니까? 정의를 위해 한 몸 불사르실 겁니까? 여러분에게 판검사 또는 경찰을 추천합니다!’라고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판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사람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의사가 되는 게 아니라 ‘돈’ 많이 번다고 의사를 자식에게 강권하는 현재의 아비, 어미들 말이다.


 


뭐 사실 언론에 연일 보도되는 것들을 보면 그게 그리 틀린 얘기도 아니다, 헌재소장 후보자랍시고 나온 인물이 권력을 얼마나 남용해댔으면 그렇게 돈파리가 꼬이는지, 언제부터 명예가 타락과 동의어인 것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렇다. 어린 내게 가르쳐준 세상의 숭고한 가치들이 송두리째 짓밟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이유는 순전히 ‘법’이 가진 제한.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법이란 게 잘못 되었는데도 그걸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 이건 진보가 아니라 건전한 ‘보수주의자’가 해야될 가치덕목인데도 말이다.


 


잭 리처는 군 수사관 출신의 ‘자유주의자’다.


법적으로 제재받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고 있다. 운전면허증, 거주지 등록 등 자신을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보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대답하련다. 자신이 가진 ‘정의’의 원칙에 따라 합리적인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보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군인’은 보수와 닿아 있을수밖에 없다. 애국과 명예, 정의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정부’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the well-trained soldier 는 그런 사람들이다. 잘못된 명령에 항거하고, 비도덕적인 전술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


 


그렇지만 우리는 가스통을 들고 협박을 일삼는 불한당 같은 퇴역군인들이 판치는 나라에 살고있다. 허나 어쩌겠는가 … ‘비정상적’인 보수 세력이 어디 한 둘이어야 말이지.


 


 


 



 


 


이 영화의 Best Shot 을 꼽자면 이 장면을 들고 싶다.


정의로운 보수의 결집이라고나 할까? 해병대 출신 저격수와 한 세대 아래의 육군 출신 미끼. 특히 로버트 듀발이 한 쪽 눈을 감고 있는 이유는 야간 저격 훈련을 해본 사람이면 익히 아시리라.


 


요약하자면,


정의를 위해 법이 무시되는 것도 웃기지만,


법이 정의를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더 무섭다.


 


 


이 영화를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1. 톰 크루즈 마니아
2. 무기 전문가
3. 미 육군과 미 해군(해병대)의 기싸움 좋아하는 사람


 


그나저나 톰 크루즈 영화 중에 기억나는 것들은 대부분이 군영화 뿐이다.


7월 4일생, 탑건, 어퓨굿맨 ……


 


 


 


영진공 함장


 


 


 


 


 


 


 


 


 


 


 


 


 


 


 


 


 


 


 


 


 

“락 오브 에이지”, 왜 매운탕에 설탕을 풀었을까?

 



 


 


 


 


 







요건 영화 포스터
이거슨 뮤지컬 포스터



 


 


 


최근 개봉한 영화 “락 오브 에이지 (Rock of Ages)”,


이 영화는 2006년 처음 무대에 올랐던 동명의 뮤지컬을 영화화 한 것이다. 그런데 제목과 주요 등장인물이 같기는 해도 극의 전개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달라도 너~어~무! 다르다.


 


이 뮤지컬은 지금도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영국의 웨스트엔드에서 계속 성황리에 공연 중인데, 극 중 주요인물인 드류와 셰리, 그리고 스테이시의 행로는 영화와는 매우 다르게 지극히 현실적이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꽤나 비중있는 패트리샤라는 인물도 원작에서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뮤지컬과 영화에서 같이 피날레를 장식하는 Journey의 명곡 “Don’t Stop Believin'”을 통해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도 영화와 뮤지컬이 매우 다른 데다가, 이미 미드 “글리(Glee)”에서 줄창 단물을 빼먹은지라 좀 김이 샌다고나 할까.


 


글리에서 어떻게 단물을 빼먹은 거냐고? …… 이렇게~!


 


 



영국 오디션 프로그램 X Factor에서의 초대 공연 영상

 



 


 


그건 그렇다치고, 이 영화 왜 이렇게 됐을까? 떡하니 Rock of Ages라고 마빡에 타이틀 붙여놓고서는 어찌하여 Sugar Pop의 낯간지러운 해피엔딩으로 갈무리 하여야 했을까? 마치 얼큰한 매운탕에 설탕을 대박으로 타 넣은 듯한 입맛을 선사하는 건 왜일까?


 


미국의 드라마 제작자 중에 아론 소킨이라는 사람은 우리에게도 제법 알려져있는 미드 “웨스트윙 (West Wing)”의 제작자이다. 그가 이전에 발표하였다가 대박으로 망한 드라마 – 허나 일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꽤나 호평을 받았던 –  “Studio 60 on the Sunset Strip”(2006~2007) 에는 아론 소킨이 생각하는, 그리고 미국 민주당 사람들의 생각이라 믿어지는 미국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니까 미국은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가 아니고, 가족을 걱정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 않는. 뭐 그런 나라라는 신념이 듬뿍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영국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는 휴 그랜트가 영국 수상으로서 자신의 나라가 미국 보다 훨씬 자긍심이 있는 나라라고 이야기하며 이런 대사를 친다.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세익스피어, 처칠, 비틀즈, 숀 코너리, 해리포터가 있고, 데이빗 베컴의 오른발도 있죠.”


 


미국은 유럽에 비해 대문호가 많은 것도 아니며 (물론 마크 트웨인이나 존 스타인벡, 펄 S. 벅 등 우리가 아는 많은 문호가 있지만), 전쟁 일으키기 좋아했지만 대놓고 전쟁 영웅을 시대적 자부심으로 가질 정도로 어리석진 않죠.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축구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최고지만, 미국인에게 최고는 ‘미식축구’. 그런데 미국 외에 이거 인기 있는 나라 거의 없다고 봐야 할듯.


 


 



Studio 60 … 의 에피소드 중에서

 


 


암튼 Studio 60 … 에서 하고 싶은 얘기는, 유추해보자면 그러니까 … 미국의 정체성은 ‘자유’라는 것. 그래서 언론의 ‘자유’와 ‘책임’. 언론의 자유를 위해 매카시즘에 대항했던 블랙리스트 이야기도 다루었고,


 


그런데 극 중에서 이 스튜디오는 SNL로 유명한 뉴욕이 아니라 LA의 선셋 스트립에 있다. 그건 그러니까 헐리웃과 그걸 대표하는 정체성은 Sunset Strip에 있다라는, 그래서 이를 이용한 세트를 꾸며 가장 자기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Modern Comedy Show’의 정수를 보여주고자 한다 (위의 동영상이 그 선언이다).


 


헐리웃의 현대 TV, 영화 산업이야 말로 미국이 자랑하는 자부심일 테니 ……


 


영화 Rock of Ages의 배경 또한 헐리웃의 Sunset Strip 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곡이 80년대 글램 메탈(Glam Metal)넘버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원작 뮤지컬의 배경과 제작의도가 80년대의 헐리우드라는 키워드로 집약되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Glam Metal은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헤어 메탈, 팝 메탈, 헐리우드 메탈 등. 왜 헤어 메탈이냐고? 아래를 보시라.


 


 


 


배배꼬인 언니들 (Twisted Sister)



 


 


 


60년대에 유행했던 글램록(대표적인 노래들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 많이 나온다.)을 메탈의 영역으로 확장한 게 글램메탈인데,


 


사실 … 반짝이는, 화려한, 말랑말랑한, 섹시한 … 등의 단어가 메탈과 어울릴리가 없잖아! 게다가 노래는 온통 사랑타령! … 그런데 이들은 그런 음악을 했고, 그런 노래를 불렀다. 어디에서? 헐리우드 선셋 스트립에서!


 


그러다보니 아까도 말했듯, 매운탕에 설탕 푼, 홍어찜에 꿀 바른 그런 맛이 나는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뮤지컬과 영화에서 나오는 노래들은 대부분 당시 어메리칸 락 밴드의 곡으로, Night Ranger, David Lee Roth, Poison, Foreigner, Pat Benatar, Extreme, Warrant, Bon Jovi, Twisted Sister, Quarterflash, REO Speedwagon, Starship, Journey, Guns N’ Roses 등 6~80년대를 호령한 락, 메탈, 헤비메탈 밴드 들의 주옥같은 곡들로 구성되어 즐거움을 선사하긴 하는데 …


 


이게 당장 먹을 땐 달아서 그럴 듯 한데 자꾸 씹고 뜯고 먹고 즐길 수록 그 맛이 그 맛이 아닌 거다 …


 


그럼 왜 이런 맛이 나게 되었을까?


 


 


 



80년대 미국의 TV에서는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는 시트콤의 전성시대가 열린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80년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카터, 레이건, 부시로 이어지는 이 시기에 미국은 어쨌거나 ‘호황’이었다. 월남전의 상처에서 벗어나고 표면적이나마 냉전이 종식되었으며 돈이 마구 뿌려졌다.


 


80년대 초반의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택한 레이건의 재정팽창정책, 레이거노믹스는 한 마디로 지금의 MB 경제정책의 벤치마킹모델이다. 부자와 기업에게 돈을 몰아주고, 세금은 줄이고, 소비는 장려하고 … 말하자면, 부자와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거다 …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나서 미국은 사상최악의 재정적자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정치신인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어쨌든 80년대의 미국은 석유와 군수산업에 쏟아부어지는 국민의 세금과 찍어서 뿌려대는 화폐의 힘으로 흥청망청 돈을 써댔다. 그리고 그런 돈 소나기를 음악 산업이 놓칠리 없었다.


 


 


 




CF나 스포츠 중계 시에 자주 나오는 노래, Van Halen의 “Jump”.


그걸 이렇게 불러버리면 우리보고 어쩌라고 … -.-;;; 




 


이제 고뇌하는 뮤지션은 돈이 되지 않았다. 쓸데없이 사회의 그늘을 읊조리고 고통을 토로하는 음악은 상품이 될 수 없었다. 락도 예외는 아니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큰 음량과 강한 드럼 비트, 가슴을 후비는 기타 리프, 절규하는 보컬리스트는 좋은 상품이었지만, 거기에 골치아픈 사회현상을 실어 올리는 건 영업상 매우 손해보는 일이 된 것이다.


 


그러니 락도 팔 수 있어야 노래를 부르게 해 주었다. 팔릴려면 고객의 입맛에 맞춰서 노래를 만들어야 했고 … 그래서 락이라는 의상을 입고 락 비트의 연주를 하면서 팝에서나 들었던 사랑노래가 쏟아져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즐기는 음악, 놀 수 있는 음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댄스, 디스코, 보이밴드가 나오게 되었고 금세 음악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산업적 측면을 제껴 놓고 생각해보아도,


선셋 스트립, 사실 이 동네에서 록의 정신을 말하긴 좀 그렇다. 거기에 서면 절로 ”와~ 1년 내내 이렇게 날씨 좋고, 쭉빵 아가씨들이 오락가락하는 여기서 메탈 밴드들이 노래한단 말이지” 소리가 나온다.


 


시애틀이나 뉴욕, 심지어 오스틴에 가도 이렇게 조건 좋은 록클럽은 없다. 본능에 충실한 게 록이라면 … 본능에 충실해도 언니들이 줄 서는 동네와 본능에 충실하게 음악해도 음습한 반응의 동네에서 만들어진 음악은 뭔가 달라도 많이 달라지는 거다.


 





해질녘의 선셋 스트립의 클럽들에서 내려다본 L.A. 시내는 확실히 있어보인다. 괴롭거나 허탈하거나 음울하지 않는 그냥 멋진 동네가 거기 있는 거다. 그러니 거기에서 절규하고 저항하는 락이 나올 턱이 있나.


 


 




 



내게 설탕을 쏟아부어줘!

 


락은 하고 싶고, 세상은 흥청거리고, 돈을 가진 이들의 마음에 들어야 대중 앞에서 노래 부를 수 있고 … 그러니 삐딱선을 탄 거고 매운탕에 설탕을 확 부어버린 거다. 왜? 그렇게해도 맛있게들 먹었으니 말이다.


 


그나마 원작 뮤지컬에서는 나름 현실적인 마무리를 보여준다. 거기에서는, 화려함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살아온 젊은 시절, 그때가 지나고 돌아보니 …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Don’t Stop Believin’ 하자는 거다.


 


그런데 영화는 그러면 안 팔릴 것 같았나보다.


화려함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살다보면 … 더 화려해진다 ~ 베이비!


이렇게 끝나버리니 말이다.


 


암튼 그렇게 락이라는 매운탕에 해피라는 설탕을 대박으로 붓고 또 부어서 설탕죽이 되어도 어쨌든 이건 시작이 락이니까 락이라고 불러도 됨, 님하. 라는 맛이 되었다는 그런 얘기라는 거다.


 


그러니까 앞으로 매운탕엔 설탕말고 고추기름을 넣자! OK?!  


 


 


 


 


영진공 헤비한 규훈이의 함장질

 


 


 


 


 


 


 


 


 


 


 


 


 


 


 


 


 


 


 


 


 


 


 


 


 


 


 


 


 


 


 


 


 


 


 

“우주 전쟁”, 세상의 단순한 이야기를 블록버스터에 담아낸 영화


기억이 정확한지는 장담할 수 없는데 ‘1’자를 날카롭게 간 샤프심으로 ‘7’자로 고쳤던 것만은 확실하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료 통지서를 새벽 5시 30분에 엄마의 눈앞에 디밀었던 건 분명히 잠결에 별 생각 없이 안경도 끼지 않고 그냥 주시리라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엄마의 “지우개 가져와봐라”라고 나직이 읊조리는 한마디는 재앙이었다.


아노미, 인샬라,

알고도 모른척하는 사람은 무섭다.
그게 사람이 아닐 땐 더욱 그렇다.

정체뿐만 아니라 그 근원마저 불확실한 다른 생명체가 지구를 덮치는 우주전쟁은 그 제목의 진부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그래, 제목 따위야 후지면 어떠냐? 스티븐 형아에, 톰 형아에, 당시 10세 전후 최고미녀 다코타양까지 최고의 진용을 갖추지 않았더냔 말이다. 이 셋의 진용만으로도 비슷한 타 영화에게는 그야말로 ‘트라이포드’같은 놈들이었던 것을 ……

“꿈과 용기와 희망을”이라는 ‘5共’ 풍의 1980년대적 카피의 우리나라 포스터와는 상관없이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영화 자체의 힘이 넘쳤다. 녹조낀 서해안 바닷가에 폐타이어 끼고 놀던 우리가 플로리다 광활한 푸른 해변에 15미터짜리 죠스의 꿈이 있을리 없었고 국민소득 3만불짜리 미국 중산층 가정사를 배경으로 한 아이들의 스펙타클 모험 이야기가 우리에게 줄 용기는 없었다.

뿐이랴? 수 천번을 침략당하고도 “그래도 살아는 있었네”라는 자조적인 국사교과서 멘트를 끈질긴 민족의 저력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우리에게 당당히 문화침략자로서 영웅시되는 헤리슨 형이 어떤 희망을 줄 지 알지 못했다. “꿈과 용기와 희망을”은 미국시민권자이며 중산층 정도에 살며 최소한 백인쯤은 되어줘야 가능한 케치프레이즈였지 최류탄을 머리에 맞고 국가 기관 지하에서 탁치니 억하고 죽어나갔던 군부독재하의 암울한 우리에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는 그저 두 시간짜리 뽕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스필버그는 영화를 잘 만들고서도 권력의 소외자들에게는 뻥쟁이, 뽕쟁이로 몰릴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겠는가?

“우주전쟁”(2005)은 나이를 먹어가며 조금씩 솔직해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역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며 실제로 정의는 대단치 않고 살거나 죽는 건 가오다시 잡을 틈이 없다는 세상의 아주 단순한 이야기들을 블록버스터라는 공룡의 아가리에 집어 넣는 담대함에 역시 스티븐 형은 대가다란 생각이 든다.

“아미스타드”에서부터 변화를 꾀한 스티븐 스필버그는 “우주전쟁”을 통해서 확실히 자신의 나와바리를 넘겨 버렸고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난 아직도 밤 10시 미팅 시간 잡아놓고 2시간 뒤에 술이 떡이 되어서 나타난 클라이언트의 홍보성 광고 제안서 단가로 고민하는 중이다. 그래도 “우주전쟁”에서 보여준 스티븐 형아의 화법대로라면 난 아직 살만하다.

난 비루하고 비겁하고 비리비리한 소시민이지만 쳇, 수 억년 벼르고 벼르다가도 어이없이 당하는 바보들도 있는데 뭐가 그리 걱정이란 말인가?

영진공 그럴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