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소원은 통일” … 이 말을 들어 본 게 참 오래 전이다.


왜 그럴까. 더 이상 우리에게 통일은 의미가 없게 된 걸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런 일이 돼버린 걸까. 또 누군가는 비용이 많이 들어서 통일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도 하는데 정말 그런가.


그렇지 않다. 통일은 해야 한다. 그저 별 고민 없이 한 민족이니까 그래야 한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통일은 지금의 우리에게 매우 필요하기에 하는 말이다.


통일의 필요성은 “민족 공동의 번영”이라는 추상적인 표현 속에 들어있는 현 시점에서의 현실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가 있다. 그건 바로 어떻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 찾기이다.


다 아다시피 IMF 금융위기 이후 남쪽은 참으로 빠르게 세계 자본의 경쟁구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북쪽의 경제위기도 가속화되었다. 최근의 중국과 러시아는 사회주의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자본주의를 적극 실천하고 있다. 미국이 자본주의의 맹주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적절한 투자처와 소비시장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무한경쟁의 시대이고 그 안에서는 스스로 살아남는 것이 미덕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스스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참으로 힘들다. 우리 자체의 동력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하고, 지금 우리를 둘러 싼 정세가 그러하다는 것이다. 일례를 들자면,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생산자재도 미국의 승인을 거쳐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분단”이 남쪽과 북쪽에 일정한 이득을 준 시절도 있었다. “분단”을 통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 미국이 남쪽을 지원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쪽을 지원하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말했듯이 그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지나갔다.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그걸 꾸준히 잘 하기 위해서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지금 남쪽과 북쪽에 현실로 존재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분단”과 “분단”으로 인해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이다. 이걸 없애야 하고 이걸 없애야 우리의 문제를 다른 이들과 협의하고 승인 받아야 하는 일들이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나의 일과 우리의 일을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하는 길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문제 많은 자본주의 남쪽과 사회주의 북쪽이 합쳐지자마자 곧바로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화와 번영이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통일은 각자의 문제와 또 상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용하고 효과적인 계기가 될 것이므로 “상호 존중과 신뢰”를 통해 속히 그 과정에 착수하여야 하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결실을 맺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남북관계 발전 평화 번영을 위한 선언”은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할 것이다. 특히 선언문 4항을 통해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겠음을 명시하여 분단의 외부요인 해소 노력에 합의한 것과, 선언문 2항에서 “내부 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며” “각기 법률적, 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하는 분단해소를 위한 내부적인 노력을 “양측 의회 등 각 분야의 대화와 접촉”이라는 방식으로 풀겠다고 구체화 한 것 등은 매우 높이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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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선언문 5, 6, 7, 8 항을 통해 경제, 문화, 인도주의에 대한 정신과 구체적 방안을 명시한 것은 남측과 북측이, 통일은 사회 전 분야에 걸친 준비 과정을 통해야만 제대로 달성될 수 있다는 인식을 상호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포괄적인 내용에 구체적 방안이 함께 하는 이번의 선언이 남과 북 양측에서 부디 정권의 차원이 아닌 상생의 차원에서 계승되고 발전되기를 바라며, 속히 이번의 선언에 이어지는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도출되고 실행되기를 원하는 바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미국의 보수파에서도 점차 폐기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한반도 분단 장사”에 목매고 있는 우리 내부의 “꾼”들은 자꾸 판 깨려 하지 말고 이제 좀 제발 다른 “거리”를 찾아보기 바란다. 시장상황이 변하면 판 깨지 말고 거기에 빨리 적응해야 살아 남는다는 거 잘 알면서들 왜 그러냐.


이쯤에서 우리의 옛 노래를 함께 흥얼거려보는 건 어떨까.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정성 다해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통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오라
통일이여 오라


우리의 소원은 자주
꿈에도 소원은 통일 이 목숨 바쳐서 통일
통일을 이루자 이 겨레 살리는 자주
이 나라 살리는 통일 통일이여 어서 오라
통일을 이루자



 


영진공 편집인 이규훈

夜宴, “우리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

사랑은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향기로 맡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느낌으로 간직하는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느낌도 알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그래도 전 그 사랑을 하고 있다고 사료 됩니다
아님 그저 우리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갑자기 황후화가 생각 납니다. 10만 대군의 부부싸움이 특징인 중국감독들의 화려한 색채로 승부하는 그래서 단순한 부부싸움을 대규모 블록버스터라는 확대 해석으로 권력과 부에 있어서는 부모 형제 사랑도 다 필요 없다는 일상의 교훈을 그리고 세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느끼게 하는 그럼 감정들 그럼에도 색체 이외에는 큰 느낌은 없었습니다 ,

그보다 한참 후에 야연을 보았습니다 장쯔이보다는 주신이 훨씬 이쁘고 매력적으로 다가 옵니다만 그보다는 야연을 보면서 사랑을, 그 지긋 지긋한 사랑을 생각하게 합니다. 권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듯이 한 여인에게 목숨을 바치는 형을 시해한 황제를 보면서, 태자를 보면서 사랑이 뭐길래라는 마치 유행가 가사의 한구절을 되새김나다. 목숨바쳐 지키지 못했던 지나간 사랑을 생각 합니다. 세익스피어의 구절 구절을 생각합니다.

사실 복잡하고 힘들고 지겨운 세상사를 가장 단순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인 듯 합니다.
함께하는 사랑은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지만 그 사랑후의 이별은 천국을 다시 지옥으로 만들기도 합니다. 도대체 만지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놈의 감정은 왜 생긴 걸까요.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어도 복잡해지기만 하는게 사랑일까요.

사실 우리 인간들은 그 사랑을 잘 보살피지도 못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이별, 결혼과 이혼, 그리고 그 와중에서 소형사고 대형사고들이 터집니다. 스캔들이 터지고 신분들이 높아지면 정치문제가 되기도 하고 형사사건이 되기도 합니다. 미숙한 인간들의 자충수로 해결이 안됩니다.

그저 조용히 모든 감정을 차단하고 꿈만 꾸는것이 제일 속편할 듯 합니다.

펑샤오강의 야연은 화려한 색채속에 당신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래도 당신은 사랑에 빠질거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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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클린트

[가사 검열] 영화 <다이하드 4.0> 중

얼마 전에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4.0>.
원제는 <Live Free Or Die Hard>.

영화의 내용은 미국의 온라인 잡지 <Wired>의 1997년 기사인 “A Farewell To Arms” (By John Carlin)를 참고로 하였다고 한다.
  * 해당 기사:   http://www.wired.com/wired/archive/5.05/netizen.html

근데 이 영화, 좀 요상하다.
Bruce Willis가 골수 공화당원이라는 거, 부시 열광 지지자라는 거,
이라크 침공에 찬성하여 혼자서 위문공연도 갔었다는 거,
모르는 사람들 별로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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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기는 분위기가 심상찮다.
우선 범인의 동기가 그렇다.
국가를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더니 결국 목적은 돈이라는 거,

그리고 영웅에 대한 시각이 그렇다.
나라를 위해, 무고한 시민을 위해 목숨바쳐 싸웠는데 결국 돌아오는 건,
알량한 칭찬 몇 마디와 깨어진 가정 …
이라크 참전 군인의 상황과 닮아있다.

게다가 NSA(국가안전보장국), DHS(국토안보부)에 대한 불신도 있다.
기껏 신상정보와 재산정보를 몽땅 맡겨놨더니 정작 그걸 지킬 능력이 부족하다니 …
그래서 영화 속에선 FBI한테 쿠사리나 듣는 형편인지라,
일개 형사 한 명이 나서서 미국의 모든 재산을 지켜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는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 최신 무기를 갖췄다더니,
웬걸, 오히려 같은 편을 오인 공격하다니 …

그래서 제목이 “자유롭게 살려면 죽도록 싸워서 얻어내자”인가 보다.

물론 이 모든 게 별 의미가 아닌 걸 수도 있고, 아니면 정반대의 의미로 읽힐 수도 있겠다.

근데 Bruce Willis, 전작인 <16 Blocks> (2006) 때도 그러더니,
출연하는 영화의 메시지가 평소와는 달라지고 있는듯하다.

어쨌든 이 영화의 분위가 요상하다고 느낀 또 하나의 요인은,
바로 영화 속에서 울려 나오는 C.C.R. (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Fortunate Son”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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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그룹은 1968년에 데뷰앨범을 발표하였고 1972년에 마지막 정규앨범을 내었는데,
활동기간이 짧다면 짧았지만 커다란 인기와 음악적 영향을 구축한 그룹이다.

우리에겐 이들의 이름이 낯설지 모르지만, 실제 이들의 음악은 우리 생활 속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우선 故 이주일씨하면 떠오르는 “Suzie Q”, 가끔씩 광고에서 나와주시는 “Bad Moon Rising”과 “Proud Mary”, 그리고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에 삽입된 “I Put A Spell On You” “Who’ll Stop The Rain” “Cotton Fields” “Have You Ever Seen The Rain” 등등등 …

그리고 이 영화에 삽입된 1969년 작 “Fortunate Son”은 대표적 반전 노래 중의 하나로,
우리 말로 풀면 “신의 아들”, 즉 권력층이나 부유층 자제가 권력과 부를 동원하여 병역을 기피하거나 혜택을 받을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2003년 이라크침공에 반대하여 딴지일보에 올린 기사, “[가사검열] 반전을 노래하라!”에서도 이 노래를 소개한 바도 있다.

그렇다보니 이 노래가 <다이하드> 영화 속에서 나오는 게 웬지 심상찮았던 것이다.

암튼, 오늘의 가사 검열은 C.C.R.의 “Fortunate Son”이다.
첫 동영상은 C.C.R.이 1969년에 TV에 출연하여 부르는 것이고,
두 번째는 Pearl Jam의 공연 실황이다.

모두들 즐감~ ^.^

Fortunate Son
By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1969)

Some folks are born made to wave the flag,


Ooh, they’re red, white and blue.


And when the band plays “Hail to the chief”,


Ooh, they point the cannon at you, Lord,


어떤 놈들은 날 때부터 깃발을 휘두르며 나오네,


빨강, 하양, 파랑의 깃발을,


“대장에게 갈채를”이 연주될 때,


그 놈들은 네게 대포를 겨누지, 세상에,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senator’s son, son.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one, no,


난 아냐, 난 아냐, 난 상원의원의 아들이 아니야,


난 아냐, 난 아냐, 난 신의 아들이 아니야, 씨바,


Yeah!


Some folks are born silver spoon in hand,


Lord, don’t they help themselves, oh.


But when the taxman comes to the door,


Lord, the house looks like a rummage sale, yes,


그래,


어떤 놈들은 날 때부터 은 수저를 들고 나오지,


하느님, 저 놈들 집안 형편이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세무서 사람만 찾아오면,


무슨 땡 처리하는 집 구석 꼴을 하고 있을까요,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millionaire’s son, no.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one, no.


난 아냐, 난 아냐, 난 백만장자의 아들이 아니야,


난 아냐, 난 아냐, 난 신의 아들이 아니야, 씨바,


Some folks inherit star spangled eyes,


Ooh, they send you down to war, Lord,


And when you ask them, “How much should we give?”


Ooh, they only answer More! more! more! yoh,


어떤 놈들은 별이 반짝이는 눈을 달고 태어나지,


어, 근데 그 놈들이 날 전재에 내 보내네,


그 놈들에게, “도대체 얼마를 더 원하는 거야?”라고 물으면,


그 놈들은 이러지, 더! 더! 더 많이!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military son, son.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one, one.


난 아냐, 난 아냐, 난 장군의 아들이 아니야,


난 아냐, 난 아냐, 난 신의 아들이 아니야, 씨바,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one, no no no,


It ain’t me, it ain’t me, I ain’t no fortunate son, no no no,


난 아냐, 난 아냐, 난 신의 아들이 아니야, 씨바, 씨바, 씨바,


난 아냐, 난 아냐, 난 신의 아들이 아니야, 씨바, 씨바, 씨바,


영진공 이규훈

Pearl Jam –

사용자 삽입 이미지곧 개봉 예정으로 오늘 시사회에서 본 영화 <레인 오버 미>는 9.11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의 소위 ‘외상 스트레스 증후군’을 다룬 영화인데, 영화의 제목의 출처이자 영화의 주제가로 쓰인 곡인 ‘Love, Reign o’er Me’는 원래 Pete Townsend가 곡을 썼다.

The Who의 오랜 명곡. 엔딩 자막이 올라가면서 거의 절규에 가까운 보컬로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걸 들으며 가슴이 뭉클해지다가, 설마 이 목소리, 에디 베더? 했었는데, 맞았다. 펄 잼이 카피한 버전이 영화의 주제가로 쓰인 것. 미국인이 아닌 제3국 사람으로서 9.11 후유증을 극단으로 밀어부치는 이 영화를 보며 가슴 한쪽으로 살짝 삐딱해 있었다가, 에디 베더의 절규에 마음이 좀 움직였다. (아 정말, 에디의 목소리에는 야수성 가득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그냥 무장해제시켜버리는 진정성과 큰 울림이 있다. 내공 높은 무당 같은 사람. 뮤지션으로서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 또 남자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사람 중 하나다. 노래를 완벽하게 잘 부른다기보다, 충만한 필로 부르는 사람.)

그래, 미국땅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있던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잘못이겠는가. 국가의 부도덕의 대가를 죄없는 사람들이 대신 지고 치른 셈이지 않나. 그네들이 그 상처를 서로 보듬는 걸 보며, 위로의 말을 건넬지언정 비아냥대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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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붙인 버전은 올해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라이브할 때의 모습.


혹시 정규 앨범에 속해 있는데 내가 여태 몰랐던 건가 싶어서(난 펄잼 정규앨범 다 가지고 있거든…) 찾아보니, 아니구나, 그럼 그렇지. 올해 6월 코펜하겐 공연 때 처음 불렀고, 그 다음 8월 시카고 공연 때, 이렇게 딱 두 번 연주했다. 음, 올해 크리스마스 싱글에 포함되려나? 아니면 그냥 라이브 앨범이나 B면곡 모음에 붙이려나? 요 몇 년간 펄잼은 꾸준히 명밴드들의 명곡들을 커버하고 있다. 아무렴, 지금 남은 락밴드의 혈통 중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 마지막 밴드로 자리잡아가는 듯. 닐 영도, 패티 스미스도, 도어즈도 더 후도 모두 펄잼과 공연했다. 에디가 어르신들한테 이쁨 좀 받나봐. (왜 아니겠어?)



ps. 역시. 2006년 크리스마스 싱글에 실렸던 곡이라 한다. 보노와 함께 연주했던 Rockin’ in the Free World와 함께 실렸다는데… 아악 올해는 반드시 텐클럽 가입해서 크리스마스 싱글 받고야 말리라.



영진공 노바리 N.

, 재니스 조플린

고전영화라는 이름이 붙은 미국의 60년대 이전 영화들을 보면 밝다. 인물들은 화면 안에 잘리는 부분 없이 보기좋게 자리 잡고 있고, 편집도 상황과 대화를 따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태평양 전쟁에 승리한 당시 미국이 보는 세상은 그랬나 보다.


하지만 1969년 스톡홀롬 공연에서 재니스 조플린.



주인공인 재니스 조플린에게 빛이 떨어지지 않는다. 인물을 알아 볼 수가 없고 그마저도 4면의 프레임에 싹둑싹둑 잘려나간다. 편집도 논리보다는 감성을 따른다.


마리화나, 우드스탁, 뉴아메리칸 시네마, 히피로 대변되는 베이비 붐 세대는 아버지 세대의 밝고 균형잡힌 미국의 그림을 이렇게 바꾸어놓았다. 나는  이런 그림을 보면 흙이 드러난 가슴 속 우물에 다시 물이 차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그림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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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집권으로 이 베이비 붐 세대는 권력을 잡게 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세대가 권력의 중앙에 앉게 됐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 마리화나, 우드스탁, 뉴아메리칸 시네마, 히피로 대변되는 세대답게 횡령, 뇌물 같은 스캔들이 아니라 오랄섹스 스캔들을 일으켰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우리도 386이라는 세대가 권력에 도달했다. 청춘을 독재에 맞서 거리에서 보낸 그 세대는 다시 손학규에게로 가고 있다. 그들이 날아가는 그 뒤로…


어느날 아침 아이야.
너는 자라서 노래를 하게 될 거다.
너는 자라서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게 될 거다.
울지 마라 아이야.


재니스 조플린이 노래한다.


영진공 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