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두순 사건] 문제는 형량이 아니라 시스템이다.


최근 한 아동성폭행 사건으로 온갖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의미있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깊이 생각해볼 것들이 몇가지 있다. 지금부터 그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보자.


1. 형량은 인권하고는 관계가 없다.

이거 하나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형량은 인권하고 상관이 없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이들이 혼동하는 게 형량의 크고 작음, 특히 작은 형량이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한 탓”이라고 착각하는 거다. 그런데 말이다. 인권은 그런 거 아니다.

예를 들어, 범죄 수사과정에서 용의자의 권리가 얼마나 존중되었는지, 혹은 사형제를 폐지할지의 여부 같은 것은 인권하고 관계가 있다. 하지만, 일단 유죄로 확정된 이후에 내려지는 형량은 죄질에 대한 법적 판단의 결과일 뿐, 인권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물론 내가 봐도 그 형량은 좀 문제있다. 12년 징역. 수감 중 감형이 전혀 없다 해도 나이 69세에 사회로 나온다. 그러나 그 인간, 이번에 저지른 짓을 보면 69세가 되어도 안전하다 볼 수 없는 상태일 거다. 전자발찌? 그건 일이 벌어진 다음에 수사할 때나 편하지 범죄 자체를 막는 수단은 아니다.

그럼 왜 그 따위 형량이 나왔나? 다른 범죄에 비교해서, 그리고 현재 수형시설의 여력으로 봐서… 여러 가지 법적, 행정적인 이유로 그 형량이 내려진 거다. 아동성범죄의 형량을 늘리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범죄들의 형량도 늘려야 한다. 이것들을 위해서는 수형시설의 규모를 늘려야 하고, 세금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한다. 물론 교정직 공무원들도 더 많이 뽑아야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는 그런데 쓸 돈이 없다. 예전에도 별로 없었다. 지금은 더 없고.

나는 사실 우리 사회에서 형법의 공감대를 이루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이번 같이 주목을 받는 사건 범인의 형량을 크게 때리는 것보다, 죄형법정주의의 취지에 따라 같은 죄에는 같은 형벌이 매겨지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게 사실 인권 문제다.

누구는 수십억 배임에, 수천억 조세포탈을 해도 그냥 추징금만 물면 되는데, 누구는 수백만원 배임으로 일자리 잃고 징역까지 산다. 누구는 위장전입하고 “죄송합니다” 라고만 하면 총리도 되는데, 누구는 그 위장전입으로 검찰에 기소된다. 2007년에만 위장전입 혐의로 1504명이 입건돼 733명이 기소됐다. 이게 진짜 조까튼거 아닌가?

생각해보라. 이 위장전입자와 배임, 탈세범들에게 그렇게 가벼운(혹은 아예 없는) 형벌만 내려진 이유가 ‘인권 존중’ 때문일까? 아니지. 그들의 인권이 아니라 그들의 재력과 권력 때문이다. 반면에 인권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기본권이다. 누구든 상관없이 저지른 죄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인권정신에 더 가깝단 말이다.

2. 인권을 존중한 덕분에 가능했던 것

오히려 이번 사건의 범인을 확정한 증거 중에 피해자의 증언을 고려한 것은 인권 신장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어린아이의 증언은 인정하지 않았다. (지금도 많이 그렇다) 물론 아이들의 증언은 암시나 유도질문에 의해서 왜곡되기 쉽다. (그런데 어른들의 증언도 사실 많이 그렇다) 하지만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아이들의 증언도 믿을 수 있으며, 아이의 증언 밖에는 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이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사건은 그렇지 않다. 여러가지 다른 물증들도 있었기에 신속하게 기소할 수 있었다)

인권은 사법처리를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보다 정확한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까 말했던, 수사과정에서 용의자의 인권이 지켜지면 보다 정확한 사법처리에도 도움이 된다. 용의자를 제대로 대우하면서 수사를 해야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것이고, 그래야 진범을 잡고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내지 않을 것 아닌가.

어제 (이름도 언급하기 싫은) 한 신문을 보니 기자가 칼럼이랍시고 인권단체들이 이 사건에 대해 뭐라 하지 않는다고 드립 치던데…
그런 애들보고 오바마가 한 마디 했단다 … Jackass …


인권단체들은 이 사건에 대해서 특별히 할 말 없어서 안하는 거다.
앞서 말했듯이 형량을 낮춘다고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고, 형량을 높인다고 피해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피해자와 가족의 인적사항이 노출되는 것 같은 것이 진정한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나는 비록 그 이름이 가명일지라도 이 사건을 피해자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그 가족은 지금 무슨 느낌을 받고 있을까?

3. 정의라는 것

이번 사건을 보며 분노하고 범죄자를 욕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분노가 정의를 실현하는 힘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의미와 결실도 있을게다.
문제는 범죄자를 욕하고, 죽이고 찢어버려도 이 세상이 더 정의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더 이상 이런 사건을 봐도 화를 내지 않게 된다면 세상은 이미 망쪼겠지만, 이 세상을 정의롭게 하려면 조금 더 생각을 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가 그렇게 열받아 하는 와중에 정운찬씨는 총리가 되었다.

요즘 연예인을 동네 북으로 삼는 분위기가 더 커진 듯 하던데,
이게 과연 정의감의 발로인지, 아니면 단순히 전위(남대문에서 뺨맞고 종로에서 분풀이하는)의 결과인지는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모순이 많은 동네일수록 도덕을 더 내세운다.
하지만 언제나 그 ‘도덕’의 대상은 권력자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이다.
만만한 애들을 밟으라고 던져주고, 대중은 그 만만한 애들을 밟아주고는 뿌듯해하며 돌아간다. 그들이 내세우는 도덕은 대중의 관심을 진짜 중요한 곳으로부터 돌리고
스스로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위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떡밥이란 거다.

민주적인 사회에서는 정치가들이 여론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여론이 정치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니까.
하지만 여론이 누군가의 떡밥을 물고 흔들리면,
정치가가 여론을 좌지우지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과연 이 아동성폭행 사건이 한 연예인을 성매매 대상으로 삼아 자살로 내몬 사건보다 더 추악할까?
하나는 뇌부터 잘못된 또라이의 참혹한 범죄이지만, 다른 하나는 겉보기엔 멀쩡한 작자들이 권력을 이용해서 체계적으로 약자들을 착취한 추잡한 범죄다. 분노로 정의를 판가름한다면 적어도 두 범죄에 대한 분노는 같아야 하지 않을까?

이번 아동성폭행 사건에 인권단체까지 끌어들여 욕하는 설레발을 떨던 앞서의 그 신문은 연예인을 죽음으로 내몬 사건에 대해서는 (즉, 자기들에 관련된 것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뭘까?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정의는?

어느 아동성범죄자의 컴퓨터에서 나온 이미지를 인터폴이 해독하여 추적하였다.
이 사내의 정체는 당시 32세의 캐나다인이자 전직 교사인 크리스토퍼 폴 닐.
그는 태국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고 13세의 남자아이를 강간한 죄값으로 3년 3개월의 형을 받았다.

4. 악성댓글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라디오에서 “당신이 남긴 악성댓글 …” 운운하며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흉기” 드립 광고가 나오더라.

악성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은 왜 그럴까?
자기나 남의 인생을, 심지어 자그마치 대한민국을 갉아먹기 위해서?
아니지. 그들 나름으로는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은 자기들이 욕할만 하니까 욕을 한다고 생각하는거다.
욕먹어도 싼 것들에게 욕하고, 자살해야 하는 것들에게 자살청원을 하고, 사형해야 할 것에게 사형 댓글을 주고 찢어죽이고, 어쩌고 저쩌고… 다 그럴만 하니까 하는 거 아니던가.

이번 아동성폭행 사건 범인에 대해서도 온갖 악플들이 난무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도 분명 악플 하나쯤 날린 이도 있을 거다. 그런데 당신은 그 글을 쓸 때 그게 악플이라고 생각했나? 아닐걸, 정의의 응징이라고 생각했겠지.
이게 악플 날릴 때의 기본 자세다.
그러니 그 악플을 쓰는 동안은 대부분 떳떳하다.
악플러들은 양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양심 때문에 악플을 날리는 거다.

그런데 이런 ‘욕먹을 만하니까 욕을 준다’는 사고방식은 무엇하고 비슷하냐하면…
“그들은 보상금 좀 더 받겠다고 철거에 저항하고 시민들을 불안하게 했으니까 불 타 죽었어도 어쩔 수 없다(혹은 그래도 싸다)” 라는 식의 사고와 똑 닮았다.
더 나가면 “그들은 유태인이니까 죽어도 싸다.” “그들은 대지진의 혼란속에서 약탈을 한 조센징이니까 죽여도 된다” 는 식의 사고로 이어진다. 인권개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도덕과 정의만 남았을 때, 세상은 그렇게 무시무시해진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 난무하는 악성댓글이 과연 용산참사를 다루는 신문기사보다 더 악한지 의문이다. 진짜 악을 질질 흘리고 다니는 것은 용산참사에 대한 경찰관계자와 여당정치인들의 강아지소리들, 그걸 더 키워서 보도하면서 정작 중요한 사실들은 쏙 빼는 신문들이 아닐까? 나는 최근에야 그 사건이 삼성하고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여당 의원 누구가 총리 청문회에서 말씀해주시더군. 삼성이 보상금을 왜 준대? 그나마 합의한 것도 아니더만 …

악플은 좋지 않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도 많다.
악플을 줄이고 싶다면 인권에 대한 의식부터 키워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어떤 대우가 있다.
그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무슨 짓을 저질렀다고 의심받고 있든, 일단은 모두 사람이니까.
우리가 다른 인간을을 그렇게 대우함으로써 우리 자신도 진정 사람이 되는 거다.
인권은 남을 존중하는 것이고 동시에 나를 존중하는 것이니까.

영화 <래리플린트>의 원제, ‘국민 대 래리플린트’ 사건에서 저질포르노 잡지 <허슬러>의 발행인 플린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쓰레기 맞다. 그런데 나 같은 쓰레기마저도 존중받을 수 있다면,
그건 이 나라의 모두가 존중받을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거다.”


이런 꼬라지가 그리도 싫다고?
그냥 어떤 짓을 했느냐, 아니 어떤 사상을 가지느냐, 혹은 어떤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
그 대우가 생과 사를 가를 만큼 달라져야 된다고 믿는다고?
그래서 사형제 폐지하라는 인권위가 그렇게 밉다고?

그러면 최소한 악플가지고 뭐라 하지 말자.
그런 무시무시한 믿음에 의해 발휘된 행동들 중에서
악플은 그나마 가장 덜 추악하고 가장 덜 위험한 행동이다.

“대한민국을 갉아먹는 흉기“
악플에 붙여주기엔 너무 거창한 이름이다.
근데 악플에 이런 거창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뭘까?

5. 민주주의

민주주의. 말로는 쉽기 때문인지 개나 소나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히틀러의 나치독일도 자칭 민주주의국가 였다. 물론 북한도 자칭 민주주의 공화국이고.
왜 민주주의냐고? 걔네들도 투표 하거든.
북한에서도 투표를 한다. 근데 그 결과가 보통 99.9% 찬성이다.
만약 “다수결의 원칙”만이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면, 북한도 민주주의 맞다.
하지만 대다수는 북한이 민주주의 공화국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할 거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표현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가 빠졌기 때문이지.

북한은 싫어도 싫다고 말할 수 없는 나라,
반대의사를 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밝힐 수 없는 나라다.
그러니까 투표를 하면 99.9%가 나오는 것 아니겠나.
국론통일? 좋다. 근데 자유로운 언론을 지워버린 상태에서의 국론통일은 바로 전체주의다.
다시 말해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가 빠진 채로 다수결의 원칙만 따르면 그대로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 되는 거다.

분명히 북한에는 악플이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악플없는 북한보다는 악플 넘치는 이 나라가 더 좋다.
여기에 안 그런 사람 있나? 왜냐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늘 시끄럽기 마련이거든.

그럼 이제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지금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과연 얼마나 존중되고 있나?
혹시 그것을 저해하려는 법안이나 시도는 없던가?
작금의 소위 불법시위에 대한 온갖 처벌과 손해배상 소송은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고,
전체주의 국가로 이행할 가능성을 높이지 않나?

원칙적으로는 악플도 개인의 의사 표현이므로 존중되어야 한다.
물론 거짓말을 유포시키는 것은 나쁜 일이다.
하지만 그것도 공개적으로 논쟁을 벌여서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기회만 준다면 그리 심각하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고 최진실씨가 과연 악플때문에 죽었다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원래 악플에 대한 최선의 대처법은 ‘개무시’ 다. 악플러들이 원하는 거는 관심이거든 … 그걸 안주면 걔네들 딴데간다.
하지만 연예인은 악플을 개무시할 수가 없다. 왜냐면, 개념없는 찌라시들이 그걸 받아적어서 기사화 하니까.


최근에 소위 악플 혹은 인터넷에서 이슈화된 사건들을 돌이켜보라.
사실 그거 기성 언론이 받아쓰기하거나 뻥튀기 시킨 바람에 더 커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진짜 문제는 악플이 아니다. 인터넷 서핑을 취재로 착각하는 개념없는 찌라시들이 문제지. 기자라면 기사를 쓰기 전에 진위여부부터 파악하고 볼 일 아닌가? 그냥 인터넷 뒤져서 기사 쓰는거면 그게 기자냐, 그게 언론이냐고 …

난 악플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악플을 보면 나도 기분 나쁘다.
기왕이면 더 점잖고 고상한 표현으로 통쾌상쾌하게 표현하면 좋지 않나.
근데 어쩌랴. 걔네들은 표현법이라곤 고작 그따위 밖에 배우지 못했는 걸 …

악플은 결국 지 얼굴에 똥칠하는 건데, 정말 그걸 모르는 경우도 있고

하도 열받아서 잠시 이성을 잃었을 수도 있고(나도 가끔 그런다), 혹은 나는 이미 망가졌으니 같이 망가지자는 심정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좋지 않지만, 악플은 그런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이 모여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거다.

근데 악플만 쏙 빼버리자고? 그게 되겠나 …

미국이나 일본의 언론사이트나 포털에 달린 댓글들은 (우리가 보기엔) 매우 점잖다.
사실 인터넷 댓글이 제일 지저분한 동네로 우리나라는 분명 3위 안에 들거다.
그럼 외국애들은 왜 대체로 공공 공간에서 욕을하기 꺼려하는 걸까?

욕을 하는 순간 내 수준이 떨어진다는 걸 교육과 경험으로 알고 있고,

욕설 말고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어휘를 써야 제대로 욕을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걔네들도 진짜 열받으면 욕설을 한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그러고 나서는 자기가 진 거라고 쪽팔려 한다는 것 뿐이다.

어쨌든, 인권, 표현의 자유..
이런 것들은 성범죄자 처벌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 나라가 전체주의가 되지 않기 위해서 꼭 필요한 거다.


현재 인터폴에 의해 공개수배 중인 아동성범죄 용의자. 2006년부터 수사를 하였으나 여전히 신원과 거주국가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영진공 짱가

DDoS 단상

요즘 디도스(DDos: Distributed Denial of Service) 공격 보도들을 보면 광우병파동 때가 생각난다.  미국쇠고기 수입문제가 처음 제기되었던 노통때 조중동의 보도와 요즘 디도스 보도가 거의 판박이다.

MBC 피디수첩 보도때는 물론 조중동께서는 모두 잠잠해지신 다음이었지만 눈치없게도(?) 피디수첩은 예전에 조중동께서 하시던 말씀을 조금 차분한 분위기로 다시 하셨지.

그러자 농림부 장관님께서 명예훼손으로 고발을 하셨고…

요즘 DDoS 보도도 끝내준다.

안기부에서는 바이러스 걸린 PC를 분해해서 조사하시는 모습을 연출하시고,
부트섹터의 소프트웨어적 손상을 “자폭”이라 표현해주시고,
어디서도 인정하지 않는 북한 공격설을 전세계에 퍼트려주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이런 분위기니까 아직도 사람들이 초능력따위나 믿고,
인체투시를 해준다는 학원에 수백 만원을 쳐바치는 의사들까지 나오는 거다.

합리적인 사고를 막는 세상. 중세의 암흑기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놈의 협박 분위기에 편승해서 듣보잡 프로그램회사들이 오묘한 마케팅을 펼쳐 겁먹은 사용자들로 하여금 지들 프로그램(거의 스파이웨어에 해당하는)을 다운로드하게 만들고 그걸 빌미로 삥뜯으려고 난리다.

내 PC에도 어느새 리얼스캔이라는 듣보잡이 깔렸는데, 겁을 주더니 더 알려면 돈을 내거나 회원가입을 하란다.

골때리는게 이 프로그램은 오른쪽 위 귀퉁이에 있어야 할 나가기 버튼이 없다는 거 …
오로지 돈을 내거나 회원가입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지 …

자, 이제는 인재과학부 장관이나 국정원장이 언론을,
그리고 부당이득을 취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들을 고발하셔야 할 때가 아닌가?

뭐 그럴리야 없겠지만.

영진공 짱가

동아일보와 삼성증권, 니들이 사람이냐?

 

동아일보 2008년 10월 23일자 인터넷판 경제면 “주가 바닥 알리는 조짐 곳곳서 등장 “이라는 제목의 기사이다.

“삼성증권은 23일 발표한 증시분석 보고서에서 “경험과 직관에 비춰보면 주가가 바닥에 다가서는 정황적 증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중략)

“애널리스트들이 하루아침에 적정주가를 50% 이상 하향 조정한 리포트를 발표하는 등 공격적인 하향 조정 행태를 보이고 “빅 사이클이 끝났다”는 등의 뒷북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데 이는 증시 하락 사이클의 막판에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증권사 영업직원과 투자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점도 하락장의 끝을 알리는 징후로 제시됐다.

오 파트장은 금융기관 부도 리스크, 유동성 고갈과 신용축소, 실물위기 전염과 리세션 등에 대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대책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폭락장세가 멈추지 않는 것은 공포심리가 팽배했기 때문이라며 증시의 바닥은 내년 1분기에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문은 http://www.donga.com/fbin/output?n=200810230355&top20=1 >


이게 소위 정론지라는 동아일보와 세계 일류라는 삼성의 의식구조냐?

사람이 죽으니까 증시 하락이 끝난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니들도 인간이냐?


영진공 이규훈

중앙일보를 보는 슬픔

 

내가 중앙일보를 보기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6개월간 무료라는 말에 혹해 보기 시작했는데 보면 볼수록 가관이란 생각이 든다.
삼성특검이 끝나고 나서 김용철 변호사를 마구 욕해놓은 사설을 봤을 때,
그리고 이전 정권을 가리켜 “아마추어 좌파정권 때문에 국민들이 큰 괴로움을 당했다”는 표현을 했을 때 등등 …
무수한 예가 있지만,
가장 압권은 미국소가 광우병 위험이 없다고 연일 대서특필한 거였다.
 
사실 확률이 낮아서 그렇지 미국소가 위험한 건 사실이고
그런 이유로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 등지에서도 미국소에 대해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데,
그리고 우리가 그네들에 비해 불리한 계약을 맺은 건 분명한데,
미국소가 괜찮다며 입에 거품을 무는 중앙일보를 보면 대체 어느나라 신문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됐다.

얼마 전 아침에 본 기사는 더 가관이었다.
18대 국회가 해야 될 ‘아젠다'(왜 이런 건 꼭 영어로 쓰는지) 중 가장 시급한 게 대통령 임기를 4년 중임제로 하는 개헌이란다.
큰 제목으로 그 이유가 설명되어 있는데 …
 
첫째, 5년 단임제로는 국가 장기비전을 준비 못하고
둘째, 모 아니면 도식 승자독식 게임을 접어야 한다는 게 그 이유란다.
이런 말들에 다 동의하고,
정권에 대한 제대로 된 심판은 중임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나 역시 중앙일보의 견해에 찬성이다.

하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게, 그렇다면 노무현이 임기말에 개헌을 추진했을 때
대체 왜 반대했느냐는 거다.

노무현 역시 비슷한 이유로 개헌을 추진했었는데,
당시엔 조중동은 한목소리로 반대를 표했다.
노무현이 개헌을 하더라도 그건 그 다음 정권부터 적용될 터였는데다,
당시에는 이명박의 집권 가능성이 하늘을 찔렀는데 말이다.

레임덕을 막고 국가 장기비전을 추진하는 게 가능한 것이 중임제의 장점이라면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 등 장기비전의 달인이신 이명박 대통령부터 그 혜택을 보는 게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
 
게다가 올해는 20년만에 돌아오는, 총선과 대선이 엇비슷한 그런 해였기에,
작년이야말로 4년 중임제의 적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가는 중앙일보의 해괴한 작태는 이걸로 다 설명된다.
“중앙일보는 노무현이 하면 뭐든지 반대한다”

신문의 수준은 우리나라 사회의 수준을 반영하는 거지만
메이져신문이라 일컬어지는 자들의 행태는 정말이지 한숨만 나온다.
난 지금 그런 신문을 보고 있고, 그런 신문이 잘 팔리는 이 세상이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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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보수들이 반격을 시작했다.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는 마지못해 이명박을 훈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촛불시위의 열기가 사그라들자 대대적인 반격을 거행하고 있는 거다.

중앙일보를 예로 들어보면
그네들은 처음에는 미국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얘기를 계속 1면에 실었다.
한국인이 광우병에 취약하다고 한 교수도 미국 쇠고기를 먹는다는 기사가
1면 톱이라는 건 참 거시기한 일인데,

그게 씨알도 안먹히고, 촛불시위 참가자가 늘어만 가자 갑자기,
이명박이 잘못했다면서 정부 쪽에 화살을 돌린다.
아니 미국 쇠고기가 그렇게 안전하다면 이명박이 잘못한 게 대체 뭐야?

결국 정부는 여론에 밀려 추가협상을 해야 했는데,
그러자 중앙일보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그만하면 됐다. 경제를 살리자.”
그 후부터 걔네들은 촛불시위를 과격으로 매도하기 시작했다.

사실 힘과 힘이 맞부딪히면 사소한 충돌은 있기 마련인데
보수단체와 촛불시위자의 싸움에서 군 출신인 보수단체 회원이
욕설을 들어먹고 두들겨 맞았다는 기사를 싣질 않나,
경찰이 두들겨 맞는 사진을 구해서 대문짝만하게 싣질 않나,
하여간 대단했다.

촛불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놀러 간다.
가뜩이나 놀이문화가 척박한 이곳에서 뭔가를 한다는 뿌듯함과 더불어
재미까지 있으니 아이를 데리고 가봄직하지 않는가.
하지만 촛불집회가 폭력으로 ‘변질’되었다는 기사가 계속 나가면
사람들은 거리에 나가길 꺼려하게 마련이다.

촛불시위자는 줄어들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중앙일보는 피디수첩 번역자의 헛소리를 발판으로
피디수첩이 조작.왜곡되었다는 기사를 큼지막하게 내보내고
촛불집회에 한번도 나가지 않은 사람들은 “속았다”고 장탄식을 한다.
그제나 저제나 기다려왔던 이명박 정부는 법질서를 운운하며 강경한 진압을 지시한다.

참으로 대단한 보수가 아닐 수 없다.
무슨 군사작전을 하는 듯 보수언론과 청와대의 손발이 착착 맞아들어가고
거기에 짓눌려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여론은 67%로 높아진 적도 있다.

촛불 하나만 가지고 싸우는 세력과,
언로와 돈, 거기에 권력까지 갖고 있는 세력의 싸움은 이렇듯 일방적이다.
보수야, 니들 차암 잘났다.
계—속 말아먹어라.


영진공 서민

미디어 관련분야 학자들이 해야 할 일

 

다 아시겠지만 조중동이 다음에 기사 공급을 중단하였습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list.htm?linkid=473&dt=1214920060

그런 결정을 내린 이유나 그 결정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별로 할 말 없습니다.

단지, 이 사건은 사회과학자 특히 언론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실험이 될거라는 생각입니다. (뭐 다들 아시겠지만…)

과연 2008년 6월 현재 3대 인터넷포털 중 하나와 3대 일간지의 영향력, 어느 쪽이 더 클까요?
대답은 이 실험의 결과가 말해줄 겁니다. 기왕이면 네이버도 같이 넣었으면 더 좋겠지만, 상황이 그렇게는 되지 않으니…

조중동은 자기들이 더 무게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자기들의 힘에 따라 다음이 타격을 받을거라 보겠습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 포털에서 뜨는 기사들 중에서 정치관련 기사는 조중동의 인기가 낮고 문화쪽 기획기사(특히 조선쪽의 강점)는 오래 전부터 웹포털에서는 별로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 자리는 블로거들이 만들어낸 포스트들이 주로 대신하곤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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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네티즌들이 주로 보는 소위 ‘연성’ 기사들(연예인들의 신변잡담, TV 프로그램에 대한 주저리들…)은 오히려 주류매체에서 블로거들의 기사나 인터넷 게시판의 동향을 보고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즉 비중이 비슷비슷하다는 거죠.

따라서 제 예상은 다음이 타격을 약간 받겠으나 그 타격은 별로 심하지 않을 것이라는 쪽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모르는 변수들이 많으니 결과가 나와봐야 현재의 지형을 확실히 알 수 있겠죠.

물론 실험을 시작하기도 전이나 실험 도중에 중단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느 한쪽이 항복을 하는 거죠.
그때도 어느 쪽이 먼저 중단을 요청하느냐를 보면 대충의 결과는 확인되겠지요.

참, 언론관련 학과에서는 이런 연구 안합니까?

“과연 조중동의 광우병 및 미국쇠고기 관련 보도태도가 정권교체에 따라 바뀌었는가?”

이 문제는 적어도 당사자인 조중동의 주장과 네티즌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주제입니다. 날짜별로 기사를 분석해서 긍정/부정의 비중변화를 보여줄 수 있다면 대답이 나올 수 있을겁니다. 누군가 한번 해주면 확실이 주목 받을 수 있을텐데요.

사회과학자들, 이럴 때 뜨지 언제 뜹니까.
빨랑 연구좀 하셈.

아, 그러는 저는 뭘 해야 할까요.

청소년들에 대한 심층조사는 올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_-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