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키의 시선으로 보는 “다찌마와리”와 “놈놈놈”


여름철 극장가를 열어제끼는 두 편의 우리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두 편 다 코믹을 가미한 액션작품이지만 서로 많이 다르다.  그래서 두 편을 억지로 연관지을 생각은 없으나 개인적으로 본인의 영화편력에 의미있는 부분이 있어 함께 언급해 본다.

1. 다찌마와리 그리고 류승완

류승완 이 친구, 참 공부 안한다.  예전부터 그의 영화를 볼때마다 들었던 생각이지만 참 아쉽다.  이건 애정어린 아쉬움이다.  어린시절 홍키(홍콩영화 키드)의 삶을 살아왔던 본인의 입장에서 류감독은 홍콩액션 무비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는 좋은 친구같은 존재다.  하지만 조금 노력하면 훨씬 잘 해 낼수 있는 친군데 발전이 더디어 아쉽다는 것이다.  얼마전 그는, 자기 마눌과의 의리때문이라며 테레비젼 쇼프로까지 나왔다.  그 자리에서 곧 상영될 영화 ‘다찌마와리’홍보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정통코스로 영화공부를 한 것이 아니기에 많이 본다고.  하지만 영화에,예술에 정통, 정규 코스가 따로 있나?  단연코 없다.  억지로 이야기한다면 영화공부는 많이 보고 많이 찍어보는 게 정통이고 진짜 정규코스다.  류야 말로 정통코스를 밣고 있는 정통영화인이다. 그런데… 본인이 보기에 류감독은 자기영화만 본다.  자기장르의 영화만 공부한다.  국영수 중심으로 암기과목도 소홀히 하지 않는 공부와 학습의 덕목에서 한 30%가 부족하다.  게다가 자기만의 특장 분야에서조차 얼마나 정체되어가고 있나.  아주 많이 정체되고 있다. 영화 ‘짝패’. 아주 좋다.  80년대 홍금보,성룡의 복성시리즈에 못지 않다.  그냥 못지 않을뿐 전반적으로 내외가 약하다.  배우들 시간날 때마다 그냥 놀듯이 모여 찍던 복성시리즈에 비해, 가령 내 친구가 전력을 기울여 애써 만든 영화가 고만고만하다면, 난 기분이 안 좋을 밖에.  영화는 경직되어 있고, 액션은 천편일률로 이전 다 보아왔던 동작이다.

그러나 …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모든게 척박한 이땅에서 류승완만큼 자기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잘 할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이는 드물다.  아이덴티티? 이거 중요하다. 난 그런 아이덴티티를 우리영화계 주류중에선 봉준호에게서만 본다.  박찬욱을 많이 거명하겠지만, 그의 특징이 뚜렷하다고 아직 말 할 수없다.  송강호로 페르소나 되는 봉준호의 특징은 진정으로 싱싱하고,절묘하고, 재밌고,의미심장하다.  그러나, 박찬욱에게서는 거장의 냄새는 나지만, 거장으로 불리워질 뚜렷한 내용이나 구체적인 무언가가 없다. (아마도 좀더 다작을 하면 나아지지 않을까. 칸느도 다녀온 분에게 너무 건방진가? …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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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을 강타"했던" 서울 인근 지역 올 로케 작품되겠다 -.-;;; ... 임원희, 류승범, 이윤성 등이 출연한다.

그래서 수 년 전 당시 딴지일보 한동원님의 글로 전해 읽었던, 류감독의 데뷔작 인터뷰는, 참으로 담백솔직막가는 멘트로 (그 말 그대로는 기억이 다 안나지만) 충분히 듣는이를 기쁘게 하고, 그와 한국영화계의 미래를 기대케 했다.  이렇게 난 그를 좋아 할 수 밖에 없다. 크게 실망시키는 졸작도 없었고, 자기 심지는 멋지게 지키고 있다. (좀 시건방진건 아직도 여전하지만)  그리고 ‘오아시스’에서의 그의 연기는 내 눈물을 뺐다. (오아시스에서 눈물나는 게 그의 연기뿐이 아니지만 서두…)  정말 내 동생을 보는 것 같았다.  배운 건 모자라도 혼신을 다해 세상의 풍파와 싸우며 사는 어린동생, 그래서 못난 형이 너무 미운 우리 동생.  정말 지금도 뭉클하다.  하여간 이렇게 좋은 친구가 더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어 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조금 아쉽다는 거다.

다찌마와리 (이전 모처에서 스크린 걸어놓고 보았던, 그 따끈하고 짜릿한 b급의 정서는 이젠 포기해야겠지만) 극장판에 대해서, 난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찌마와리 첫 이야기의 즐거움을 전혀 모를 젊은 관객들에겐 확실히 새로운 이야기가 될 것이고, 류감독 스스로에게도 또 한번의 자극과 충천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아무쪼록 지금 보다 다음 작품에서 더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있는 이번 다찌마와리가 되었음 한다.

2. 놈놈놈 그리고 김지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제목 참…거시기 어디서 많이 들었다.  한때 세상은 서부영화 전성시대였다.  그 비장하고 우울하면서도 통쾌한 정서는, 삼사십년전, 아니 아니 훨씬 더 이전부터 세상의 정의를 갈구하던 서민의 애환을 잠시나마 위로해주었다.  물론 미국의 원 주인을 짖이기던 외래총잡이와 군발이들의 악행을 미화한 작품도 적지 않았지만, 난 그런 개잡것들까지 다 이야기하는 건 아니구, 좀 덜 떨어지게 혼자 폼잡는 귀여운 총잡이들을 이야기하는 거다.  존웨인은 별로지만 세인이나 하이눈의 케인보안관과 장고와 우리 튜니티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김지운씨가 서부영화를 만든단다.  김지운감독, 내 생각에, 한국의 주류영화감독중 김현석감독 다음으로 깔끔하게(너무 깔끔해서 탈) 영화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겠지만, 이건 칭찬이기도 하고 비난이기도 하다.  더욱이 김지운감독 작품에서는 어느 다른 영화의 어딘지 모를 장면들이 자꾸 중첩이 된다.  표절도 패러디도 오마쥬도 차용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겹침이 이 감독의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든다.

놈놈놈은 한국식 웨스턴, 또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변주, 또는 만주웨스턴이라고들 한다.  조금은 황당하고 족보없는 이야기가 아니랄 수 없다.  이 작품은 근자에 영화를 접하기 시작했던 젊은 관객들에게는 신선한 장르로 받아들여지겠지만, 우리영화사에 코리안 웨스턴은 무척 심오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60년대를 풍미한 코리안 웨스턴은 신상옥 감독의 ‘무숙자’나 ‘6인의 난폭자’로 기억되는 정통극식의 서부극뿐아니라 ‘당나귀 무법자’같은 코미디 영화도 있었다.  한마디로 유구한 전통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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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무법자 OST? -.-

게다가, 웨스턴무비 또는 서부영화로 통칭하는 장르는 세계 어느지역에서나 나름대로 그 문화와 융합해서 자생한 시절이 있었다.  바로 오늘 본인이 놈놈놈 티져를 보자마자 기억이 떠오른 게 홍콩영화 ‘부귀열차’다.  서부영화의 장르적 특성을 함빡담고 열차를 통해 펼쳐지는 온갖 이전투구와 황당무계가 놈놈놈과 상당히 겹친다.  솔직하게 말하면, 홍키로 자부하는 본인은 놈놈놈의 기대보단, 예전에 너무 흥미진진하게 보았던 ‘부귀열차’를 다시 보고 싶은 (홍콩배우들과 서부영화라…이 기기묘묘하고 희한한 조합) 충동에 사로잡혀, 며칠전에는 시간을 내서 비디오디비디 판매 사이트를 들락거렸지만, 물론 못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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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열차는 홍금보(놈놈놈에서 송강호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캐릭터라 하겠다. 좀 더 무게감이 있긴 하지만), 원표, 관지림을 비롯한 당시 홍콩을 주름잡던 대배우와 액션배우들이 총출동했던 당대 대작이었다.  이런 작품의 흥취야 각양각색의 배우들뿐 아니라, 그들의 다재다능 액션(배우들마다 가지고 있는 액션의 특징, 이걸 골고루 섞어 보는 그 재미란,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ㅜ.ㅜ) 집단무를 보는 것이다.  위대한(이 단어를 어찌 쓰지 않을 수 있나, 서양의 기계적 액션에 비하면 이들의 동작은 예술이라 하겠다. 감히 …) 액션배우들의 종합선물세트로서 부귀열차는, 비슷한 흥취의 또 다른 무족보전투액션무비 ‘동방독응’과 더불어 본인의 기억속에 참으로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다.

놈놈놈은 흥취가 과연 얼마일지 모르겠으나, 난 … 그냥 ‘부귀열차’와 ‘동방독응’을 다시 보고싶다. (그나마 동방독응은 극장에서 큰 화면으로 보아 더더욱 화려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부귀열차는 그냥 쪼마난 TV화면에 화질 구린 비디오로 봤는데도 그러하니, 극장에서 봤다면 얼마나 화려했을까 …)


그럼 20000


영진공 버디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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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슐로서, 찰스 윌슨 지음, 출판사: 모멘토

이번에 광우병 문제로 인해서 미국산소고기의 위험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위험성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고 국가는 그런 위험을 통제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자기들이 안하고 미국 쇠고기 판매업자들에게 맡기면서 미국을 믿자고(덧붙여 안 믿으면 빨갱이라고) 주장하니 사람들이 뒤집어지는 것도 당연하고요.

하지만 먹거리의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산 쇠고기에도 있고 우리나라 쇠고기에도 있고…
그걸 떠나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해서 기본적인 생태조건에서 안드로메다만큼 멀어져버린 현대의 축산시스템 자체가 문제죠.

이 책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는 바로 그것을 다룹니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바로 그 패스트푸드점을 통해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가죠.
이 책은 패스트푸드점 자체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이라는 마지막 수도꼭지에 모든 것을 공급하는, 그 배후에 깔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량생산을 통한 가격절감을 내세워 전통적인 농장들을 흡수한 거대축산기업들,
그 와중에 가업을 잃고 일용노동자로 전락한 농장주들…

그 기업들이 운영하는 소 “공장”의 실태, 우유가 아니라 도축장에서 나온 소의 피로 만들어진 우유대체제를 먹고 자라서는 그놈의 “마블링”을 위해서 거의 푸아그라를 만들듯 억지로 성인병에 걸리는 소들, 그 소를 더 빨리 분해하기 위해서 무리하다가 다치고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 비슷한 일들이 감자와 옥수수에 대해서도 일어납니다.

거대축산기업이 공급하는 재료로 다시 거대패스트푸드 체인점들은 진짜 감자튀김이나 치킨너겟보다 더 진짜 같은 맛과 향기를 뿜어내는 패스트푸드를 개발해서 제공하지요. 물론 그 와중에 기존의 지역 먹거리 시스템은 대기업에 흡수되고, 원래 개인사업자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 그저 단순 일용직원으로 전락하고요.

이런 이야기는 원래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라는 책에서 이미 처절하게 까발린 내용입니다.  하지만 그 책은 너무 두껍고 무거운 내용이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도 꽤나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 책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가 나온 셈이죠.


패스트푸드의 제국, 참 잘 쓴 책이라는…


이 책은 최근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조만간 국내개봉 한다죠.

이 책은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쓴 저자가 조금 더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핵심정보만 모아놓은 일종의 다이제스트입니다.
책도 얇고, 일러스트도 있고, 내용도 적지만 전작에서 다룬 중요한 것들은 다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진짜 침착하고 진지하게 현실을 깊숙이 파고드는, 그래서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깊이 생각할 그런 책을 원하신다면,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보세요. 하지만 짧은 시간에 현대 식육산업의 문제점이 뭔지를 핵심만 쉽게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맛있는 햄버거의 무서운 이야기>를 보시면 됩니다.  어떻게 보자면 이 책은 패스트푸드 산업의 역사를 짚어가면서 이 산업이 어디서 이익을 창출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에 이 분야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사람들도 꼭 봐야 할 책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덧붙여, 최근에 김민선이라는 배우가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부위를 수입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했으면서 정작 본인은 미국 가서 햄버거를 맛있게 먹었다고 비난받고 있던데, 패스트푸드 체인점 햄버거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닙니다.


문제의 그 장면.

김민선이 좋다구나 하며 찾아간 햄버거집은 <인 앤 아웃>이라는 곳인데, 기존의 마구 만들어서 인공향료와 착색제로 진짜처럼 만들어내는 체인점에 반기를 든 대표적인 체인이죠. 고기도 좋은 것으로만 쓰고, 감자도 진짜로 튀겨내는(그래도 맛있는), 게다가 종업원들은 일용직이 아니라 사회보장까지 되는 정규직으로만 고용하는 곳입니다. <맛있는..>에서 일종의 대안으로 제시한 패스트푸드 시스템이기도 하지요. (첨부하자면 이 책의 저자도 햄버거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햄버거를 먹지 말자고는 못하고 어떻게든 대안을 찾으려고 한거죠. 저도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여기서 파는 햄버거는 SRM이니 뭐니 하는 문제로부터 아마도 햄버거중에서는 가장 멀리 떨어진 셈입니다.

이 체인점에 대한 궁금하시면 건다운 님의 아래 소개글을 보시길.
언제나 몸에 좋은 것은 별로 맛이 없는 경우가 많죠… 패스트푸드 조차도…
http://kr.blog.yahoo.com/igundown/8625

아래는 이 책에 나오는 몇가지 정보의 요약을 인용한 겁니다. 요약의 요약이라는..


패스트푸드를 먹기 전에 기억해야 할 사실 몇 가지

◆ O-157균에 감염된 한 마리의 소가 햄버거에 들어가는 쇠고기 15톤을 오염시킬 수 있다. ◆ 패스트푸드 햄버거 고기 한 덩어리에는 여러 지방에서 온 수백 마리 소의 고기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 다.
◆ 감자튀김, 프라이드 치킨, 치킨 너깃이나 도넛, 쿠키엔 지방 중에서도 가장 나쁜 트랜스지방이 듬뿍 들어 있다.
◆ 청량음료 캔 하나에는 설탕 10 티스푼에 해당하는 당분이 들어 있다.
◆ 패스트푸드에 쓰는 닭의 사료에는 도축장에서 나온 쇠고기 찌꺼기, 심지어 다른 닭의 살 부스러기나 지방, 피와 뼈가 섞이기도 한다.
◆ 양계장의 닭들은 움직이기조차 어렵다. 마리당 공간이 A4 용지만 하다.
◆ 패스트푸드점의 딸기 셰이크에는 딸기가 없다. ‘예쁘고 맛있는’ 화학약품들이 딸기의 색과 맛과 향 을 대신한다.
◆ 향료 첨가제는 다양한 화학물질을 조금씩 섞어서 만든다. 수많은 첨가제가 혼합되어 있는 음식을 끼니 마다 먹을 경우의 안전성은 알려지지 않았다.
◆ 13살에 비만 상태라면 30대 중반에 과체중일 확률이 90%나 된다.
◆ 10살 아이가 비만해서 당뇨병이 생기면 건강한 아이보다 평균 17년에서 26년 수명이 짧아진다.
—본문 내용 요약 중에서


영진공 짱가

[아이언 맨 (Iron Man)], 존 파브로 – “만들어 나가는 과정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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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직접 영웅되다.
<아이언맨>이 처음 기자시사회를 갖고나서 프레시안무비에서 최광희 선배(여기, 혹은 여기)는 “정치적으론 별로, 블록버스터로서는 재미있다”라고 평했는데, 어째 나는 정반대였다. “정치적으로 진일보, 블록버스터로는 별로.” (세 번째 보러 갔을 땐 힘들더라, 결국 30분 가량 잤다.) 이후 나오는 대부분의 평에서도 아이언맨이 각성하는 척하지만 결국 미국식의 위선적인 영웅이라며 비판하는 글을 많이 보았다. 그런데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 이건 원작이 있을 뿐 아니라, ‘블록버스터’다. 대체 블록버스터, 그것도 원작이 있는 블록버스터에서 신랄하고 예민한 정치적 감성을 기대하는 건 좀 과하지 않나? 게다가 실은 이 영화, 굉장히 신랄하고 예민한 정치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그게 한국 관객들이 바라는 측면에선 좀더 ‘은근하게’ 표현돼 있을 뿐.

물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한계는 명확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고 자신을 도와줬던 잉센의 고향 굴미라가 바로 자신이 개발한 무기에 의해 쑥대밭이 되는 걸 보고 분개하지만 그가 돌아다니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이 개발한 미사일인 제리코를 폭파시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오버다이어(제프 브리지스)가 지적한 대로 그 무엇보다도 강하고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게다가 이 사람이 하고 다니는 건 정말 영웅적 각성이라기보다 어째 ‘영웅놀이’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자신이 만든 무기들을 제거하고 다니는 바로 그것이야말로, 얘가 헛스러운 영웅놀이를 한다기보다 정말 뭔가에 책임지려는 태도로 보이지 않나? 게다가 아이언 맨 수트를 입은 토니 스타크는 그 누구도 아닌 미국 공군에 의해 쫓기고 공격을 당하며 적으로 규정된다. 오버다이어와 토니 스타크가 대결한 다음 토니 스타크의 군수공장 건물 지붕이 날아가 버리기까지 한다. 최종적으로 폭파되는 건 결국 차례대로 토니 스타크가 만든 무기들, 그리고 그 원자로와 건물이다. 이건 매우 상징적인 파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미국 군수산업에 대해 이렇게까지 공격을 들이대는 영화가 과연 있었던가. 더더욱 중요한 것. 이 영화가 줄곧 취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빈정대는 태도. 이게 정말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걸까?



토니 스타크의 외모가 참 비열하고 뻔뻔한 특유의 그 악당 수염을 고수하는 것도 그렇고(이는 심지어 수트를 입고 출동하는 토니의 얼굴을 극클로즈업하면서 함께 확대된다), 심지어 토니의 컴퓨터들마저 토니에 대해 사정없이 사카스틱한 비아냥을 날려댄다(예컨대 수트에 정열적인 빨간색을 칠하라고 하자 “주인님의 ‘은둔자적’ 성격을 잘 반영해 드리죠.”라며 대꾸하는 등.). 폼잡고 싸우던 토니 스타크의 ‘가오가 무너지는’ 유머 장면은 또 얼마나 많이 나오는가. 단순히 토니 스타크를 놀려먹는 것뿐 아니라, 영화 전체가 키들거리는 사카스틱한 농담의 자세를 계속 유지하면서 스스로 자조하는 듯한 유머가 무수히 많이 깔려있다. 나는 이것이, 블록버스터로서 정치적 감각이란 걸 대단히 제한된 형태로 가질 수밖에 없는 이 영화가 스스로의 처지와 한계에 대해 빈정거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바로 이 영화 스스로가, 그런 미국식 위선적인 영웅심 자체를 비아냥대고 있다는 얘기다. 혹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힘과 능력과 재력이 있긴 있는데 토니 스타크 같은 막돼먹은(?) 인간이라며 자조하고 있거나. 이 정도까지 간다면, 이 영화의 정치적 감수성이란 실은 대단히 예민하고 신랄하며 유머감각까지 갖춘 것으로 인정해 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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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뻔뻔하고 웃긴 남자, 매력적이다.


사실 이 영화는 토니 스타크의 영웅적인 행적과 그의 놀라운 아이언 맨의 수트와 같은 전형적인 슈퍼히어로의 활동상보다 토니 스타크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호감과 관심으로 지탱되는 영화다. 일단 스타크 인더스트리가 당대 최고의 첨단 기술로 당대 최고의 무기를 만들어내 엄청난 수의 인명을 살상하고 이것을 직접 개발한 것이 토니 스타크이건 말건, 우리는 토니 스타크에게 직접 죄를 묻기가 힘들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 그가 경영자가 아니라 그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이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그가 책임감있고 성숙한 성인 남자라기보다 몸은 어른인지 몰라도 정신세계와 하는 짓은 딱 ‘철딱서니 없는 어린 남자애’이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이런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그려낼 배우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한 것은 매우 탁월한 선택이었는데, 그는 매우 놀라운 균형 감각으로 토니 스타크를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럽게 자조하는 한편, 그럼에도 (주인공인 만큼) 엄청난 매력을 가진 인물로 그려내는 데에 성공한다. 나이도 있고 돈도 많으며 사회적으로 성공을 한 성인남자의 매력과, 그럼에도 부잣집 도련님 출신으로 어쩔 수 없이 철없는 ‘애’의 모습을 가진 남자의 매력을 복합적으로 매우 잘 살려냈다.


먼저 이 영화는 맨하탄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오펜하이머와 그에 관한 세간의 논쟁을 노골적으로 가져오면서 이를 슬쩍 비틀어 토니와 그의 아버지에게 투사시킨다. 과연 과학자는 혹은 엔지니어의 윤리는 지금 눈앞의 신기술이 전세계에 미치는 복잡다단하기 그지없는 (정치, 외교적) 영향들을 고려하는 것까지 포함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는 극비리에 진행되고 있던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참가 제안을 받았던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거리였으며 종전 후 보다 폭넓은 사람들 사이에서 격렬하게 논쟁됐던 주제 중 하나다.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이들 과학자들에게도 윤리와 책임을 물으며 비판하지만, 세간의 우리들은 대체로 실험실 안에만 갇혀 연구만 일삼는 ‘순진한 천재들’이 정치적으로 무지할 수 있고 오히려 그들이 이용당한 면이 크다며 손쉽게 이해와 용서를 하는 편이다. 이는 ‘순진한 천재’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종종 천재들이 일상의 아주 작은 부분에서는 오히려 바보처럼 행동했다는 여러 우스개 에피소드들과 함께 퍼져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토니 스타크의 ‘천진난만하고 철없는 어린애다운’ 모습도 바로 이런 환상에 기대고 있는 부분이 크다. 안 씻고 외모에 전혀 신경 안 쓰고 하는 것보다야 여자들과 노는 걸 좋아하는 게 훨씬 이해받기 쉽고 호감으로 전화되기 쉬우니까. 굴미라 마을을 공격한 용병들에게 무기를 제공해줬다는 오버다이어에게 쫓아가 ‘무력한 표정으로’ 항의하는 토니 스타크의 모습이 바로 이런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결정적인 알리바이 장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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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전 여자보다도 뚝딱거리는 조립놀이가 더 좋답니다.


놀기 좋아하는 어린애스러운 면이 있는 남자는 보통 바람둥이 남자를 매력적인 존재로 그리는 데에 가장 자주 동원되는 수법이다. 사실, 그렇게 천진난만한 어린애이기 때문에 ‘어른의 관계’에 대한 기대 없이 (여자들도 자발적으로 동의하며) 여러 여자를 전전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여자들에게 매력과 보호본능을 자극하는(뭐든 하나씩 흘리고 다치고 하는 저 남자를 챙겨주고 싶다는 식의 모성본능 포함). 첫 시작부터 영화는 토니 스타크를 여자와 술과 파티를 좋아하는 한량으로 그려내는데, 사실 토니 스타크가 여자보다도 좋아하는 건 ‘조립 놀이’이다. 다만 그가 워낙 돈이 많고 기계천재다 보니 뚝딱뚝딱 갖고 노는 게 첨단기술을 응용한 무기가 되는 것일 뿐. 사실 그가 갖춰놓은 지하의 ‘작업실’은 어릴 적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무선라디오를 만든 경험이 있는 거의 모든 남자아이들에겐 궁극의 로망일 것이다. 이 영화의 엔딩은 토니 스타크의 ‘철없는 애스러운’ 성격을 보여주는 정점이다. 보통의 다른 슈퍼히어로와 달리 자신이 바로 아이언맨임을 밝히는 이 영화의 마지막은, 사실 “나 이렇게 대단해, 봐줘 봐줘” 하는 어린애들의 과시욕과 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바로 이것이 토니 스타크의 매력이며, <아이언 맨>의 매력의 98%는 바로 토니 스타크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고, 이런 캐릭터를 ‘진상’이 아닌 ‘매력적인 남주’로 승화시킨 건 결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공이라 하겠다. 사실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솔직함은 그 결과가 설사 어처구니 없는 것이라 해도 일단 호감을 가지게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재력과 매력을 능력을 갖춘 남자라면, 웬만한 여자들의 눈에는 그런 애스러운 철딱서니없음도 또 하나의 매력이자 다른 매력들을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곤 하니까. 하지만 <인크레더블 헐크> 말미에 잠깐 등장하는 토니 스타크는 <아이언 맨>의 토니 스타크와 달리 어딘가 악당 포스가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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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고철덩이로 둘러싸인 이런 랩에서 이런 옷을 입고 있어도 섹시하다.



나는 이 영화가 블록버스터로서 별로라고 했는데, 이건 보통 슈퍼히어로를 다룬 블록버스터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거는 기대와, 이 영화가 방점을 찍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무슨무슨 맨 시리즈라 하면 당연하게도 화려한 액션과 활약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그 이전, 즉 아이언맨이 탄생하는 과정, 특히 그 수트를 만드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아이언맨의 활약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영화 전체가 다음 편을 위한 예고편 정도로 여겨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테렌스 하워드나 기네스 펠트로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해놓고도 그들이 연기하는 제임스 로드나 페퍼 포츠를 그런 식의 철저히 들러리로만 설정한 것도 이 영화가 실은 속편을 위한 거대한 떡밥에 불과하다는 인상과 실망감을 느끼는 것도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다만 이 영화가 철저히 ‘아이언맨의 탄생’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긍해 버리고 나면, 뚝딱거리며 아이언맨 수트를 ‘만들어나가는’ 과정, 거기에 토니 스타크라는 좀 철없으면서도 매력적인 왕자님이 보여주는 캐릭터 유머에서 잔재미들을 꽤 찾을 수 있고, 고백하자면 그 잔재미들은 꽤 흥미롭고 재미있다. 다만 속편을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 게 문제라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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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매력적인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영진공 노바리

ps1. 각종 마약사건 때문에 재능에 비해 너무 묻혀있던 다우니 씨, 이제 제발 활활 날개를 펴삼.

ps2. 사실 다우니는 이런 블록버스터 주인공도 잘 하지만, 예컨대 <구름 저편에>에서 그 맑은 눈을 깜박이며 소녀에게 대쉬하던 역 같은 섬세한 연기가 정말 짱… 게다가 난 이 사람 목소리도, 발음도 너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