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구두 (Non Ti Muovere, 2004), “전통적 영화감상의 익숙한 쾌감을 주는 영화”


인상 깊게 본 영화들 중에는 기존에 가장 중요시되던 피사체인 인물 보다, 인물 주변의 공간으로 시선을 분산시킴으로써 새로운 미감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에서 돋보이는 건 단연 아사노 타다노부의 존재감이었지만 그를 바라보는 크리스토퍼 도일의 시선 또한 한 편의 영화를 새로운 경지로 끌어 올려주고 있었다고 기억한다. <토니 타키타니>에서는 전면이 유리로 된 공간을 재사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고, 또한 엄청나게 많은 옷들을 치워버린 텅 빈 방 안 속의 인물을 그 자체로 하나의 정물처럼 배치한다.

또 어떤 영화들은 내러티브 구조에 변화를 주거나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 또는 픽션과 넌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기에 좀 더 적합한 전개 방식을 시도한다.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 역시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을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고, 서로 다른 입장의 여러 관계들을 현재 시점의 앞마당으로 전부 불러모음으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영화의 전개 방식 자체로써 이미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마이클 윈터바텀의 <인 디스 월드> 같은 경우는 아예 영화를 만드는 방식 자체에 변화를 주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들 속에서 <빨간 구두>는 한참이나 뒤쳐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영화 작법에 있어서 어떤 새로움을 시도하고 있는 부분도 없고 이야기의 내용이나 갈등 구조 또한 무척 익숙한 편에 해당하는 그런 정도다. 그러나 <빨간 구두>가 관객들에게 주는 임팩트, 충만감의 정도는 최근에 볼 수 있었던 어떤 영화들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힘이라는 것은 오직 두 명의 배우, 원작 소설을 직접 각색하고 연출까지 한 세르지오 카스텔레토와 페넬로페 크루즈에게서 나온다.

배우 출신인 연출가가 애초에 의도했던 것 역시 배우들의 역량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쪽이었던 듯,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시종일관 배우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게 되고 그런 수동적인 관람 방식에서 오히려 전통적인 영화 감상의 익숙한 쾌감을 맡보게 된다. 많은 경우에 영화가 전달하려는 특정 씨퀀스의 정서를 배경 음악과 같은 장치들로써 관객들에게 ‘지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하는데, <빨간 구두>의 경우는 배우와 관객 간의 흐름을 아무 것도 방해하지 못한다. 방해가 될만한 모든 것들을 모두 자제시켜서라기 보다는 그만큼 배우들의 흡입력이 압도적이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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