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브레이커스”, 매트릭스는 아무나 하나

에단 호크가 오랜만에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섰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앳된 소년으로 출연했을 때에는 존재감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당시에 함께 출연했던 모든 배우들 가운데 – 심지어 로빈 윌리엄스까지 포함해서 –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인상이 그리 강해보이지 않은 탓에 출연작들 대부분이 드라마 쪽이고, 그나마도 저예산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이제는 ‘독립영화의 친구’쯤 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초반부는 몇 편 안되는 에단 호크의 액션물 또는 SF 출연작들 중에서 특히 <가타카>(1997)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미래 사회이긴 한데 어딘지 모르게 카프카의 느낌이 나는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10년이니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에 불과하건만 사람들이 중절모를 쓰고 다니질 않나 참 묘한 느낌을 전달해줍니다. 이것을 굳이 어색하다고 하기 힘든 것은 <데이브레이커스>의 세상이 뱀파이어들 – 굳이 부류를 지정하자면 <트와일라잇>의 착한 뱀파이어가 되겠네요 – 의 것으로 바뀌었다는 설정 덕분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세상이 온통 좀비들로 넘쳐나가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몇 편 있었지만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2007)는 변종 인류들로 창궐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 해독제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외로운 사투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이 변종 인류들을 뱀파이어라기 보다는 역시 좀비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죠.

여기에 비하면 <데이브레이커스>의 뱀파이어들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트와일라잇>에 등장한 착한 – 또는 착하려고 노력하는 – 뱀파이어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영생을 얻었지만 인간의 피를 먹어줘야 하는 관계로 새로운 인류 역사가 시작된지 10년 만에 전세계적인 식량난(?)이 닥쳐오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대체재를 만들어만 하는 상황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빈부격차로 인해 인간의 피를 섭취하지 못한 뱀파이어들이 서서히 변이를 일으켜 끔찍한 괴물 뱀파이어 – 서브사이더 – 로 바뀌게 된다는 점입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테마는 뱀파이어에서 다시 인간으로의 회복입니다. 우연히 그 과정을 겪게된 라이오넬(윌렘 데포)을 만난 에드워드(에단 호크)는 자신도 다시 인간이 되고자 기꺼이 실험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완전히 망가져가는 뱀파이어 세상에서 인간으로의 복귀를 통한 구원의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아의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중심 내러티브 보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마치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학살을 재연하는 듯한 괴물 뱀파이어들의 화형식 장면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탐욕 추구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씨퀀스라고 하겠지만 어찌보면 마이클 & 피터 스피어리그 형제 감독이 독일 출신으로서의 자의식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좀비가 되었든 뱀파이어가 되었든, 너무 번성하면 수요 공급의 문제 때문에 다시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역설적이면서도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28일 후…>(2002)의 속편으로 만들어진 <28주 후…>(2007)가 바로 이런 설정에서 시작하는 작품이었죠. 그러고 보면 <데이브레이커스>는 기존의 여러 공포물과 SF 영화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재구성한 듯한 느낌이 역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 의외로 전체적인 줄거리에 있어서는 <매트릭스>와 비슷합니다.

물론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작품을 내놓는 것은 아주 해내기 어렵고 관객 입장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경험이기 때문에 <데이브레이커스>와 같은 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신선한 재해석과 설득력 있는 연출을 보여주느냐가 될 뿐이지요.

주제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전반적인 연출도 그리 흠잡을 데가 없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브레이커스>가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시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 그로 인한 공포나 신비로움과 애절함을 –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인류와 뱀파이어가 공생하는 상황을 그린 TV 시리즈 <트루 블러드>도 그래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좀비 세상은 뭐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스펜스가 있어 좋고 그 자체로 풍자극이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벰파이어 세상이란 건 일단 설정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가 그 비밀스러운 맛이 없어서 그야말로 김 빠진 콜라 같은 게 되는 거 아닐까요. <렛 미 인>(2008)과 < 트와일라잇>(2008)의 중요한 차이점 역시 바로 그 점이라 생각합니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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