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어스 맨”, 코엔 형제는 만들기만 하면 걸작이구나


어떤 소재의 영화를 만들더라도 코엔 형제가 만들면 걸작이 되고 그들 특유의 내음이 난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돌이켜 보면 코엔 형제의 영화들 중에서도 범작은 있었다. 하지만 <시리어스 맨>은 분명 잘 만들어진 축에 속하는 작품이다.

<시리어스 맨>은 67년 미네아폴리스의 유태인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다. 코엔 형제 자신들의 어린 시절 추억담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들도 분명 히브리어 학교를 다니고 유대식 성인 예식을 치렀으리라.

코엔 형제의 작품들이 종종 삶과 종교에 관한 메타포를 암시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작품 전체의 메인 테마로 삼았던 적은 <시리어스 맨>이 처음이라 생각된다.

주인공 래리(마이클 스터버그)는 굳이 비교하자면 구약의 욥과 같은 인물이다. 자신에게 닥쳐오는 안좋은 일들 – 아주 어처구니 없기까지 하다 – 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신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알기 위해 랍비들과 상담하지만 결국 답을 얻지는 못한다.

특히 영화의 결말은 삶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불가역성을 강조한다.
궁지에 몰린 래리는 마침내 한국인 학생의 ‘미스테리한’ 뇌물을 받아들이는데, 마지막 자존심을 세우는 바로 그 순간에 무시무시한 전화를 받는다. 래리의 아들 대니는 압수 당했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20달러 지폐를 되찾아 더이상 친구를 피해 달아날 필요가 없어졌지만 그 보다 더 무서운 토네이도가 다가온다. 집 안으로 잽싸게 피해 달아나는 식의 방법으로는 절대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영화 도입 부분에 삽입된 단편도 결국 불확실성에 관한 이야기다.

굳이 메시지를 뽑아내자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건 코엔 형제의 영화를 보는 바른 자세가 아니다. 정리하려고 하지말고 그냥 보여주시는 대로 받아들일지어다.

유명한 스타 배우도 없고 코엔 형제 영화의 단골 출연 배우도 없다 – 물론 이것도 미국 영화니까 낯익은 배우 두어 명 정도는 나온다. 캐스팅의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건 간에 결과만 놓고 봤을 때 작품을 위해선 최상의 캐스팅이란 실은 바로 이런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흥행에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었을테지만 낯선 배우들이 등장하는 영화는 종종 아주 사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낯익은 배우들이 주는 기시감이나 고정된 이미지가 배제되기 때문에.

코엔 형제 영화의 출연진들은 대체로 매끈한 스타급 주연 배우와 함께 굉장히 재미있는 조연과 단역 배우들로 구성된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리어스 맨>은 스타급 배우가 없는 영화이니 만큼 출연진 전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나칠 정도로 희화화된 인물은 없지만 다들 이런저런 장기를 발휘하며 한 웃음씩 전해주신다.

소품 성격의 작품이긴 하지만 그 대신 아주 밀도 높은 연출의 내공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미장센과 음악의 사용도 훌륭하지만 특히 음향 효과의 사용이 유난히 특출나게 느껴진다.

다윗이 밧세바의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았듯이 래리가 이웃집 여인 샘스키 부인을 지붕 위에서 발견했을 때 샘스키 부인의 담배 태우는 소리가 거기까지 들려올 리가 만무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것으로 래리의 오감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 어쩌면 뜻밖의 목표물을 발견한 남성의 능력이란 실제로 초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인지도. 그래서 이번엔 음향 편집 담당자의 이름을 찾아봤다. 코엔 형제와는 초기작부터 줄곧 함께 작업해온 스킵 리브시(Skip Lievsay)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Somebody To Love로 장식했다. 그러고 보니 샘스키 부인 역의 에이미 랜데커에게서 그레이스 슬릭의 느낌이 난다.

감독, 작가, 프로듀서인 코엔형제(Joel & Ethan Coen)

영진공 신어지

“니키타”와 데저트이글



세익스피어의 소설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궤를 같이하는 영화(혹은 소설)로는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마이페어레이디)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어떤 남자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행태를 하던 여자를 조련(?)해서 각광받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만든다는 이야기 골격을 공유하지요.

이런 이야기는 지극히 남성우위적인 이야기이면서 또한 수많은 남자들의 판타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로 변주됩니다. 그 중에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같은 영화는 히스레져의 유작이기 때문에라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죠.

이번에 다룰 영화 <니키타>도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아주 괴상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괄량이를 양가집 규수로 길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형 판결난 경찰살해범 소녀를 인간병기로 길들인다는 차이가 있을 뿐, 기본 골격은 결국 ‘조련하기’ 니까요.



조련 전: 막나가는 범죄녀


조련 후: 고뇌하는 살인녀

1990년에 뤽 베송이 만든 이 영화 <니키타>는 당시 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의 변화는 일종의 반전거울상 같은 경로를 따라갑니다. 범죄소녀 시절의 니키타는 여성미도 없고 그저 동물적인 본능에만 의존하는 괴물이죠. 하지만 그녀가 혹독한 훈련을 거쳐 킬러로 다시 태어나면서 여성적인 자각도 같이 생겨납니다.

그 전에는 아무 자각 없이 사람을 죽이던 여자가 아예 킬러로 훈련받으면서 오히려 고뇌하고 사랑에 흔들리는 여자가 되어가는 거죠. 킬러 훈련소의 냉혹하고 비정한 논리 속에서 니키타의 인간성이 깨어나다니 … 참으로 아이러니한 전개인데, 그게 또 나름 설득력이 있더란 말이죠.

그 미묘한 부조화가 이 영화의 매력이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영화는 대 성공을 거두어 니키타 역을 맡았던 안느 빠릴로(당시 뤽 베송의 마눌이기도 했던)를 국제적인 스타로 만들어줬으며, 조련사 역을 맡은 체키 카리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죠.

그러나 <니키타>에 이런 것들만 있다면 이 총과 영화 코너에서 특별히 다룰 필요가 없겠죠. 이 영화의 명장면인 다음 클립에서 이 포스트의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기본 훈련을 훌륭하게 이수한 니키타를 훈련담당관 밥(체키 카리오)가 졸업축하를 하자며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갑니다. 그것도 꽤나 멋진 드레스를 입히고 예쁘게 단장을 해서 말이죠. 범죄소녀 시절에 구경도 하지 못했던 고급레스토랑의 분위기와 밥의 친절한 서빙에 철없이 들뜬 니키타. 그녀에게 밥은 선물이라며 큼직한 박스를 건넵니다. 아니 선물까지!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감싸쥐고 기뻐하며 선물을 열어보니 … 아, 거기에는 탄창이 결합된 데저트이글 한자루와 예비탄창이 들어있네요.

니키타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여기서는 모든 것이 훈련이고 작전이며 조직의 계획의 일환임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죠. 킬러 훈련소의 졸업식은 암살임무의 수행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레스토랑에 온 목적은 자신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기 위함이며,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 해야 자신이 죽지않고 살아서 킬러요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예비탄창은 가슴골에 집어넣고 권총을 들고 타겟에게 다가갑니다.

지시대로 타겟에게 2발을 쏜 그녀는 밥이 알려준 대로 남자화장실에 있는 탈출구를 찾았으나 젠장. 거기는 탈출구는 커녕 꽉 막힌 벽만 있군요. 어쩔 수 없이 주방으로 대피해서 들이닥친 경호원들과 한바탕 총격전을 치릅니다. 여기서 데저트 이글의 강력한 위력을 묘사하기 위해서 니키타가 쏜 데저트이글의 탄환의 시점으로 찍은 타격 장면. 탄이 날아가서 벽을 관통해서 경호원을 쓰러트리는 그 장면은 이후 여러 영화에서 사용하게 됩니다.


데저트이글 한 방 먹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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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데저트 이글



내부에는 M16 처럼 가스압작동식 회전노리쇠가 …

실제로 1982년에 이스라엘의 IMI 사에서 만든 이 가스압 작동식 자동권총, 데저트 이글은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도 가장 강력한 자동권총입니다.

크게 3가지 기본형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위력이 약한 것이 .357 매그넘탄을 사용하는 버전이고 그 다음으로 강력한 것이 (더티해리가 애용하는) .44 구경 매그넘탄 버전, 그리고 .44 매그넘 보다도 한 30% 쯤 더 위력이 강한(.357 매그넘에 비하면 2배 쎈) .50 액션익스프레스 탄을 사용하는 버전이 있습니다.

탄창 용량은 .357 매그넘이 9발, .44 매그넘이 8발, .50 액션익스프레스가 7발입니다. 탄이 굵고 셀수록 탄창에 장전가능한 양은 줄어드는 거죠. 참고로, 니키타에서 사용한 데저트이글은 탄창용량으로 봐서는 아마도 .357 매그넘 버젼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 권총은 리볼버용 매그넘탄을 사용하면서도 탄창 설계를 잘해서 송탄불량이 적고(오토매그는 이 송탄불량 부분에서 망했죠), 작동방식도 M16 처럼 가스압으로 작동하는 회전노리쇠 방식을 사용해서 강력한 탄약의 위력을 적절히 통제해주며, 총열이 튼튼히 고정된 방식이라 명중률도 매우 높으니 여러모로 최강의 자동권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분해방법도 단순하고, 분해하면 총열과 노리쇠를 쉽게 교체할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최근 모델은 총 한자루에 3가지 버전의 총열과 노리쇠, 탄창을 같이 제공해서 위의 세 가지 탄 중에 아무거나 맞춰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세가지 총열과 노리쇠 구성으로 여러분을 찾아뵙습니다. 이런 구성! 전무후무하죠?



장총신 총열에 스코프를 붙이면 장거리 사격이나 사냥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총열도 장거리 사격경기용의 긴 총열로 쉽게 교체할 수도 있고요. 영화에서도 종종 등장해주시는 덕분에 인지도도 높은데다가, 이렇게 실용성도 겸비해주신 덕분에 민간 총기시장에서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꽤 인기가 있습니다. 민간 사격경기에서도 데저트이글은 특유의 정밀도와 장거리 사격능력으로 꽤나 선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단, 군용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값비싼데다 무겁고(2kg), 장탄수는 적고, 반동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죠.

영화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데저트 이글이 처음 소개된 영화는 미키 루크가 주연한 <이어 오브 더 드래곤>이라는 영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관객들에게 데저트 이글의 이미지를 깊게 남긴 영화는 바로 이 <니키타> 였습니다. 하늘하늘한 미니 드레스를 입은 가냘픈 여자가 거대한 자동권총인 데저트이글을 들고 주방 싱크대 뒤에 웅크리고 앉은 모습은 니키타를 대표하는 이미지였고, 동시에 많은 총덕 영화관객들에게 데저트이글의 인상을 깊이 남기는 장면이 되었던 것이죠.

그 이후 데저트 이글은 액션영화라면 개나 소나 등장시키는 단골손님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총격액션물 <쉬리>에서 뜬금없이 북한 공작원이 데저트 이글을 들고 나온 것도 아마 <니키타>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최근에 <아이리스>에서 탑 군이 데저트 이글을 들고 나온 이유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니키타> 덕분이겠죠.


바로 이 이미지.


요 장면 구도는 이후 터미네이터2 에서 사라코너가 재현.

참고로 1993년에 헐리웃에서 이 <니키타>를 브리짓 폰다 주연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습니다. <암호명 니나>라는 영화였는데, 결과는 시망 … 뭐 후진 연출 탓도 있었겠지만 리메이크가 망한 가장 큰 이유는 데저트 이글을 안쓰고 이상한 소구경 스포츠권총을 쥐어줬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코드네임 니나, 어쌔신, 혹은 포인트 오브 노 리턴 이라는 제목도 있지만 다 망했어요 …

그렇게 망하고도 아쉬움이 남았는지, 한참 후인 1997년에는 TV 시리즈로도 나왔습니다. 페타 윌슨이라는 모델 출신 여주인공이 니키타 역할을 맡았죠. 나름 원작의 분위기를 잘 유지한 작품이긴 했는데, 스타일이 좀 약했다고나 할까요.


 



페타 윌슨 버젼의 니키타

덧붙여, <니키타> 이전에 데저트 이글이 등장한 흥미로운 영화 중에는 1988년에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레드 히트>가 있습니다. 소련에서 미국으로 탈주한 범죄자를 쫒아 미국까지 달려온 군 수사관 당코 대령역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그가 소련에서 만든 세계 최강의 자동권총이라며 들고 온 표드비린 이라는 권총이 사실은 독일/소련 풍으로 살짝 화장을 바꾼 데저트 이글이었죠.

사진을 보면 그립은 월터 P38 과 비슷한 분위기로 바꾸고 방아쇠 그립을 둥글게 하고, 총열을 조금 늘린 버전으로 교체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총은 실제 총을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뭔가 소련 군인의 강력함을 어필할 소품을 필요로 하던 헐리웃 영화제작진이 만들어낸 가상의 권총 되겠습니다.

실제 당시 소련군은 탄의 위력만 따지면 서방의 9밀리 자동권총에도 못미치는 마카로프 권총을 제식으로 사용하고 있었죠. 이렇듯 데저트 이글을 데저트 이글이라 부르지 못하던 서러운 시절도 있었는데, 그후로 단 2년 만에 스타가 되다니, 총의 명성도 운을 따르는 모양입니다.


“레드히트” 포스터 속의 아놀드가 들고 있는 권총은 …



바로 요놈 … 데저트 이글을 요상하게 개조한 놈



이스라엘 국적의 데저트 이글이 어쩌다가 소련 국적이 되었는지 …



쌈마이스러운 다른 포스터도 서비스. 포스터 속의 여자는 바로 지나 거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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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타 비디오 패키지인 듯 …


 



<니키타>에서 클리너로 나온 장 르노는,

이후 <레옹>에서 비슷한 역할을 다시 맡습니다.

영진공 짱가

 

지구생명체의 기원은 외계일까?

35억 년 전 불지옥과 같은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밝히려는 과학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중 1929년 영국의 생물학자 J.B.S 홀데인이 발표한 원시수프(Primordial Soup) 가설은 여러 논란 속에서도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영국의 한 연구진은 원시스프 따위는 뻥이다 라며 새 이론을 발표했다.(‘원시수프’생명기원 가설 뒤집혀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37583) 그들은 원시스프에는 화학반응을 일으킬만한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은 해상 열수구에서 나온 지구의 화학에너지라고 주장했다.


바다 속 화산인 해상 열수구

이렇듯 21세기에도 생명탄생의 이유는 여전히 오리무중인 가운데 과거에 폐기처분 되었던 한 이론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원시스프 이론이 등장하기 전인 1901년 스웨덴의 화학자 스반테 아레니우스는 판스페르미아(Panspermia)이론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발표 했다.



판스페르미아 이론을 주장했던 스반테 아레니우스Svante Arrhenius (1859~1927)

190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으며 온실가스로 인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간다는 온실효과를 처음 발견했던 아레니우스는 생명은 지구에서 뾰로롱~하며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주로부터 박테리아 포자가 날아온 것이라는 외계 기원설을 주장했다.

물론 이 주장은 씨도 안먹혔다. 혹독한 우주공간을 견디고 살아남아서 지구로 날아와 생명의 꽃을 피운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우주 부럽지 않은 지구의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잘먹고 잘살고 있는 생물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판스페르미아 이론은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지구상의 생물을 기준으로 놓고 보자면 생명체는 극단적인 환경에선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그것은 크게 2가지 이유 때문인데 바로 단백질과 세포때문이다.

생물의 몸은 주로 단백질로 되어 있다. 근육에서부터 소화 효소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단백질이다. 근데 요 단백질이란 놈은 쉽게 변형이 되고 변형이 되면 본래의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 또 변형이 되면 원래의 형태로 되돌아가질 못한다. 찐계란을 가지고 별 짓을 다해보아도 다시 날계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세포는 세포막이 문제다. 이 세포막이 부서지면 세포 자체가 부서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을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 단백질이나 세포막이 부서지지 않으면 극단적인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반건조 지대에는 아프리카깔따구(Polypedilum vanderplanki)라는 물지 않는 모기의 일종이 살고 있다. 아프리카깔따구의 수명은 약 1개월인데, 그 대부분을 애벌레로 지낸다. 애벌레의 몸길이는 1cm미만인데, 이 애벌레는 최장 8개월이나 계속되는 극도의 건조 상태에서도 견디는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살고 있던 웅덩이가 말라 버리면 애벌레의 몸은 절반으로 꺾이고 바싹 마른다. 일반적으로 애벌레의 몸에는 80%가량의 수분이 포함되는데, 건조해지면 겨우 몇%까지 줄어든다. 하지만 죽지는 않고, 비가 와서 수분이 공급되면, 한 시간이면 원상태로 살아난다.

아프리카깔따구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건조함을 견딜 수 있을까? 그것은 사라진 수분 대신에 몸속을 ‘트레할로오스(trehalose)라는 당으로 메워서, 세포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때문이다. 트레할로오스는 유리상태라는 액체와 고체의 중간과 같은 상태가 되어, 세포를 단단하게 만든다. 수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세포나 세포 안의 소기관의 형태는 쭈글쭈글하게 되지만 단백질이나 세포막을 단단히 보호하게 된다. 물을 흡수해 살아날 때는 건조할 때와 반대의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에 몇 번이고 건조함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트레할로오스는 아프리카깔따구만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물질은 아니고,
자연계에 흔히 존재하며 특히 사막에 사는 선인장에서 많이 존재하는 물질이다.
보습제로도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아프리카깔따구가 트레할로오스만으로 건조함을 견디는 것은 아니다. ‘LEA(레아)단백질’이라는 특수한 단백질이 건조할 때 세포 내의 단백질끼리 붙는 것을 막거나, 건조할 때 상처를 입은 유전자를 살아난 후에 복구하는 메커니즘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져 있다.

그리고 건조된 아프리카깔따구의 애벌레는 생명활동(대사)도 전혀 하지 않는다. 대사를 낮게 억제하는 곰이나 다람쥐의 동면과는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다. 이처럼 대사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건조함 등에 견디는 능력을 ‘크립토바이오시스(cryptobiosis)’라고 불린다.


크립토바이오시스의 능력을 가진 생물들은 아프리카깔따구 이외에도 
윤형동물인 담륜충rotifer(좌) 와 완보동물(몸길이 0.5~1mm의 매우 작은 동물군)의
하나인 물곰water bear(우)
 이 있다.
이들 생물도 크립토바이오시스에 트레할로오스를 이용한다.

아프리카깔따구의 애벌레가 가진 능력은 건조함에 견디는 것만이 아니다. 건조 상태에 빠진 애벌레는 100도의 고온에서 몇 시간 그리고 -270도라는 극도의 저온에 3일 이상 놓여도 살아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더욱이 에탄올 속에 1주일 동안 잠겨 있어도, 7000Gy의 방사선을 쬐어도 죽지 않는다. 또 건조 상태에서 17년간 보관되어 있던 애벌레가 살아났다는 기록까지 있다.

이런 아프리카깔따구의 능력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우주에서도 시험해 보았다. 2007년 6월 국제 우주 정거장의 바깥쪽, 즉 우주 공간에 아프리카깔따구의 건조 애벌레를 방치하였다가 약 1년 후에 회수하여 지구로 귀환했다. 애벌레는 금속제 용기 안에서 플라스틱 샬레에 나뉘어 들어 있었는데, 태양빛의 고열에 의해 샬레는 녹아서 변형되었지만 애벌레는 물을 주자 원상태로 살아났다.

이 놀라운 능력 때문에 아프리카깔따구의 건조 애벌레는 2011년에 발사 예정인 러시아의 탐사선 포보스 그룬트 (Phobos Grunt)에 몇몇 미생물과 함께 탑재될 예정이다. 이 탐사선은 화성의 위성 포보스에서 샘플을 채취해 지구에 돌아옴과 동시에, 화성으로의 기나긴 왕복여행이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다. 왕복에 필요한 기간은 약 3년, 인류에 앞서 화성을 왕복하는 아프리카깔따구는 그 여정에서 생명이 어떠한 영향을 받는가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게 될 예정이다.

 

화성의 위성 포보스. 직경이 13km의 작은 천체다

러시아의 화성 탐사선 포보스 그룬트 (Phobos Grunt)의 모습.
2009년 발사 예정이었지만 2011년으로 늦춰지게 되었다

이 밖에도 강한 산성 환경이나 수천 미터의 심해, 해저열수구 등 극한 환경에서 사는 생물들이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초기의 생명들이 우주 어딘가에서 날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으며 반대로 지구의 생명이 다른 행성으로 건너갈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바보같은 소리로 치부되었던 판스페르미아 이론이 한세기가 지난 지금 다시 주목받게 된 것이다.

현재 과학자들은 미생물이 우주를 이동할 가능성을 검증하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 계획은 씨앗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민들레를 본떠 ‘민들레 계획’이라고 명명했다. 에어로젤aerogel이라는 극히 저밀도의 소재로 된 쿠션을 국제 우주 정거장에 붙여서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먼지를 포착해, 생물의 흔적이 있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현제 계획대로 진행되면 에어로젤은 2012년 일본의 무인 보급선으로 우주 정거장으로 운반될 예정이다.


 에어로젤. 초경량에 단열효과도 우수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가벼운 고체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과연 지구 생명체의 기원은 외계 저 멀리에서 날아온 생명체일까? 생명체가 전혀 살 수 없는 불모의 공간으로 여겨졌던 우주가 사실은 생명의 씨앗으로 가득찬 공간이었던 것일까. 민들레 계획으로 과연 지구 생명체의 기원과 함께 우주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지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자. 

* 참고: 월간 뉴턴 2010. 4월호, 비상식적인 생물들

영진공 self_fish

“데이브레이커스”, 매트릭스는 아무나 하나

에단 호크가 오랜만에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섰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앳된 소년으로 출연했을 때에는 존재감이 그리 큰 편은 아니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당시에 함께 출연했던 모든 배우들 가운데 – 심지어 로빈 윌리엄스까지 포함해서 –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인상이 그리 강해보이지 않은 탓에 출연작들 대부분이 드라마 쪽이고, 그나마도 저예산 영화에 자주 출연하면서 이제는 ‘독립영화의 친구’쯤 되어 보이기도 합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초반부는 몇 편 안되는 에단 호크의 액션물 또는 SF 출연작들 중에서 특히 <가타카>(1997)를 떠올리게 하더군요. 미래 사회이긴 한데 어딘지 모르게 카프카의 느낌이 나는 그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10년이니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에 불과하건만 사람들이 중절모를 쓰고 다니질 않나 참 묘한 느낌을 전달해줍니다. 이것을 굳이 어색하다고 하기 힘든 것은 <데이브레이커스>의 세상이 뱀파이어들 – 굳이 부류를 지정하자면 <트와일라잇>의 착한 뱀파이어가 되겠네요 – 의 것으로 바뀌었다는 설정 덕분입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세상이 온통 좀비들로 넘쳐나가된 상황에서 시작하는 영화는 몇 편 있었지만 뱀파이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윌 스미스 주연의 < 나는 전설이다>(2007)는 변종 인류들로 창궐한 세상에서 홀로 살아남아 해독제를 찾고자 하는 주인공의 외로운 사투를 그린 작품이었는데 이 변종 인류들을 뱀파이어라기 보다는 역시 좀비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죠.

여기에 비하면 <데이브레이커스>의 뱀파이어들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트와일라잇>에 등장한 착한 – 또는 착하려고 노력하는 – 뱀파이어에 가까운 존재들입니다.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영생을 얻었지만 인간의 피를 먹어줘야 하는 관계로 새로운 인류 역사가 시작된지 10년 만에 전세계적인 식량난(?)이 닥쳐오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시급히 대체재를 만들어만 하는 상황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빈부격차로 인해 인간의 피를 섭취하지 못한 뱀파이어들이 서서히 변이를 일으켜 끔찍한 괴물 뱀파이어 – 서브사이더 – 로 바뀌게 된다는 점입니다.

<데이브레이커스>의 테마는 뱀파이어에서 다시 인간으로의 회복입니다. 우연히 그 과정을 겪게된 라이오넬(윌렘 데포)을 만난 에드워드(에단 호크)는 자신도 다시 인간이 되고자 기꺼이 실험에 뛰어듭니다. 그리고 완전히 망가져가는 뱀파이어 세상에서 인간으로의 복귀를 통한 구원의 희망을 전해주는 메시아의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중심 내러티브 보다 오히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마치 아우슈비츠에서의 유태인 학살을 재연하는 듯한 괴물 뱀파이어들의 화형식 장면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탐욕 추구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한 씨퀀스라고 하겠지만 어찌보면 마이클 & 피터 스피어리그 형제 감독이 독일 출신으로서의 자의식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좀비가 되었든 뱀파이어가 되었든, 너무 번성하면 수요 공급의 문제 때문에 다시 쇠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역설적이면서도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입니다. <28일 후…>(2002)의 속편으로 만들어진 <28주 후…>(2007)가 바로 이런 설정에서 시작하는 작품이었죠. 그러고 보면 <데이브레이커스>는 기존의 여러 공포물과 SF 영화들로부터 많은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재구성한 듯한 느낌이 역력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 의외로 전체적인 줄거리에 있어서는 <매트릭스>와 비슷합니다.

물론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작품을 내놓는 것은 아주 해내기 어렵고 관객 입장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경험이기 때문에 <데이브레이커스>와 같은 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신선한 재해석과 설득력 있는 연출을 보여주느냐가 될 뿐이지요.

주제도 좋고 배우들 연기도 좋고, 전반적인 연출도 그리 흠잡을 데가 없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훌륭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데이브레이커스>가 그닥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역시 뱀파이어라는 존재를 – 그로 인한 공포나 신비로움과 애절함을 – 별로 매력적이지 못하게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인류와 뱀파이어가 공생하는 상황을 그린 TV 시리즈 <트루 블러드>도 그래서 재미가 없었습니다. 좀비 세상은 뭐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서스펜스가 있어 좋고 그 자체로 풍자극이니까 괜찮습니다. 하지만 벰파이어 세상이란 건 일단 설정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데다가 그 비밀스러운 맛이 없어서 그야말로 김 빠진 콜라 같은 게 되는 거 아닐까요. <렛 미 인>(2008)과 < 트와일라잇>(2008)의 중요한 차이점 역시 바로 그 점이라 생각합니다.

영진공 신어지

슬픈 동화 “공기인형”



고레에다 히로카즈에게 바라는 바가 있었다. 더 과감하게 현실을 그려주기를.
<아무도 모른다>에서처럼 섬뜩한 신음소리가 심장을 타고 흐르더라도 한발 먼저 개인화되고 비극이 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그런 면에서 공기인형은 애초부터 나의 바램을 빗겨간다. 주인공부터가 존재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인형 이니까. 하지만 공기인형(섹스 돌)에게 마음(고코로)가 생긴다는 영화의 시작은 충분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영화에서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후에 일어날 비극을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다. 감독의 전작에 비추어 봐도 그렇다. 그는 헛되이 희망을 주지 않는다. 더구나 공기인형은 막 갖기 시작한 마음을 남용해 사랑도 하려 든다. 배꼽에 공기를 불어넣어 주지 않으면 타지 않는 쓰레기에 불과하다는 걸 알지만 설레어 한다. 머지않아 인형은 마음을 다칠 것이다.

영화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 세상을 하나 둘 알아가며 하늘, 물방울, 바다, 죽음, 나이 듦을 긍정하는 공기인형에게 파멸의 기운을 드리우니 말이다. 그건 마치 마음을 저버리라는 메시지 같기도 해서 말이다.

마음이 귀찮아서 널 택한건데 …
왜 마음을 가졌니 …
그냥 예전으로 돌아와 주면 안 되니. 인형이었던 그때로 말이야.

아프고 괴롭고 슬프고 징글징글한 것, 이 모든 게 지겨워서 마음을 주자 말자고 다짐해 본 적이 있다. 사랑마저도 그렇게 해보자 한 적이 있다. 상처받기 두려웠고 다치는 게 싫었다. 지금은 어떠냐하면 …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세상사는 데에 굳이 마음이 동원되지 않는 것같다.
외롭지 않냐고? … 그러게.. 공기인형은 마음을 동하게 하는 슬픈 동화다.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