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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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좋은 기술을 과학과 의약품에 낭비할 셈인가?!


확실히, 21세기에 기성세대가 보는 대중문화의 주적은 컴퓨터 게임이다. 거의 모든 청소년문제, 사회문제의 원흉으로 게임이 지목되더니 마침내 정부에서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게임이용 규제법을 통과시키기에 이르렀다. 다중사용자온라인게임(MMOG)에 국한된 조치라지만 만약 이 법이 시행된다면 또 하나의 세계 최초를 달성하게 된다.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는 과정엔 학부모 단체의 압력이나 게임업계의 막연한 대응도 한 몫을 했고, 실제 사회 현상도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많은 사건들에 게임이 이래저래 엮여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죄다 게임 탓이라고 하는 건 부당하다. 컴퓨터게임에는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오락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가치들이 담겨있다. 그게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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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갈켜줄께 …

첫째,
컴퓨터 게임은 가장 안전하면서도 가장 짜릿하고 경제적인 놀이다.

컴퓨터 게임처럼 안전한 놀이가 또 있던가? 물론 게임을 너무 오래하면 혈전이 혈관을 막아서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약간 높아진다. 하지만 그래봤자 여객기의 비즈니스좌석에 오래 앉아 있다가 같은 증상으로 죽을 확률보다 높지 않다.

컴퓨터 게임과 다른 놀이들을 비교해보라. 축구나 농구 같은 구기종목은 공에 맞아서 안경이 부러지거나(내가 두 번 그랬다), 팔꿈치에 맞아 입술을 꿰매거나(버락 오바마가 최근에 그랬다), 발이나 손 부상을 입거나(축구하다 다친 엄지발톱은 두 달째 퍼렇다), 심지어 밖으로 튀어나간 공으로 인해서 누군가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몇번 그런 사례가 보도된 적이 있다).

게다가 격렬한 운동 중에 심장이 멎는 경우도 가끔 있다. 자전거나 킥보드 같은 탈것들은 넘어져서 뼈가 부러지거나 교통사고로 죽을 가능성이 꽤 높다. 등산은? 2007년에만 등산 중 사망자가 112명, 부상자는 2923명 이었다. 10대와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사고사인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대개의 사고는 집 밖으로 기어나갔을 때 터진다.


사람잡는 스포츠, 등산 / 애들 잡는 도구, 킥보드


(컴퓨터 게임을 안하고) 농구를 하다가 입술이 찢어져 병원 가는 오바마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방안에 틀어박혀서 키보드나 게임패드만 두들긴다. 다칠 일이 없다. 그렇게 안전함에도 불구하고 컴퓨터게임은 무지무지 짜릿하다. 컴퓨터 게임이 아니라면 당신이 언제 루프기동을 하며 적 전투기와 공중전을 펼칠 기회가 있겠나? 브라질 빈민가를 뛰어다니며 총격전을 펼칠 일은? 던전을 탐험하며 거대한 몬스터와 혈투를 벌일 가능성은? 빈사상태에 빠진 동료를 구하고 장엄하게 목숨을 잃을 기회는? (그리고는 언제든 다시 부활할 기회는?) 모두 컴퓨터 게임에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일은 인류 역사상 최초다. 원래 짜릿함과 위험함은 동전의 양면이었다. 짜릿한 놀이는 그만큼 위험해야 했고, 위험하지 않으면 짜릿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좋은 것만 쏙 빼다가 당신 앞에 대령한다. 게다가 비용도 가장 적게 든다. 컴퓨터게임에는 축구화도, 공도, 운동복도 필요 없다. 그저 듀얼코어 이상의 PC와 키보드와 마우스와 고속통신망 만 있으면 된다.





현실? 바보들이나 거기서 놀라고 그래!!

둘째,
컴퓨터 게임은 지혜를 알려준다.

게임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바보가 하면 더 바보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인류는 언제나 놀이를 통해서 학습을 시켜왔다. 학습의 기본은 반복 숙달이고 시행착오다.

“Practice makes perfect!” 라는 말이 괜히 나온게 아니다. 게임 속에서는 그 두 가지가 일상이다. <갤러그>를 생각해보라. 당신은 똥파리들의 이동경로와 그것들이 뿌리는 폭탄의 궤적을 습득하기 위해서 수십, 수백번을 반복 플레이했을 것이다. 지루한 반복 끝에 마침내 당신 머릿속에는 <갤러그>의 구조가 그대로 들어서고 당신은 그 게임을 마스터한다.

사실 노인들의 지혜도 반복에서 나왔다. 농경시대에는 단지 춘하추동의 순환을 한번 더 경험했다는 것이 바로 지혜의 근원이었다. 그런데 실생활에서는 반복 경험의 기회에 한계가 있다. 춘하추동의 반복경험도 많아봤자 100회 이내다. 일부 카사노바를 제외하고는 연애 경험이 100회를 넘기진 않는다. 하지만 컴퓨터게임은 거의 무제한으로 반복이 가능하다. 그것도 안전하게.





가상역사게임, 문명

미군은 요즘 컴퓨터 게임을 신병훈련에 활용한다. 가장 싸고 안전하게 실전에 필요한 훈련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첨단장비 개발업체에서는 게임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장비의 설계를 보완한다. 교육학자들은 인간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주변 환경을 탐색하고 실험해볼 기회가 많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럴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제 게임 속에서는 가능하다. 게다가 게임 속 세계는 갈수록 세상의 진리를 담아간다.

폭력성으로 유명한 ‘GTA (Grand Theft Auto)’를 해본 나는 그 속에 담긴 범죄사회학적 고찰의 깊이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 게임은 한 인간이 어떻게 범죄자가 되어갈 수밖에 없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겠더라.

최근 타임머신 게임으로 유명한 <문명>은 인류 문명 발전의 기본 원리를 담고 있다. 왜 독재로는 어느 수준이상 발전할 수 없는지, 왜 교육을 제대로 시키면 시민들이 반항적이 되는지를 깨닫는데 이만한 교보재가 더 있을까.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대통령이 어릴 적에 <심시티>나 <문명>을 좀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마, 가지고 있다.


미군의 모병게임, 아메리카’s 아미



범죄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GTA 시리즈

셋째,
컴퓨터 게임은 사회생활의 훈련장이다.

온라인 게임들을 생각해보라. <스타크래프트>를 잘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마우스 클릭과 단축키를 쓰는 기술 뿐일까? 아니다. 모든 멀티플레이 게임의 기본은 전략적 사고, 상대방의 수 읽기다.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지를 예측하고 그보다 한발 앞서는 것이다. 예측과 대응이 정확할수록 당신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수 읽기를 하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조망수용(perspective taking)’이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단 말이다. 그리고 이 입장 바꿔 생각하기는 모든 사회생활의 근간이다. 매너나 규칙의 가치도 멀티플레이 게임을 해봐야 이해한다. 한 놈이 반칙을 하면 게임 전체가 어그러지니까. 스포츠맨쉽이 그래서 나오는 거다. “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속담도 그렇다. 여기서 말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공부다. 그리고 ‘놀이’는 여럿이 같이 노는 멀티플레이 게임이다.


디지털 세대의 바둑이자 체스, 스타크래프트

고문관이 왜 탄생하나? 멀티플레이 게임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걸 안했으니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치가 없고, 앞뒤가 꽉 막히게 되는 거다. 예전에는 동네 골목이나 공터에서 멀티플레이 게임을 했지만 지금 아이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그것을 배운다. 그러면서 사회생활에 필요한 원칙들을 배운다.

사실 애들이 보고 배울까 무서운 세상은 게임이 아니라 게임 밖의 우리 사회다. 나는 국회에서 이종격투기를 벌이는 국회의원이나, 수 조 원을 탈세하고 사면받아 나온 주제에 국민들에게 뭘 고쳐야 한다고 주절대는 인간을 보느니 차라리 게임을 하는 게 더 낫다는 입장이다. 컴퓨터 게임 속에서는 최소한 모두에게 공평하게 규칙이 적용되니까.

넷째,
컴퓨터 게임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최첨단 IT 기술이다.

컴퓨터의 발전은 이미 불필요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 글을 쓰는 워드프로세서는 셀러론 컴퓨터에서도 충분히 작동한다. 파워포인트도 웹서핑도 그 정도로 충분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듀얼코어나 쿼드코어 PC를 원한다. 최첨단 게임을 하기 위해서이다. 컴퓨터 게임이야말로 일반인이 접할 수 있는 상용화된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다.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컴퓨터 게임을 잘 할 수 있다면, 그보다 수준 낮은 다른 기술은 더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이니까. 초딩이나 중딩들이 어떻게 컴퓨터를 그리도 잘 쓰는지 아직도 모르시겠나? 걔네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배우고, 게임을 통해서 IT를 마스터한다. 시키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배우는 거의 유일한 기술이 바로 컴퓨터와 인터넷이다.

사실 이 사이버 공간의 근본 정신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 구현된다. 반면에 어른들은 게임을 모르니 컴퓨터와 인터넷이 어렵기만 한거다. 기껏해야 XX양 비디오를 보기 위해서 인터넷에 달려드는 수준의 인간들이 게임을 어찌 이해하겠나.


다시 한번, 첨단기술을 게임에 쓰지않으면 어디에 쓰겠나?

마지막으로,
세상은 점점 컴퓨터 게임과 구분할 수 없게 되어간다.

스마트폰의 증강현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어디까지가 사이버공간이고 어디까지가 현실공간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게임도 마찬가지다. 임요환을 보라. 게임속의 황제는 실제로도 영웅이 된다. 게임을 통해서 배운 원리는 실제로도 적용가능하다. 그러니 게임만 하다가 실생활에 적응 못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갈수록 무의미해진다.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보라. 주인공은 실생활에서는 젬병이다. 이 친구는 자기 애인을 마치 게임의 스탯찍듯 대하다가 찌질이 취급만 당한다. 그런데 그 찌질이가 세계최대의 SNS를 만들어서 억만장자가 된다. 그가 성공한 비결은 실제 세상을 게임처럼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은 수량화할 수 있으며 몇몇 조건을 바꿔서 조작이 가능하다. 이런 게임의 논리를 대인관계에 적용하기, SNS의 기본이 그것 아닌가.


현실세계는 게임과 다르다고? 그럼 난 뭐야?

요약하면,
컴퓨터 게임은 지금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기술과 예술과 지식의 종합체이다.

장담하건대, 앞으로 5년 내에 자기 자녀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해서 걱정이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아서 걱정인 부모가 등장할 거다. 게임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질 것이고, 세상은 점점 게임을 닮아가게 될 테니까. 게임을 안한다는 건 미래에 적응하기를 포기하는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게임만 잘하면 된다는 건 아니다. 게임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에겐 게임 말고는 다른 중요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삶의 균형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중요할 것이고, 뭐든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진리도 변함없을 것이다.

올해에는 새 컴퓨터를 구입해서 <문명>과 <콜옵: 블랙옵스>를 최고해상도로 즐길 꿈에 부푼 인간이 하는 말이니 분명히 편파적인 해석이 담겨있겠으나, 적어도 모든 주장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아주시기 바란다.

영진공 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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