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키친”, 대중적인 화법으로 풀어낸 작가적 개성


헤아려보니 굉장히 오랜만에 본 유럽영화가 됐다. 작년 11월 말에 본 <더 콘서트>(2009) 이후 거의 넉 달 만인 것 같다. 그나마 전작들을 봐왔던 파티 아킨 감독의 작품이 아니었으면 굳이 볼 생각도 못했을 거란 생각을 한다. 전반적으로 많은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이 못되는 탓도 있긴 하지만 그런 와중에 한국 영화와 영미권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포함한 일본 영화의 관람 빈도가 높고 그외 국가에서 다른 언어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갈수록 만나기가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종종 예술 영화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유럽 영화 – 이역만리 떨어진 대한민국에서 정식 개봉까지 하는 유럽계 영화들이란 대체로 완성도가 높고 수상 이력도 화려한 편이긴 하다 – 라고 해서 반드시 챙겨봐야 할 의무감을 가질 필요까지야 없는 일이겠지만 영화 편식증에 대한 습관적인 경계심을 오래 간직했던 이력 때문에 이렇게 오랜 기간 영화 감상의 지역 안배(?)가 잘 되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괜한 미안함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나의 지난 4개월 간의 유럽 영화 무감상 이력에 종지부를 찍어준 <소울 키친>은 <미치고 싶을 때>(2004)와 <천국의 가장자리>(2007)에 이어 세번째로 국내 개봉된 파티 아킨 감독의 작품 –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적으로는 6편째 장편 극영화 – 이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미치고 싶을 때>가 베를린에서 황금곰상을, 그리고 <천국의 가장자리>가 깐느에서 각본상을 받았었던 이력을 감안하면, 베니스에서 <소울 키친>의 수상은 파티 아킨 감독의 최근 작품들이 유럽이 자랑하는 3대 영화제를 모두 인정받는, 트리플 크라운의 완성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실제 유럽 내에서 파티 아킨 감독의 존재감이 어느 정도까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 이와이 슈운지를 모르는 일본인이 많았듯이 파티 아킨을 모르는 유럽인들이 아는 사람들 보다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 유럽 영화계에서 고른 지지와 사랑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재능이라는 점 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울 키친>은 감독의 고향인 함부르크를 배경으로, 요리사이자 레스토랑의 사장이기도 한 지노스(아담 부스코스)의 청춘 스케치와도 같은 작품이다. 터키의 정치 현실까지 건드리고 나섰던 전작 <천국의 가장자리>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소울 키친>은 좀 더 가벼운 청춘 코미디 영화의 포맷을 취했으며 주인공도 터키가 아닌 그리스계 독일인으로 설정되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와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등의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 대한 오마쥬인 것인지, 주인공의 이름이 지노스 카잔차키스라서 괜한 친근감을 자극하기도 한다. 지노스 역을 맡은 아담 보스도코스는 파티 아킨 감독과 같은 함부르크 출신이기도 한데, 북부 독일의 을씨년스러운 하늘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소울 키친>은 공동 각본가로서 함께 이름을 올리고 있는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듯 싶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여느 청춘 코미디물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생각이다. 어떤 분위기의 영화로 연출할 것인가는 제작자와 감독이 상의해서 결정할 일이긴 하지만 주인공 지노스(아담 보스도코스)가 엄청 무거운 그리스산 식기세척기를 억지로 옮기려다가 허리병을 얻게 되면서 영화는 전반적으로 코미디로 보일 수 밖에 없는 장면들로 가득 차기 시작한다.

부동산 업자가 된 동창 녀석이 호시탐탐 레스토랑을 헐값에 넘겨받으려고 음모를 꾸미는 와중에도 지노스는 중국으로 떠난 애인 곁으로 가고 싶어 레스토랑을 누군가에게 맡기려고 하지만 – 이 레스토랑을 어떻게 해서 소유하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민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과 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자기 뜻대로 풀리는 일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일은 풀려가고 또 새로운 사랑도 찾게 된다는 얘기다.

전반적으로 가벼운 톤을 유지하면서 흔히 하는 말로 ‘골 때리는’ 상황 전개를 무기로 삼고 있는 코미디이지만 파티 아킨 감독의 흡인력 좋은 연출 솜씨를 재확인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는 작품이었다.

수감 중인 지노스의 형 일리아스 역으로 국내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모리츠 블라이브트로이가 출연하고 <미치고 싶을 때>의 비롤 위넬이 솜씨는 엄청 좋은데 성격이 괴팍한 요리사 샤인으로 출연하면서 반가움을 더해준다. 지노스가 찾은 새로운 사랑 안나 역으로 출연한 배우는 헝가리 출신의 도르카 그릴루스인데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해나가는 과정이 조금 더 나와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배우였던 것 같다.

파티 아킨 감독의 영화가 전유럽에서 크게 환영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근 이 만큼 독특한 자기 색깔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젊은 유럽 출신의 감독들이 그리 많지가 않기 때문이다.

유럽의 영화 시장이 어떻게 되어가는지에 대해서까지 걱정해줄 처지는 못되지만 아무쪼록 영미권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도 경쟁력 있는 작품들이 좀 더 많이 나와주었으면 하는 바램 만큼은 이렇게 언급을 해두고 싶다.

파티 아킨 감독의 영화도 뭐 아주 대중적인 타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정도의 재미와 작품성을 고루 갖춘 유럽계 영화를 최근에는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게 된 점은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영진공 신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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