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팬더], 협(俠)이 없어서 재밌고 좋았다능 … ^^

 


<쿵푸팬더> … 어릴 때 부터 길러진 무협언니가 이 영화를 마다할 수는 없었답니다.

목소리 연기는 논외로 할께요. 아주 훌륭했으니깐요. 특히 ‘귀여운 얼굴’의 마스터에 후까시 잡는 더스틴 호프만 목소리. 죽음이었어요. 잭 블랙 팬더목소리 완전 듁음이었고, 안젤리나 졸리나 바이퍼 맡은 루시 리우는 분량이 적어서 아쉬웠죠. 몽키마스터 목소리가 성룡이라더니 이건 좀 속은 기분.

일단 저는 ‘팬’더의 ‘팬’심이 맘에 들었어요. 방안에 액션 피규어 있고, 포스터 덕지덕지 붙어있고. 딱 성룡포스터 붙어 있는 우리네 중고생때 방을 보는 것 같고. 국수 꿈 꾸라는 팬더 아버님 말씀은 용꿈 꾸고 학력고사(혹은 수능)잘 보라는 우리네 아버지 말씀 닮았고, 내려와서 국수 서빙하라는데 방에서 되도 않는 무술흉내 내고 있는 것도 넘흐 좋았고. 팬더의 수련장면 실망하지 않았어요.

예고편에서 만두먹는 걸로 훈련하는 장면에서 부터 그 생각이 들었는데요. 예전 성룡이 아주 어린시절 작품보면, 취권이었나? –;;; 그 무공 센 할아버지하고 나와서 할아버지는 대충대충하는데 성룡은 완전 용쓰고. 물동이도 나르고, 그러면서 훈련하는 그런 장면들 있잖아요. 암튼 딱 그거 생각이 들었는데 정말 비슷했어요. 넘흐 귀엽잖아요.

무는 있되, 협은 없어서 진짜~ 좋았어요. 저는 무협영화 좋아하는데요. 무협영화에서 별로 안 좋아하는 대목이 두 대목이 있어요. 첫번째가 ‘넘흐나 범접할 수 없이 알흠다흔 여힌네에 대한 무우사~의 순정’ 저 이런거 나오는 거 정말 싫어해요. 여자애들 좋아하는 천장지구 같은 것도 정말 싫어하고.

암튼, 두번째가 좀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바로 ‘협(俠)’이에요. 아놔… 제발 그 ‘의협심’, ‘형제애’, ‘복수심’, ‘가문을 일으키겠다는 굳은 결의’ 이따위 것 없으면 안되는 겁니까? 쿵푸팬더가 보통 무협지의 줄거리를 그대로 답습하면서 아주 빠져있는 대목이 있으니, 그건 그가 무사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俠”이 전혀 없었다는 거에요. 아시죠 보통 무협지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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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호의 명문가가 멸문지화를 당한다.
2) 명문가의 먼 친척, 혹은 그 집의 충실한 종이 어찌 어찌 하여 어린 아이 하나를 살려낸다. 3) 어린 아이는 자신의 신분을 모른 채 자라난다.
4) 어느 날 자신의 정체성을 알게 되고 고뇌한다.
5) 산으로 들어가 우연한 기회에 스승을 만나 고수가 된다.
6) 원수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원수를 물리치고,
7) 그 과정에서 원수의 사연을 알게 된다.
8) 모든 것이 무상함을 깨닫고 초야에 묻힌다. or 강호를 평정하고, 정의가 찾아온다.

<경고!!!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다수 출몰하오니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근데 팬더 얘를 보면,
1) 강호의 명문가가 멸문지화를 당한다… 따위는 없다.
2) 팬더 아빠가 오리인게 이상하기는 하지만, 암튼 데려다 길렀건 어쨌건 간에 충실한 종이 길렀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3) 팬더는 액션피겨를 보며 무사가 되는 꿈을 꾸며 자라난다.
4) 어느날 자신의 정체성을 알고 열라 신나한다(!!!)
5) 스승이 뻗대다가 자기를 받아줘서, 먹으면서 신나게 훈련하다가 고수가 된다.
6) 얼떨결에 원수인지 뭔지 알수없지만, 암튼 타이렁을 만나 물리친다.
7) 주민들을 구한다.
8) 무상하긴 뭘. 더 신나한다.


팬더 얘는 애초 부터 뭘 바라고 무공을 익힌 애가 아니라서, 용의 문서에도 관심이 없었고. 타이렁이 마을을 망치고 간 과거가 있지만 그렇다고 ‘정의를 되찾겠다’는 멋진 모토도 없구요. 중간에 마을사람들이 대피하고 이런 소동이 있긴 했지만, 팬더가 무슨 꼭 마을 사람을 구하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좋은 스승과 좋은 사람들을 보호하겠다는 마음 30%에, 잘 배운 무공 한번 머찌게 써보자 하는 순수한 후까시 70% 정도만 있었던 듯 …

얘는 원래부터 적개심으로 무공을 키운 것도 아니거든요. 그래서 나중에 다 이기고 나서도 무상하니 어쩌니 하는 것 없고, 그냥 더욱 신나는 무술세상이 된 것 같아요. 저 이거 정말 좋아요. 류승환 감독 말 마따나 저는 액션 그러니까 사람의 움직임이 주는 쾌감 자체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거따대고 뭔 꼴 같잖은 복수심, 형제애, 문파를 일으키겠다는 각오, 고독함. 이런 거 같다 붙이는 거 심히… 걸리적 거렸어요. 그래서 아마 제가 성룡을 특히나 좋아하는 듯. 늘 즐겁잖아요. 위트있고. 성룡이 되도 없는 후까시 부리지 않고 온 몸을 던지는 게. 그게 정말 맘에 들었었죠.


어쩌면 영화가 말하는 ‘순리’란, ‘운명’이란 ‘즐길 줄 아는 평범한 사람이 해 낸다.’ 라는 것이었는지 모르겠어요. 시푸가, 그리고 furious 5가 타이렁을 막을 수 없었던 건, 바로 그들이 Furious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 다섯은 순수하게 武를 즐기는 게 아니라, 사실 예전에 타이렁과 동료였던 시기에는 타이렁을 이기고 용의 전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타이렁이 간 후에는 타이렁을 물리치겠다는 생각으로 훈련을 해왔다는 거에요. 수동적(상대를 막겠다)목적론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훈련하는 사람들은 당근 더 큰 목표를 가진 적극적 대상 그 자체(막아야 할 대상)를 막을 수가 없지요.

‘막긴 뭘 막냐’ 이게 대사부 거북이 할아버지가 했던 예언인 것 같아요. 평범한 팬더 포가 그야 말로 ‘사심이 없어서’ 드래곤 워리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국수에 특별재료도 안들어 간다. 용의 문서(그러니까 궁극의 필살기)는 빈칸이다. 이런거. 다 평범한 사람이 순수하게 할 때 뭐든 할 수 있다는 게 순리다. 이런거 아닌가요?


암튼요!!! 협이 없어서 좋다구요!!!

영진공 라이

<스트레인저 댄 픽션>, 죽이느냐 살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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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습니다)

DVD로 감상한지가 벌써 2주 전인데 개봉작 쫓아다니고 다른 일에 치여서 많이 늦어졌습니다. 그 사이에 봤던 영화들 가운데 하나가 ‘넘지 말았으면 하는 선을 넘어가버린’ <추격자>였었고 그랬던 덕에 이 영화의 내용에 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일종의 메타-픽션 드라마입니다. 국세청 직원인 주인공 해롤드(윌 패럴)와 그의 일상과 운명을 결정하는 소설가 카렌(엠마 톰슨)이 등장하고 마침내 두 인물이 직접 만나기까지 하죠. 카렌은 원래 자기 작품 속 주인공을 매번 죽는 것으로 처리하는 ‘비극’ 전문 작가인데 10년 만에 탈고하게 된 새 작품의 주인공 해롤드와의 만남을 통해 결국 소설의 결말을 바꾸게 됩니다. 자기가 창조해낸 허구 속 인물이 만약 실제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작가로서의 성취를 위해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죽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그냥 넘기지 못했던 것이죠. 그리하여 예술 작품이 추구하는 목표가 독자나 관객이 되는 사람이 아닌 작품 자체가 되어버림으로서 예술의 참된 가치를 잊어버리게 되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는 작품이 <스트레인저 댄 픽션>입니다. 해롤드의 상황을 도와주기 위해 개입했던 영문학 교수 쥴스(더스틴 호프먼)가 카렌의 초고를 읽고 난 후, 이 위대한 작품의 완성을 위해 해롤드가 죽어야만 한다고 냉정하게 선언하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추격자>의 미진(서영희)도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고 눈을 부라렸을 것만 같습니다. 작품 속의 인물이 허구가 아닌 실제 살아있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목적성을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 좀 무섭기까지 합니다. 다행히 작가인 카렌은 평소의 괴팍한 성격과 달리 그렇게까지 잔인한 인물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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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인저 댄 픽션>의 중심 메시지는 사실 평범합니다. 내 인생의 전지적 작가는 곧 나 자신이니 내 인생의 일상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며 잘 살아보자는 얘기죠. 이 한 편의 시나리오로 헐리웃에서 가장 각광받는 작가로 떠오른 이는 최근 <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2007)으로 감독 데뷔한 자크 헬름입니다. 첫 장편 시나리오로 <존 말코비치 되기>(1999)를 썼던 찰리 카우프먼의 독창성과 식견에 버금간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군요. 하지만 너무 일찍 감독 겸업을 선언한 것은 아니었는지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1) 좋은 시나리오도 결국 좋은 연출자를 만나야 멋진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스트레인저 댄 픽션>이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인저 댄 픽션>은 마크 포스터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꽤 재미있고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2) 아주 기발하다고 할 수 있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지만 어쩌면 상당히 까다로울 수 있는 복잡한 내러티브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해주는 건 통제력 있는 연출의 힘입니다. 윌 패럴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코미디언이고 주인공 해롤드를 연기하기에 부족함이 없긴 했지만 다른 배우들이 같은 연기를 했더라도 별 무리가 없었으리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3) 더스틴 호프먼, 매기 길렌할, 퀸 라피타 등이 출연하고 있는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소설가 카렌 아이펠 역을 맡은 엠마 톰슨입니다. 엠마 톰슨이라고 하면 아직도 케네스 브래너와의 90년대 영화들이 주로 생각나는 편인데, 검은 옷을 즐겨입는 꼴초 여류소설가의 괴팍하고도 엉뚱한 성격을 상당히 잘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원래 코미디언인 윌 패럴이 정극 연기에 도전하는 영화에서 발견한 엠마 톰슨의 코믹한 연기는 그야말로 각별한 즐거움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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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

1) 전업 시나리오 작가로서 일반 관객들까지 그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던 찰리 카우프먼도 드디어 첫 감독 작품을 내놓기 위해 현재 후반 작업 중이시로군요. 필립 시모어 호프먼 주연의 <Synecdoche, New York>가 금년 내로 개봉될 예정입니다.

2) 마크 포스터의 최근작은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연을 쫓는 아이>(2007)인데 3월 13일로 국내 개봉일이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는 22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Quantum of Solace>의 메가폰을 잡고 한창 촬영 중이시로군요.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에 마크 포스터의 연출이라고 하니 정말 기대해볼만 한 작품이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3) 이렇게 얘기하면 영화의 흥행 실패는 윌 패럴의 미스 캐스팅 때문이란 소리가 되는 건가요? 짐 캐리의 정극 연기가 돋보였던 <이터널 선샤인>(2004)의 성공 덕분에 가능했던 캐스팅이 아니었냐는 생각도 듭니다. 노교수로 출연하고 있는 더스틴 호프먼이 몇 년만 젊었어도 해롤드 역에 상당히 잘 맞았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데뷔작, <졸업>을 다시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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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졸업생'(발음은 '그래듀잇')이다
미국의 6, 70년대 청년들 모두가 섹스, 마약, 로큰롤에 탐닉한 건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나 어느 그룹에나 너드 범생은 한둘 씩 꼭 있기 마련이고 이들이 언제나 충실하게 기성세대의 가치를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나만 해도 너드였던 학창시절 속으로는 반항심이 드글거렸으며 그 결과 지금 이 모양으로 살고 있으니까. 하여간, 그럼 그 당시 겉으로는 아주 충실하게 부모 말 잘 듣는 생활을 했던 아이들은 실제로 어떤 생각과 어떤 고민을 하며 살았을까. 이게 궁금하다면 <졸업>을 보면 될 것이다.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뒤부터 벤저민의 고난은 시작된다. 고등학교 땐 대학이, 대학에 가서는 졸업이 목적이었지만 대학을 졸업한 지금 그에겐 마땅히 하고픈 일도 없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다. 그렇다고 부모가 요구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마뜩치 않다. 그에게 처음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은 로빈슨 부인의 유혹에 의해서며, 섹스, 마약, 로큰롤의 시대이던 당시에 대학을 졸업하고도 버진이었던 그는 로빈슨 부인의 유혹을 받고 결국 매일 밤마실을 나가게 되면서 인생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드는데, 문제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자발적 선택’이라곤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거다. 어리버리하고 멍한 벤저민의 영화 초반 모습은 충분히 코믹하며, 더스틴 호프먼이 새삼 코미디 배우로서 얼마나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지 되새기게 된다. 이 영화는 더스틴의 출세작이기도 하지만 첫 주연작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모든 일에 어수룩하고 어리버리하던 벤저민이 비로소 사람 꼴이 돼가는 건 일레인을 만나면서다. 자신에게 성의 신비로운 세계를 처음 알려준 ‘어른 세대’인 로빈슨의 말을 거역하면서까지 일레인을 만나고, 일레인이 다니던 학교 근처로 이사가 그녀를 뒤쫓고, 결혼식까지 깽판놓게 되는 건 모두 벤저민 스스로의 선택과 결단, 그리고 행동에 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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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은 실제론 6살 차이


여기엔 꽤 재미있는 해석 가능성’들’이 있다. 일단 그의 세계를 열어준 것이 모두 여성이고, 어머니 또래의 여성을 배반하면서 자기 또래의 여성을 선택하는 것을 외디푸스 컴플렉스의 변형으로 해석해도 재미있을 것이며, 벤저민의 반항과 선택에서 적으로 설정되는 것이 자신의 부모, 특히 아버지와 로빈슨 씨가 아닌 로빈슨 ‘부인’으로 설정된 것에서도, 당시의 시대가 가지고 있던, 여성주의 관점에선 ‘한계’로 볼 수 있는 지점들(즉 아버지에게 반항 못하니 어머니 혹은 유사-어머니한테 반항하는) 혹은 이것을 오히려 ‘한계’라기보다 또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지점들(가부장제는 성인/기득권 계층의 ‘여성’의 도움 없이는 완성이 불가능하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대학을 졸업한 뒤에서야 처음 성관계를 하고 자신의 선택을 하는 벤저민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점차 사회화가 늦어지면서 성인이 되는 시기가 늦어지는 현상, 즉 키덜트가 등장하게 되는 현상의 시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의 시스템이 지극히 폭력적이며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거기에 저항할 수 없기에 무력감을 느끼며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조건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그 본질을 드디어 뻔뻔하게 까발리고도 그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들이 완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해 개인은, 청년들은 분열증을 겪으며 결국 어른이 되기를 스스로 멈추거나 거부하고, 혹은 자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더스틴 호프먼이 70년대를 대표하는 ‘청춘스타’이자 아이돌로만 머물지 않는 진정한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이러한 청년상과 사회상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배우였기 때문일 것이다. (참고로 <졸업>은 67년도작이다.) 그리고 그 계기는 바로 <졸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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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어찌나 아름다우신 옵퐈의 옆 모습이신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일레인과 버스를 잡아타고서 뒷자리에 앉은 벤저민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며 많은 평론가들은 그간 결코 밝을 수 없는 미래, 해피엔딩이지만 결코 해피하지 않는 엔딩 방식에 대해 말하곤 했다. 나는 ‘어느 순간 굳는 표정’ 보다는, 일레인과 벤저민이 서로를 바라보는 타이밍이 계속해서 어긋난다는 사실이 더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실 ‘표정이 어떻게 굳나’ 아무리 지켜봐도, 표정이 확 굳어버리는 건 벤저민보다는 일레인 쪽이더라는. 그리고, 이건 지극히 당연하지 않겠는가. 당시는 여성의 운명이 여전히 배우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오히려 결단은, 비록 벤저민의 입장에서 ‘상대’이자 ‘타자’가 되었기에 선택의 대상이 되긴 했으나, 그 선택을 받아들인 일레인의 결단이 더 크다. 내가 오히려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버스 뒷좌석에 막 앉아 마주 보고 미소지었던 이 두 사람이, 얼굴을 돌린 후에는 상대를 바라보는 타이밍이 번번이 서로 어긋나서 둘이 다시는 결코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분명히 벤저민은 그곳에 자기 차를 몰고 왔는데, 왜 떠날 때엔 버스를 타고 떠나지? 벤, 차는 어쨌수?) 나는 이 엔딩을, 결코 ‘그럼에도 밝지 않은, 언해피 엔딩’으로 보고 싶지가 않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협력하여 이루어 가는 관계라는 걸, 그렇기에 서로 마주보는 것도 사랑이지만 함께 나란히 같은 방향을 보는 것도 사랑이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으로 보고 싶다. (아, 나이가 드니 더럽게 해피엔딩 좋아하게 되는구나. 클클)

영진공 노바리


ps. 로빈슨 마님의 그 능란한 ‘작업 기술’은 본받아 마땅한 교본감이다. 권위에 꼼짝 못하는 아이를 잘도 얼르다가 호통치다가 한다. 만세!! (이 영화 찍을 당시 앤 밴크로프트는 더스틴 호프만보다 불과 6살 연상이었다.)


ps2. 마이크 니콜스는 원래 연극감독이었다. 이 영화를 자세히 보면, 세트 안에서 배우들의 동선과 카메라의 위치 움직임이 확실히 연극적인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마이크 니콜스는 연극이 아닌 영화에서 카메라의 앵글이 창출해내는 특별한 효과도 알고 있었고 이를 적절히 써먹고자 했다. “로빈슨 마님 다리에 갇힌 벤저민 샷”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샷 중 하나다.


ps3. 역시 ‘신인감독’ 마이클 니콜스는 젊구나.


ps4. 이 영화는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아메리칸 뉴 시네마 특별전과 시네바캉스에서 상영되었습니다. 제가 본 날은 7월 21일 토요일 오후 다섯시 반이었군요. 일하다가 그대로 뛰어나가 영화보고는 다시 들어와 일을 했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