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난감 기업의 조건, “폭소 속에도 교훈은 있다.”

주변의 서평이 하도 좋아서 사본 책이다.

이 책, 확실히 재미있다. 잘 나가던 기업들이 멋지게 몰락한 사례를 열거하며 후련하게 까는 맛은 일품이다. 하지만 재미와 사실은 좀 별개의 문제다. 이를테면 여기서 언급한 ‘오즈본 효과 (주 1)‘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게리 킬달에 관한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주 2).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선 되도록 좋은 얘기만 쓰고 있는데, 마이크로소프트가 애플 협력사였던 Canyon Company에서 제공받은 애플 퀵타임 코드를 이용해 Video for Windows를 개발했다는 얘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이건 MS의 반독점 재판의 이슈 중 하나였다). 인터넷 거품기업 중 하나로 언급된 아마존에 관해선, 글쎄, 지금 아마존이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를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아무튼간에 이거, 첫장부터 ‘초우량 기업의 조건’이 데이터를 조작했다면서 신랄하게 까댄 사람이 할 짓은 아니잖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류의 책을 쓰다 보면 어떨 때는 주관이 개입할수도 있고, 어떨 때는 잘 다듬어진 데이터를 인용할 수도 있다. 어차피 읽는 사람 입장에선 상관없는 일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사 보는 주된 목적은 잘 나가던 애덜이 보기좋게 망해 자빠지는 이야기를 보면서 열광하기 위해서다! 한 기업의 몰락을 보면서 비극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자극적인 폭소를 터뜨리기 위해서다!

그러려면 구라도 좀 치고, 과장도 할 수 있는 거지, 뭐…… 요컨대 여기 언급한 사례들이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지, 그리고 저자가 과연 기업들의 실패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한 것인지 여부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에 가깝다. 덤으로 책 말미의 결론도 무척이나 밋밋하다. 이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소니 침몰]처럼 진지하게 회사를 걱정하며 써내린 것도 아니고, 뭔가 교훈을 줘야 하는 도덕책도 아니고, 지식을 선사해 줘야 하는 경제학 서적도 아니니까.

그러니 이 책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법을 배울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편이 좋다. 그건 과도한 기대다. 그보다는 갑갑하고 지루한 출퇴근 시간을 낄낄대며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읽을거리로써의 가치를 추구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18,000원이란 값어치는 하고도 남는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진공 DJ Han

[주 1] 80년대 오즈본 컴퓨터는 세계 최초로 본격적인 휴대용 컴퓨터를 개발해 엄청난 급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업그레이드된 제품이 나올 거란 사실을 너무 일찍 발표하는 바람에 현재 제품이 팔리지 않게 되어 매출이 극적으로 급감, 결국 회사가 도산하게 됐다는 데서 ‘오즈본 효과’란 말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2005년, 80년대 당시 오즈본에서 근무했던 마이크 맥카시는 오즈본 컴퓨터의 몰락 원인이 경쟁사인 케이프로의 신제품에게 가격 및 성능에서 철저하게 밀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밝혔다. 여기 대해선 영문 위키피디아의 글 (http://en.wikipedia.org/wiki/Osborne_effect )을 참고해 보기 바란다.

물론 오즈본 효과란 말은 일반명사화되었기 때문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겠지만.

[주 2] 게리 킬달이 비행기를 타러 가느라 IBM협상단을 화나게 해서 협상이 파토났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는 오후에 돌아와 게리 킬달이 직접 협상을 진행했지만 이런저런이유로 결렬됐을 뿐이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IBM에게 제공한 MS-DOS는 CP/M의 특허권을 침해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게리 킬달의 고문변호사가 소프트웨어의 지적재산권 침해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을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조언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사실은 이거야말로 정말 엄청난 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