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라이프”, 차라리 좀비 영화를 찍던가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애프터 라이프>는 제목 그대로 삶이 끝난 이후, 즉 사후 세계에 관한 영화다. 그 중에서도 교통 사고로 사망한 젊은 여성 애나(크리스티나 리치)가 시체실에 안치되어 자신의 장례식을 준비하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다.

담당 장의사 엘리엇(리암 니슨)이 죽은 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분에 애나는 자신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약혼자 폴(저스틴 롱)에게 돌아가게 해달라며 – 만약 장의사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는 전제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뜬금없는 좀비물이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다 – 줄기차게 생떼를 쓸 수가 있게 된다.

의사가 사망진단서까지 발부한 상황에서도 애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을 거부하고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데, 그러다 어느 한 순간 “자신이 죽게 된 이유가 그 만큼 삶에 대해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입관이 되어 무덤 속으로 들어간 순간까지도 애나의 체념과 삶에 대한 본능적인 집착이 엇갈리면서 혹시 애나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장의사의 손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 그렇게 혼란을 주는 것이 연출 의도였던 것 같긴 하다 –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관객이 기대하는 스릴러적인 반전 따위는 애초에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다.

전반적으로 60분 안팎의 중편 정도로나 만들어졌으면 적당하지 않았겠냐는 생각이 드는데 어차피 대중적인 요소를 충분히 갖추기 힘든 설정의 작품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그네츠카 보토위츠-보슬루 감독으로서는 첫번째 장편 연출의 기회를 마다할 이유는 없었겠지만 그 결과는 빈곤한 스토리텔링과 연출 능력을 드러내는 일에 불과했다고 생각된다.

삶과 죽음에 관한 성찰을 대부분의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형상화해내는 작업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긴 하지만 애나의 뒤를 따라 폴 역시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끝나는 영화의 엔딩에 하필이면 라디오헤드의 Exit Music (For A Film)을 사용한 점은 – 바즈 루어만 감독의 96년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엔딩송으로도 사용되었던 곡 – 어쩔 수 없이 실소를 내뱉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이유가 된다.


영진공 신어지

 

‘드래그 미 투 헬’,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공포영화

원래 <다크맨> <이블데드>의 샘 레이미 님이셨던,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로만 알려지셨던 바로 그 님하께서 오랜만에 만드신 공포영화, <드래그미투헬>을 봤다.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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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형적인 귀신 공포영화다.
어디서 본 듯 한 것들로 착실하게 구성되어 있다. 얼핏 전설의 고향 필도 풍긴다.
그래서 이걸 “전형적”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전형적인” 것들이 의외로 드물다. 게다가 전형적인 것들만 모아놓다보면 진부해지기 십상인데, 이 영화는 전형적이면서도 참신하고 생생하다.

2. 그리고 고전적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피가 별로 안나온다. 사지절단? 그런거 별로 없다.
폭력 조차도 거의 드물다. 그렇다면 어떻게 공포영화라 할 수 있느냐?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공포는 폭력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추함과 더러움에서도 온다는 사실을 … 그렇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느냐 더러워서 피하지” 라는 말은 사실은 자기 기만이다. 그 더러운 똥이 내게 묻을 것을 생각하면 매우 무섭지 않던가.
더러운 것은 무섭다. 이 오래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는 고전적인 영화다.
이 영화, 진짜, 징하게 … 드럽다 …

3. 의외로 쿨하다.
요즘 영화들은 클라이맥스 강박에 빠져있다.
더 크게, 더 놀랍게, 더 웅장한 결말을 제공하려고 절박하다.
게다가 영화 끝나고 나서도 뭔가 할 말이 남았는지 쿠키니 뭐니 숨겨놓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 걍 쿨하게 끝낸다. 뭘 더 바래? 원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더냐? 라고 묻는 눈빛을 던지며 …
그 쿨한 결말은 또 다른 의미에서 고전적이라 하겠다.

쥐 잡아다주면 안 잡아먹쥐~

이 영화 참 짧고 군더더기 없이 명쾌하지만
그래도 생각해볼 거리들은 몇가지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

의문 1. 왜 저주는 그런 집시 노파 같은 존재의 것일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게도, 이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저주를 내리는 이는 말 그대로 더럽고 추한 노파다. 생긴게 말 그대로 마녀가 따로 없다. 이 노파, 이름도 괴상한데다 추접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추접들 중에서도 테이블에 놓인 사탕까지 쓸어담는 추접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냉정한 결정을 내리게 만드는데 일익을 하기도 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이거다. 왜 하필이면 그런 노파가 저주를 내려야 할까? 안그래도 할머니들은 어디서나 구박댕이들인데, 이런 영화가 그런 노파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하나 덧씌우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실제로 저주는 바로 그런 이들의 것이었다.
집시는 소수집단이다. 그리고 집시 노파는 소수집단 중에서도 소수집단이다.
잠재적 범죄자, 도덕적 타락의 근원, 불순한 미신의 병원체로 취급받던 집시,
늙어서 아무 힘도 권한도 없고, 남편조차 없이 혼자 살아가는 노파,
이 둘이 합체했으니, 이 얼마나 열악한 존재인가.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가 합쳐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그런 소수 속의 소수가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피해를 입었을 때 무슨 대책이 있겠나.
아무것도 없다. 저주라도 없다면…
그들에게는 저주 말고는 다른 어떤 무기도 없기 때문에 저주를 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를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우리는 저주 말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 … 투표권이 있지 않은가.
그런 우리가 저주에 매달리면, 집시 노파들이 화낸다.

의문 2. 왜 하필 크리스틴이 저주의 대상일까?
이 영화 평들을 보면 롤러코스터 처럼 즐길 수 있는 영화라는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더라.
왜냐면 저주에 시달리는 주인공 크리스틴(앨리슨 로만)이 참 안쓰러워보였거든.
생각해보라. 그 노파가 당한 일에 있어서 그녀는 몸통도 아니고 깃털, 그 중에서도 맨 꽁지에 해당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녀라고 그러고 싶었겠나.

그녀의 행동은 당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한 것이다.
그런 일은 무한경쟁의 신자유주의 체제속에서 살아가는 모두에게 늘 닥치는 것이다.
가슴에 손 얹고 생각해보라. 댁들은 그런 힘든 결정(Tough Decision) 한번 내려본 적 없나? 백번 양보해 그녀가 잘못을 했다고 치자, 그래도 그 잘못에 비하면 저주의 내용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녀는 저주를 받아 마땅한 존재다. 왜냐고?

첫 번째 이유,
그녀가 어설프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직 냉혹한 제도에 충분히 동화되지 않았다.
시골스러운 출생 탓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녀의 그 양심 탓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저주는 양심의 토양에서나 가능한 거다.
심리학적으로는 양심의 목소리, 죄책감이 외부로 나타난 것이 저주거든.

실제로 어떤 인간말종들은 저주도 안먹힌다. 왜냐면 양심이 없거든.
그런 인간들은 실제로 지가 다 잘했다고 믿는다. 그러니 떳떳하고 당당하다.
그러면 저주가 파고들 틈이 없다.
(내가 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주가 아니라고 말한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거는 아닌게, 그들은 이미 지옥에 있는 셈일지도 모른다.
지들만 모를 뿐이지. 나는 솔직히 그런 애들이 죽어서 가는 곳에는
정말 같이 가고 싶지 않다. 거기가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겠나.

두 번째 이유,
동조자의 죄는 결코 작지 않다.
왜냐하면 동조자가 없으면 그 어떤 악도 저질러질 수 없기 때문이다.
머리가 혼자 행동을 할 수는 없다. 손과 발이 머리의 생각을 따라줘야 가능하다.
고대 형법은 도둑질을 한 자는 (도둑질을 생각한) 머리가 아니라
(도둑질을 실제로 행한) 손을 자르게 한다. 마찬가지 이유다.
그녀가 아무리 깃털이라도 탐욕스런 금융자본이라는 몸통에 협조한 것은 사실 아닌가. 실제로 저주는 몸과 몸을, 얼굴과 얼굴을 직접 마주치는 자에게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잊지 말라.
“위에서 시킨대로 했을 뿐이라고?” 바로 그런 변명이 저주를 부른다.

검색창에 '노덕술'을 ...

그럼 몸통이나 머리는?
그들에게는 저주가 아니라 심판이, 단죄와 처벌이 필요하다.


어쨌거나.
영화는 꽤 재미있다.

물론 트랜스포머 같은 스펙타클은 기대하지 마시라.
이 영화를 즐기는 비결은,
웬지 내가 살면서 언젠가 본 듯한 장면들,
그리고 심지어는 언젠가 나도 한번쯤 저질렀을 법한 잘못들을 보며
그게 얼마나 무서운 댓가를 불러올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