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왕”, 장진 감독의 미완성 복귀작


<퀴즈왕>은 여러모로 장진 감독의 복귀작처럼 느껴진다. 최근작 <거룩한 계보>(2006), <아들>(2007), 그리고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는 흥행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왠지 영화감독 장진의 작품처럼 받아들여지지를 못했던 것 같다. <기막힌 사내들>(1998)로 데뷔한 이후 <간첩 리철진>(1999)과 <킬러들의 수다>(2001), <아는 여자>(2004)와 <박수칠 때 떠나라>(2005)를 통해 확고히 해왔던 새로운 아이디어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서의 자질이 최근의 영화들과는 그 모양새부터가 왠지 잘 어울리지를 못했다고 생각된다.

데뷔작부터 장진 감독의 영화를 계속 보아온 이들에게는 그의 영화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재미와 각별함에 대한 애착이 있다. 장진 감독이 아니면 영화화하지 못했을 이야기를 볼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시종일관 낄낄거리면서 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 장진 감독이 없는 한국영화계는 정확히 17.4% 불행한 거다 – 안도감과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퀴즈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장진 감독의 복귀작이라 “할 수도 있었을” 작품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장진 감독은 지금 영화 연출자로서의 긴장감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퀴즈왕>이 바로 그런 상태에서 만들어진 작품이라 생각한다. <퀴즈왕>에는 장진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요소들이 고스란히 담겨있기는 하다. 장진 사단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배우들이 주조연과 단역 출연을 불문하고 떼거리로 몰려나왔고 그 배우들 하나하나가 각자의 맡은 연기를 감칠맛 나게 참 잘도 해낸다.

한 두 명의 주연 배우에게만 집중하지 못하고 작은 배역의 단역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그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마당극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퀴즈왕>은 확실히 장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를 붙여주기에 충분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퀴즈왕>이라는 마당극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서 제대로된 오케스트레이션을 창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 밖에 없다.

캐스팅 자체가 다분히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데다가 – 물론 <퀴즈왕>을 통해 올해의 발견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굉장히 잘된 캐스팅도 몇몇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문제는 전체적인 조화다 – 그런 결과로 인해 영화의 대단원 자체가 허공 위에 붕 뜬 상태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것은 한 편의 영화로서 연출의 실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물론 <퀴즈왕>은 나름 재미있는 영화다. 시네마서비스가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으니 투자비 회수 쯤이야 크게 걱정할 바가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퀴즈왕>은 장진 감독에게서 기대할 수 있는 만큼을 충분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분명히 아니다.

기왕 영화감독으로서 자리를 잡은 사람이라면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만 머무르려고 하지 말고 아직까지 못해본 새로운 한계점에 도전을 해보든가 아니면 잘 하던 영역에서 확실하게 엑기스를 뽑아내든가 해달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게 아니면 좋게 기억될 때에 과감히 떠나라고도 하고 싶다. 장진 감독의 각본과 제작 지원을 받아 훨씬 나은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신인 감독은 많다.

한가지 기대를 가져볼 수 있는 이유는, <퀴즈왕>은 최근 장진 감독의 영화 같지 않았던 세 편의 영화 이후에 처음 내놓는 터닝 포인트로 남게될 수 있는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자기 살 파먹는 자세로 간편하게 영화를 만들어 내놓는다면 앞으로 한국 영화계의 막후 실력자가 될 수는 있을지언정 결코 좋은 영화 연출가로서 남게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퀴즈왕>을 새로운 시작점으로 삼아 다시금 자기 작품 세계를 재구축하는 데에 주어진 시간을 충분하게 쏟아붓는다면 관객들은 <퀴즈왕>을 장진 감독의 복귀가 시작되었던 –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 이정표로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장진 감독은 아직 박수 소리가 멈추지 않은 지금 바로 떠나든가 아니면 이제부터라도 영화 연출가로서의 입지를 다시 세워나가라.

영진공 신어지

 

“박수칠 때 떠나라 (2005)”, 엔딩의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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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크 존즈의 연출 보다,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나 다른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보다 찰리 카우프먼의 시나리오로 기억되는 “어댑테이션”(2002)에는 로버트 맥기라는 실존 인물(브라이언 콕스가 연기)이 시나리오 작법 강의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는 엔딩이 중요하다. 엔딩이 좋으면 모든 걸 용서 받는다’는 식의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장진 감독의 “박수칠 때 떠나라”는 대중 영화에서 결말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하게 해주는 영화다. 차승원의 다른 영화 “혈의 누”와 같이 결말 부분’만’ 괜찮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박수칠 때 떠나라”에서 마지막 10분이 주는 임펙트는 정말 근사하다. 새 차를 샀다며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고 해서 따라 나섰더니 옵션이나 이것저것이 참 좋긴 한데 길이 막혀 제대로된 속도감을 느껴보지 못하다가 막판에 집에 다와서 180Km를 잠깐 밟아보고 내린 느낌이다. 그리하여 결론은 ‘그 차 참 좋긴 하네’하게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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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칠 때 떠나라”는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가, 또는 살인의 동기는 무엇인가 라는 의문의 진짜 답을 마지막 최후의 순간까지 꼭꼭 숨겨놓고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전형적인 형사 추리물의 기본 형식을 갖춘 영화다. 여기에 장 진 특유의 코미디와 사회 풍자극의 요소를 곁들였고 후반부에 이르면서는 다소 생뚱 맞게 느껴지는 초현실적인 요소까지 접목한다. 그러나 영화는 검사와 유력한 용의자의 폭발적인 감정 충돌이 너무 급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살인 사건의 조사 과정 마저 TV로 생중계하는 세태 풍자의 맛도 그다지 신랄한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못하는 편이다. 그런 와중에 하나 둘씩 밝혀지는 살인의 ‘참여자’들은 너무 당연해서 실망스럽기도 하고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맥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몹시 느슨한 형태로 그저 연결만 되어 있는 것 같았던 서말의 구슬들을 한순간에 쫙 잡아당기면서 아주 근사한 보배로 돌변시키는 건 결국 영화의 최종 결말이다. 그리하여 결론적으로 ‘그 영화 참 괜찮네’하게 된다.

“박수칠 때 떠나라”의 엔딩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스포일링을 피하고 언급할 수 있는 건 한재권의 음악 정도다. 서정적이면서도 박진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만들어진 배경음악은 오프닝 씨퀀스에서부터 듣는 귀를 무척 즐겁게 하더니 대사 없이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배우들과 함께 이 영화가 애초에 상기시키고자 했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된다. “박수칠 때 떠나라” 전체의 일등 공신은 물론 영화를 쓰고 연출한 장진 감독이지만 그 다음 자리는 음악을 맡은 한재권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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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숲인가? 철저히 세트 안에서만 움직이는 영화 아니었나?
실제로 영화의 대부분은 세트 안에서 진행된다. 취조실과 수사본부,
방송국 스튜디오, 그리고 TV 브라운관과 CCTV 폐쇄회로까지 계속
닫힌 공간 안에만 머문다. 그러나 결국 “박수칠 때 떠나라”는 관객을
숲속으로 인도하려는 영화다. 범인이 누구인가, 왜 죽였나라는 선정적인
내용물에만 관심 갖던 사람들에게 잠시 눈 돌리는 기회를 선사한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