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 길창덕 화백

길   창   덕
(1930. 1. 10. ~ 2010. 1. 30.)
”]

한국 만화를 대표하는 선생의 별세 소식을 이제야 접하였습니다.

혹시 선생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위키백과 한국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영진공 일동

애플과 MS, 지향점의 차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파인만이 쓴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라는 자서전이 있다. 거기서 파인만은 다른 동료 물리학자들과 함께 컴퓨터를 처음으로 접했을 때의 일을 언급하며, 동료 중 한 사람이 “컴퓨터를 이용해서 결과를 도출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 자체를 다루는 재미에 빠져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지금 곁에 책이 없어서 정확한 원문을 언급하긴 어렵지만, 대충 그런 뉘앙스의 말이었다)



그리고 매킨토시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프 래스킨 교수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운영체계에 대한 나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어플리케이션으로 작업하기 위해 거쳐가야 할 것. 운영체계는 자동차 엔진의 피스톤 같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들여다 보거나 만질 이유가 거의 없는 것처럼요.”



또한, 예전에 내가 번역했던 Usable GUI Design : A Quick Guide(원문 링크는 소실, 번역문 링크로 대체)라는 글에선 첫머리부터 이런 주장을 펼친다.



“사용자는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려 들지 않는다 … 사용자는 작업을 가능한 빠르고 쉽게 끝내고 싶어하며, 어플리케이션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도구다. 어플리케이션을 배우고 다루는데 들이는 시간만큼, 사용자는 자신의 할 일을 뒤로 미뤄야 할 것이다 …”




여태껏 다른 사람들의 말을 주구장창 늘어 놨는데, 이걸 간단히 요약하자면 “컴퓨터고, OS고, 어플리케이션이고, 도구일 뿐이다. 복잡하게 만들지 마!”로 정리되겠다.


물론 해커라던가, 너드라던가, 파워 유저라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주장에 찬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컴퓨터로 뭔가 결과를 얻기보다는 컴퓨터 자체를 가지고 노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니까. 고백하건데, 한때 나도 그랬다.

MS는 해커 – 혹은 파워 유저의 논리에 충실하다. 어쨌든 이거저거 다 조작하고, 변경하고, 바꿀 수 있다. 하다못해 오피스 소프트웨어의 메뉴 위치까지도 옮겨놓을 수 있을 정도다. UI 최적화를 하기보다는 자유롭게 UI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하고, 잘못하면 시스템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까지도 설정할 수 있도록 해서 사용자로 하여금 자신에게 적합한 환경을 스스로 꾸밀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MS의 철학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써드파티 윈도우 어플리케이션 역시 이러한 철학에 충실하다.



하지만 애플은 이와는 다르다. 철저하게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작업 환경을 만들어 제공한다. 그걸로 끝. UI 변경? 글쎄, 창닫기 버튼 색깔 정도는 바꿀 수 있겠지만 …… 기능 설정? 멍청한 사용자 주제에 감히 어딜 건드리겠다고, 버럭!




MS의 방식은 개발자에게 적합하다.
골치 아픈 사용성은 나중에 생각하고, 뚝딱뚝딱 만들기 좋다. 같은 개발자라거나 해커, 너드, 파워 유저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그래, 모름지기 컴퓨터라면 이래야지! OS라면 이래야지! 어플리케이션이라면 이래야지! 내 맘대로 확장하고, 바꿀 수 있어야지!



반면, 애플의 방식은 대부분의 덤앤더머 …… 아니, 일반인들에게 적합하다.
OS나 어플리케이션에 익숙해지기까지의 학습 곡선이 상당히 짧다. 어라, 그냥 굴리니까 되네? 어라, 그냥 문지르니까 되네? 그래, 내가 원한 건 이렇게 간단한 거야! 복잡한 건 파워 유저니 뭐니 하면서 잘난 체 하는 피터 파커 같은 안경잽이들이나 쓰라고 해!



이 둘의 지향점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맥용 어플리케이션인 스크라이브너 scrivener(http://www.literatureandlatte.com/scrivener.html )와 윈도우용 어플리케이션인 드림노트( http://ukino.com/?mid=dreamnote)이다.

둘 다 소설가 또는 시나리오 작가가 글을 쓰는 데 최적화된 작가(Writer)용 툴로써, 어느 쪽이건 개발자는 한 명뿐이다. 실질적인 개발 능력에선 별 차이가 없으니만큼 공평한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참고샷 : 스크라이브너 화면



참고샷 : 드림노트 화면




기능을 보면 당연히 드림노트 쪽이 훨씬 많아 보인다. 캐릭터도 따로 관리할 수 있고, 지도도 만들 수 있고, 하여간 이거저거 다 된다. 그러나 그게 전부다.


직접 써 보면 “도대체 이걸 뭐 어쩌라는 거지?”란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개발자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을 분주히 집어넣는 데 몰두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비슷한 인종일 거라고 착각해버린 것이다(주 1). 하지만 작가는 개발자보다는 덤앤더머에 가까운 인종이다(나도 요즘 그렇게 퇴화되어 가고 있다!)



스크라이브너는 이와는 정반대다. 기능은 부족할진 몰라도 우아하고 편안하다. 스크린샷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꼭 필요한 기능을 덤앤더머 …… 아니, 작가들이 쓰기 편하게 배치시켜 놨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저 아쉬움일 뿐이다. 용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여태까지는 MS의 방향이 옳다고 믿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점차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를 접하게 되고, 컴퓨팅 환경이 휴대용 기기로 확산되면서부터는 서서히 애플 쪽으로 저울추가 기울고 있다. 어찌 됐건 이 세상엔 개발자나 해커, 파워 유저보다는 일반유저가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그나저나 스크라이브너 2.0은 대체 언제나 나오려나? 이번엔 제발 타임라인 기능이 추가되어 주기를, 제발!




(주1: 드림노트 개발자의 명예를 위해 미리 밝혀두지만, 혼자서 이만한 기능을 갖춘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만일 제대로 된 기획자가 UI를 정비한다면 드림노트도 상당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영진공 DJ Han

지능검사의 역사 (1), 최면술에 열광했던 심리학자 알프레드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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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비네Alfred Binet는 1857년 프랑스 니스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법학을 공부했으나 1878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 비네는 소르본 대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하면서 파리의 국립도서관에서 심리학 책을 빌려 읽으며 독학으로 심리학을 공부했다.

1883년에는 프로이트도 배웠던 샤르코의 최면술에 열광해 최면술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그런 사이비 과학에 부화뇌동했다는 이유로 학계로부터 사과요구를 받기도 했다. 1885년과 1887년 두 딸이 태어나자 비네는 관심을 최면술에서 인간의 성장으로 옮겼고 그 이후 자신의 두 딸이 성장하는 과정을 관찰하던 21년간 실험심리학, 발달심리학, 교육심리학, 사회심리학 그리고 비교 심리학 분야에 대한 책을 2백권 넘게 저술했다.

비네가 자기 딸들을 오랫동안 관찰하며 얻은 심리학적인 통찰은 이후 지능검사를 개발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한데, 비슷한 사례는 삐아제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발달심리학을 연구 하려면 자녀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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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코의 최면치료를 묘사한 유명한 그림. 사실 이 그림 밖에 없는 듯 …

비네는 이후 연령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동료인 테오도르 사이먼Theodore Simon과 함께 먼저 여러 연령대의 정상적인 아이들과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선발한 다음, 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게 하면서 그 나이 또래의 정상적인/비정상적인 아이들이 각각 뭘 할 수 있고 뭘 못하는지를 면밀하게 조사했다. 이를 통해서 연령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을 측정하는 검사항목을 만들었다.

검사항목 중에는 단순히 검사자와 악수를 할 수 있는지, 혹은 불켜진 성냥의 움직임을 쫒아가며 시선을 옮길 수 있는지와 같이 아주 쉬운 문제도 있었고, “옆집에 낯선 손님들이 드나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의사가, 그 다음에는 변호사가, 가장 최근에는 신부님이 다녀가셨다. 옆집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와 같이 어린아이들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도 있었다(다들 아시겠지만, 이 문제의 답은 ‘옆집의 어른이 죽어간다‘이다. 위독하기에 의사가 다녀갔고, 유언장을 확인하기 위해서 변호사가 필요했고, 종부성사를 위해서 신부가 다녀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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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게 뭘까?

그러던 중 1904년 프랑스 정부에 의해 프랑스 아동심리 전문가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는 지체아동을 어떻게 찾아낼 것이며 그 아동들에게는 어떤 특수 교육을 시켜야 하는지를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당시 프랑스는 최초로 보통교육을 실시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국민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민을 표준적인 보통교육을 통해서 기본적인 상식과 공통적인 의식을 부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보통교육 시스템은 몇 살짜리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표준적인 교육안을 필요로 했는데 아무도 각 연령대의 아이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1900년대 당시에는 지적인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다음 셋 중 하나로 구분되었다. 아예 혼자서 생활을 할 수 없는 백치(idiots), 도움을 받아 혼자 생활이 되지만 학업은 불가능한 치우(imbeciles), 학업이 가능하지만 특수교육이 필요한 약질(debiles). 그런데 이 세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에 따라 같은 아이의 진단도 다르게 나왔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설립된 것이었다.

이 위원회의 일원이었던 비네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기초로 공립학교에서 표준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 즉 특수한 교육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검사도구를 만들었다. 이것이 최초의 지능검사였다. 이 검사는 이후 6년간 꾸준히 수정 보완되어 마침내 1911년 최종판이 완성되었으며, 그와 동료인 사이먼의 이름을 따서 비네-사이먼 검사라고 불린다.
 


비네-사이먼 지능 검사 도구

이 비네-사이먼 지능 검사는 원래 검사자와 검사 대상 아동이 1대 1로 실시하는 개인용 검사였다. 지능 검사의 내용은 3세부터 15세 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같은 연령대의 정상적인 아이들에 비해서 얼마나 지능이 더 높거나 낮은지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앞서 자신의 연구를 통해서 만들어진, 각 연령대에 해당하는 정상적인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의 목록을 가지고 비네는 그 연령대 아이들의 지능 표준을 만들었다. 이렇게 연령 단위로 아이들의 지적인 능력을 측정했기 때문에 비네의 지능 검사는 IQ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고 정신 수준(Mental level)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정신 수준을 산출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3살 짜리 아이가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었던 문제 10개를 모두 푼다면, 그 아이의 정신 수준은 3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가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었던 문제들 중에서 절반을 풀지 못한다면, 그 아이의 정신수준은 3살에 미치지 못하며 2.5 정도에 해당한다. 만약에 표준적인 3살짜리 아이들이 풀 수 있는 문제를 전부 풀고 4살짜리 아이가 풀 수 있는 문제 중에서 절반을 푼다면 그 아이의 정신수준은 3.5가 되는 것이다.


정신수준 개념

이제 인간의 지적능력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는 노력의 첫번째 성과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지능 즉 아이큐가 되기까지는 아직 몇단계를 더 거쳐야 했다.

영진공 짱가

“이노센스”, 철학은 떡밥 … 그 보다는 재회의 감동

<공각기동대>(1995) 이후 무려 9년만에 만들어진 속편 <이노센스>도 주인공은 바트나 토구사가 아니라, 변함 없이 쿠사나기 소령이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나님의 곁으로 가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 복음서가 <공각기동대>였다면 <이노센스>는 그 이후 예수를 사랑하던 자들의 이야기인 사도행전이고 바울의 서신들이다.

복음은 이미 <공각기동대>에서 완성되었으니 <이노센스>의 세계관과 존재론에 새로운 발전이 있을 이유가 없다. 주제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노센스>는 2편이 아니라 원전에 대한 해설서나 찬송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고, 내러티브의 측면에서는 일종의 에필로그에 불과하다고도 할 수가 있다. 다시 성서로 치자면, 복음서 가운데 유일한 후일담에 해당되는 요한복음 21장이 바로 <이노센스>다.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이후에도 제자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러 나가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물고기를 낚았더랜다. 요한복음 21장은 특히 디베랴 바닷가에 베드로와 도마, 그리고 다른 몇 제자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곳에 예수가 ‘다시 나타나’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반복해서 묻고 앞으로 해야할 일을 다시 가르친다.

쿠사나기 소령에 대한 바트의 감정은 연인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베드로가 예수에게, 또는 부처의 제자들이 스승에게 가졌던 경외감의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극중에서 바트가 ‘나의 수호천사’라고 일컫듯 쿠사나기는 바트의 예수이고 성모 마리아이며 부처와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노센스>는 그런 대상에 대한 오랜 그리움과 재회의 감격, 그리고 미래를 약속할 수 없는 이별의 애틋함의 감정이 배어있는 작품이다.

<공각기동대>의 오랜 팬들은 작품에 담긴 심오한 철학적 질문과 비주얼에 감탄하기도 했지만 사실은 쿠사나기 소령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져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런 팬들에게 <이노센스>는 가슴 벅찬 재회의 감동을 선사하는, 무척이나 고마운 영화다. 빌리 엘리어트가 발레리노로 성장해서 백조처럼 무대 위를 치솟아 오르던 순간 만큼의 감동이다.

<이노센스>의 이런 측면은 메시아적 내러티브에만 천착함으로써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매트릭스>의 속편들과 크게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기도 하다. 내겐 <이노센스>가 선보이는 화려한 그래픽과 사운드의 완성도나 대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존재론적 경구들의 심오함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사람은 항상 화려한 말의 설득 보다는 따뜻한 손 한번 잡는 것으로 쉽게 감동과 변화의 순간에 이르곤 하기 때문이다.

영진공 신어지

미디액트가 사라진다


미디액트가 사라진다.

그곳에 처음 발 들여놓은
날, 이토록 완전한 영화 교육의 장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내심 크게 아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영원히 곁에
있어 줄 것 같은 친절함 때문이었을까. 이후 겨우 두어 개의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 어쩌면 이렇게 허망하게 미디액트가 사라진단다.

그랬다. 작년 여름, 미디액트에서 나의 첫 영화를 위해 고민하고 촬영한 1주일동안 고되고 힘들었지만,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당시에도, 지금 돌이켜 보아도 그 터질 것 같은 흥분은 아직도 그대로 심장을 꿈틀인다. 나처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정식 영화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저 영화가 좋고 함께 하고픈 예비 영화인에게 두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장비를
대여해주고 유용한 교육 프로그램과 세미나에 참여 가능케 한 곳이 바로 미디액트였다.




이제, 영진위가 선정한 새 사업주체인 (사)시민영상문화기구가 그 곳을 대신 꾸려나갈 것이다. 한오라기의 희망을 저버리긴
싫지만, 그간 미디액트 식구들이 개인의 안위 따위 접어두고 이뤄낸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갖출 것이란 기대가 들지 않는다.

독립영화, 독립영화전용관과 기타 영화제들이 정권이 바뀐 뒤 영진위의 진두지휘 하에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고 있는 지금, 이
모든 게 시대착오적인 정치 탄압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주 금요일 미디액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이송희일 감독이 한 말이 두고두고 가슴을 치는 건 비단 나 뿐만은 아닐 것이다.

“철거당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다. 예술영화전용관, 독립영화, 시네마테크, 미디액트처럼 시민과 교감해온 영상운동 등 돈이 안 되는 독립영화들이 하나같이 영화판에서 철거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영진공 애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