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세계 …… 그리고 내러티브



음악과 영화의 차이는 뭘까?
난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있고 없음이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고 계속 그 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음악에는 내러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음악에도 코드 진행이 있고 리듬 패턴이 있으며 역시나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청각의 세계다. 느낌의 무엇인 것이다. 그 세계의 구조와 미세한 변화는 숙련된 귀를 가져야 제대로 알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숙련된 귀를 가졌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음악을 막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졌기에 음악이 좋고 들으면 행복해진다.







영화를 참 좋아한다. 음악 못지 않게 좋아했다. 한 때는 영상 만드는 데 관심도 많았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좌절점은 글 만큼이나 영상 역시 내러티브가 있고, 그것이 너무나 선명해서 음악처럼 끝없는 상상을 자극하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것이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


그리고 영화는 음악도 글도 미술도 애니매이션도 다 먹어삼키는 괴물이었다. 음악이 절대 가질 수 없는 크기의 깊고 넓은 구덩이이기도 하고. 너무 자유로워서 (더더욱 감당할 수 없을만큼) 옭아오는 세계였다.

맘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영화를 참 안봤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얘기를 주워 듣는 사람으로 참 창피한 얘기다. 그러나 음악처럼 내 머리 속을 마구마구 자극하는 무엇을 어느 순간부터 찾기 힘들어 영화 앞에서 주저했다.

기타 소리 하나에서 기타줄-픽업-바디-암-스프링-앰프-리턴-이펙터의 매커니즘을 상상할 수도, 담배 연기와 독한 술을 생각할 수도, 무대에 섰을 때 관객의 호응을 떠올리기도, 음악의 인상이 주는 인생의 좌절과 환희를 맛볼 수도, 혹은 지구 밖의 괴상한 꿈나라 속을 걸을 수도 있는, …… 그런 별의 별 생각을 다 떠올릴 수 있는 음악.


 





 


음악을 들으며 나는 답답하고 뾰족한 수 없는 그저 그런 인생 속에서 도저히 그려볼 수 없는 우주를 꿈꿀 수 있었다. 음악은 그랬다.


그러던 어느 연휴, TV 채널 여기저기서 나오는 영화들. 참 오랫만에 영화를 첨부터 끝까지 봤다. 꾸준히 보는 DVD영화 몇 편이 있지만, 그와 다른 느낌으로, 다른 자세로, 정말 영화에 빠져서, 조명이 어떻고, 화면 구성이 어떻고 표정이 어떻고 그런 거 다 잊고, 그냥 영화의 얘기에 빠졌다. (사실 짜증나서 채널을 돌려버린 영화도 몇 편 있다.)

잊고 있었던, 아니 피하고 싶던 내러티브의 세계에서 놀았다. 예전에 갖지 못했던 기분이 온 몸을 적셔왔다. 영화 속 음악이 때론 거슬리기도, 과도하기도, 답답하기도 했지만 꿋꿋이 영화의 얘기에만 빠졌다. 이상하게 보는 영화의 수가 늘어날수록, 그리고 한 편, 한 편 끝날 때마다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아주 오래 전, 하루에 영화 한 편 이상 보지 못하던 옛 기억도 났다. 한 편을 흡수하고 나면, 영화는 커녕 음악도 듣지 못하고 술만 겨우 마실 수 있던 정말 오래 전의 나의 모습 말이다.


물론 기억만 났다. 그 다음 날 저녁에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피아노 트리오 음악이, 더블 베이스의 도약하는 연주가 땡겼던 것을 보면 과거의 내가 또 다시 반복되는 것은 분명히 아닌 것 같다. 과거와 달리 내러티브가 전하는 떨림에 짓눌리지 않고 (그저)즐기는 내 모습이 싫지 않다.



만화책을 본다. 영화를 본다. …… 내러티브의 세계.


왠지 그 세계가 다시 맛있어 질 것 같다.


영진공 헤비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내리는 빗방울을 말려 볼까?


“Stephen Frears” 감독의 2000년도 영화, 『High Fidelity』.
한국 제목은 너무나 기특하게도『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John Cusack”, “Joan Cusack”, “Tim Robbins”, “Catherine Zeta-Jones”, “Jack Black” 등이 줄줄이 나오는 영화다. 배우 뿐만이 아니고 Rock 애호가들이라면 “오호~”라는 감탄사를 연발할 만한 노래들이 연이어 흘러나오기도 하는 영화이다.

오늘은 그 노래들 중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Scotland 출신의 “The Beta Band”가 부른 “Dry the rain”인데, 이들이 발표한 3개의 EP를 한데 묶어서 1998년에 발매한 “3 E.P.’s”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Dry the rain

By The Beta Band

This is the definition of my life
Lying in bed in the sunlight
Choking on the vitamin tablet
The doctor gave in the hope of saving me
In the hope of saving me

이것이 내 삶의 모습,
한 낮에 침대에 누워,
비타민 정을 먹다 목이 메었네,
그런 나를 살려 보겠다고 의사가 나타났지,
이런 나를 살려 보겠다네,

Walked in the corner of the room
A junk yard fool with eyes of gloom
I asked him time ag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he rain
The rain the rain the rain now

방 한 구석을 뱅뱅 맴돌던,
게슴츠레한 눈동자의 고물상 양아치,
나는 그에게 자꾸 물었네,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빗방울, 빗방울, 빗방울을,

Dusty brown boots in the corner
By the ironing board
Spray on dust is the greatest thing
Sure is the greatest thing
Since the last since the last

먼지를 뒤집어 쓴 채 구석에 쳐 박혀있는 갈색 부츠,
다림질 판 옆에 놓여있네,
먼지 위에 물 뿌리는 게 제일 멋진 일이지,
그래, 제일 멋진 일이야,
지난 번에 해 본 이후로, 지난 번에 해 본 이후로,

Walked in the corner of the room
A junk yard fool with eyes of gloom
I asked him time ag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ake me in and dry the rain the rain
The rain the rain the rain now

방 한 구석을 뱅뱅 맴돌던,
게슴츠레한 눈동자의 고물상 양아치,
나는 그에게 자꾸 물었네,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나를 데려가 빗방울을 다 말려버리게 해 줘,
빗방울, 빗방울, 빗방울을,

If there’s something inside that you wanna say
Say it out loud it’ll be okay
I will be your light
I will be your light
I will be your light
I will be your light

가슴 속에 품고 있는 뭔가 할 얘기가 있다면,
큰 소리로 외쳐 봐, 괜찮아,
내가 너의 빛이 될 게,
내가 너의 빛이 될 게,
내가 너의 빛이 될 게,
내가 너의 빛이 될 게,

I Need Love, yeah
I Need Love

내겐 사랑이 필요해, 정말로,
사랑이 필요해,

영진공 이규훈

“다운 인 어 홀”, The road of down in a hole (EP)




[ 2006, 한국, WASP/DNC ]

“제노사이드”, “싸일런트 아이”, 등을 거친 보컬리스트 “서준희”가 2003년 결성한 밴드 “다운 인 어 홀 (Down In A Hole)”은 밴드 이름(Alice In Chains의 곡명)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가 꾸준히 해왔던 블랙-데쓰 계열의 음악과는 조금 다른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DIAH의 데뷔 음반은 잘 짜여진 악곡에도 불구하고 급하게 녹음한 티가 나는, 잘 만들고도 아쉬운 음반이었다. 이후 “수요예술무대”와 같은 오버그라운드 무대까지 넘보던 밴드는 어느날 자취를 감추었고 잊혀진 이름이 되어버렸다.

이후 DIAH의 주인격인 서준희는 홍대 앞 클럽 “WASP”의 주인장으로 변신, 홍대 앞에서 점점 지분을 잃어가는 메탈 계열 밴드들의 아지트를 제공하기도 했다. DIAH은 이제 사라졌다고 생각할 무렵인 2006년 벽두에 튀어나온 이 음반은 “참 잘했어요” 도장을 꽉 찍어주고 싶은 음반이다.

기타리스트 “이동규”와 보컬이자 주인장 서준희를 제외한 모든 멤버가 교체된 상황에서 발표된 새 EP는 과거와 거의 단절에 가까운 파격적인 변신을 들려준다. 데뷔 음반에서 “CInderella”의 곡을 커버한 것이 우연한 선택이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는 미국적인 멜로디와 서준희 특유의 개성넘치는 보컬이 적절히 결합되어있다.

이 음반은 1년여 동안 띠엄띠엄 녹음한 5곡(1집에 수록되었던 「Elegy」의 재녹음을 포함)의 모음집 성격이기 때문에 완전한 일관성을 기대하긴 어렵다. 대신 전반적으로 밴드가 추구하는 바가 깊이있는 멜로디와 세련된 악곡을 추구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히 짚어진다.


끈끈하게 늘어지는 보컬에서 그로울, 샤우트, 팔세토까지 다양하게 해내는 서준희의 보컬은 정말 개성있다. 그리고 이런 팔색조 보컬들은 대부분 비슷하게 화려한 기타연주와 잘 어울리는데, 특이하게도 서준희는 묵직한 기타들과 더 성공적인 조화를 이뤄내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이대의 DIAH은 싸일런트 아이 1집 이후, 가장 그의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밴드인 셈이다.

DIAH의 새 EP는 흔히 Alternative Metal이라고 분류되는 음악과 기본적으로 비슷한 성격이다. 그러나 그 동네 음악 특유의 뭔가 메탈도 아니고 그런지도 아닌 허전함 따위는 기대하지 마시라. 밴드의 핵심이 되는 두 멤버의 연륜이 반영된 듯, 리프와 톤에 있어서 톱니바퀴처럼 꽉 짜여진 음악이니까.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좋은 연주임에도 좀 더 맺고 끊음이 확실했으면 싶은 드럼 플레이인데, 이 부분은 연주력의 문제라기 보다 취향(내가 워낙 딱딱 끊어지는 분절음을 선호한다)이기 때문에 이를 음반에 있어 문제로 제기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심벌웍은 아주 빼어나다.

앨리스 인 체인스를 좋아했던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반이고, 앨리스 인 체인스를 모르더라도 굴곡이 심한 리프와 시시각각 변화하는 보컬을 좋아한다면 강하게 추천하고픈 음반이다.


영진공 헤비죠

Ray, Ray, Ray ……


레이 챨스(Ray Charles),

1930년 미국 조지아 주에서 태어나 2004년에 LA의 자택에서 영면한 그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가 그리 많이 알고 있지 않다.

비록 시력은 잃었지만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뮤지션이라는 것, 미국에서는 굉장한 인기와 존중을 받는 가수라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알려진 노래라고 해 봤자 “I can’t stop loving you” 달랑 하나 정도. 어쩌다 한 번씩 FM에서나 TV 광고 삽입곡으로 듣게 되는 “Hit the road, Jack” 같은 경우도 그걸 부른 가수가 Ray Charles라는 건 잘 모른다.

Ray Charles가 1957년에 처음 앨범을 낸 이후 2004년까지 발표한 앨범이 무려 63장이다. 그것도 베스트 앨범 등 기타 모음집을 제외한 앨범이 63장이다. 이것만 봐도 그가 미국 대중음악계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짐작은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중 Billboard Chart 각종 분야에 올라 간 앨범이 50개가 넘고 싱글은 100개 가까이에 이른다. 덧붙여 Grammy 수상을 따져보면 1960년을 시작으로 14 차례 수상을 하였다.

그가 시력을 잃은 건 여섯 살 때 녹내장으로 인해서였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St. Augustine 맹아학교에 진학하여 작곡과 악기연주를 배운 그는 Florida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Seattle로 옮겨간다. 그의 첫 히트곡이라 할 수 있는 건 1951년에 발표한 “Baby, Let Me Hold Your Hand”이고 이후 그는 Rhythm and Blues에 가스펠, 재즈, 컨츄리의 요소들이 융합된 음악을 계속 만들고 연주하여 Soul이라는 쟝르가 만들어지는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던 그가 흑인음악을 넘어서서 미국 전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59년에 발표한 “What’d I Say” 를 통해서였다. 어느 무도회장에서 연주를 하던 그가 준비해간 레퍼토리가 다 떨어지자 즉흥으로 연주하면서 만들어진 이 노래를 통해 말 그대로 전국구 스타가 된 Ray Charles는 이후 1965년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폭발적 인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 해에 헤로인 복용으로 구속이 되면서 그의 전성기는 내리막길로 접어들게 된다. 일 년간의 공백기를 거쳐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한 그는 2004년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앨범을 내고 히트 곡을 발표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발표한 그의 음악은 Soul이나 R&B라기 보다는 Easy Listening Pop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게 데뷔 후 50년 가까이 공연과 앨범 활동을 쉬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던 Ray Charles는 2004년 6월 10일 LA의 자택에서 간질환으로 숨을 거두게 된다.

우리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는 그의 노래는 다음과 같으니 관심 있으신 분은 한 번 구해서 들어보시면 좋을 듯 ……

* “What’d I Say” – 1959년 빌보드 팝 싱글 6위
* “Georgia On My Mind” – 1960년 빌보드 팝 싱글 1위
* “Hit the road, Jack” – 1961년 빌보드 팝 싱글 1위
* “I can’t stop loving you” – 1961년 빌보드 팝 싱글 1위
* “Unchain My Heart” – 1961년 빌보드 팝 싱글 9위
* “You Don’t Know Me” – 1961년 빌보드 팝 싱글 2위

그럼 그의 노래 중 하나를 들어보자.
영화 “레이(Ray)”에도 삽입되어 있는 노래인데, 그가 1960년에 발표하였고 Eric Clapton이 1989 년 “Journeyman” 앨범에서 다시 부르기도 한 “Hard Times(Who knows better than I)”이다.

Hard Times(Who knows better than I)




My mother told me
Before she passed away
Said son when I’m gone
Don’t forget to pray
‘Cause there’ll be hard times
Lord those hard times
Who knows better than I?

살아 생전에,
어머님은 말씀하시곤 했지,
당신이 떠나거든,
언젠가는 어려운 시절이 오기 마련이니,
항상 기도하는 걸 잊지 말라고,
그 힘겨웠던 나날들,
그런 시절을 누가 나보다 잘 알까?

Well I soon found out
Just what she meant
When I had to pawn my clothes
Just to pay the rent
Talking about hard times
Who knows better than I?

어머님의 말 뜻을,
난 곧 깨닫게 되었네,

방세를 내기 위해,
입던 옷을 들고 전당포를 찾았을 때 말이지,
쪼달리는 삶이라고?
그걸 누가 나보다 잘 알까?

I had a woman
Who was always around
But when I lost my money
She put me down
Talking about hard times
Yeah, yeah, who knows better than I?

내게도 여인이 있었네,

항상 내 주변을 맴돌던 그녀,
하지만 돈이 떨어지자,
그녀는 나를 버렸지,
고달픈 시절이라고?
대체 그걸 누가 나보다 잘 알까?

Lord, one of these days
There’ll be no sorrow
When I pass away
And no more hard times
Yeah, yeah, who knows better than I?

신이시여, 요즘에는,
더 이상 후회도 없습니다.
내가 죽고 나면,
더 이상 힘든 시절도 없겠죠,
그래요, 그런 나날을 누가 나보다 더 잘 알까요?

영진공 이규훈

“Two Sides of If”, 비비안 캠벨의 처음이자 유일한 솔로 앨범


[2005, 영국, Sanctuary]

“Def Leppard” 활동과 동시에 너무 밋밋해졌다고 욕(?)을 먹는,
30년 전 과거사인 “Dio”의 기타리스트로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기타쟁이,
 “비비안 캠벨(Vivian Patrick Campbell)”의 첫 번째이자 유일한 솔로 음반.

사실 나는 이 음반을 처음 접했을 때, 막연히 연주 음반일 것이라 생각했다. 은근히 과거의 활화산 같던 연주를 기대하면서 ……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본작, 『Two Sides Of If』는 블루스-록 음반이었다. 사실 비비언의 블루지한 연주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Jeff Beck”의 연주곡(「Led Boots」)도 꽤 담담하게 커버한 적이 있었던 비비언이고 보면, 블루스 외도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처음엔 왠지 섭했다. 나 역시도 여전히 청자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만들던 Dio시절의 비비언에 대한 기억이 커다란 위치를 가지고 있었나보다. 블루스-록이라고 하지만 내용물은 어쿠스틱과 세미 솔리드 바디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울림으로 상징되는 고색창연한 블루스에 가까운 연주가 중심이고, 가끔 곁들이로 매끄러운 솔로가 살짝 얹혀진 모습이다. 맨 처음 이 음반을 듣고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봐, 비비언 왜 그러는거야?”

그런데, 밤샘 작업과 과도한 알콜, 컴까지 고장나서 혼이 쏙 빠진듯했던 한 주를 보내고 무거운 눈꺼풀이 점점 내려오려는 시간에 우연히 집어든 이 음반은 좀 다르게 들린다. 클래식 록 좀 들었다 싶은 양반들도 다 아실 블루스의 명곡들로 그득한 본작에서 갑자기 추억과 평화로움이 느껴진 것이다. 아마 비슷한 시도(헤비메탈 기타리스트의 블루스 원정기)를 했던 “Gary Moore”에게 이 곡들을 연주하라고 한다면 훨씬 헤비하고, 강렬하지만 과도한 감정 이입이 부담스런 연주로 채워버렸을 듯 싶다.

그러나 비비언은 이 음반에서 좀체로 흥분하지 않는다. 짜릿한 맛이 생명인 「The Hunter」조차도 기타 솔로와 블루스 하프(하모니카)를 함께 내세우는 양보의 미덕을 보인다. 전혀 날카로운 솔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시 들어보니 편안하게 어린 시절 자신의 우상들 – “Eric Clapton”, “Paul Kossoff”, “Peter Green”, “Jeff Beck”, “Keith Richard”, “Rory Gallagher”, 등 – 을 추억하며 연주한 듯한 인상이다.

즉, 수록곡 대부분이 미국 흑인들의 (소위 ‘원단’) 블루스들이긴 하지만, 비비언은 미국 블루스가 아니라 영국 블루스-록 1세대가 그 곡들을 카피하던 1960년대 중, 후반을 떠올리며 연주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연주와 잘 맞지 않음에도 흑인 명인들을 게스트로 모셔왔던 게리 무어보다 차라리 솔직하게 자신을 까발리고 허심탄회하게 풀어낸 듯한 느낌이다.
 
뭐 이 앨범에도 “Z.Z.Top”의 “Billy Gibbons”를 모셔다가 구색맞추기를 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기븐스는 정통파 블루스라기 보다 아메리칸 록커에 가깝기 때문에 연주의 분위기도 서로 아주 잘 맞는 듯 들린다. “Terri Bozzio”의 드럼도 매우 심플하고 따사롭다. 카멜레온 같은 그의 드러밍이야 워낙에 유명하지만, 이번엔 정말 힘을 빼고 함께 즐기는 느낌이 강하다. 다른 연주자들 역시 그렇고. 단 3일 만에 녹음을 해치운 것이 아주 당연하게 들리는 음악이다. 

굳이 토를 단다면, 음반 후반부로 갈수록 데프 레파드 기타리스트 비비언이 자꾸 보인다는 것인데, 녹음 순서를 알 수 없으니 맘대로 상상해 볼 뿐이다. 아마도 데프의 멜로딕 정교 기타 기운이 녹음 처음엔 자기도 모르게 나오다가 둘 째, 셋 째날에는 옛 기억이 더 새록새록 나서 편하게 쳤을 것이라고 ……

ps. 1
외국 평론가들의 평가나 나의 느낌도 명반 반열에 오를 정도의 음반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비비언 캠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손 가는대로, 맘 가는대로 한 번 따라가며 찬찬히 편하게 감상해 볼 필요가 있을 듯 싶다. 특히 아직도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넘버 원으로 그를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

ps. 2
생각보다 비비언 캠벨의 목소리가 텁텁하면서 매력있다. 록 보컬과 달리 블루스 보컬은 좀 더 감정을 잘 살리는 거친 맛이 필요하니까. 그러고 보면 슈퍼 밴드의 기타리스트들은 노래도 다들 기본적으로 받쳐주는 거 같다. 워낙 노래 잘하는 보컬과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런가???

영진공 헤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