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시 존스와 홍콩무협영화의 관계를 알아보자!

많은 이들에게 좋아하는 홍콩 영화를 꼽으라 물으면 첫 번째로 드는게 “정무문”이다. 그런데 같은 1972년에 개봉했고 제작은 약간 더 빨랐던 영화가 있는데 그게  “철인”(또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다. 둘 사이의 공통점은? … 두 영화는 영화 속에 퀸시 존스 음악을 그냥 가져다 썼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하던 그 시절이라 그랬다고 생각된다. 사실 저작권이라는게 이슈가 된 건 요 몇 년 전이라는 걸 유념하자.

여튼, 이야기의 시작은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9월 NBC에서는 “아이언사이드”라는 제목을 단, 꽤 흥미로운 설정의 TV 드라마 시리즈가 시작된다.(2013년에 리메이크 되었다가 바로 망했다.) 샌프란시스코의 20년 베테랑 형사, Robert T. Ironside가 악당이 고용한 스나이퍼의 총에 맞아 하반신을 쓰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악을 처단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수많은 이들의 도움과 불굴의 의지로 악을 처단하는 … 뭐 수많은 미국식 히어로물 영화와 코믹스에서 뻔하게 나오는 얘기이다. 어쨌든 이 드라마는 1975년까지 시리즈가 지속되었으니 상업적으로도 충분히 인정받은 작품이다.

이 시리즈의 테마 음악을 거장 퀸시 존스가 맡았다. Quincy Jones는 뭐 설명할 필요도 없는, 아시는 분은 다 아시고도 넘치는 아프리카계 미국음악인의 진정한 큰 형님이라 할 수 있겠다. 1933년 생이신 형님은, 재즈 음악가로 특히 뛰어난 트럼펫터 이기도 하고, 팝 음반 프로듀서 / 작곡가 / 편곡자, 영화음악 작곡가 등등 팔방미인 그 자체다.

“아이언 사이드” 테마뮤직, 영화 “킬빌”에서도 들을 수 있다.

그는 전설적인 비브라폰 연주자인 Lionel Hampton의 밴드에서 19살에 데뷔했고, 23살 무렵부터 Dizzy Gillespie 밴드에서 연주자겸 편곡자로 활약을 시작한다. 1964년부터는 할리우드 영화의 스코어 작곡을 시작했고, Sarah Vaughan, Frank Sinatra, Ella Fitzgerald, Dinah Washington 등의 앨범에서 편곡자로 맹활약 했다. 소울과 훵크를 재빨리 흡수하면서 트랜드 리더로 부상했고, Michael Jackson의 “Off the Wall”, “Thriller”, “Bad”와 ‘We Are the World’의 프로듀서로 더 할 나위 없는 명성을 누린다.

그렇다고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활약이 없었냐면 그것도 아니다. 퓨전 재즈의 한 장을 장식한 The Dude, 재즈 힙합이라는 장르를 연 Back On the Block, Q’s Jook Joint 로 재즈의 한계를 확장하였다. 작곡파트너 Bob Russell과 함께 아카데미 영화 주제가와 스코어 부분에 후보가 되면서 아카데미 영화 음악 관련 최초의 흑인 후보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듯 퀸시는 재즈로 경력을 시작, 훵크와 소울, 팝, 힙합을 아우르는 음악 장르에 라이브 무대와 음반, 스크린을 오가며 매체를 가리지 않고 흑인 음악을 설파해 온 분이다.

중요한 건, 도대체 퀸시 존스 형이 맡은 미국 드라마의 음악이 왜 동시다발적으로 홍콩영화에 차용되었는가하는데 있다. 그 열쇠는 이소룡이라는 존재에게 있다. “그린 호넷”에 1년간 출연하면서 드라마의 인기와 상관없이 Bruce Lee라는 배우는 무술의 대가로 미국인에게 각인되었다. 그런 그가 가라데 선생으로 “Ironside” 1시즌에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다. 출연 시간도 3분여뿐이었다. 그런데 부르스 리의 인기는 바다 건너 그의 출신지 홍콩에서 메가톤 급으로 불어갔던 것이다.

이소룡은 미국서 단역 혹은 조연에 머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에 홍콩으로 돌아가 영화를 찍는데, 바로 “당산대형”이다. 대박인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그가 미국서 출연한 작품들도 홍콩을 휩쓴다. 그 중에 “아이언사이드”도 있었다. 일본 무술 선생이긴 하지만, 당시 미국인들에게 쿵푸, 가라데 등등의 무술은 다 그냥 동양 거였다. 그래서 브루스 리는 진지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한 무술 사범으로 드라마에 등장한다.

중국인의 도시지만, 영국의 소유였던 홍콩에서 미국 TV에 신비로운 무도인으로 등장한 브루스 리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래서 덕분에 “아이언사이드”도 함께 떴다. 그냥 뜬 정도가 아니라 주제가까지 떴다. 오프닝에 등장하는 사이렌 소리를 연상시키는 신디사이저와 관악기와 타악으로 만들어진 박진감 넘치는 곡 전개까지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1981년 일본 부도칸 공연 실황

재즈 뮤지션 시절 퀸시 존스는 브라질 음악에 빠졌었고, 덕분에 다양한 라틴 타악기의 매력을 제대로 이해했다. 동시에 선구적으로 신디사이저를 받아들였던 덕분에 그의 음악에는 기존 클래식 중심의 스코어 작가들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정무문”에서 긴박감 넘치는 이소룡의 모습이 나올때면 퍼커션을 사용한 ‘Ironside’ 테마 음악의 일부가 수시로 등장한다. 나아가 정창화 감독이 홍콩 쇼브라더스 전속 감독으로 활동하며 만들었던 “죽음의 다섯 손가락 (Five Fingers of Death)”에도 그 음악은 수시로 등장한다. “Five Fingers of Death”는 “King Boxer”라는 제목으로도 상영되었고, 홍콩에서는 “천하제일권”이란 제목으로, 한국에서는 “철인”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이 영화는 쿵푸 영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철사장을 다룬다.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아시아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지금 봐도 그냥 재밌다. 다수 잔인한 장면이 있으나, 이 장면은 당시 분장력의 한계로 오히려 재밌기까지 하다. 거칠지만 그래서 힘이 느껴지는 풀샷-클로즈업 샷을 오가는 몽타주 기법은 꽤 박진감 넘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조지호가 철사장을 시전 할 때, 손가락이 벌개지면 등장하는 음악이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 빌 (Kill Bill”에서 우마 서먼이 위험에 맞닥뜨리거나, 중요한 기억이 스칠 때 등장하는 “삐이뾰옹 삐이뾰옹” 하는 음악이 바로 조지호 – 나열이 철사장을 시전하기 시작할 때 등장하는 음악이다. 물론 원곡은 퀸시 존스가 만든 “Ironside’다. 그런데 재밌는 건 영화 “킬빌”에서 쿠엔틴 타란티노가 이 음악을 삽입하며 머리 속에 떠올린 것은 미국 드라마 “아이언사이드”가 아니라 홍콩 영화이자 한국 감독 정창화가 연출한 “죽음의 다섯 손가락” 이었다.

그 이유는 영화 “킬 빌”이 시작할 때, 배급사 로고에 미라맥스 다음으로 신기한 회사 로고가 뜨는 걸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쇼브라더스의 그 유명한 “SHAW SCOPE” 로고가 영화 맨 앞에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쇼브라더스는 “킬 빌”제작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타란티노 감독은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워준 쇼브라더스의 1960,70년대 영화에 대한 오마주의 표시로 영화 앞에 쇼브라더스의 로고를 넣은 것이죠. “정무문”은 골든 하베스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쇼브라더스 제작 작품입니다. 같은 음악이 “아이언사이드”, “정무문”,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모두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의 오마주는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게로 향합니다. 또 한 가지, 타란티노 감독은 자신이 꼽은 10편의 영화 중 하나로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듭니다. 덕분에 이 영화는 2005년 무려 칸 영화제에서 칸 클래식으로 선정되어, 칸 영화제 기간 동안 재상영되었고 정창화 감독의 무대 인사 및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퀸시 존스는 자신의 곡을 무단으로 퍼간 1972년 작품 두 편 어디로부터도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죠.

퀸시횽아는 쿨 가이!

실은 두 작품 모두 퀸시 존스가 드라마 “아이언 사이드”에 넣었던 스코어 트랙을 그대로 쓴 것은 아닙니다. 당시로선 그 음원을 구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었겠죠. 그래서 홍콩에서 재녹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오리지널보다 훨씬 더 화끈한 음악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퀸시 존스는 특유의 완벽주의 때문에 절대로 한 곡에서도 내지르기만 하지 않거든요. “Ironside”도 초장에 사이렌 소리를 필두로 냅다 내지른 후, 바로 전자 피아노와 플루겔 혼, 스네어로 숨을 고른 후에 다시 관악이 터지며 완급을 조절합니다. 그런데, 이 곡을 연주하는 홍콩 연주자들은 다릅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 오프닝 시퀀스 1분이 모두 퀸시 존스의 곡을 그대로 가져온 건데요, 처음부터 관악과 심벌 소리로 끝까지 내지릅니다. 사실 1970년대 류복성 아저씨의 “류복성과 신호등”을 포함해서 몇 장 없는 한국 재즈 음반을 들어봐도 비슷한 현상이 보입니다. 미국 재즈의 스탠더드를 연주하고 있는데, 원곡에서 들을 수 있던 풍부한 소리는 다 사라지고, 직선적이고 공격적인 음악이 되는거죠. 이건 연주자와 편곡자가 달라서이기도 하고, 녹음 기술의 한계로 보이기도 합니다.

향숙이의 추억!

“죽음의 다섯 손가락”의 경우에도 원곡이 가진 풍부한 전자악기와 베이스 사운드를 살리기에는 홍콩의 녹음 기술이 그닥 뛰어나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덕분에 좀 더 화끈한 음악이 된 장점이 있었다고 봐야죠.  퀸시 존스는 훗날,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오마주를 바친 타란티노 덕분에 “Kill Bill”의 OST에 “Ironside”를 실으며 저작권료를 챙길 수 있었답니다. ^^

그러니까 세줄로 요약하자면,

  1. 퀸시 존스는 전혀 의도치 않게 홍콩무협영화에 자신의 음악을  증정(?)
  2. 그 결과 이소룡이라는 시대의 맹주가 보여주는 멋진 액션을 음악으로 뒷받침하고,
  3. “죽음의 다섯 손가락”이라는, 아시아 영화 최초 미국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쿵푸 액션 영화의 뒷배를 확실히 봐준 셈이 되었다.

끝.

“철권을 가진 사나이”, 무릇 짬뽕에는 물을 타지 말지어다

 

 


 


 



 


 


 


철권을 가진 사나이 (The Man With The Iron Fists, 2011)


 


아빠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나는 아들내미, 업소에 일하는 여친을 빼내려고 닥치는대로 돈되는 일을 받았다가 두 팔이 잘려나가는 대장장이, 중국 술집에서 음탕하게 놀고있는 정체모를 배 나온 유럽 아저씨.


 


이들 삼인방이 펼치는 정의와 복수의 액션 활극. 과장된 액션, 피와 살이 난무하는 B급 취향이 흘러 넘쳐 강을 이루고 있는 지극히 타란티노 형님스런 영화다. 그런데 감독, 각본, 조연까지 RZA라는게 소소한 함정이라는 거.


 


못하는 게 없는 힙합 용사 르자(RZA)와 더불어 루시 리우, 러셀 크로우, 몸짱 레슬러 형님 바티스타 등 화려한 출연진은 나름 눈을 즐겁게 하지만 정작 영화는 긴장감도, 시원함도 없이 왠지 고무줄 늘어난 빤스처럼 축축 처지기만 한다. 등장 인물들의 갈등을 한껏 부풀려서 마지막에 한방에 터트리는 풍선장치 역시 시원찮기는 마찬가지.


 


 


 





사무라이와 힙합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요소를 성공적으로 비벼놓은 명작


 


 





너무 젊은 나이에 하늘로 올라가신 누자베스 형님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앞서 일본 애니메이션 ‘사무라이 참프루’에서 선보였던 걸작 힙합활극이 있기에 이러한 아쉬움이 더 커진다.


 


힙합 프로듀서 누자베스가 참여했던 ‘사무라이 참프루’는 사무라이에 힙합을 접목시키며 매우 독특하고 역동적인 작품을 창조해내었다. 특히 감독은 누자베스의 음악을 그냥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는데 힙합의 비트와 합을 이루는 액션은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마찬가지로 ‘철권을 가진 사나이’에서도 힙합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르자가 참여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무라이 참프루’에서와 같은 효과는 발휘하지 못한 채 힙합의 비트는 허공으로 휘발되어 버린다.


 


타란티노가 어떤 생각으로 르자를 참여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경음악 곳곳에 힙합을 깔아놓은 것을 보니 분명 무협 영화에 힙합적인 요소를 첨가한 하이브리드 짬뽕밥을 만들려 했던 것 같지만 그 결과물은 물 탄 짬뽕마냥 밍밍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래도,


 


 


 




 






 

 

포스터는 정말 주옥같구나~!


영진공 self_fish


 


 


 


 


 


 


 


 


 


 


 


 


 


 


 


 


 


 


 


 


 


 


 


 


 


 


 


 


 


 


 


 


 


 


“짝패”, 류승완의 성공적인 자기 고백극






영화를 보는 내내 들던, 그 익숙한 느낌. 익숙한 장면. 자신의 정체성을 액션키드로 상정했던 류승완 감독답게, 『짝패』는 그가 이제껏 보면서 좋아하고 열광했을 영화들의 흔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정필호(이범수)를 호위하는 네 명은 보스를 호위하는 주먹이 아니라 주군을 호위하는 검객이며, (아마도 『킬빌』을 보고 시도할 용기를 냈을) 정필호가 자주 접대하던 공간이자 마지막에서 액션이 벌어지는 장소는 바로 그냥 룸싸롱이나 그저 비싸기만 한 고급식당이 아니라, 호화 ‘객잔’이다.온성 시내 한복판에서 인라인 패거리 – 힙합 패거리 – 야구부 – 하키부 – 여고생 무리 등등 온갖 잡것들과 뒤엉켜 싸우던 씬의 이석환(류승완)과 정태수(정두홍)의 버디액션은, 특히 간판과 철골구조물, 옆건물 내 소화기 등 온갖 주변 소품들을 이용한다.

손기술은 별로 없이 발차기, 그 중에서도 특히 돌려차기와 돌려서 내려찍기로 주로 구성된 액션씬의 동작은, “이소룡”이 “장철” 영화들을 보며 “발을 쓰란 말야, 발을!”이라고 외쳤다는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지방이라 해도, 아니 지방이기에 더욱 카지노 및 관광특구 개발과 이에 연관된 지방 조폭조직이라면 밀매한 러시아제 권총 같은 게 나올 법도 한데, 이 영화는 우직하게도 복고적인 액션영화 스타일을 밀어부친다. 고작해야 사시미 칼이 나오나. 그러나 핵심적인 액션씬들은 모두 전통적인 액션영화의 동작과 무기를 구사한다.

연회장에 쳐들어가는 두 사람이 준비한 무기는 고작해야 각목인데, 각목의 모양새부터 이들이 이 각목을 사용하는 동작은, 현대물에선 아무래도 자주 등장시키기 어려웠을(그래도 결국 막판에 결정적으로 등장한다, 아마도 이때를 위해 일부러 아껴둔 것이리라.) 장검 무술의 동작과 비슷하다. 연회장에서 저 이범수의 호위 무사들은 심지어, 차이나 칼라의 중국식 옷을 입고 있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들을 돌이켜 보노라면 그는 사실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대단히 크고, 공들인 양식적 아름다움과 자신만의 영화적 스타일 확립을 위한 시도를 영화마다 해왔다. 『짝패』에선 유독 그러한 시도가 눈에 확 띄는데, 카메라가 상당히 느린 속도로 인물들을 따라가 사운드와 그림자만으로 난투극을 ‘들려주’는 오프닝부터가 꽤 인상깊다.

영화 중반까지 장면전환에 쓰이는 각종 기법들, 예컨대 팬을 이용한 시간대 전환과 심지어 화면 분할을 이용한 장면 전환 등은 영화의 흐름을 대단히 긴박하고 빠르게 만들어준다. 게다가 각 액션씬들의 그 각각의 특징들이란. 많은 액션씬들이 주로 발차기에 집중된 것은 사실이지만, 각 액션씬들은 저마다 성격을 다르게 놓고 그 각자 다른 분위기를 훌륭하게 이끌어가고 있다.

가령 위에서도 언급한 사거리에서 집단 싸움씬은 주위의 도구들과 지형을 적절히 이용하는 성룡영화의 영향을 보는 것같은 반면, 연회장에 두 사람이 쳐들어가서 싸우는 시퀀스의 경우 마당에서는 전통적인 무협영화의 야외 검투씬을 보는 듯하다. 좁고 긴 골목방에서는 무협영화보다는 짧은 칼과 주먹으로 싸우는 장철영화를 보는 듯하고, 마침내 도달한 연회장 홀에서의 장면은 권법영화를 보는 듯.


사실 액션씬은 공간을 한정시켜 놓고 그 안에서 카메라를 싸우는 인물들 가까이에서 잡는 게 거의 정석이긴 하지만, 그가 묘사하는 액션씬들은 유독 협소하고 제한된 공간 내에서 이루어지곤 한다. 그것이 투견장이었건, 무도장이었건, 사각의 링 안이었건. 『짝패』에서의 액션씬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언급한 사거리 액션씬은 야외씬이긴 해도 좁디좁은 사거리이며, 마지막 연회장은 마당에서 시작하여 마치 문으로 파티션이 된 듯한, 길고 좁은 골목과도 같은 방들을 통과해야 한다. 미장센과 양식적 아름다움에서 스타일을 찾고자 하는 류승완의 야심은 확실히 이 씬들에서 시도만큼이나 빛을 발한다. 문이 촤라락 열리는, 이 씬 초반에서 그 깊은 공간감은 영화 문외한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 분명하고. 사실 ‘양복 입고 사시미 든’ 조폭 이미지를 싫어하는 편인데, 이 장면에서 사시미를 든 사내들 및 이들과 싸우는 두 사람의 씬은 굉장히 공들여 연출된 액션의 양식미가 느껴져 좋았다.

이건 사실, 위에서 “장철”영화를 보는 듯하다고는 했지만, 권법영화와 주먹싸움과 장검을 쓰는 무협영화의 영향 모두가 마구 짬뽕되어 있다. 적의 손목을 잡고 적의 칼을 이용해 다른 적을 베는 것도 그러하며, 반면 이들의 칼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인물과 인물간 사이 공간도 더 가깝다. 싸움의 시작에서 이들은 상을 이용해 칼을 막기도 하고.

어느 평론가는 “짝패”를 ‘류승완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영화’라고 평했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싸구려고 예술이고 온갖 액션, 무협영화를 가리지 않고 섭렵해온 영화광 출신의 감독이 만드는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온갖 갈래의 액션 및 무협영화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한데 모여 있는 이런 영화는, 사실 타란티노라 해도 만들 수 없다.

단순히 공간의 소품 배치와 카메라 앵글뿐만 아니라, 인물의 움직임까지 모두 포함하여, 간만에 시각적 즐거움을 한껏 안겨준 영화이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전의 그 어떤 영화들보다도 ‘류승완’은 누구인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영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진공 노바리

“바스터즈”,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천재성의 재확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동시대의 몇 안되는 영화 감독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대중 영화에 있어 2시간에 걸친 일관된 내러티브의 틀이 반드시 필요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자신의 초기작들을 통해 이를 증명해낸 장본인이 바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었습니다. 영화 고유의 형식을 찾거나 조금이라도 새로운 영화 문법을 찾기 위한 형식 실험은 지금 이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이전과 다른 형태의 영화 형식을 선보이는 동시에 대중 영화로서 일반 관객들의 호응까지 모두 얻어내고 있는, 최근 20년 간 가장 성공적인 영화인으로 쿠엔틴 타란티노를 꼽는 데에 주저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작품들의 성공에는 새로운 형식만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기술적인 면에서 흠 잡을 데가 없는 탄탄한 연출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완전한 난장 영화를 선보이겠다고 해놓고선, 막상 만들어진 <데쓰 프루프>(2007) 를 보면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과 달리 그 꼼꼼하신 성격을 쉽게 버리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70년대의 팝 컬처나 홍콩과 일본의 무협 영화들에서 끌어들인 자양분들을 새로운 관객들에게 선보이며 충분한 호응을 얻어낼 수 있었다는 점들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특징 짓는 요소들이 되고 있습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완전한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진짜 천재는 아닐런지 모릅니다. 아카데믹한 교육 과정을 거치지 않았던 덕에 기존의 영화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그가 자신의 작품들에서 선보여온 새로운 취향의 컨텐츠들 역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지역적으로나 계층적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을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와 재현해낸 것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반 관객들의 눈높이에서 벗어난 책상 머리 위의 천재 보다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같이 – 여전히 모든 관객들과는 아닐지라도 – 영화 관객들의 입맛에 적절히 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경지로 선도해나가는 재능이 사실은 그 유효성 면에서는 훨씬 나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라인드 하우스>(2007) 프로젝트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새 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Inglorious Basterds)>은 무엇보다 1940년대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는 2차 대전 영화라는 점, 그리하여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할 때 완전히 새로운 컨텐츠를 선보이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문제는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롭다 할 수 있는 내용들이 일반 관객들의 시선에도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생각됩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은 스타 캐스팅을 마다하지 않는 대중영화 감독입니다. 데뷔작부터 줄곧 함께 해온 배우들도 있지만 <펄프 픽션>(1994)의 브루스 윌리스나 <킬 빌>(2003 ~ 2004) 시리즈의 우마 서먼과 같이 개봉 초기에 많은 관객들을 상영관으로 모아줄 수 있는 동시에 작품의 완성도에 공헌할 수 있는 스타들을 기꺼이 출연시키곤 했습니다. 관객들의 시선에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요소는 역시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다는 사실입니다. 스스로 꽃미남 배우에서 그치지 않고 좋은 연기자로 거듭나고자 노력해온 브래드 피트의 이력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새 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서로가 윈-윈하는, 마다할 이유가 없는 선택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에서 한 명의 배우가 영화 전체를 이끌어 가는 방식은 <킬 빌>에서의 우마 서먼이 유일했고 나머지 작품 속에서는 수많은 배우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제 역할을 마친 후에는 뜬금없이 죽어버리곤 해왔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브래드 피트의 역할도 작품 전체를 혼자 이끌어가는 식이 아니라 여러 출연진 가운데 한 명 – 일종의 관찰자이자 감독과 관객들의 대리인이기도 하지만 – 에 불과합니다. 브래드 피트의 몫은 <트로이>(2004)나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가 아니라 코엔 형제 감독의 <번 애프터 리딩>(2008)에서의 비중 정도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프러덕션 초기 캐스팅에는 마이클 매드슨과 팀 로스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만, 중간에 판이 커지면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들이 빠지고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수많은 유럽계 배우들이 출연하는 다국적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는 최근 헐리웃 영화에도 자주 출연하고 있는 다이앤 크루거를 비롯해서 다니엘 브륄, 틸 슈바이거, 오거스트 딜, 미카엘 파스벤더와 같은 특히 주연급 독일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고 여기에 멜라니 로랑, 줄리 드레이푸스, 크리스토프 왈츠, 그리고 일라이 로스 감독과 마이크 마이어스까지 배역의 비중에 상관없이 등장해 허구에 불과하긴 하지만 히틀러와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의 수뇌부들을 파리 시내의 영화관 안에서 화형에 처해버리는 이 신나는(?)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게릴라 조직 ‘바스터즈’를 전면에 내세웠던 전쟁 영화가 어찌하여 영화관 안에 나치 일당들을 몰아넣고 유태인들의 원혼을 달래는 불놀이 영화로 바뀌게 되었는지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과 제작자인 와인슈타인 형제에게 물어봐야 할 일이 되겠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 참여한 수많은 배우들 중에서 깐느 영화제가 남우주연상을 선사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 크리스토프 왈츠는 유태인 색출 전문가 출신의 나치 경호대장 한스 란다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악역이긴 하지만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는 히틀러나 괴벨스 보다 오히려 비중이 높은 인물로 등장하고 있지요. 한스 란다는 나치의 일당으로 최일선에서 유태인을 잡아들이는데 앞장 섰던 전범이면서도 나치 독일의 패전이 임박하자 연합군 측에 기밀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미국 시민권 등을 얻어 신분을 숨긴 채 목숨을 부지해온 진짜 ‘불명예스러운 바스터즈’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기록에 남겨진 역사적 사실 보다는 나치 독일에 대한 악감정을 노골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상 속의 역사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구에 불과하지만 인화성이 높은 350개의 영화 필름을 이용해 극장 안에 모인 나치 수뇌부를 불태움으로써 2차 대전을 끝낸다는 설정이나 연합군의 계획에 협력하는 조건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호의호식하고자 하는 뻔뻔한 인물 한스 란다의 이마에 나치의 상징을 칼로 새겨넣는 마지막 장면은 2차 대전과 나치의 유태인 학살 문제를 바라보는 영화인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각(또는 심판하고 싶은 욕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깐느가 크리스토프 왈츠에게 남우주연상을 시상한 것은 4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저수지의 개들>(1992)에서 팀 로스의 활약을 연상케 하는 탁월한 연기력을 인정해서만이 아니라 영화제가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 담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의도에 동조해준다는 의미, 그리하여 이 영화가 전세계 극장에 걸려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봐주기를 바란다는 깐느의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후 50년을 넘기면서 전범 국가로서의 오명에서 벗어나고자 애쓰고 있는 최근의 독일 입장에서는 동조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프랑스인의 시각을 반영하는 깐느에서라면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는 선택을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러닝타임은 152분으로 상당히 긴 편입니다. 영화가 들려주고자 했던 이야기의 분량을 고려했을 때 반드시 이 정도의 긴 러닝 타임이 필요했느냐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쪽입니다. 누군가 이 영화를 2시간 분량으로 줄여보라고 한다면 몇 군데 지나치게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던 씨퀀스를 대폭 줄이거나 또는 완전히 들어내더라도 전체 흐름에는 지장을 주지 않을 부분들을 충분히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장만옥이 출연하는 장면도 있었으나 그나마 편집에서 잘려나가는 바람에 일반 관객들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는 – DVD 부록에서 확인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 노릇이 되고 만 걸 보면,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가졌던 원래의 욕심은 152분 보다도 훨씬 더 크고 길었다는 점입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씨퀀스들 – 관객에 따라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길고 긴 대화 장면들 – 이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번 영화에서는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 영화의 컨벤션에 매이지 않는 스타일 상의 자유분방함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영화의 강점이긴 하지만 이번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에서 만큼은 누군가가 자제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루함을 안겨주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코미디입니다. 근사한 폭력 미학을 새롭게 설계하는 측면도 있긴 하지만 그의 영화에 기반이 되어주는 코믹함을 배제한다면 현재까지 일궈왔던 관객들의 호응도 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도 코믹한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긴 하지만 그다지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필요한 만큼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지는 못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은 이제까지 다뤄보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에서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독창성과 자유분방함을 잘 살려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작품인 동시에 그것이 적절히 통제되지 않았을 때에는 다소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보여주는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리 멀지는 않지만 1940년대 나치 독일과 유럽 유태인의 잔혹사에서 건져낸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새로운 도전이 유태계 헐리웃 영화 제작사와 프랑스 영화계를 넘어서 전세계의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공감과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런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놈놈놈” OST의 역사를 알려주마!


1. 탄생


이 곡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64년에 니나 시몬(Nina Simone)을 통해서였다.

Nina Simone이 누구냐고?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이면, 프랑스 영화 “니키타”의 헐리우드 리메이크작 “니나 (Point of no return)”에서 주인공 니나(브리짓 폰다 분)가 즐겨듣던 노래를 기억하시면 될터이다.

최고의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하나이며 흑인 인권운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던 바로 그 분이 오리지널이시다.


[가사]
Baby, do you understand me now
Sometimes I feel a little mad
But don’t you know that no one alive
Can always be an angel
When things go wrong I seem to be bad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그대여, 나를 이해할 수 있나요,
가끔 난 미쳐버린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항상 천사처럼 살 수는 없잖아요,
주변의 일들이 잘못될 때면 난 못난 사람이 되어요,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게 해 주세요.

Baby, sometimes I’m so carefree
With a joy that’s hard to hide
And sometimes it seems that all I have do is worry
Then you’re bound to see my other sid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그대여, 난 가끔 분별 없이 행동한답니다.
기쁜 일이 있으면 숨기지 못하지요,
그리고 때로는 종일 걱정만 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면 그대는 나의 다른 면을 보게 되지요,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If I seem edgy I want you to know
That I never mean to take it out on you
Life has it’s problems and I get my share
And that’s one thing I never meant to do
Because I love you
내가 신경질을 부릴 때,
그건 절대 그대에게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알아줘요,
삶에는 고난이 있고, 나에게도 마찬가지죠,
사랑하는 그대여,
내가 절대 하고 싶지 않은 일이 그거랍니다.

Oh, Oh baby don’t you know I’m human
Have thoughts like any other one
Sometimes I find myself long regretting
Some foolish thing some little simple thing I’ve done
But I’m just a soul whose intentions are good
Oh Lord, please don’t let me be misunderstood
아, 그대여, 나도 그저 인간일 뿐,
다른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하죠,
가끔 난 내가 저지른,
멍청한 행동들을 후회하며 긴 시간을 보내죠,
하지만 나의 내면은 착한 영혼이랍니다.
하느님, 나를 오해하지 않도록 해 주세요.

2. Animals (1965년)

그리고 1년 후 이 노래는 Animals에 의해 다시 불려진다.

강렬한 비트로 전개되는 기타와 오르간의 리프, 그리고 에릭 버든 특유의 거친 보컬이 담긴 이 노래는 커다란 히트를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Animals의 버전이 이 노래의 오리지널이라고 알려지게 된다.

Animals는 또 누구냐고?
“House of the rising sun”이라고 들어보셨는가 몰라 …

이후 여러 뮤지션들에 의해 불려지던 우울하면서도 진솔한 분위기의 이 노래가,

세상에나 … 어느 날 뜬금없이 완죤 섹쉬한 댄스 뮤직으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으니,

두둥, Santa Esmeralda의 등장 되시겠다.

3. Santa Esmeralda (1977년) 그리고 Kill Bill (2003년)

아리따운 세 아가씨와 한 명의 남자로 이루어진 라틴 디스코 그룹 Santa Esmeralda.

1977년에 혜성과 같이 … 아니 말 그대로 느닷없이 등장한 이들은,
당시 발표한 LP판의 한쪽 면을 몽창 이 노래의 댄스버전 리메이크 한 곡으로 채워놓았고,  
이 곡은 세계적인 대박을 터뜨린다.

또한 같은 앨범의 다른 면에 수록되어있는 “You’re my everything” 역시 지금도 애청되는 곡 중 하나이다.


Santa Esmeralda는 그룹의 이름이고 리더인 저 남정네의 이름은,
 르로이 고메즈 (Leroy Gomez) 되게따 …

그리고 25년이라는 어마어마한 세월이 흐른 어느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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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한 영화의 마지막 씬에 삽입이 된다.

바로 이 장면,
오렌 이시이와 베아트릭스의 사생결단 결투씬 …

그러타.
이 노래는 25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멋지게,
쿠엔틴 타란티노의 야심작 “Kill Bill”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4. 제2의 전성기

이 노래의 각종 리메이크 버전들이 쏟아져 나오게 된다.

최고의 재즈 기타리스트 중 하나인 Al Di Meola가 참여한 버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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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ndi Lauper 버젼

Cat Stevens 버젼

Joe Cocker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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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악마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다.

그리고 2008년의 한국에서,
이 노래는 기어코 “악마의 음악”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이 소박하고 미약하였다.

시작을 알고 싶으면 여기를 누지르시라.

그리고 이렇게 피어난 작은 싹은 …
스멀스멀 자라나 결국 악마의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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끗.


영진공 이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