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델토로: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산업인력관리공단>, <영진공 66호>

산업인력관리공단
2007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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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un's Labyrinth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화려한 비주얼에 취해
한동안 잊고 있었다. 판타지는 현실의 고통, 세계와 세계의 충돌과 그로 인한 파괴와 재생의 순환, 그 과정에서 유혹받는 인간의
나약함과 악과 타락을, 그리고 시험에서의 승리를 은유적으로 다룬다. 판타지는 당연히 잔혹하고 격렬할 수밖에 없으며, 대부분의
판타지에서는 그러므로, ‘전쟁’이 빠질 수 없다. 판타지는 원래 현실에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을 견디게 해주는 힘을
선사해주는 존재이다. 때로 그래서 판타지는 현실도피적이라는 비난을 받곤 하지만, 만약 그마저도 없다면 우리는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판타지가 현실도피적인 게 아니라, 현실에서 ‘너무 쉽게’ 도피하는 사람들이 판타지를 남용하는 게 문제인 게
아닐까. 판타지의 본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퇴행적 핑계로 후퇴하지 않는, 간만에 훌륭한 판타지 영화를 봤다. 하지만 난 확실히
어른인가보다. 오필리아가 요정나라의 공주로 갔으니 기뻐해야 마땅할텐데, 영화 본지 하루가 지난 지금도 가슴이 이토록 아프며
슬픔의 눈물이 나는 걸 보면.

영화의 배경인 1944년의 스페인은, 스페인 혁명이 패배하고 혁명은커녕 (부르주아적이라며 혁명세력에게 비판받았던) 공화국
정부도 지키지 못한 채 프랑코의 독재정권에 권력을 내주었던 때다. <랜드 앤 프리덤>과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혁명의
공기를 숨쉬며 자신의 존엄성을 걸고 일어났던 사람들은 이제 정부의 군대에게 쫓기며 산 속에서 생활하는 게릴라(빨치산!)가 되어
있다. 오필리아의 모험은, 만삭의 어머니와 함께 새아빠인 (프랑코 군대의) 비달 중위가 주둔해있는 기지로 이사오면서 시작한다.
어른들의 절망과 슬픔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느껴지기 마련이고, 게다가 이 아이는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이다. 새아빠는 냉정하고 무서우며 엄마는 몸져누워서는 오필리아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고통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 외로운 아이는 부대의 안살림을 도맡아하는 메르세데스에게서 아파 누운 어머니가 줄 수 없는 또다른 모정을
느끼지만 메르세데스와 온전히 교감할 수는 없다. 그 와중에 요정의 초대를 받고 나무요정 판을 만나며, 자신의 원래 신분 –
요정나라의 공주 모아나 – 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너무 오래 살았기에, 요정나라로 돌아가려면 세 가지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M_ more.. | less.. | 영화는 크게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스페인 내전 직후라는 정치적 현실에서 근거한, 게릴라의 활동과 비달 부대의 토벌 작전.
비달의 부대에서 일하는 메르세데스와 부대에 출입하며 부상자와 오필리아의 어머니를 돌보는 의사 역시 실은 게릴라들을 돕고 있다.
또 한 축은, 이 살풍경한 환경에서 도저히 적응하지 못한 채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그리하여 환상의 세계로 빠져드는
오필리아의 내밀한 여행. 메르세데스나 오필리아는 각자 비밀을 가지고 있고 서로에게 호감과 애정을 느끼지만 그 비밀을 온전히
소통하지 못한다. 오필리아에겐 게릴라니 전쟁이니 하는 게 도저히 이해 안 갈 어른들의 고통이며, 메르세데스에겐 요정과 판의
이야기란 아이들에게나 존재하는 동화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저 각자의 비밀의 흔적(메르세데스의 조심스러운 행동,
오필리아가 그려놓은 마법의 문)을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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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원래 정체는 요정나라의 공주 모아나. 혹은 혁명의 노동자.

나는 이 영화가 혁명 실패의 슬픔과 고통을 은유한다고 생각한다. 계급이 사라지고 모두가 서로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며 새로운 희망을
품었던, 실제로 혁명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스스로 파시스트에 맞써 싸우고 있었던 당시 스페인 국민들에게 혁명의 실패가 주었던
암울한 고통과 슬픔은, 자신의 힘으론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통스러워 할 수밖에 없는 오필리아의 절망적인 상태와 연결된다.
게릴라들과 그들을 돕는 사람들, 즉 메르세데스와 의사선생, 그리고 토벌작전 중 잡혀온 말더듬이(‘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고문에 의해 동지를 팔아넘길 말만을 강요당하는 민중, 그러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매우 상징적인 캐릭터) 등의 이야기를 꽤
자세하게 전개시키고 있으며, 스페인 내전의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이
이전에 연출했던 영화 <악마의 등뼈> 역시 스페인 내전 당시 의용군(이자 게릴라) 부모를 둔 아이들의 이야기였음을
기억한다면, 이 영화가 오필리아의 암담한 현실을 그리기 위해 스페인 내전을 그저 끌어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 더욱 확연해진다.
오필리아의 죽음은 곧 혁명의 실패를 의미하지만, 우리 모두 알다시피 현실에서의 오필리아는 죽었다 해도 사실은 훌륭하게 미션을
마치고 – 그것도 가장 어려운 미션을 자신의 희생으로서 지혜롭게 통과하고 – 요정나라의 공주로 돌아간다. 그녀는 웃으며 죽을 수
있었다. 오필리아의 주검은 안고 눈물을 흘리는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가 남긴 웃음의 의미를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이가 더 들면
알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 표면적으로 혁명은 실패했지만, 혁명은 결코 끝나지도 실패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아이들은
어른들의 선생님이란 말은 과연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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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관문의 수문장. 영웅신화와 판타지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특징을 골고루 가진.

어린 남동생을 지키기 위해 공주 따위 안 돼도 좋고, 그래서 ‘뭐든 무조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는 (노예의) 맹세를
깨고 아가를 지키겠다는 자신의 주관을 실천하고서는 비록 뭣같은 새아빠에게 총을 맞는다 해도, 바로 그 순간이 요정나라의 공주가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한 것이었음이 드러날 때,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토록 자신이 싫어하고 증오하는
대위일지라도 그의 아가는 소중하게 품어안고, 그 부대에 있는 어린 소녀를 목숨을 걸고 지키려는 메르세데스의 선택과 행동은 정확히
오필리아의 선택 및 행동과 겹친다. 혁명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아무리 친부인들 독재자의 하수였던 그의 이름조차 아이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는 것, 애초에 누구의 핏줄이건 혁명의, 자유의 가치를 주고 희망을 꿈꾸게 하는 것. 지금 흘린 피는 비록
외견상으로 헛된 죽음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바로 그것이야말로 요정나라의 공주로 돌아갈 수 있는 어려운 관문. 혁명은 언제나
‘내일’을 꿈꾸고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아가는 길이다.

메르세데스 언니 만만세. 혁명의 주체는 역시 여성. 허릿춤에 감춰둔 감자깎는 칼의 위대함. 그럼에도 역시나 영화의 맨 첫
장면(이자 끝부분의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메르세데스의 눈물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 어른이라서, 더없이
완성된 성인 어른이라서, 저미는 슬픔을 그저 조용한 흐느낌으로 삭일 수밖에 없었던 메르세데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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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인력관리공단 조사1부 부장
노바리(invinoveritas@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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