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왠지 그녀들이 전부 나 같다.


제가 이렇게 펑펑 울다니요. 아줌마가 되어서 설움이 많아졌는지, 눈물이 많아졌는지. 암튼 펑펑 울었습니다. 이해할 수 있어서 내 설움에 울고, 너무 안 되었어서 연민에 울고 그랬습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바로 보여지는 핸드볼 경기. 예닐곱살 쯤 된 아이가 경기장으로 달려들어오고, 골키퍼를 보던 수희(조은지)가 당황을 합니다. 미숙(문소리)이 손짓해 아이더러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고, 동료 중 하나가 아이를 데리고 나갑니다. ㅎㅎㅎ 저 이 장면부터 울었어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경기해야 하는 문소리 처지에 울고, 중요한 경기 중에 뛰어드는데도 배려해 주는 동료들 배려에 울었습니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 ‘핸드볼 큰잔치’라는 현수막 위로 텅빈 객석과 터지는 분수불꽃. 울던 참에 더 울었습니다.


‘아줌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저도 어느새 저를 ‘아줌마’라고 표현하고 있구요. 가끔 ‘제3의 성’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고,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억척스러운’, ‘앞뒤 분별이 없는’, ‘무식한’, ‘세상물정 어두운’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지요. 저의 스무살 시절. 아르바이트해 모은 돈을 가지고 처음으로 전자기타와 앰프를 사러 낙원상가에 간 날. 부족한 예산에 앰프 값 때문에 고민할 때 악기상 청년이 권한 것이 ‘아줌마 앰프’라는 것입니다. 일정한 상표도 없고, 베이스 건 기타 건 아무 거나 꽂아도 되는 앰프. 그것이 ‘아줌마 앰프’라니 참 지금 생각해 보면 참 기가막히게 잘 어울리는 조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바로 아줌마거든요. 이름도 무엇도 없고, 뭐든지 다 하긴 해야 하는 존재.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나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아줌마’라는 계급이 됩니다. 경제적 여유가 조금 있건, 없건, 남편에게 사랑을 받건, 못 받건, 대학을 나왔건, 말았건, 직업이 있건, 없건, 그냥 ‘아줌마’가 됩니다. ‘사모님’이라는 약간의 예외들이 있긴 하지만. ‘아줌마’는 그 자체로 계급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약간 있는 혜경이나, 빚과 생활고에 쪄든 미숙이나, 불임 때문에 고생하는 정란이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십시오. 세계적인 선수이건 말건, 유명팀의 감독이건 말건, 남편의 사랑을 진하게 받는 국밥집 사모님이건 말건, 다, 그냥, 아줌마입니다. 나도 아줌마가 되어서 그런지 왜 어느 아줌마 하나 짠하지 않은 아줌마가 없습니다. 그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역시 아줌마가 되고 나니 오지랖이 넓어지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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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최고에 올랐건, 금메달리스트이건 간에 그들은 '아줌마'입니다.


미숙. 아이고. 경기 끝나고 어떻게 했을지. 화면 속이라도 들어가서 남편 파산 신청하고, 이혼하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만. 그 또한 쉽지 않겠지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는 혜경의 처지도 그만그만 이라는 것을 보면요. 전 혜경이 아이와 일본어로 소통하며 안아주는 장면에서도 울었습니다. 아무리 경제력이 있어도, 또 미숙과 달리 챙겨주는 친정엄마가 있어도, 그저 혼자 몸으로 힘들게 애를 키우는 이혼녀일뿐인걸요. 돈 벌겠다고 타지까지 가서 -애 아빠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서 애를 맡기고 키우느라 자신의 아이와의 소통마저 일본어로 해야하는 그녀의 삶은요. 에효. 구질 구질 애들 키우느라 고생 바가지를 해도, 또 애 안생기는 정란은 이들이 부럽겠지요. 그래도 그들은 정란이 못해본 국가대표 생활을 지겹도록 해 본 이들이고, 그녀가 못 낳은 아이를 하나씩 꿰찬 여자들이니까요. 에효. 대관절 애가 뭣이관데.


근데, 아줌마한테만 그렇게 공감이 가는 게 아닙니다. 어린 선수들부터 낀 세대 수희까지. 그들 안에 제가 있고, 또 저 안에 그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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낀 세대 수희. 롤모델도 동기도 없는 그녀가 안 쓰럽습니다.
일단 수희요. 수희는 ‘낀 세대’입니다. 기라성 같은 핸드볼 선수들로 호령하던 왕년의 혜경과 미숙과 같은 세대는 아닙니다. 그들과 같이 뛰어본 경험이 있고, 그들로 부터 배운 세대지요. 그리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장보람과 같은 아랫세대와 뛰어야 하는 세대입니다. ‘대안 없는 골키퍼’라는 수희의 포지션도 참 상징적입니다. 수희는 낀세대라는 것만으로도 ‘롤 모델도 없고, 자신이 롤 모델도 될 수 없는’데, 골키퍼라는 포지션은 그 위상을 더욱 강화합니다. 동기는 필드에 없고, 그렇다고 자기가 일인자인 것도 아니고. 참으로 막막한 세대입니다.

제가 입사할 때 저희 부문 공채입사자 중 여자는 저 하나였습니다. 그때는 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는데, 회사 생활 하면서 느꼈던 그 적적함이 수희를 보면서 떠올랐습니다. 그래도 윗 선배들한테 참 싹싹하게 하면서 진심으로 대하고, 배려심 많은 수희를 보며. ‘그래 니가 나보단 백배 낫다. 수희 화이팅!’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보람의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물론 착각이었습니다마는) 입사 초 저는 제가 대단한 인재일 거라는 생각을 했었고, ‘월급쟁이로 시작을 했으면 별을 따야지’라는 성공할 수 있다는 야심도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갖고 있었습니다. 헌데, 입사하고 보니 현실은 좀 이상했습니다. 제가 입사한 직후, 첫번째 여자 임원이 탄생을 했습니다. 선망의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얼마 후 녹취록을 작성하러 들어간 임원회의에서 제 우상이 남자임원들에게 완전 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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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애들은 근성이 없어 vs 선배처럼 살기는 싫어요

으로 밟히는 것을 보고는 거의 절망을 했지요. 그녀의 평소의 고군분투는 내가 꿈꾸는 임원의 모습과 달리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도 알아버렸구요. 왁왁대는 김혜경과 애나 끌고 다니는 한심한 미숙을 보았을 때의 그녀의 심정을 알것만 같습니다. “요새 누가 맞으면서 운동해요?”라는 보람의 말도 저는 가슴 절절히 이해가 됩니다. 회사에서 꽤 자리잡고, 높은 자리에 오른 여선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찬찬히 보면 ‘여성성을 완전히 버린 선배’ ,’아첨과 아부가 남자들보다 더 완벽하게 자리잡은 선배’, ‘나 몸하나 망가지는 것 쯤은 신경쓰지 않는 완전 희생형 선배’, ‘후배들 등쳐서 치고 빠지는 선배’들이어서 그 누구도 롤모델로 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진정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불러서 밥을 사주며,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해라’라며 코치해 줄 때, 저는 마음 속으로 ‘아니오 선배. 저는 그렇게 까지 해서 성공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라고 외쳤었습니다. 비주류로 마이너로 취급받으면서도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남은 그 선배들에 비해, 그래도 ‘표면적으로는’ 주류로 인정해 주는 가운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저를 ‘요샛것들은 근성이 없어.’라고 생각했을 것은 당연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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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세대 보다 못한 불안한 뒷세대

현자나 진주의 아줌마 선수들을 무시하는 싸가지 없는 모습도 저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 갓지난 아이를 데리고 혼자 기차를 타고 시댁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기차안에서 아이가 빽빽 울어대고 내가 어쩔 줄 몰라 당황을 하면, 안쓰러워 도와주는 것은 같은 처지의 애엄마들이고, 무관심한 것은 남자들이며, 노골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는 것은 곱고 예쁜 처자들입니다. 애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을 때, ‘애 있으면 다니지 말지’라며 싸가지 없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사람들은 여고생, 여대생, 젊은 20대 초반 여성들입니다.
저는 속으로 “너는 아줌마 안 될줄 아냐?” 하고 욕했지만, 나중엔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나는 저렇게 되기 싫어’라는 두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애기 단속시키는데 애초의 자기의 일이 아닌 남자들이야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약간 불쾌해도 참고 마는 것을 거구요. 간신히 엔트리에 들어와서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현자와 진주 앞에 나타난 아줌마 트리오가 반가울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건재한데, 사는 모습을 보자니 형편없고, 그런데 자신들은 그들보다 실력조차 못하니까요. 그들을 볼 때마다 그들 보다 더 암담한 자신의 미래가 떠오지 않았을까요. 한번도 일인자였던 적이 없는 저는 왠지 현자와 진주를 토닥토닥 두드려 주고 싶습니다.


모든 여자가 다 나 같습니다. 다 이해를 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제겐 너무 완벽한 영화입니다. 미장센이건, 스포츠 장면의 박진감이 부족하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모든 여성의 삶이 박진감 넘치게 보여진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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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한번만 힘빼고 좀 울어주지...울어도 괜찮아.

다만, 저도 엔딩장면 하나만큼은 이렇게 되었었더라면… 하고 욕심을 내 봅니다. 저는 ‘지더라도 울지 않는 거다’라고 말했던 안승필이, 그 잘난척 하던 면상을 가지고 오히려 여자 선수들보다 더 펑펑 우는 것으로 엔딩이 되었으면 어땠을까 합니다. 미숙을, 혜경을, 보람을, 현자를 끌어안고 더 서럽게 무릎꿇고 엉엉 울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제가 원하는 남자들과의 화해와 소통의 방식입니다. ‘우리 울지 않기로 했잖아요’라며 잘난 척을 떠는 것이 본래 못난 남자들의 속성이라 해도 말입니다.


열라 어렵게 영화 보고 몇자 썼네요.
원래는 TV나 보는 아줌마
영진공 라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왠지 그녀들이 전부 나 같다.”의 4개의 생각

  1. 영화는 아직 못봤지만,
    글 공감하면서, 잘 읽고 갑니다.
    이올린에 추천하려고 하였더니 아이디가 없네요;;
    조만간 영화보러 가야겠어요~

  2. 너무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삶과 통찰력이 묻어나네요.
    주책스럽게 불러보고 싶어요.
    언니. 화이팅! 이라고 ㅋ

  3. 주인공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얼마나 많은 게 바뀌는지. 드디어, 잘 나가는 프리랜서도 사모님도 여피도 아니고 억척스러운 ‘아줌마’들의 얘기가 대중영화로 만들어지고, 흥행에 성공하고, 하는 광경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짠하던지.

    요즘 영화들 보면서 오히려 스트레스 받고 있는(배부른 투정 ㅋㅋ) 나로서는, 영화가 조금만 처지면 바로 화나면서 센 소리가 나가는데, 이 영화는 안 그렇더라고. 한번도 영광의 자리에 서 본 적 없지만 그러나 다시 시작하고, 최선을 다하고, 금메달 아니면 어때, 은메달이든 뭐든 따고 그 순간 나의 존재를 증명할 기회를 잡아 그걸 최대치로 실현할 때의 그 쾌감… 자아실현 따위 고상한 말이 아니라, ‘나 여기 있어요’ ‘나도 사람이에요’를 외치는 듯한 그 존재감. 영화가 영 아쉬웠던 건 역시 그게 좀 덜 살아서인데… 어쨌건 그래도, 캐릭터들이 워낙 생생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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