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투 유마>, 두 남자의 멋진 아빠 만들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전작들 가운데에는 안젤리나 졸리와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처음 만나는 자유>(1999), 멕 라이언과 휴 잭맨의 멜러 <케이트 & 레오폴드>(2001), 존 쿠잭의 스릴러 <아이덴티티>(2003), 호아퀸 피닉스와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한 컨츄리 싱어 존 R. 캐쉬의 전기 영화 <앙코르>(2005)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는 타입이라기 보다는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화법으로 탄탄하게 영화를 만들어내는 젊은 장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3:10 투 유마> 역시 특별히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것은 발견하기 어려운 작품입니다만 감상을 방해받는 일 없이 드라마를 잘 따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안정감이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3:10 투 유마>의 안정적인 만듬새에 크게 기여하고 것은 역시 좋은 배우들입니다. 포스터를 양분하고 있는 러셀 크로우와 크리스챤 베일의 연기 대결이 볼만합니다.

엘모어 레오나드의 단편을 57년에 이어 두번째로 영화화한 <3:10 투 유마>는 삶의 터전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댄 에반스(크리스챤 베일)과 법이고 뭐고 나 하고 싶은 대로 산다는 냉혈한 벤 웨이드(러셀 크로우)의 짧은 대결과 우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철도회사의 현금 수송 마차를 털고 난 뒤에 벤 웨이드가 체포되고 그를 유마행 3시 10분 열차를 태워보내 법정에 세우려는 호송대에 당장의 200달러가 아쉬운 댄 에반스가 자원합니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산적 두목 벤 웨이드와 몇 명의 호송대의 모습은 마치 강아지 몇 마리가 덩치 큰 사자를 끌고 가는 듯 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벤 웨이드는 처음 체포될 때처럼 여유를 부리다가, 때로는 그의 목을 노리는 다른 이들 때문에 번번히 발목을 잡히곤 합니다. 그리고 하이에나 같이 영악하고 잔인한 벤 웨이드의 부하들이 이들을 뒤쫓습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웨스턴 무비의 총 싸움 보다 훨씬 흥미진진한 것은 벤 웨이드와 댄 에반스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들이고 그것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힘겨움과 남자들 간의 유대입니다. 영화는 급기야 메타 픽션의 단계로까지 진화하며 댄 에반스의 무모한 도전극에 벤 웨이드가 그래, 기분 좋게 한번 도와준다는 식이 되어갑니다. 이들의 목표는 한 가지. 댄 에반스가 의로운 방법으로 돈을 벌어 가족의 행복을 지키고 아들들에게 모범이 되는 훌륭한 아버지로 남을 수 있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벤 웨이드는 법 질서를 무시하고 사람 목숨 귀한 줄을 모르는 살인자이지만 그렇다고 죄없는 약자까지 못살게 굴지는 않는, 한 마디로 강한 남성상입니다. 그림도 그리고 성경 구절도 외우는 독특한 면이 있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반면 댄 에반스는 돈 많고 힘 있는 자들에게 시달리고 급기야 자기 땅을 빼앗길 처지이면서도 정직한 삶을 고집하는 두 아이의 아빠입니다. <3:10 투 유마>는 결국 댄 웨이드가 훌륭한 아버지로 남고 싶어 하는 소망의 가치를 벤 웨이드가 지지해주기로 하면서 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갑니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이 집권한 지난 8년간의 헐리웃 영화들은 9.11 사태의 후유증에 시달려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존경 받아야 할 아버지상을 자주 강조해왔습니다. 샘 멘데스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의 <로드 투 퍼디션>(2002)에서의 낯간지러운 마지막 나레이션이 그렇고 심지어 클린스 이스트우드 감독, 숀 펜 주연의 <미스틱 리버>(2003)는 실수와 불법을 저지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버지를 지지해줘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3:10 투 유마>는 이제 내년 초가 되면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인 미국 공화당과 보수층의 가치관을 반영하는, 마지막 호소문처럼 보입니다. 험악한 세상에서 후대를 위해 최선을 다한 당신의 아버지를 기억해달라고, 그런 아버지상을 계속 지킬 수 있게 지지해달라는 소리 같습니다. 단순히 두 주연급 배우의 연기 대결과 남자들 간의 우정을 그린 이색적인 서부극이라고만 보는 건 좀 재미가 없는 듯 합니다. 어쩌면 시종일관 세련된 화법으로 극을 잘 이끌고 가다가 충직한 부하들을 자기 손으로 몰살시키는 두목님의 마지막 모습이 다소 황당하게 느껴져서 이렇게 고까운 눈으로 다시 보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진공 신어지

ps. 최후의 결전을 앞둔 댄 에반스가 아들을 붙들고 상당히 오바하는 장면이 상당히 오바스럽게 찍혔는데요 그 뒤에 이들을 지켜보던 벤 웨이드의 모습이 잡힙니다. 댄 에반스의 ‘멋진 아빠 만들기’에 벤 웨이드가 동참해주기로 마음을 먹는 순간이었던 거죠. 기차역까지 가는 험난한 과정 중에 이건 정말 아니구나 싶었던 벤 웨이드가 메타 픽션에 해당하는 대사를 날리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아들에게 좋은 모습 보이는 것도 충분히 했으니 이제 그만 하자”는 거였죠.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맡은 댄 에반스와 악당/죄수의 역할을 맡은 벤 웨이드 간의 무대 뒤 이야기였던 겁니다. 착한 일 하는 거 버릇될까봐 싫어한다더니, 풋. 멋진 놈입니다. 각자의 역할과 입장을 잠시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역시 보기 좋습니다. 이런 까뮈스러운 기회와 희망에 대한 믿음이 인생을 살만한 것으로 남겨주는 것 아닌가 싶어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