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와 매트릭스

뭐 몇 차례 참석한 주제에 이러쿵 저러쿵 말하기가 뭐하지만 …
촛불집회의 변화 과정은 제가 보기엔 <매트릭스> 1편에서 3편으로의 변화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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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1편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새로움으로 가득찬 사이버 펑크 였습니다.
설마 이런 이야기로 이렇게 멋진 결과를 맺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요.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시큰둥했습니다만(1편의 흥행은 의외로 저조)
그래도 지금은 역사에 길이 남을 1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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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매트릭스

하지만 속편으로 갈수록 규모는 커졌으나 이야기는 오히려 낡은 틀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3편은 사이버 에픽이라고 할 법한 끝없는 전투와 희생으로 채워져 있는데
물론 그것도 의미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1편의 후속작에서 기대할 수 있는
“무엇”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새롭지 않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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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연상케했던 3편…

촛불집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광우병 문제를 들고, 그것도 중고생들이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이 청계천과 광장에 나왔을 때 사람들, 특히 저 같은 어른들은 반신반의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회는 놀라운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죠.

바로 청소년들의 개성과 재기가 발휘되었기 때문이죠.
이 시기의 촛불집회는 낯설면서도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메시지에 힘을 얻고
청소년들의 희생에 분노하고 창피해하던 어른들이 합류하면서
규모도 커지고 힘도 세졌으나
원래의 그 재미있고 생기 넘치는 촛불집회의 모습은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이 집회는 지휘자가 앞에 나가서 몸짓과 구호를 일일이 참가자들에게 가르쳐주고 따라하라고 지시하는 그런 집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기에 이렇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고요.
하지만 10일의 집회는 바로 그랬습니다.
지휘자가 구호도 가르쳐주고 동작도 지시하더군요..

초기의 촛불집회가 일종의 살아 숨쉬는 정글 생태계였다면
10일의 촛불집회는 점점 목축장을 닮아가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80년대에 그랬던 것 처럼, 지휘와 통제의 대상으로 말입니다.

물론 이런 뻘짓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여전히 자발성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 여담인데, 6일 집회에서 어른들이 버스를 흔들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아이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있더군요.
끝없이 나오는 쓰레기에 우와~ 하면서도 몇 명 안되는 여고생들이
12시 넘어까지 그러고 있더라고요… 어른들 쪽팔리게…)

어쨌든 거의 백만이 모였는데 사고 하나 없었다니…
성지에 모인 이슬람교도들이나 이 정도가 될까요.

이미 이 시점에서 촛불집회 참가자들과
컨테이너 뒤에 숨은 인간들 사이에는 백년의 격차가 생긴 셈이죠.

하지만, 이 백년을 앞서 진화한 새로운 생태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생태계의 리더는 밖이 아닌 생태계 내부에서 만들어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제는 그저 모이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은 결코 80년대의 낡은 것이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만약 그랬다간 그건 정말 쥐약이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10일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옆에 서있던 어떤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하시더군요.

“정 컨테이너 뒤에서 안기어나오겠다면, 밖에서 우리가 새로 대통령 뽑지 뭐.
쟤는 저 안에서 혼자 대통령하라고 하고… “


저도 정말 그러고 싶습니다.


영진공 짱가

“촛불집회와 매트릭스”의 2개의 생각

  1. 일단은 팜플랫과 어마어마한 유인물 나눠주기부터 좀 그만했으면.. 이메가의 용량으론 절대로 따라올수 없을 무한한 자유로움과 그러한 자유로움들 사이의 씨줄날줄 같은 소통과 조화를 지속시켰으면 해요 ㅠㅠ

  2. 앞으로 100년 후에 후세가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저로서는 도저히 짐작할 방법이 없습니다만, 왠지 2004~2007년의 역사보다는 지금 이 2008년의 사건이 더 의미가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왠지 조심스레 추측하고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정치적으로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이 사태에 대응할지 지켜볼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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