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가 월남으로 간 까닭은?


 


<님은 먼 곳에>에서 순이가 월남에 왜 갔는지 이해 안간다는 분들이 많던데 … 아니!! 이해 하고 말 것도 없잖아요?

*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순이가 월남까지 가는 게 이해가 안 가세요? 그럼 순이가 월남 안가면 어딜 가? 하늘아래 발 디디고 서 있을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는 상황인데? 월남 안 가면 어디가? 죽으러 가란 얘긴가? 묵묵히 시어머니의 구박과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미개봉 반납 처녀로 늙어가며 산송장으로 살으란 말인가? 순이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렇담 자기가 왜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한번 끝까지 캐 보고 싶을 겁니다. 그 끝에 남편이 있는거겠지요. 월남은 순이가 유일하게 ‘살아서 존재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월남은 ‘갈데가 거기밖에 없으니까’ 가는 거고 당연히 가는 거지, 그러니까 너무 Natural해서 이유를 달고 말 것도 할게 없고,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목적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하기 위해’ 월남으로 가는 겁니다.

2.순이가 남편을 때리는 게 이해가 안 가세요? 아니, 그럼 엔딩이 어떻게 되는게 나을 것 같으세요? 1. 남편 박상길이 죽어있다? 아웅.. 이건 절대 아니죠. 맘대로 죽어있다면 정말 죽이고 싶을 겁니다. 2. 순이가 상길에게 와락 안긴다? 캑캑. 상길은 그녀의 마음과 정성에 감읍하여 그녀를 받아들인다? 캑캑. 3. 상길이가 순이를 때린다? 이 독한 년, 어째 여기 까지 따라왔어!! 오홋. 1,2번 보다는 3번이 좀 낫다. 때리는 거는요. 딱 그 상황이 때릴 상황입니다. 이유는요 삼만팔천이백사십여섯가지 쯤 있습니다. 수도 없는 함의가 들어간 따귀입니다.직설법으로 얘기하자면 촌스러워지지만.


1) 전쟁터에서 정신차리라고 한대.(정신 못 차리고 눈 까뒤집고 있었잖아요) 2) 니 인생에서 정신차리라고 한대. (언제까지 도망만 갈꺼냐?) 3) 비겁함을 단죄하며 한대. 4) 생때같이 살아 있음이 고마워서 한대.(오면서 부상자, 사망자를 수도 없이 본 순이입니다.) 5) 내 인생의 단 하나의 존재의 이유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분노로 한대. 6) 술래잡기할 때 미션 클리어하면 “야도 판” 때리듯이 한대. 야도!


오히려 남편에 대한 원망이나 회한 같은 건 없어보였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3.박상길은 찌질한 남자가 아니다. 아줌마가 되고 나니 이해심이 많아지나봅니다. 전 박상길도 너무너무 이해가 갔어요. 씨 받으러 온 수애 모습 보세요. 아우… 서슬이 퍼렇잖아요. 수애 무서워요. 사랑하는 애인이 있는데, 원치 않는 결혼. 그래서 군대로 도망. 한달에 한 번 씩 배란기에 맞춰 찾아오는 아내. 그 두려움 없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 그녀를 받아들인 다는 것은 그에게 곧 도망도 하지 못하고 ‘체념’한다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박상길이 월남까지 가는 것과 순이가 월남까지 가는 것. 목적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내 인생 남의 뜻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고, 그 반대방향으로 한번 갈 데 까지 가보는 겁니다.

아마. 순이한테 맞고, 박상길은 시원했을 것 같아요. 안도가 되고 안심이 되었을 것 같아요. 순이 앞에 무릎 꿇은 상길의 모습은 용서를 비는 자의 모습이라기 보다 편안해 보입니다.

4.수애는 여신이 아니다. 매체에서 이준익이 ‘너는 여신이다’라는 말을 했단 말을 듣고 거부감이 심하게 일었어요. 저, 여인의 신격화를 여인의 창녀화 만큼이나 싫어하고 혐오하거든요. 여성의 이미지가 관음보살이나 마리아가 되는 순간 여성은 ‘구원자’가 되어야 하고, ‘모든 것을 감내해야 하고’ , ‘남을 원망하는 법은 없고 그저 남의 모든 허물을 다 감싸 안아주며’, ‘본인이 욕망하는 것은 전혀 없어야’합니다. 핵심은 ‘非人化”죠. 그게 처녀숭배의 핵심이에요. ‘여성은 위대하다’라는 명제에 궁극적으로 담고 싶어하는 뜻은 ‘여성은 사람이 아니다’인거죠. 그래서 전 미야자끼 하야오 만화에 나오는 “나나”나 “나우시까”같은 여성영웅들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들은 영웅이고 여신이 됨으로써 결국 사람이 아니게 됩니다. 아아. 근데 왠걸. 수애는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처음 부터 끝까지 본인의 욕망(남편 놈 찾아내고야 말겠다)에 충실합니다. 자신의 욕망이 아닌 다른 어떤 것에도 복무하지 않습니다. 어설픈 도덕관념이나 정조관념 같은 사회나 이데올로기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방해하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맞아요. 강한여자입니다. 그런데 ‘인류를 구원하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희생하는’ 강한여자가 아니지요.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지키고, 자신이 옳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해 보려는 여자입니다. 인간다운 강하고 젊은 여자입니다. (예전 나의 결혼 원정기에서의 ‘라라씨’와도 비슷하지요. 여기서도 순이였나?)

암튼 재미있었어요. 좋아요. 나는 Two thumbs up!


영진공 라이

“순이가 월남으로 간 까닭은?”의 14개의 생각

  1. 감상글 너무 공감하며 봤습니다.
    역시 기혼자시라 이 영화에 깊이 공감하시고 이해하시는군요.
    자기가 아는 것만큼 세상이 보인다고, 영화 이해못하고 무조건 나쁘게 말하는 사람들 리뷰 읽다 지쳤는데
    정곡을 확실히 이해하시고 파헤치시는 시원하고 깔끔한 리뷰 감사합니다.

  2. 저도 시원합니다.
    정말 이 영화가 아는 것만큼 보이는 딱 그런 작품인 듯.
    너무 잘 만들어도 문제라니까요.
    보여줄 건 다 보여줘서 짐작할 수 있는데도 순이가 월남 가는 걸 이해 못하는 사람이 왜 그리 많은지.
    써니 비긴즈라도 만들어서 상길 대학 시절부터 쭈욱 훑어서 일일이 보여주면 이해할까요? ㅋ

    순이가 상길 뺨을 때리는 이유들이 참 적절하군요. ^^

    잘 읽었습니다.

    1. 여자들이 이해를 못한다면 “인생에 있어서의 불가항력”이라는 걸 몰라서 인 것 같구요.
      남자들이 이해를 못한다면, 순이가 정말 사랑 땜에 간다고 생각해서 그렇겠지요. ㅎㅎ.

  3. 저는 원체 ‘분석’이라는 것을 싫어하고 잘 못합니다. 그래서 항상 그런부분은 남자친구의 도움을 받는데요…

    저도 처음엔 순이가 월남에 간 이유가 이해가 안되었어요.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순이가 왜 월남에 가는지 모르겠다.
    남편을 엄청 사랑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여튼 월남을 가야할 이유가 안보였어요. 그래서 남자친구한테
    말했더니… 그애가 하는 말이…
    “영화는 내내 순이가 왜 월남에 갔는지를 말하고 있다.
    아까 상길이 ‘니 내 사랑하나’하고 말했지?
    그리고 순이는 내내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라고 노래를 부른다. 순이는 남편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있었던거다.’
    라고… 물론 이것은 제 남자친구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저는 상당히 공감이 갔고, 진짜 이해가 되었는데요…

    글쓴이님의 다른 말은 다 공감하지만^^;
    순이가 월남을 간 이유는 좀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1. 물론 이준익 감독은 그런 의도로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그랬다면 감독도 순이 마음을 모른거죠.

      그나저나. 여자마음까지 분석해 주는 남자친구가 있다니 부럽군요. 평생 편하게 사실 듯.

  4. 남편을 때린 이유에 대해서 적어주신거 보고…아..그러겠구나 했습니다.

  5. 핑백: FILMON
  6. 보면서 그렇게 느꼈어요.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가는거구나..
    정경호가 극상 너 남편 왜 찾으려고 하냐고 물었쟎아요. 그때 수애얼굴 보니까,
    그때 대답못한 말을 하러가는구나..하고 느꼈어요..
    노래도 주구장장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ㅈ~” 만 나오고..
    마지막 뺨 때린건. 막상 얼굴 보고 나니 사랑한다는 말보단 찾아오면서 겪은
    회한같은거가 느껴지기도 할테고, 남편이 너는 사랑을 모른다 한 말에 대한
    것일수도 있고.. 끝까지 자기 맘 몰라주는 남편 원망섞인 감정도 있을테고..
    노래가사처럼 결국엔 얼굴을 봤지만 또 사랑한다고 말 못하는 순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1. 보는 사람 나름이겠지만. 어디가 멜론지… 전 도통 모르겠다는.

  7. 뺨 때리는 건 사랑한다는 베트남식 표현이라네요 댓글:

    어느날 베트남신부를 둔 남편의 글을 읽고 알았어요. 갑자기 뺨을 맞아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베트남식으로 사랑한다는 표현이었다는 것을 요. 순이는 남편에게 ‘ 야 10새ㄲ 사랑해(철썩!) 사랑한다고(철썩!) 사랑한다니까(철썩!).. 하면서 온몸으로 말하고 싶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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