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 영화는 오랫동안 386이라 불리던 그들이 하나 둘 대오에서 이탈해 가는 시점에 이르러 만들어진 스스로를 위한 송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소룡을 보고 자라 군대 보다 더 지랄 같은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대머리 군인 대통령 아래 최류탄 냄새가 곳곳에 배인 대학 캠퍼스를 거닐었던 그들의 로망스가 드디어 막을 내리는 시점이 된 것이다. 빨리 앞서간 몇몇은 대통령도 만들어냈고 스스로 새파란 얼굴을 내밀며 정치인 금품 비리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가 개봉하던 때에 그들은 더이상 새로운 세대가 아닌 그 시점의 기성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2009년, 어찌된 노릇인지 추억 속에 석화된 줄 알았던 이 영화의 풍경들은 현실에서 스멀스멀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군대 이야기라는 것들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의 취사선택에 의해 못가본 이들이 듣기에는 상상도 못할 끔직한 체험담이 될 수 밖에 없듯이 78년 말죽거리의 고등학교 이야기도 충분히 잔혹하며 엽기적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그렇게도 고리타분 하신지. 그보다 좀 더 이전 세대인 곽재용이 <클래식>에서 들려준 이야기 보다야 조금 낫긴 하지만 평면적인 한 남자의 추억담에 불과하다는 점에서는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한마디로 한편의 성장영화로서는 구태의연한 편이다.
<말죽거리 잔혹사>를 괜찮다 할만한 영화로 만들어주는 것은 꼼꼼하게 재연된 당시의 인물들과 소품들이다. 3학년 깡패 선배들이나 교사들이나, 등장하는 조연과 단역들이 예전 <넘버 3>에서 돌깡패로 나온 송강호를 처음 봤을 때 놀랐던 기억을 머쓱하게 만들 만큼 대단히 사실적이다. 그리고 학교 옥상의 격투 장면들 역시 과장 없이 그려져 은근히 아드레랄린을 솟구치게 만든다. 이 정도면 자국 영화에서 만큼은 오로지 사실주의만을 요구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의 유난함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할만 하다.
그 시절의 체험들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맞어 맞어 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학교 다닐 때 꼭 저런 애들 있었어 하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이라면 교복 입고 나타나 화끈하게 벗어주는 권상우의 열연을 즐기면 된다. 물론 그걸 보기 위해서는 그의 혀 짧은 쑥맥 연기를 오랫동안 견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