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덕후가 아니어도 충분히 흥분을 만끽 할 수 있는 영화

 

 


 


 


이거 조으다 ^.^


<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을 처음 보고 온 뒤에 트위터 계정에 이렇게 올렸다. “저는 덕이 아닌데 왜 <퍼시픽 림>이 재밌는 거죠?”


 


이후 3D 아이맥스로 한 번, 그리고 다시 2D로 한 번, 이렇게 총 세 번을 보았다. 그중 가장 만족감이 컸던 건 베켓 형제가 집시 데인저를 타고 첫 출격하는 장면을 3D 아이맥스로 봤을 때다.


 


거대한 집시 데인저의 각 근육 부분과 이 기계 덩어리의 각 부분이 연결돼 있는 데크들, 심지어 베켓 형제가 입은 수트까지도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지고 기스와 흉터가 나 있다. 너무 반짝반짝 화려한 새 것이 아닌, 사용감과 시간성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카이주가 처음 등장한 지 이미 십 년은 훨씬 넘었고, 예거 프로그램이 가동된 지도 몇 년은 지난 때니 당연한 거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 앉아있는 내게 그 흠집들과 상처, 페인트가 벗겨진 자국들이 이유 모를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 스포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


 


 


 


그 와중 라민 자와디의 테마음악이 울리며 긴장감과 흥분을 점점 고조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물살을 가르며 발걸음을 떼는 집시 데인저의 모습은, 2D에서보다 3D에서 훨씬 더 육중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락스타처럼 영광을 누리던’ 초기의 중후한 파일럿들이 이미 은퇴를 하고 베켓 형제처럼 혈기 넘치는 젊은(…이라기보다 ‘어린’) 파일럿들이 투입되었던 때. 내레이션에서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다”라는 서술은 “피로와 매너리즘이 쌓이고 있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영화가 시작하는 건 바로 그 시점이고, 첫 4등급 카이주가 등장했던 이들의 첫 전투는 처절한 패배로 기록된다.


 


그리고 영화는 5년 뒤로 건너뛴다. 예거 프로그램의 잠정 폐지를 앞두고 알래스카 기지가 폐쇄되는 날이다. 주요 기지가 홍콩의 섀터돔으로 옮겨지고, 5년간 공사장을 전전하며 마음을 닫아걸었던 우리의 주인공 롤리가 돌아오고, 여주인공이 비로소 등장하면서 영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현재’ 시점이란, 이제 예거 프로그램이 이미 ‘민영화’된 후의 일이다. 서른 대도 넘던 예거는 이제 네 대가 남았을 뿐이고, 이들의 자금책 중 가장 큰 돈줄은 카이주 장기 밀매시장의 일인자이다. 대장인 스태커가 “우리는 레지스탕스”라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계 정부들은 ‘장벽’을 세우는 것으로 이미 전략을 전환한 후이다.


 


무수한 이들이 지적하듯 <월드워 Z>뿐 아니라 이 영화에서도 ‘장벽’이 등장하되 주인공이 5년간 방황한 정처 정도로만 언급된다. 장벽은 방어막이자 ‘보호’를 위한 것이되, 한편으로 ‘고립’을 뜻하기도 한다. <월드워 Z>나 <퍼시픽 림> 모두 이러한 고립에 대한 공포, 그리고 그러한 고립이 현대사회에선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 혹은 가능할 리 없다는 믿음에 대한 공포가 어렴풋하게나마 동시에 읽히는 것이 흥미롭다. (그럼에도 이러한 고립이 어느 정도 얼개를 갖추고 유지되고 있는 공간이 있다면 바로 <설국열차>의 기차 안이다.)


 


 


 



장벽이라고? 풉!


 


 


그리고 좀비나 카이주 모두 ‘난공불락’이라던 장벽을 너무 쉽게 뚫는다. <퍼시픽 림>에서 형을 잃고 마음을 닫은 롤리가 하필이면 장벽 건설현장으로만 돌았던 것으로 설정된 건, 하루 벌어 하루를 살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노가다 일감이 주로 장벽 건설현장에 제일 많았기 때문이지 설마 방어태세 속에 고립을 자처하는 롤리의 심적상태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장벽이 뚫린 바로 그 시점, 롤리가 예거로의 복귀를 결심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장벽을 포기하고 예거로 돌아왔으니 또 너무 쉽게 마코에게 마음을 열고 그녀에게 집착하는 것도, 어쩌면.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예거들은 주로 저 머나먼 바다 한가운데를 프론트라인으로 잡고 괴수들을 상대하지만, 이놈의 괴수들은 툭하면 도시로 난입해 도로며 건물이며 전선들을 부순다. 체르노 알파와 크림슨 타이푼이 안타깝게 사망한 홍콩 앞바다에서의 전투씬에서도, 두 녀석이 나타나서는 한 녀석이 힘겹게 예거들을 상대하는 틈을 타서 다른 한 놈은 기를 쓰고 도심을 향해 간다.


 


물론 영화에서는 지구상 ‘인간’이라는 해충을 박멸하기 위해서, 혹은 겁 없이 드리프트를 해온 인간 녀석을 찾기 위해서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또한 우리는 스토리 밖에서, 그것이 ‘괴수가 도시를 때려부수는 쾌감’을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예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도시로, 시내 중심부로 향하는 괴수들의 몸짓에는, 그러한 장르 자체의 혹은 스토리 내외적 설정 외에도 내게는 어떤 기묘한 절박함이 보인다.


 


이 괴수들은 자신들을 조종하고 명령하는 식민주의자들의 명령과는 별개로, 그것이 설사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라는 수단일지언정 어떻게든 인간들에게 말을 걸고 접촉하려는 것 같다. 그렇기에 이들은 인간이 방어를 위해 쌓았으나 결과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게 될 ‘장벽’을 그렇게 손쉽게 뚫어버리는 것인가 … 는 개소리.


 


 


 



기운 센 천하장사아~ 무쇠로 만든 사라암~


 



 


하지만 이런 얘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퍼시픽 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의 상처와 흔적이 가득했던 예거들이 새단장과 중무기 보강을 통해 다시 태어나고, 그 육중한 철골의 무게감을 자랑하며 괴수들과 싸우는 장면들 자체의 쾌감이다.


 


바위 재질처럼 단단하고 그 무엇으로도 뚫을 수 없을 것 같은 괴수의 피부를, 저 육중한 ‘무쇠팔 무쇠다리’가 주먹질하고 찢고 박살낸다. 괴수영화를 본 게 별로 없음에도 우주에서 나타난 괴수의 피부는 바로 저렇게 표현되는 게 정석일 것 같고, 메카닉물에 대해 거의 모르지만 저 타격감과 무게감은 메카닉물이 응당 갖추어야 할 미덕처럼 보인다.


 


아무리 로봇영화나 로봇만화에 별 흥미나 향수가 없는 나 같은 사람도 마징가제트와 태권브이를 보고 자랐고 그 주제가가 유전자에 박혀있으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각종 로봇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지나왔으며, 이제 인간이 기계를 조종하는 것을 넘어서서 인간과 기계의 공명과 동기화를 전제한 에반게리온을 보며 20대를 보냈다. 그러니 <퍼시픽 림>에 스스로도 납득 못 할 흥분을 느끼며 어쩐지 “고맙습니다”를 읊조리게 되는 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박해천 교수가 말하는 대로 70년대에 태어나 시간과 경제의 여유를 누린 중산층에서 자라 소년잡지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갖는 마지막 판타지인지 어쩐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이것이 출산과 양육의 포기와 부동산 하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더더욱.)


 


 


 



ps1. OST 쩐다! 음악 맡은 라민 자와디가 한스 짐머 사단 출신이라더만, 청출어람인듯.


 


ps2. 극장에서 3번밖에 못 봤는데 다 내리다니 덕 횽아들 좀 실망이었다능?! 내가, 어?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를, 어? 극장서 7번을 봤는데, 7번까지는 무리라도 5번 볼 동안 정도는 버텨줘야 하는 거 아니었냐능?!?!


 


ps3. 덕 중의 덕들은 역시 체르노 알파에 열광하는 게 내가 봐도 당연해 보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나는 집시 데인저… 체인 소 달고 원자로 몸에 단 아날로그 구형에 제일 마징가 제트랑 닮았다. (흥, 체르노 알파는 깡통로봇 닮았다!)


 


ps4. 기쿠치 린코의 모리 마코는 볼수록 싫어지는 게, 일본 만화/애니에서 익히 봐왔던 소녀들, 그러니까 공부도 잘하고 명랑하고 뭐도 잘하고 막 그런데 좋아하는 오빠 앞에만 서면 얼굴 새빨개져서 들지도 못하고 어리버리하다 실수하고 당황하고 도망가는 그런 귀여운 캐릭터를 연기한답시고 연기하는 거 같은데 언니, 얼굴이 그런 귀여운 척하기에는 스스로 삭았다는 생각 안 드시나요. 좋게 말하면, 포스 있게 생겼는데 귀여운 척을 해서 계속 당황스러웠음요.


 


ps5. 난 이드리스 엘바의 스태커 펜테코스트 대장님의 그 ‘연극하는 듯한’ 말투가 매우 좋은데 그거 거슬려하는 사람 많구나. 아주 정갈하신 발음과 인토네이션의 영어로 셰익스피어 고전극의 독백대사 읊듯 대사하시는 게 대장님 캐릭터에 너무 잘 어울렸음요.


 


ps6. 뉴트가 한니발 차우네 본부 가서 “으악 여기가 천국일세! 여기 장기! 여기 뇌! 여기 기생충!”하며 꺅꺅거리는 장면에서 좀 웃었음. 아, 어쩜 덕의 마음을 저리도 잘 표현하는 씬인가.


 


 


 


영진공 노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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