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무협영화, 그 화려했던 역사의 겉을 핥아보자 [1부]


 

 


 


 



 


 



70년대를 기점으로 90년대를 가로지르면서 한국은 경제적 대격변기였고 폭발적 성장기였다. 88올릭픽과 OECD 가입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성장은 소위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뒤안길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저임금 노동과 열악한 노동환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구조속에서 우리 아버지,어머니, 형님, 언니들에게 필요했던건 실현 불가능한 커다란 보상이 아니라 오히려 작은 위로가 되는 즐길거리가 아니었을까.




명절을 맞아 어렵사리 마련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시골집에 가면 어린 조카들이 삼촌과 이모에게 들러 붙었고, 명절 차례 후에는 그놈들을 몰고 읍내 영화관을 찾곤 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알현할 수 있었던 짜짱면 한 그릇과 식후의 사이다 한 잔은 어찌나 맛이 있던지.


 


먹고 살기 바빠 이번에는 못 내려간다고 전화통에 대고 울먹이던 작은 형들도 명절 오후에는 삼삼오오 모여 단성사 대한극장을 향하곤 했다. 대지나 화양극장도 좋았고, 부산의 태화극장도 좋았다.



 


그 시절의 명절에는 특히나 홍콩영화가 대세 중 대세였다. 그리고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의 명절을 관통한 홍콩영화의 역사에서 정수리에 우뚝 선 영화는 역시 “취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취권”을 통한 성룡의 출현은 이소룡이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이루어졌고, 이소룡 역시 50 ~ 60년대 쇼브라더스의 무협영웅들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외팔이”시리즈의 왕우, “금영자”의 정패패, “돌아온 외팔이”와 “13인의 무사”의 적룡 등의 역사를 이야기 하자면 몇날 몇밤이 지나도 모자랄터이니 언젠가 기회가 되면 시간을 내어 그들의 진면목을 찬찬히 한번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시간에는 그저 그 시절의 작품들을 한 번 훑어, 아니 핥아보도록 하자.  그리고 나름 핵심이랄 수 있는 무협무비를 골라보도록 하자.


 


 


 



 



 


 



70-90년대를 관통하는 대명사는 역시 성룡이다. “성룡이영화”라는 말로 대별되는 홍콩 영화의 최대 번성기는 그 이전 쇼브라더스시대의 왕우,정패패,강대위,적룡에서 시작되어 이소룡으로 이어진다.



이소룡의 역사적 출현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광란과 흥분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었고, 심지어 인종적 자부심마저 심어주기도 했다 -.-


 


1971년, 영국의 식민지 홍콩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아직 서양제국의 힘에 눌려 제대로 기도 못 펴고 살 때, 삼국지의 관우나 조자룡에 비유할 수 있을 진짜 영웅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이소룡”이었다.



용쟁호투의 첫장면에서 이소룡에 쥐어 터지는 대련 상대자로 나온 홍금보나 단역 엑스트라로 출연해 나가 떨어지던 성룡에게 이소룡은 거대한 영웅이었고 이상향이었다. 그는 패배를 몰랐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의 기세를 꺽을 수는 없었다.


 


촌동네의 허름한 공장을 배경으로 당산출신의 이 멋진 형님이 악당들을 모두 제압해 버리는 장면을 통해 그를 처음 만난 관객들에게 이소룡은 신기함 그 자체였다. 인간의 몸에서 어떻게 저런 동작이 나오고 어찌 저리도 아름답게 힘과 에너지를 표현낼 수 있는지, 보는 이들 모두에게 그건 황홀경이였고 예술이었다.


 


단역이나 tv시리즈를 제외한다면 그가 남긴 단 4편의 전설적 작품 중에서 딱 한 작품만 뽑으라고 한다면 그건 단연 “정무문”이어야 할 것이다. 화면 땟깔 좋고, 스토리텔링의 완성도 높고, 액션 촬영이 튀지않고 안정적인 편이라 액션을 못 따라가는 분들에게도
보기좋을 뿐더러 무엇보다 그 비장미 …… 영화 말미의 그, 영화 역사상 최강의 비장미. 그래서 이 72년도 작품을 우선 강추하는 바이다.


 


73년 이소룡 사망후 홍콩영화계는 아노미와 패닉 그 자체를 보인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영화판은 이소룡의 후계자를 찾기에 혈안이 되어서 거룡, 당룡,소룡, 대룡 등등 용용용브라더스를 쏟아낸다.


 


 


 



 


 


 


허나 무수히 나섰던 그의 후배들과 아류작들은 그의 그림자조차 흉내내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였다. 그런 시절이 어언 지나고 70년대 말이 되었을 때 하나의 서광이 비추기 시작한다. 비어진채로 주인을 기다리던 왕좌에 다가섰던 건 바로 78년 “취권”과 “사형도수”의 성룡이었다.


 


79년 추석 서울바닥을 비롯한 전국은 코 큰 중국청년에게 홀랑 빠져든다. 영화 “취권”은 당시 아시아 전체 모든 흥행기록을 다 깼고 그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92만 명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는데 당시의 단일 개봉관 체제에서 한 극장에서만 90여만 명을 동원했던 것이니 이건 그냥 계산상으로봐도 6개월이 넘게 내리 매일 매진행진을 벌인 것이리라. 게다가 지방극장의 기록은 남아있지도 않으니 그 흥행의 역사만으로도 그냥 전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기록상으로는 “사형도수” 또는 “사형조수”가 먼저 홍콩현지에서 개봉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쨌든 78년에 제작된 두 영화는 상호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성장드라마란 점, 코믹한 설정과 액션을 감미했다는 점, 그리고 두 작품의 내용적 규모가 기존의 비장미 가득한 그런 대의명분보다는 작은 정의, 한사람으로서의 바른 삶 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아마도 제작과정상 서로 보완하고 참고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사형도수”의 경우, 그 나름의 진지한 의미는 바로 강자의 영화가 아니라, 가난한 자, 약자, 서민의 영화라는 거다. 주인공 자체가 그런 배경과 계급을 가지고 수모도 받고 서러움도 받는데, 기존의 강인한 무협 주인공들에 비해 성룡은 그런 연기를 소화해 낼 수 있엇따. 따지고보면 취권에 비해서도 사형도수는 그런 의미에서 더 높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하여간 그래도 성룡 대역사의 시작은 취권으로 봐야하고, 그래서 이 작품을 두번째로 강추하는 바이다.


 



 





 


 



“성룡영화”가 새롭게 기초해내고 그래서 수많은 영화들이 다시 모방한 스토리 라인과 특징들은 철없지만 선량한 주인공, 그에게 무술을 전수하는 노숙자풍의 신비로운 사부, 그리고 그런 주인공이 실현해내는 작은 정의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룡의 작품들은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하였다. 이전의 홍콩영화 작품들이 엄청난 대의명분과 역사적 승부, 부모님의 복수등 무거운 소재들을 다루었지만 성룡의 영화들은 다소 가벼웠고 내용도 코믹하고 액션도 전통적인 무술들이 아니라 변형되고 가볍고 코믹한 것들이다.


 


사실 무협 액션들은 당연하게도 폭력이 미화되고, 심지어 공공의 동의 없이 자력구제로 악당을 처단한다. 이건 모두 불법이고 이런 면에서 거의 모든 무협물들은 환타지다. 그래서 무협영화를 즐기는 관객들은 이 환타지를 현실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룡의 무협과 액션은 전통적인 무협의 강하고 빠른 액션보다 기기묘묘하고 신기한 동작과 자세들을 선보였고, 혹자는 아크로바틱 쿵후라고도 부르는 그런 가볍고 경쾌한 무술들은 오히려 나름 신체단련과 자기방어라는 무술 본연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해도 성룡 본인이 그런 무술경향을 체계화할 욕심을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쨌든 당시 이런 무술과 무술영화는 일대의 혁신이었는데 사실 성룡이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니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룡은 이어서 79년에 “소권괴초”, 1980년에 “사제출마”들을 줄줄이 발표하며 계속 이전 기록들을 갈아치우는 대히트를 연속시킨다. 그리고 그 무렵 미국에서 “배틀 크리크”, “캐논볼”에 출연하였다.



특히 “배틀 크리크”는 미국식 제작시스템을 통해서도 상당히 완성도 높고 재밌는 작품이 만들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국관객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액션도 훨씬 쉽고 간단하지만 선이 분명하게 짜여져 세계를 무대로 하는 액션배우로서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줬다. 여담이지만 “배틀 크리크”의 극 중 주인공은 1930년대 미국에 온 한국인으로 설정되어있기도 하다. 특히 종반부에 칼잽이 상대역과의 대결장면은 서양액션배우들과의 합을 어떻게 보여줄 지에 대한 완성된 답이라고 평가하고싶다.


 


 


 





배틀 크리크



* 2부에서 계속됩니다 *

 


 



영진공 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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