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저링”, 안전하고 가벼운 공포영화(?)

<컨저링>(Conjuring, 2013) 을 거의 개봉 직후 주말 낮에 봤는데, 주변에 ‘아줌마’ 관객들이 많았다는 게 흥미로웠다. 대체로 호러영화 하면 생각나는 관객들은 그 장르 매니아들이나 이제 막 데이트를 시작하는 젊고 풋풋한 연인들이니까.

“무서운 장면 없이 무섭다”라는 카피가(원래 미국에서는 ‘잔인한 장면 없이 무섭다’였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기존 호러 관객뿐 아니라 광범위한 관객층을 공략할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가진 안전함과 가벼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상당수 포함돼 있으니 이를 피하고 싶은 분들은 이쯤에서 백스페이스를 눌러주시고 …

다분히 낚시성의 포스터 이미지

자, 나는 지금 ‘안전함’과 ‘가벼움’이라는, 언뜻 이 영화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단어들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컨저링>은 호러영화 중에서도 전형적인 폴터가이스트 혹은 ‘귀신들린 집’ 장르이다. 이사온 날부터 집에서 이상한 현상들이 있고 다섯이나 되는 딸들 중 예민한 아이들은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헛것을 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집에 귀신들만 있느냐. 그렇지 않다. 이 귀신들은 실은 귀신 중에서도 대빵, 무려 ‘세일럼의 마녀’ 배스시바의 귀신에 희생된 이들이다.

세일럼의 마녀는 사타니즘에 심취해 제 아이들을 제물로 바쳤고, 이후 귀신이 되어 집에 거주하면서 이 집에 이사오는 엄마들을 조종해 제 아이를 살해하게 하고, 그렇게 새끼 귀신들을 파생시킨다. 그리하여 귀신을 몰아내기 위해 엑소시즘이 벌어지는데, 여기에서 슬쩍 크리스찬 호러(이른바 <오멘>, <엑소시스트> 등으로 대표되는)의 특징들이 얹힌다.

그런데 이 영화의 첫 시작은, <블레어 위치>나 <파라노말 액티비티>가 취했던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에피소드로 시작한다. 그 에피소드는 또 ‘저주받은 인형’ 이야기다. 이쯤 되면 폴터가이스트에 ‘귀신’과 관련된 거의 모든 호러의 서브장르들이 이것저것 짬뽕됐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신 제임스 완 감독은 슬래셔와 스플래터만은 철저하게 배제한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 없이 무섭다”는, 신체 훼손 장면은 꺼리지만 호러영화에는 호기심을 가진 관객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카피를 전면에 내걸 수 있었다. 이러한 ‘안전함’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무려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이 단 한 명도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지 않는다는 데서 완성된다.

직캠 공포영화의 원조, “블레어 위치”(1999)

마녀의 조종을 받아 제 아이를 죽일 뻔한 어머니는 엑소시즘 후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을 품에 안는다. 위험한 시험대에 올랐던 모성 역시 결국 악령의 저주를 이겨내고, 이러한 모성의 승리는 페론 가족뿐 아니라 워렌 가족에게도 성취된다. 실존인물인 미국의 유명한 퇴마사 부부 에드와 로레인 워렌 부부가 가장 사악한 케이스라고 밝혔음에도 결국 아무도 죽지 않고 무사히 사건이 해결된다. 더욱이, 이런저런 서브장르의 특징들을 별 고민 없이 마구 가져와 뒤섞음으로써 전혀 웃기거나 가볍지 않음에도 메타-장르적 특성을 띄며 특유의 ‘가벼움’의 특징을 획득한다.

메타-호러로서의 특징 외에, <컨저링>은 일반적으로 호러영화들이 저예산에서 기인하는 ‘무명배우의 기용’이라는 특징을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예외적인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베라 파미가는 우리에게 하정우와 함께 출연한 <두 번째 사랑> 외에도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디파티드>의 여주인공으로 출연해 익숙한 배우이며, 제임스 완 감독과 <인시디어스>에서 작업한 바 있는 패트릭 윌슨 역시 연극 무대에서부터 실력을 다져 <오페라의 유령>에서 라울, <리틀 칠드런>에서 케이트 윈슬렛과의 공연, <왓치맨>에서의 나이트 아울 역으로 인지도가 있는 배우이다. 무엇보다도 배스시바의 귀신이 빙의된 페론 가족의 엄마 역을 맡은 릴리 테일러는 메리 해런(<나는 앤디 워홀을 쐈다>), 아벨 페라라(<어딕션>), 로버트 알트먼(<숏 컷>) 등과 함께 작업한 바 있으며 전세계 작가-감독들과 독립영화 감독이 탐을 내는 실력파 배우이다.

‘귀신들린 집’ 장르 특성상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수밖에 없는 대신, 집 내부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좋은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 전반적으로 꽉 찬 느낌을 주는 것도 <컨저링>이 가진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배우들이 집 안에 숨겨진 비밀통로 등을 통해 수직으로 낙하하거나 굴러떨어질 때의 추락감이, 영화의 중간중간에 불현듯한 속도감을 주며 주위를 환기시키곤 한다.

엑소시즘이 등장한다면 이런 장면이 필수죠!

이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 일행과 함께 “정말 오랜만에 본, 정통 호러영화였다”며 만족감을 표시했고, 더욱이 죽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스트레스가 덜했다며 웃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메타-호러를 오히려 ‘정통적’이라 느꼈던 것도 재미있지만, 이는 아마도 <블레어 윗치> 시리즈나 <파라노말 액티비티> 시리즈 이후로 조류가 크게 바뀐 듯한 호러영화 씬에서, 한동안 볼 수 없었던 옛 장르들의 혼성이 주는 쾌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컨저링>이 주는 폴터가이스트 장르의 공포가, 한국에서 얼마 전 흥행했던 <숨바꼭질>이 주는 공포와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배급운을 잘 탄 예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가장 안전해야 할 보금자리가 가장 위험한 장소가 되고, 아이들의 보호자여야 할 부모(중 한 명)이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이 한국에서 크게 인기를 끄는 것은,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다며 근원적인 공포를 느끼는 지금 우리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ps1. 우리나라 극장판 자막에서 ‘배스시바’로 표기한 그 이름은, 서구에서 퍼스트 네임으로 사용되는 예를 거의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성경에서 바로 다윗 왕이 목욕하는 모습에 홀려 원래 남편이던 부하를 사지에 내몰아 죽게 하고 뺏었다는 그 ‘밧세바’이다. 보통 밧세바는 다윗왕과의 이 에피소드로 유명하지만, 다윗왕 말년에 보면 반역 의지가 있었던 넷째 아들을 남편에게 일러바쳐 반역을 막고, 둘째 아들인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본인이 직접 건의하여 넷째를 처형시켰다고 한다. 왕비 – 대비마마의 입장에서는 할 만한 처신이지만 ‘아들을 죽인 어미’인 것도 사실이다.

ps2. ‘세일럼의 마녀’는 ‘마녀사냥’의 비극적인 역사를 가리키는 대명사지만 이 영화에선 세일럼에 진짜 마녀가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마녀사냥의 비극적 역사의 현장이나 어느 새 마녀의 고향이 돼 버린 세일럼에 애도를 …

ps3. 배스시바 역으로 나오는 이는 이 영화의 음악을 맡은 조셉 비샤라인데, 그는 제임스 완과 함께 한 전작 <인시디어스>에서도 귀신으로 출연한 바 있다.

“토르: 다크 월드”, 왜 토르를 그저 그런 영웅의 틀에 넣었을까?

 

<토르: 다크 월드>(이하 <토르 2>)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다. 1편의 감독 케네스 브래너가 아닌, ‘드라마’ 감독인 앨런 테일러가 연출을 맡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었지만(드라마와 영화는 엄연히 매체가 다르고 문법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언론시사회가 있었던 날로 짐작되는데, 트위터에 속속 “1편보다 재밌고 유머도 깨알 같다”는 기자들의 한줄평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개봉 전 <토르 : 천둥의 신>(이하 ‘<토르 1>’)과 <어벤져스>까지 복습하고서, 수요일에 개봉한 영화를 바로 그 다음 날 보고 왔다. 허나 적어도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남들은 다 “더 재밌다”는 <토르 2>가 내게는 왜 실망스럽거나 재미없는 게 아닌 ‘당혹스러웠는지’ 여전히 생각 중이다.

*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무엇보다도 다크엘프족들의 우주선이 아스가드를 공격할 때 가장 당황했다. 고대 신화세계를 기반으로 장구한 영웅신화의 모티브를 그 중심축에 놓고 현대와 타임슬립물을 변주하는 것 같았던 <토르>가, 2편에 와서는 <스타워즈> 뉴 트릴로지와 <스타트렉> 시리즈에서 우리가 익히 본 우주선들의 공격을 받고 우왕좌왕하는 일종의 우주활극 장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벤져스>에서 이미 공중전을 벌이는 우주인들이 등장했던 이상, 그리고 그 종족을 로키가 끌고 온 이상 <토르 2>에서 ‘날아다니는’ 우주인들이 등장하는 건 논리적으로는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토르 2>에서도 아스가드인들은 여전히 육중한 갑옷을 입고 지상에서 칼과 창 혹은 도끼와 방패를 들고 주로 지상전, 육박전을 벌이며 싸운다. 그러나 ‘토르’가 아스가드에서 특별한 존재였던 건 그가 묠니르의 힘을 통해 거의 유일하게 날아다닐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에 발을 꽉 붙였던 아스가드인들, 바이프로스트에서 떨어지면 추락해 죽는 신들을 보았는데, 우주선이라니 … 어쩌면 이 우주 활극이 진짜 <토르> 시리즈에 예정돼 있던 길이었고 1편의 고대 영웅신화적 서사가 오히려 예외적으로 선택된 전략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의 ‘토르’가 이토록 성공적으로 어벤져스의 영웅 중 하나로 합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 <토르 1>의 매력, 그리고 <토르> 시리즈의 세계를 처음 세팅하며 제시했던 그 아스가드의 세계의 매력이 무엇이었나 생각해 본다면, <토르 2>의 변화는 다소 ‘뒷통수’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비단 장르나 스타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토르>의 주인공은, 아무리 로키가 활약한대도 결국은 ‘토르’이다. 우리는 이 ‘아버지 힘과 자신의 직위를 믿고 까불던’ 혈기방장하고 천둥벌거숭이던 작자가 어떻게 책임감을 배우고 통치군주의 진짜 조건을 익히며 ‘자기 희생’의 의미를 알게 되며 진지하게 성장하는지 1편을 통해 지켜봤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은 토르는 그저 멍청하고 힘 잘 쓰는 바보 마초영웅이 아니다. 애초 최고의 전사이기도 했던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믿음, 그리고 헌신을 지니고 있는 존재였다. 이는 여러 차례 자신을 배반하고 (물리적으로, 말 그대로) 자신에게 칼을 꽂은 로키를 향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는 여인과 지구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도 토르는 로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으며, <어벤져스>에 가서도 속 썩이는 동생 때문에 괴로워할지언정 여전히 그에 대한 깊은 애정을 거두지 않는다. 그런 토르가 <토르 2>의 로키에게는 불신을 넘어 증오도 내비치는 것 같다. 이건 우리가 알고 사랑하던 토르가 아니다. 그가 로키에게 번번이 속고 당했던 것은 그가 멍청하고 로키가 똑똑해서가 아니다. 어느 정도는 알면서도 속아’주었’고, 어느 정도는 로키의 선한 본성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너무 컸던 탓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하고 순진한 믿음이 바로 내가 사랑한 토르였다.

반면 로키는, 형 못지 않는 허세작렬에 과시적인 성격, 그리고 영악하게 꾀를 부리며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어하는 성격이지, <토르 2>에서의 모습처럼 시종일관 깐죽대는 캐릭터가 아니었다. 이건 오히려 원래의 로키가 아닌, 아이언맨의 성격이 이식된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로키가 아무리 매력적인 악당이고 주인공 중 하나인들, <토르 1>의 인기가 로키 한 사람만의 활약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토르 2>를 보면, 마블 스튜디오는 높아져간 (그리고 그들 스스로는 예상하지 못한) 로키의 인기가 <토르 2>를 구원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확실히 <토르 1>에서 형에 대한 질투 때문에 소심하게 형을 모함했던 로키는 <어벤져스>를 거치면서 어벤져스의 영웅 모두를 상대한 전 우주적인 악당으로 우뚝 섰다. 토르와 크리스 헴스워스 못지 않게 로키와 톰 히들스턴을 좋아하기에 로키의 분량이 늘어난 것도 그에게 강력한 드라마를 부여해준 것도, 또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으로 형 토르와 손을 잡는다는 설정도 좋다. 그러나 토르와 로키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에 있어 디테일은 턱없이 부족하고 얄팍하다.

<토르 1>이 ‘토르 시리즈를 런칭시켜 <어벤져스>에 토르와 로키를 합류시키는 가교가 된다’는 임무를 띄고 고대 영웅신화 전략을 택하면서도 그 둘의 관계를 비교적 밀도있게 그렸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토르 2>에서 이 둘이 협력관계를 유지함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얄팍하게 그려진 것이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토르 1> 개봉 당시엔 이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그닥 좋은 영화라는 생각을 안 했는데, 역설적으로 <토르 2>를 보고 <토르 1>이 얼마나 좋은 연출이었던가 새삼 상기하게 된다.

트위터에서 누군가 이렇게 쓴 것을 보았다. “<토르>는 <어벤져스> 시리즈를 위해 보는 거야!” <어벤져스>의 영웅들 중 토르는 이 지상이 아닌 우주에서 날아온 (반)신이자, (인간의 기준으로 봤을 때) 가장 고대적인 방식으로 싸우는 전사였고, 그럼에도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였다. 지구뿐 아니라 우주의 아홉 세계를 보호하는 막강한 존재이고, 다른 세계의 사람을 그리워하면서도 왕국을 위해 그 사람과의 이별을 스스로 선택한 남자였다. 헐크나 아이언맨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의 역사와 사연과 힘과 운명을 가진 존재였다.

그러나 <토르 2>로 인해, 그는 이제 <어벤져스>에 복무하고자 하는 한낱 영웅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영화가 아무리 말 그대로 ‘우주적 스케일’의 재난영화로서 거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한들, 그 스펙터클의 쾌감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