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애스”, 수퍼히어로 탄생의 진짜 조건들






연소자 관람가 수퍼히어로물처럼 생겨먹은 외양 – 제목과 포스터 이미지, 그리고 예고편을 통해 파악된 느낌 – 과 달리 의외로 청소년 관람불가 판정을 받고 상영을 시작하길래 겉보기와는 다른 영화인가 보다 생각하긴 했었습니다. 역시나 <킥 애스>는 피칠갑 액션 장면이 대거 등장하는 성인용 액션 영화더군요.

더군다나 11살 밖에 안된 소녀가 살인병기로 등장해서 못된 아저씨들을 난도질하며 돌아다고 있으니 이제껏 보아온 액션물들과는 또 다른 경지를 개척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수퍼히어로가 되고 싶어했던 소년의 좌충우돌 코믹 액션 정도로 진행되던 영화는 의외로 비장미가 넘치는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분위기로 마무리됩니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쾌한 스펙타클은 별로 없지만 비교적 저렴했던 제작비(2천 8백만불) 수준을 감안한다면 비교적 잘 짜여진 내러티브와 액션 장면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비교적 현실적인 맥락에서의 수퍼히어로 또는 자경단에 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는 <킥 애스>는 단순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악당들을 혼내주고 싶다는 낭만적인 의협심만으로는 결코 수퍼히어로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데이브(아론 존슨)가 킥 애스 복장을 하고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기껏해야 편의점 앞에서 목숨을 걸고 난투극을 벌인 끝에 유투브 스타가 되는 것에 불과했고 우연한 기회에 마주치게 된 진정한 폭력의 현실 앞에서는 더이상 용기를 내지 못하고 말지요. 데이브와 다른 한 편에 있었던 데이먼(니콜라스 케이지)와 민디(클로이 모레츠) 부녀는 그 자체로 이미 비현실적인 수퍼히어로의 능력을 갖춘 인물들이긴 하지만 방사능 거미에 물리거나 애초에 태어나기를 외계인 신분이셨던 것이 아닌 일반적인 상황에서 가능한 ‘수퍼히어로 탄생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모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이먼을 수퍼히어로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아닌 광기나 다름없는 복수심이었던 거죠. 바램과 망상만으로 영웅이 탄생할 수 없다는 건 사실 어떤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인 것이 현실이긴 합니다.



브루스 웨인이나 토니 스타크와 같은 억대 갑부가 아닌 조건 하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수퍼히어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데이먼이라는 캐릭터는 의미가 있고 또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검은 투구 밑의 눈 주변에 검은색 메이크업을 셀프로 처리하는 장면도 데이먼 – 빅 대디가 작품 속에서 의미하는 바를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반면에 데이먼과 같은 인물을 아버지로 둔 민디 – 힛 걸은 아무리 어려서부터 살인병기로서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지만 그 자체로 이미 현실성이 없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킥 애스>라는 작품 자체가 진지한 사실주의로 남기 보다 오락성을 강조한 액션물의 하나로서 마무리되기로 한 이상 민디 – 힛 걸과 같은 매력적인 캐릭터에게까지 현실성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은 곧 <킥 애스>의 작품성에 있어서 한계점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지만요.











<킥 애스>는 <원티드>(2008)의 원작자 마크 밀러(글)와 존 로미타 주니어(그림)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입니다. 매튜 본 감독은 <레이어 케이크>(2004)와 <스타더스트>(2007)를 연출했었는데 수익성 면에서는 이번 <킥 애스>가 가장 성공적인 작품으로 남게 될 것 같네요.



출연진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역시 화려한 액션의 중심이 되는 민디 – 힛 걸을 연기한 클로이 모레츠라 하겠습니다. <500일의 썸머>(2009)에서 톰(조셉 고든 레빗)의 여동생으로 출연했었는데 이번 <킥 애스>로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었네요. <렛 미 인>(2008)의 리메이크 프로젝트에 주연으로 출연했으니 조만간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콜라스 케이지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습니다. 배우로서 그간의 활동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 이후 가장 설득력있는 캐릭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니콜라스 케이지가 매우 잘나고 영웅적인 이미지의 배우였다고 생각하셨던 관객이라면 <킥 애스>에서의 모습이 약간 의외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없진 않겠지만요.











그외 아론 존슨, 마크 스트롱, 크리스토퍼 민츠-프래지 등의 앙상블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마크 스트롱은 여러 작품 속에서 악역으로 매우 강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는데 아랍계나 이탈리아계까지 모두 소화할 수가 있는 외모라서 앞으로도 자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근작인 <셜록 홈즈>(2009)에서의 싸이코 연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배역이긴 했지만 <바디 오브 라이즈>(2008)의 요르단 정보국장 역으로 보여주었던 세련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가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킥 애스>의 마지막 장면은 속편의 제작을 암시하는 듯 하긴 했는데 만약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별 매력을 느끼기 힘든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피아 두목 프랭크(마크 스트롱)와 데이먼 – 빅 대디(니콜라스 케이지)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들만의 게임으로 진행된다면 그야말로 피칠갑 액션 밖에 남지 않은 악취미 영화가 되는 수 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킥 애스>의 시점에서 최소한 10 여 년이 지난 후에 킥 애스 – 힛 걸 – 레드 미스트의 성인 버전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좀 더 다양한 상상이 가미될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


영진공 신어지

 

“셜록 홈즈”, 죄송합니다만 동명이인이십니다.

<셜록 홈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셜록 홈즈>에 관한 키워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코난 도일의 원작 캐릭터인 명탐정 셜록 홈즈의 영화화, 돌아온 악동 배우를 넘어서 요즘 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순 없다 싶을 정도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마돈나 남편의 지위를 졸업(?)하고 돌아온 가이 리치 감독의 복귀작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왓슨 박사 역으로 참여한 주드 로나 셜록 홈즈의 연인이자 팜므 파탈로 출연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매력에 관해 조금 곁들이면 되었을 작품이죠. 하지만 그 결과물이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지가 못하니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쑥 들어가 버리는군요.

오래 전부터 사전 공개되었던 한 장의 스틸컷(위 사진)은 <셜록 홈즈>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기 보다는 가이 리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의한 캐릭터의 변형 또는 재창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감독의 전작 <스내치>(2002) 를 연상시키는 도박 싸움판에 셜록 홈즈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이 사진은 명석한 두뇌로 사건의 열쇠를 찾아내는 학구적인 이미지의 셜록 홈즈는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선언문과도 같았죠. 남은 것은 추리와 액션의 배합 비율 정도였다고 할까요.

역시나 <셜록 홈즈>를 통해 재탄생한 셜록 홈즈의 모습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영국 신사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새로운 셜록 홈즈는 사건이 없으면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는 히키코모리 성향에 엉뚱한 실험과 검증에 열을 올리며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고 – 그런 사실에 대해 아랑곳하지도 않죠 – 또한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이며 룸메이트이기도 한 왓슨 박사의 약혼을 훼방하는 집착증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말 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라기 보다는 살짝 궁상맞기까지 한 괴짜 캐릭터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국 남자들의 속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새로운 셜록 홈즈에 대한 캐릭터 묘사는 썩 재미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빠른 적응을 돕고 있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이 원작에 충실한 셜록 홈즈 영화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의 새로운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와의 러브 라인은 내러티브 전개에 밀접하게 연계가 되면서 생뚱맞은 느낌이 없이 작품 전체를 꽤 풍성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각본의 구성부터 가이 리치에게 맡겨서 완전히 새로운 영국 산업혁명기의 코믹 탐정물로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이름만 셜록 홈즈인 막돼먹은 깡패 탐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셜록 홈즈>가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건 이 새로운 셜록 홈즈가 감당해야 하는 범죄의 성격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고리타분한 전개 방식입니다. 블럭버스터 영화들은 왜 하나 같이 블럭버스터급의 음모를 상대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믿거나 말거나 막판 뒷풀이 설명은 왜 꼭 집어넣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내러티브에 비해 비주얼은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편인데 문제는 관객 입장에서 그닥 대단한 볼거리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건설 중이었던 타워브릿지와 템즈강 주변의 런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 외에도 ‘KBS에 단 한 대 밖에 없다는 초고속 카메라’를 빌려다 세 장면 정도의 슬로우 모션 장면을 넣었는데 나름대로 가이 리치 감독 영화의 인증 마크가 되어주고는 있습니다만 역시나 작품 전체와 밀접하지는 않은 보너스 컷에 불과합니다 – 그 중 세 명의 템즈강변의 폭파 장면은 그나마 괜찮았어요.

<셜록 홈즈>는 처음부터 영국이 낳은 최고 명탐정의 이야기를 21세기 액션 영웅 버전으로 리뉴얼하면서 최소한 두 편 이상의 시리즈물로 이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자로 결정되고 좋은 배우들까지 가세하면서 많은 기대감 속에 프로젝트의 몸집을 크게 불릴 수 있었던 모양이예요.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속편에 대한 기대감에 잠 못 이룰 일은 없을 것이 확실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확인 결과 2011년 예정으로 가이 리치 감독이 속편을 만들 예정인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만들어진 영화만 놓고 봤을 때에는 이것의 속편이 과연 만들어질 수는 있을런지, 그리고 가이 리치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을 수 있을런지도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좀 더 분방한 작품에서 장점이 드러나는 편이라 생각되는데 이 셜록 홈즈 리뉴얼 및 프렌차이즈 프로젝트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가운데 인물이 감독 Guy Ritchie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를 연기한다는 것은 영국식 액센트로 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무난했다는 평을 해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연기 천재에 가까운 배우이고 최근 <트로픽 썬더>(2008)에서도 자신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 바가 있었죠. 올해 드디어 속편이 개봉되는 <아이언 맨>(2008)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기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고요.

하지만 <셜록 홈즈>는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작품 전체가 좋았더라면 모두의 바램대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전성 시대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었을텐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셜록 홈즈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