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죄송합니다만 동명이인이십니다.

<셜록 홈즈>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던 프로젝트였습니다. <셜록 홈즈>에 관한 키워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코난 도일의 원작 캐릭터인 명탐정 셜록 홈즈의 영화화, 돌아온 악동 배우를 넘어서 요즘 이보다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순 없다 싶을 정도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그리고 마돈나 남편의 지위를 졸업(?)하고 돌아온 가이 리치 감독의 복귀작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 왓슨 박사 역으로 참여한 주드 로나 셜록 홈즈의 연인이자 팜므 파탈로 출연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매력에 관해 조금 곁들이면 되었을 작품이죠. 하지만 그 결과물이 기대했던 것 만큼 재미있지가 못하니 영화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쑥 들어가 버리는군요.

오래 전부터 사전 공개되었던 한 장의 스틸컷(위 사진)은 <셜록 홈즈>가 원작에 충실한 작품이기 보다는 가이 리치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 의한 캐릭터의 변형 또는 재창조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감독의 전작 <스내치>(2002) 를 연상시키는 도박 싸움판에 셜록 홈즈로 분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웃통을 벗고 서 있는 이 사진은 명석한 두뇌로 사건의 열쇠를 찾아내는 학구적인 이미지의 셜록 홈즈는 완전히 잊어버리라는 선언문과도 같았죠. 남은 것은 추리와 액션의 배합 비율 정도였다고 할까요.

역시나 <셜록 홈즈>를 통해 재탄생한 셜록 홈즈의 모습은 지금까지 알려졌던 영국 신사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이 새로운 셜록 홈즈는 사건이 없으면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도 않는 히키코모리 성향에 엉뚱한 실험과 검증에 열을 올리며 이웃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도 하고 – 그런 사실에 대해 아랑곳하지도 않죠 – 또한 거의 유일한 친구이자 동료이며 룸메이트이기도 한 왓슨 박사의 약혼을 훼방하는 집착증을 보이기까지 합니다.

말 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라기 보다는 살짝 궁상맞기까지 한 괴짜 캐릭터라고 하겠습니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영국 남자들의 속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새로운 셜록 홈즈에 대한 캐릭터 묘사는 썩 재미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좋은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지면서 빠른 적응을 돕고 있습니다.

가이 리치 감독이 원작에 충실한 셜록 홈즈 영화를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의 새로운 셜록 홈즈와 왓슨 박사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여기에 가세하고 있는 레이첼 맥아담스와의 러브 라인은 내러티브 전개에 밀접하게 연계가 되면서 생뚱맞은 느낌이 없이 작품 전체를 꽤 풍성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각본의 구성부터 가이 리치에게 맡겨서 완전히 새로운 영국 산업혁명기의 코믹 탐정물로 만들어버렸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합니다. 그야말로 이름만 셜록 홈즈인 막돼먹은 깡패 탐정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좀 더 확실한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었지 않았겠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셜록 홈즈>가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영화가 되어버린 건 이 새로운 셜록 홈즈가 감당해야 하는 범죄의 성격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고리타분한 전개 방식입니다. 블럭버스터 영화들은 왜 하나 같이 블럭버스터급의 음모를 상대해야만 하는 것인지, 그리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믿거나 말거나 막판 뒷풀이 설명은 왜 꼭 집어넣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내러티브에 비해 비주얼은 상당히 공을 많이 들인 편인데 문제는 관객 입장에서 그닥 대단한 볼거리로 인식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당시 건설 중이었던 타워브릿지와 템즈강 주변의 런던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것 외에도 ‘KBS에 단 한 대 밖에 없다는 초고속 카메라’를 빌려다 세 장면 정도의 슬로우 모션 장면을 넣었는데 나름대로 가이 리치 감독 영화의 인증 마크가 되어주고는 있습니다만 역시나 작품 전체와 밀접하지는 않은 보너스 컷에 불과합니다 – 그 중 세 명의 템즈강변의 폭파 장면은 그나마 괜찮았어요.

<셜록 홈즈>는 처음부터 영국이 낳은 최고 명탐정의 이야기를 21세기 액션 영웅 버전으로 리뉴얼하면서 최소한 두 편 이상의 시리즈물로 이어가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가이 리치 감독이 연출자로 결정되고 좋은 배우들까지 가세하면서 많은 기대감 속에 프로젝트의 몸집을 크게 불릴 수 있었던 모양이예요. 하지만 그 결과물을 보면 속편에 대한 기대감에 잠 못 이룰 일은 없을 것이 확실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확인 결과 2011년 예정으로 가이 리치 감독이 속편을 만들 예정인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만들어진 영화만 놓고 봤을 때에는 이것의 속편이 과연 만들어질 수는 있을런지, 그리고 가이 리치 감독이 계속 연출을 맡을 수 있을런지도 알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이 리치 감독은 좀 더 분방한 작품에서 장점이 드러나는 편이라 생각되는데 이 셜록 홈즈 리뉴얼 및 프렌차이즈 프로젝트와는 그다지 잘 어울리는 것 같지가 않아요.

가운데 인물이 감독 Guy Ritchie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셜록 홈즈를 연기한다는 것은 영국식 액센트로 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는데 아주 인상적인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그 정도면 무난했다는 평을 해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연기 천재에 가까운 배우이고 최근 <트로픽 썬더>(2008)에서도 자신이 아니면 다른 누구도 해낼 수 없는 놀라운 경지를 보여준 바가 있었죠. 올해 드디어 속편이 개봉되는 <아이언 맨>(2008) 역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이기에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고요.

하지만 <셜록 홈즈>는 아무래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작품 전체가 좋았더라면 모두의 바램대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전성 시대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축이 될 수 있었을텐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연기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다지 매력적인 인상을 남겨주지는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셜록 홈즈가 되고 말았다는 생각입니다.

영진공 신어지

“해피 고 럭키 (Happy-Go-Lucky)”,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행복이 온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피 고 럭키>가 개봉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우연한 기회로 보게됐다. 마이크 리 감독님 영화라면 의무감을 갖고 봐주는 게 예의지 암. 아무튼 의무감을 가지고 보게 된 <해피 고 럭키>는 <베스트셀러극장>에나 등장할법한  스케일의 이야기였지만 놓쳤으면 후회할 뻔했다.

<해피 고 럭키>의 주인공 포피(샐리 호킨스)는 제목처럼 매사가 즐거운 서른 즈음의 여자다. 낯선 사람에게 서슴없이 말을 걸고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도 무안해 하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방금 타고 온 자전거를 잃어버려도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 자기 것에 대한 미련도 없다. 행복전도사 포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얼마나 코믹하던지 보는 나까지도 기분이 마구 좋아지더라. (그런 포피 당신은 ‘내추럴 본 낙천주의자’ 우후훗!)

근데 모두 포피의 전도에 넘어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극중 운전강사는 운전 연수생인 주제에 교통안전엔 아랑곳없이 농담 따먹기나 하려는 포피가 한심해 보이고, 그녀의 동생은 서른이 되도록 집 장만도 못하고 결혼에도 관심이 없는 포피가 철없어 보인다. 그래도 포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니 그러지 말고 이 빡빡한 일상 나랑 함께 작은 것에 의미 두고 웃으면서 살아봐요. 제가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드릴께요. 함께 해Boa요. ^^ 이것이 바로 포피의 삶인 것이다.

영화는 포피의 삶을 중심에 놓고 진행이 되지만 그렇다고 주인공인 포피가 옳고 그녀의 삶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긴 나조차도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 달리 현실에서 그런 여자를 만난다면 좀 히껍할 것 같더라. ^^;) 대신 그것이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관계, 즉 우리네 삶이고 삶의 신비라고 말하는 것이다. 각자 처한 위치에 따라 포피의 낙천주의가 대단해보일 수도 있을 것이고 대책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것이 인간관계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하여 마이크 리 감독은 소통의 방식이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인 만큼 서로를 평가하기보다는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의문형으로 영화를 마친다.

좋은 영화는 모름지기 결말을 단정 짓지 않고 생각하게 만든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영감님도 그렇지만 마이크 리 영감님도 존재 자체가 거대한 가르침처럼 느껴지는 감독이다.

영진공 나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