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맨 2”, 스칼렛 안나왔으면 도대체 워쩔?

아이언맨은 배트맨과 비슷한 점이 많은 수퍼히어로 캐릭터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브루스 웨인과 마찬가지로 외계인의 자식도 아니요 방사능에 노출된 벌레에 물린 일도 없는, 소위 ‘민간인’ 자격으로 수퍼히어로의 반열에 올라선 인물이잖아요. 두 사람은 모두 기업가 출신의 백만장자로서 악당들을 물리치는 데에 필요한 특수 복장이나 무기들을 스스로 마련해서 활약합니다.

물론 두 캐릭터 사이에는 다른 점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브루스 웨인이 배트맨으로서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활동하는 반면 토니 스타크는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내가 바로 아이언맨”이라 밝히고 업적에 따른 댓가를 누립니다. 배트맨이 최근작의 제목처럼 ‘어둠의 기사’로 머물고 있는 반면 아이언맨은 그와 달리 ‘빛의 기사’나 ‘태양의 기사’로 자리매김합니다.

<아이언맨>(2008)의 인기는 그 천연덕스러운 밝음의 미학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같은 해에 개봉되었던 크리스토퍼 놀란 버전의 두번째 배트맨 시리즈, <다크 나이트>(2008)가 일반적인 수퍼히어로 영화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으며 평단과 객석 모두에게서 열광적인 지지를 얻었던 때에도 “내가 원했던 배트맨은 이런 게 아니었다”고 했던 관객들이 있었습니다.

백만장자로서의 오만방자함을 사칭하면서 막상 수퍼히어로로서는 끊임없이 고뇌해야만 했던 배트맨은 어쩌면 작품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캐릭터 자체의 매력은 내던져야만 했던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은 과감히 여타의 수퍼히어로들과는 다른 길, 즉 관객들에게 ‘깊이에의 강요’가 아닌 ‘2시간 동안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일에 충실함으로써 예상되었던 이상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속편이면서도 그 흔한 부제목이나 변형도 없이 그저 <아이언맨 2>입니다. 이토록 쿨한 제목짓기 만큼이나 내용면에서도 별다른 변화의 시도가 필요치 않았던 속편 프로젝트였습니다. 존 파브로 감독과 주연급 배우들의 대부분이 그대로 다시 참여해준 가운데 새로운 캐릭터들이 추가로 투입되었습니다.

<다크 나이트>가 그랬듯이 내용과 주제 의식에서의 깊이를 더하기로 했던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수퍼히어로물의 속편이란 물량으로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깊이를 포기하고 철저히 물량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수퍼히어로물이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는 조엘 슈마허 감독이 연출했던 <배트맨 포에버>(1995)와 <배트맨과 로빈>(1997)이 좋은 선례를 남긴 바가 있긴 합니다.

<아이언맨 2>의 경우 물량 공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 만한 여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망가지게 될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 역시 아니었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던 만큼 관객 입장에서도 전편에서 보여주었던 만큼의 즐거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2시간의 관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보게된 속편 영화입니다.

<아이언맨 2>에 새로이 투입된 물량이란 세 명의 배우와 CG로 만들어낸 다수의 로봇들로 요약됩니다 – 테렌스 하워드를 대신해서 출연한 돈 치들을 제외한다면요. 미키 루크와 샘 록웰이 불편한 악역 짝패를 이뤄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다른 한편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이 토니 스타크의 가까이에서 기네스 팰트로만으로는 부족했던 2%를 확실하게 채워줍니다.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매력적인 여비서 나타샤 로마노프로서만 등장할 때에는 그저 눈요기 정도로 끝날 것이었다면 뭐하러 나왔을까 싶었는데 역시나, 블랙 위도우로 변신해서 특수 합금 갑옷의 아이언맨이 보여줄 수 없었던 육탄 액션을 선보일 때에는 아, <아이언맨> 시리즈가 이번에도 한 건 해냈구나 싶었습니다 – 아니, <아이언맨 2>가 전편에 비해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니요? 스칼렛 요한슨이 가죽옷을 입고 나왔잖아요!

전편에서 예고되었던 것처럼 제임스 로드 중령(돈 치들)이 또 다른 아이언맨 수트를 입고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과 콤비를 이룬다거나, 이안 반코(미키 루크)가 완성해낸 무인 조종 전투로봇들이 대거 등장하며 화려한 공중 추격전을 벌이는 등은 아이언맨에 심각하게 열광하는 관객이 아니고서는 그야말로 물량 이상의 각별한 재미를 느끼기는 쉽지 않았던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서류 가방 보다 조금 큰 사이즈의 이동형 아이언맨 수트가 새롭게 선보였고 그외 토니 스타크의 연구실이 홀로그램 시스템 등으로 이전 보다 훨씬 첨단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 역시 이런 정도의 영화에서라면 당연히 나와줘야 할 눈요기 거리 정도 밖에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직접 연기하는 – 일부 장면에서는 대역을 쓴다 할지라도 –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과 활약은 분명히 물량의 확대 그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언맨 2>와 같이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시될 수 밖에 없는 속편 영화에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엔딩 크리딧이 무지하게 길 것으로 예상되어서 영화가 끝나자마자 상영관을 빠져나오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습니다만 – 물론 미리 알고 생각을 해두었더라면 참았겠지요 – <아이언맨 2>에는 전편과 같은 보너스 컷이 있다고 하더군요. 이번에는 토르(Thor)라는 마블코믹스의 또 다른 수퍼히어로의 등장이 암시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이언맨> 시리즈는 그것 하나만으로 계속 이어져갈 계획이었던 것이 아니라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각자의 영화화된 작품들로 출발해서 종국에는 모든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종합편을 선보인다는 계획 하에 진행된 프로젝트의 일부인 것이라고 하는군요.

역시나 일일 연속극인 것도 아닌 바에야 2 ~ 3년에나 한 편씩 선보이는 장편 영화의 시리즈물로서, 그리고 이미 그 바닥을 훤히 드러내기 시작한 <아이언맨> 시리즈나 토니 스타크의 캐릭터를 좋아하기 시작한 관객들에게까지도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소식인지요.

아니나 다를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의 2012년 출연 예정작은 마블코믹스의 수퍼히어로들이 총출동한다는 <어벤저스>라고 합니다. 그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그 전에 없었던 작품의 깊이가 갑자기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언맨>을 처음 보았을 때 만큼의 재미는 보장해줄 수 있는 묘수는 이미 마련해놓은 셈이라 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영화 보기 전까지 저는 아이언맨을 잘 몰랐고 블랙 위도우도 몰랐습니다. 앞으로 보게 될 토르나 캡틴 아메리카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영화화하고 있는 사람들은 필요하다면 스칼렛 요한슨의 할머니를 데려와서라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낼 줄 아는 이들이라는 건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더 문”, 미스테리라기 보다는 윤리적 문제 의식을 다룬 영화

<더 문>은 제목처럼 달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입니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만나는 샘 록웰의 단독 주연작이지요. 스틸 컷들을 대충 보면서 스릴러물이거나 경우에 따라 공포 영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자세한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는 했지만 막연하게 SF 공포영화류를 기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더 문>은 SF이기는 하지만 스펙타클한 미스테리 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의 휴먼 드라마에 좀 더 가깝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탄소 에너지 시대를 끝마치고 달 표면에서 청정 에너지원을 채굴해서 사용하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라는 나레이션이 깔립니다. 그래서 <문라이트 마일>(2007) 이 연상되기도 하지만 배경만 달 표면일 뿐 <더 문>에서는 국제 분쟁의 조짐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2주 후에는 3년 간의 근무 기간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 가족들과 다시 만날 일만을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샘 벨(샘 록웰)의 몹시 외롭지만 평화로운 달에서의 일상이 펼쳐질 따름입니다.

* 고강도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더 문>에서의 분쟁 – 드라마를 구성하기 위한 갈등의 배치 – 은 다름아닌 샘 벨과 샘 벨 간에 발생합니다. 이게 뭔 소린고 하니 3년 간의 근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가기로 되어 있던 외로운 달 나라 우주인 샘 벨이 사실은 복제인간이었던 것이죠. 작업 중 사고로 인해 영화에서 처음 등장한 샘 벨이 의식불명에 빠지자 새로운 3년을 시작하게 될 또 다른 복제인간 샘 벨을 시스템이 깨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무시한 채 사고를 당한 다른 샘 벨을 구출해오면서 시작됩니다. 새로운 샘 벨이 회사의 지시를 따라 구조대의 도착을 얌전히 기다리기만 했다면 샘 벨(들)은 영원히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을테지요. 그리고 지구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와 어린 딸이 오래 전 과거의 기억에 불과하다는 사실도요.

갑자기 두 사람이 된 샘 벨은 서로가 진짜임을 주장하며 다투게 됩니다. 하지만 샘 벨과 샘 벨 간의 갈등이란 결국 자신들이 복제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됨에서 오는 충격과 함께 그런 식으로 운영을 해온 회사의 비윤리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하여 <더 문>은 놀랍게도 리들리 스콧 감독의 클래식 <블레이드 러너>(1982)와 정서적으로 같은 연장선 상에 놓인 작품이 되고 맙니다. 물론 액션 씨퀀스의 스케일이나 존재론에 대한 고민의 깊이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분명하긴 하지만요.

<더 문>에서 가장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사용량의 70%를 담당하고 있는 이 중요한 작업에 어찌하여 단 한 명의 작업 인원만 파견해놓고 있느냐는 부분입니다. 최소한 기지 하나에 7 ~ 8명의 팀 조직은 갖다놔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나 싶은데 영화는 샘 벨과 샘 벨 간의 갈등과 해법을 위해 다소 비현실적인 설정을 채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관객이라면 누구나 샘 벨이 근무하고 있는 달 기지의 이름 “SARANG – 사랑”을 영화 곳곳에서 발견하며 즐거워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데이빗 보위의 아들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감독 던칸 존스가 자신의 장편 데뷔작 <더 문>을 만들 당시 여자친구가 한국인(당시 런던필름스쿨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이사강)이었다고 하는군요.

감독의 말로는 미래의 달 에너지 채굴 사업을 하는 회사가 미국과 한국의 합자회사라는 설정도 크게 어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건 삼성이 첼시 유니폼의 스폰서를 하는 등 영국 내에서 우리나라 기업과 제품들의 입지가 엄청 좋아진 최근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엔 중국어(한자)가 좀 더 어울렸을 것 같은데 영어권 사람들에겐 별 차이가 없어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샘 록웰의 대표작은 아직까지는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컨페션>(2003)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샘 록웰이 출연한 SF 영화라고 하면 역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 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죠.

어쨌든 <더 문>은 그야말로 샘 록웰 혼자 고군분투하는 1인 영화라고까지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케빈 스페이시가 친구 같은 컴퓨터 거티의 목소리로 출연했고 샘 벨의 아내나 다른 등장 인물들이 간간히 모습을 비추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씨퀀스에는 역시 샘 록웰이 연기하는 병든 샘 벨과 잠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된 팔팔한 샘 벨로 채워집니다.

혹시 샘 록웰이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더 문>은 어떤 영화가 되었을까요. 아주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 제작비가 올라갔을 것이다, 입니다. 워낙 잘 하시는 데다가 인기도 많은 배우들이 많으니 샘 록웰이 아니었더라도 <더 문>은 좋은 영화로 만들어졌을 거라 생각한다는 거죠. 브래드 피트 주연의 <더 문>으로 한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건 과연 저 혼자 뿐일까요.

 

영진공 신어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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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이하 <히치하이커>)는 78년에 라디오 방송용 대본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오랫동안 인기를 누렸는데 처음 영화화가 기획된 것은 82년이었다. 원작자인 더글라스 아담스는 시나리오 작업 도중인 2001년에 사망했고 감독으로 물망에 오른 이는 <오스틴 파워> 시리즈의 제이 로치와 미셸 공드리, 스파이크 존즈 등이 있었지만 결국엔 영국의 젊은 뮤직비디오 감독 가스 제닝스의 장편 데뷔작으로 탄생하게 됐다… 라지만 뭐 이런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으랴 싶다.

영화 속 풍자와 농담의 내용이나 미묘한 뉘앙스로 빚어내는 의미들을 100% 이해하는 것은 영미권에서 태어나 그쪽 문화와 언어에 친숙하지 않은 이상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재미있는 영화를 포기하는 건 지구가 철거되기 직전에 히치하이킹하여 우주를 여행할 수 있는 멋진 기회를 포기하고 종이 봉지를 뒤집어 쓴 채 뒤로 자빠지는 일과 같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먹을 수 있는 것들만 따라 웃어도 “히치하이커”는 올해 가장 웃을 일이 많은 코미디물인데다가 <스타워즈>가 부럽지 않은 제법 스펙타클한 비주얼까지 선사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Don’t Panic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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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만과 관료주의를 꼬집거나 지구와 인간의 운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은 <히치하이커>가 처음인 것도 아니고 생각보다 그리 예리한 편도 아니다. <히치하이커>는 그런 주제를 너무 심각하게 다루기 보다는 최대한 가볍게, 때로는 터무니 없는 농담처럼 다루면서 오히려 광대한 우주 속에 그리 흔하지 않은 작은 별, 지구의 아름다움들을 찬미하는 경향이 좀 있다. 그렇다고 고리타분하게 ‘지구를 지켜라’식 결말이나 뻔한 계몽적 메시지로 고리타분하게 끝맺지 않는 것 또한 <히치하이커>의 미덕이다.

<히치하이커>는 영국의 워킹타이틀과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공동 제작한 필름팩토리(The Filmfactory)가 제작한 영화다. 영화를 보면 같은 솥단지에서 만들어진 그 밥이란 걸 알게 된다. 약간 얼빵한 중산층 영국 남자를 주인공으로 놓고 영국인 스스로에 대한 농담걸기에 스스럼이 없고 약간의 로맨스 또한 빼놓지 않고 곁들이는 모양새가 그렇다. <러브 액츄얼리> 이후 이제는 친숙한 얼굴이 되어 버린 빌 나이와 목소리만 들어도 특유의 나른한 표정이 떠오르는 앨런 릭먼을 비롯해서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낯익은 많은 영국 배우들이 목소리 출연을 하고 있고, 특히 샘 록웰의 닝글닝글한 원맨쇼와 오랜만에 보는 존 말코비치의 그로테스크한 등장 또한 <히치하이커>만이 줄 수 있는 값진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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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