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수다떨기 (3), 초능력에 대하여



 



Q. 오늘, 주제는 ‘환상의 초능력’이에요. 박사님은 어렸을 때, 슈퍼맨 흉내내다가, 옥상에서 뛰거나 뭐 그런 적 없으세요? 어린시절 그런 사람들 꽤 많더라구요.

– 저는 스스로 수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른 세계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해요. 하지만 유리겔라가 TV에서 숟가락 구부리는 쇼를 할 때는 따라했었죠. 물론 숟가락은 전혀 구부러지지 않더군요.

Q. 왜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신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말이 있는데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 그건 어떤 심리일까요?

– 상상력 덕분이죠. 우리는 지금 현재에만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미래와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여기서 “어쩌면 이렇게 할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은 “왜 지금 나는 그렇게 못하지?” 라는 의문으로 연결이 되는 거죠.

아마 이런 의문이 없었다면 인류 발전도 없었을 겁니다. 날수 있다면.. 뭐도 뭣도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상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지구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텐데.. 라는 상상이 우주선을 만들어 내듯이요. 아서 클라크라는 유명한 SF작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충분히 진보한 과학기술은 마술과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결국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거죠.

Q. 뭐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번 숭례문 화재 때도 잽싸게 불을 끈다든지, 시간을 되돌려서 정말 엄청나게 실수했던 일을 만회한다던지, 그런 거요.

– 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죠. 문제는 시간을 되돌리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이지만요. 이런 것들은 과거에 대한 상상인데 아무 노력도 없이 이런 상상만 하는 건 후회로 연결이 되요. 하지만 과거에 대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환시키면 역사가 되죠.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 과거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이니까요.


아오…

Q.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는 여자의 속마음을 읽는 한 남자가 나와요.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남자와 여자, 너무 다른 거라는 걸, 이 남자는 알아가죠?

– 그렇죠. 근데 사실 이 남자가 그 전에는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몰랐느냐 하면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머리를 쓰는 게 바로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이거든요. 대화를 할 때도 얘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바로 그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초능력인 독심술이죠.

이 남자의 경우도 그래요. 이 사람은 바람둥이였쟎아요. 여자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바람둥이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아는 것 자체가 독심술이니까요. 원래는 잘 나가던 이 남자가 곤경에 빠진 이유는 여자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권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은 계속 바뀌었던 거죠. 근데 멜 깁슨은 구시대 여자들의 마음은 잘 읽었지만, 바뀐 새로운 세상의 여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던 거고요.


참고로 What women want? 라는 제목은 원래 프로이트가 자기 책에 한탄하듯 쓴 글

Q. 그런데요, 이게 또 너무 속마음을 다 알아차려도 문제가 안될까..싶을 정도로 초능력이란 게 좀 무서울 때가 있어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안되는 것처럼 영원히 타인의 마음 한 켠은 모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 사실 우리의 뇌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첫째,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일, 그리고 남들은 내 맘을 맘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말씀처럼 원활한 사회생활과 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 한 켠에 남들이 몰라도 되는 것들 숨겨놓을 필요가 있거든요.
남이 내 마음을 읽는 경우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남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 남들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읽는다면 정말 무섭지 않겠어요?


내향적 일본문화에서 독심술을 거꾸로 해석한 영화, <사토라레>

Q. 영화 속 초능력 중에서 아주 많이 등장한 소재는 시간을 뛰어 넘는 것일거에요. 얼마 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빽 튜 더 퓨처>, <네스트>, 또는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줬던 <패밀리 맨>, 한 순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이지 않나..하는데요?

– 사람들의 소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린다는 상상은 최근에 특히 더 많아졌는데, 아마도 되감기가 가능한 매체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대가인 백남준씨가 예전에 한 말입니다. 그 분은 1970년대에 벌써 비디오 플레이어 때문에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아예 바뀌어버릴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래서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죠.

옛날 사람들이 가장 원초적으로 가진 소망이 뭔지를 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극락 혹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면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극락에는 질병이 없고, 죽음도 없고, 일하지 않아도 평생 굶을 걱정이 없으며, 전쟁이나 다툼이 없죠. 그것들이 아마 당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던 것들일 거예요.

Q. 그리고 또, 많은 맨..시리즈들이 초능력을 다루고 있어요. <슈퍼맨 리턴즈>, 그리고 <스파이더맨>, 초능력자들의 종합세트 등. 그들은 때론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의 초상을 가지고도 있는데요?

– 그래서 계속 새로운 초능력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수퍼맨은 그야 말로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거의 기독교의 구세주같은 존재죠. 수퍼맨은 시간도 되돌리쟎아요. 못하는게 없죠. 이건 가장 원초적인 소망의 현신이지만, 그만큼 미숙한 소망이기도 해요. 무조건 최고!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쟎아요.

수퍼맨은 이런 초능력 영웅의 원형이지만 그 덕분에 인기도 적죠.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능력은 제한된 반면 그 제한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좀 더 우리 삶과 닮아있어요. 게다가 능력이 부족하니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그러면 영화가 더 재미있죠. 그런 면에서 수퍼맨보다는 스파이더맨이 좀 더 현대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은 2편이 최고. 그 중에서도 저 지하철 장면 마지막 부분, 시민들이 얘를 감쌀때. 엉엉…

Q. 그래서 그런가요. 영화 <점퍼>에서 점퍼들을 없애려는 ‘팔라딘’들이 있듯이, 이들을 늘 소탕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것도 일종의 제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쟎아요. 한쪽은 펑펑 순간이동 하는데 나머지는 그걸 그냥 구경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불공평한 게임은 재미없어서 안봐요.


난 정말, 지금 데쓰노트만 쓸 수 있다면 여생이 절반으로 줄어도 무관함.

Q. 소탕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초능력자들의 능력. 별로 달갑지 않죠. 그런데, 초능력자들이 마음만 잘 못 먹으면요, 사회적으로 정말 물의를 일으킬만한 능력들도 꽤 많이 나와요. 가령 영화 <데스노트> 같은 경우,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사람이 죽어요.

– 물론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쟎아요.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거든요. 근데 이 사회가 사람들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능력에는 범위가 있어요. 그걸 넘어선다면 언제나 문제가 되죠. 너무 똑똑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일종의 초능력자들인데 그들 역시 대부분 사회생활 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데스노트> 쯤 되면 아주 무시무시하죠.

근데 사실 초능력자가 되면 머리는 아주 나빠질 것 같기도 해요. 우리들은 모두 초능력자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에겐 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이 있거든요. 이 능력 다른 동물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 인간은 초능력자처럼 보이겠죠. 몸은 비리비리한 것들이 어떻게 저런 괴상한 도구를 만들어서 우리를 이기지? 하면서… 우리는 지능을 키워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이죠.

하지만 다른 초능력에 너무 의존하면 지능을 쓸 일이 없어지고, 결국 바보가 되겠죠.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가면 갈수록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초능력에 너무 의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따지고보면 덕 라이만 이나 스필버그, 카메론 같은 사람들이 진짜 초능력자…

Q. <데스 노트L:새로운 시작>에서는, ‘전인류 말살프로젝트’를 저지하려는 L의 모험이 시작되어요. 지금의 인간은 악이기 때문에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사신’의 불신과, 이를 막기 위해선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L의 믿음.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줄거리였는데요….

–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같은 경우는 철없이 초능력에만 의지하려는 미성숙한 우리 모습을 대표한다면, L의 입장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역할이예요. 초능력으로 한방에 뭘 해결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이성적으로, 노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죠.

Q. 오늘 영화 속 초능력으로 말을 나눠서 그렇지 초능력, 초자연, 심령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혹 당하기도 하는 게 현실 속의 이야기에요. 어떤 심리 테스트에는 1. 투시, 2. 예지 3. 순간이동 4. 염력 5.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능력, 6.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중 어느 것을 가지고 싶은가? 뭐 이런 걸로 심리 테스트도 있던데…영화 속 초능력, 박사님은 어떤 능력이 부럽던가요?

– 저도 성격검사 도구를 개발할 때 비슷한 질문을 넣은 적이 있어요. 투명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평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염력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게으르거나 남들을 놀래키는 힘을 원하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물론 예지능력이 제일 부러워요.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시작한 거거든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인데 이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예요. 지금도 그런 예지능력을 가진 도구를 개발하려고 연구하고 있고요.


수퍼맨이 좋아요, 스파이더맨이 좋아요?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 주 어떤 내용으로 만나볼까요?

– 글쎄요.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늘 염두에 두는 요소 중에 하나가 반전이거든요. 반전 강박증이라고 할 만큼.. 반전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 영화 속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