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 헐크, 배트맨의 심리학

 


 


 


 



 


 

수퍼맨: 신 혹은 천사



수퍼맨은 현대판 천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슈퍼맨을 볼 때마다 지상의 인간을 사랑한 나머지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를 그린 <베를린 천사의 시> 라는 영화를 떠올리곤 합니다. 그는 하늘 저편에서 내려왔고, 애초부터 고귀하고 순수한 성품을 타고났고, 거기다가 지구상의 그 어떤 존재보다도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이라기 보다는 신에 가깝습니다.


 


수퍼맨의 능력은 보통 인간의 능력과 비슷하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모두 시선으로 눈빛공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빛 공격은 심리적인 것이죠. 하지만 수퍼맨은 정말로 눈빛이 레이져 광선입니다. 우리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쉼으로써 촛불 정도는 끌 수 있지만 수퍼맨의 들숨과 날숨은 허리케인만큼 강하고 용암도 식힐수 있을만큼 차갑죠. 수퍼맨의 청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super)합니다. 그런 그가 정체를 숨기고 마치 평범한 인간인 것처럼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신이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옛날 이야기들을 연상하게 하는 설정이죠.



 






神 티를 팍팍 내는 포즈 …



 



수퍼맨을 이해하는 심리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재들의 고민이죠. 이건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랑 비슷합니다. 수퍼맨은 어릴 적에는 자신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세상 사람들처럼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지요. 그의 고민은 남들보다 뒤쳐저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너무 앞서기 때문에 생깁니다. 마치 오리들 사이에서 자라난 백조처럼 말이죠.

 


영재들도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 지낼 것 같지만 사실은 정 반대입니다. 대부분의 영재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딴지를 걸거나 논쟁을 벌이고(예를 들어, 선생님 말씀이 틀렸는데요. 이런 식으로 말이죠), 정상적인 수업은 너무 지루하기 때문에 딴짓을 하다가 사고를 치고, 친구들과도 전혀 다른 취미생활을 하다 보니 왕따를 당하기 쉽습니다.


 


비정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평균에서 벗어나면 누구든 비정상이죠. 지나치게 낮은 지능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높은 지능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얘야, 교실에선 네가 선생보다 똑똑하다는 걸 티내면 안된단다 …


(이건 실제로 영재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첫번째 기술입니다)


 



두 번째 심리는 상황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정체감입니다. 수퍼맨은 그의 고향별 크립톤 행성에서는 정말 평범한 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구에 오면 그는 수퍼맨이 되지요. 그의 유일한 약점이 크립톤 별의 물질인 크립토나이트라는 것도 이와 직결됩니다. 크립토나이트 앞에서는 그도 평범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여, 유명 연예인은 TV나 영화 속에서는 정말 멋있고 대단해서 평범한 우리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어린 시절을 잘 아는 친구들은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알거나 혹은 좋지 않은 모습을 뒤에 숨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쟎아요. 아인슈타인도 우리는 인류의 평화를 걱정하는 순수한 과학자라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의 가족들은 무책임하고 위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그를 기억하기도 한다지요.







 



 


 

헐크: 억압과 폭발



헐크와 부루스 배너는 인간의 양면성을 상징합니다.

헐크는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억압’이라는 방어기제 개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이트가 말하길 우리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욕구나 본능을 억누르고 부정하면서(이게 억압입니다) 무의식 속에 숨겨둔다고 했거든요.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거죠.

 


헐크의 다른 모습인 부루스 배너 박사는 착하고 점잖고 폭력을 싫어하는 공부벌레 순둥이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정말 완벽하게 착하고 점잖기만 할까요? 그렇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죠.


 


인간에게는 공격성이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즉 우리 모두에게는 공격성이 있는데 부루스 배너 박사는 그 공격성을 무의식 속에 꼭꼭 가두어둔 겁니다. 그러다가 과학실험이 우연히 이상한 영향을 미쳐서 그의 무의식 속에 감금되어 있던 공격성이 뛰쳐나오는 겁니다. 헐크가 바로 그 모습이죠.


 







난 늘 화가 나 있어… 평소엔 그냥 참고 있을 뿐이야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심리학의 원리는, 지나친 억압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겁니다. 우리 주변에도 헐크처럼 되는 사람들이 있지 않던가요? 평소에는 순둥이처럼 굴다가 갑자기 분노를 폭발시켜버리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깁니다. 불만이나 분노를 그때 그때 해결했더라면 오히려 사람들로부터 인정도 받고 대우도 더 좋아졌을텐데, 갑자기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버럭버럭 화를 내니까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가까이 하지 않으려 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분노를 폭발시키며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물건을 부수었다면 손해배상을 해야 하거나 심하면 감옥에 가야 하는 등의 큰 손해도 보게 됩니다.




보통 건강한 사람들은 자기의 본능이나 욕구를 지나치게 억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생산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지요. 이런 방식을 ‘승화’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공격성이 높은 사람들이 자기 공격성을 승화시키면 경찰관이나 소방관, 혹은 격투기 선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발휘하는 공격성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공격성이죠.


 



 



 


 

배트맨: 강박과 불안



배트맨의 기본 심리는 불안감 입니다.

배트맨은 법이나 경찰을 믿지 않습니다. 어릴 적에 부모님이 대로변에서 처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보았던 그는 국가권력이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자력구제의 원칙을 따릅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불안감을 수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사회와 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렇다고 믿기 때문에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지요. 하지만 더 이상 사법 시스템을 믿지 않기로 결정한다면, 그래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결국 그걸 해결해야 하는 주체는 나 혼자라고 생각한다면, 도시는 끝없는 두려움의 원천이 됩니다. 모두를 의심해야 하고 늘 자기를 방어할 준비를 해야 하지요. 배트맨의 삶이 그래서 시작됩니다.


 


배트맨은 자기의 정체를 숨깁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믿을 수 없으니까요. 배트맨이 방탄망또와 배트카를 비롯한 온갖 장비를 몸에 두르고 다니는 이유는 범죄로부터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보자면 배트맨의 심리상태는 편집성 성격장애와 강박성 성격장애가 혼합된 모습입니다.


 


편집성 성격장애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모두가 나를 질투하고 시기하며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기죠. 그래서 자기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면 누군가의 음모라고 여기고 복수를 준비합니다. 의처증, 의부증 같은 것도 편집성 성격장애의 일종인데, 이게 심해지면 정말 남을 해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무서운 성격장애죠.


 


강박성 성격장애자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될 까봐 늘 불안해합니다. 세균에 감염될까봐 맨손으로 문손잡이도 안 만지거나 악수도 못하고, 옷에 뭐가 묻을까봐 공원벤치에 앉지도 않고 음식점에도 못 들어가고, 일을 할때도 뭐가 잘못될까봐 끝없이 재검토를 하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유형입니다. 그게 다 그저 불안하기 때문이지요. 배트맨이 온갖 장비로 완전무장을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조커는 배트맨의 악몽 속에서 기어나왔음직한,



배트맨이 두려워하는 모든 것의 총합





 

우리 모두에게는 어느 정도의 강박증도 있고 약간의 편집증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용한 성격입니다. 화장실에서 용변을 본 뒤에나 외출하고 돌아와서 손을 씻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죠.

 


우리 세상에서는 언제든 사기 당하거나 잘못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는 것도 좋은 일이죠.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문제가 됩니다.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3), 초능력에 대하여



 



Q. 오늘, 주제는 ‘환상의 초능력’이에요. 박사님은 어렸을 때, 슈퍼맨 흉내내다가, 옥상에서 뛰거나 뭐 그런 적 없으세요? 어린시절 그런 사람들 꽤 많더라구요.

– 저는 스스로 수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른 세계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해요. 하지만 유리겔라가 TV에서 숟가락 구부리는 쇼를 할 때는 따라했었죠. 물론 숟가락은 전혀 구부러지지 않더군요.

Q. 왜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신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말이 있는데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 그건 어떤 심리일까요?

– 상상력 덕분이죠. 우리는 지금 현재에만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미래와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여기서 “어쩌면 이렇게 할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은 “왜 지금 나는 그렇게 못하지?” 라는 의문으로 연결이 되는 거죠.

아마 이런 의문이 없었다면 인류 발전도 없었을 겁니다. 날수 있다면.. 뭐도 뭣도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상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지구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텐데.. 라는 상상이 우주선을 만들어 내듯이요. 아서 클라크라는 유명한 SF작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충분히 진보한 과학기술은 마술과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결국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거죠.

Q. 뭐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번 숭례문 화재 때도 잽싸게 불을 끈다든지, 시간을 되돌려서 정말 엄청나게 실수했던 일을 만회한다던지, 그런 거요.

– 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죠. 문제는 시간을 되돌리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이지만요. 이런 것들은 과거에 대한 상상인데 아무 노력도 없이 이런 상상만 하는 건 후회로 연결이 되요. 하지만 과거에 대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환시키면 역사가 되죠.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 과거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이니까요.


아오…

Q.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는 여자의 속마음을 읽는 한 남자가 나와요.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남자와 여자, 너무 다른 거라는 걸, 이 남자는 알아가죠?

– 그렇죠. 근데 사실 이 남자가 그 전에는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몰랐느냐 하면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머리를 쓰는 게 바로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이거든요. 대화를 할 때도 얘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바로 그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초능력인 독심술이죠.

이 남자의 경우도 그래요. 이 사람은 바람둥이였쟎아요. 여자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바람둥이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아는 것 자체가 독심술이니까요. 원래는 잘 나가던 이 남자가 곤경에 빠진 이유는 여자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권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은 계속 바뀌었던 거죠. 근데 멜 깁슨은 구시대 여자들의 마음은 잘 읽었지만, 바뀐 새로운 세상의 여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던 거고요.


참고로 What women want? 라는 제목은 원래 프로이트가 자기 책에 한탄하듯 쓴 글

Q. 그런데요, 이게 또 너무 속마음을 다 알아차려도 문제가 안될까..싶을 정도로 초능력이란 게 좀 무서울 때가 있어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안되는 것처럼 영원히 타인의 마음 한 켠은 모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 사실 우리의 뇌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첫째,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일, 그리고 남들은 내 맘을 맘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말씀처럼 원활한 사회생활과 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 한 켠에 남들이 몰라도 되는 것들 숨겨놓을 필요가 있거든요.
남이 내 마음을 읽는 경우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남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 남들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읽는다면 정말 무섭지 않겠어요?


내향적 일본문화에서 독심술을 거꾸로 해석한 영화, <사토라레>

Q. 영화 속 초능력 중에서 아주 많이 등장한 소재는 시간을 뛰어 넘는 것일거에요. 얼마 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빽 튜 더 퓨처>, <네스트>, 또는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줬던 <패밀리 맨>, 한 순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이지 않나..하는데요?

– 사람들의 소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린다는 상상은 최근에 특히 더 많아졌는데, 아마도 되감기가 가능한 매체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대가인 백남준씨가 예전에 한 말입니다. 그 분은 1970년대에 벌써 비디오 플레이어 때문에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아예 바뀌어버릴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래서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죠.

옛날 사람들이 가장 원초적으로 가진 소망이 뭔지를 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극락 혹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면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극락에는 질병이 없고, 죽음도 없고, 일하지 않아도 평생 굶을 걱정이 없으며, 전쟁이나 다툼이 없죠. 그것들이 아마 당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던 것들일 거예요.

Q. 그리고 또, 많은 맨..시리즈들이 초능력을 다루고 있어요. <슈퍼맨 리턴즈>, 그리고 <스파이더맨>, 초능력자들의 종합세트 등. 그들은 때론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의 초상을 가지고도 있는데요?

– 그래서 계속 새로운 초능력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수퍼맨은 그야 말로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거의 기독교의 구세주같은 존재죠. 수퍼맨은 시간도 되돌리쟎아요. 못하는게 없죠. 이건 가장 원초적인 소망의 현신이지만, 그만큼 미숙한 소망이기도 해요. 무조건 최고!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쟎아요.

수퍼맨은 이런 초능력 영웅의 원형이지만 그 덕분에 인기도 적죠.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능력은 제한된 반면 그 제한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좀 더 우리 삶과 닮아있어요. 게다가 능력이 부족하니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그러면 영화가 더 재미있죠. 그런 면에서 수퍼맨보다는 스파이더맨이 좀 더 현대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은 2편이 최고. 그 중에서도 저 지하철 장면 마지막 부분, 시민들이 얘를 감쌀때. 엉엉…

Q. 그래서 그런가요. 영화 <점퍼>에서 점퍼들을 없애려는 ‘팔라딘’들이 있듯이, 이들을 늘 소탕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것도 일종의 제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쟎아요. 한쪽은 펑펑 순간이동 하는데 나머지는 그걸 그냥 구경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불공평한 게임은 재미없어서 안봐요.


난 정말, 지금 데쓰노트만 쓸 수 있다면 여생이 절반으로 줄어도 무관함.

Q. 소탕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초능력자들의 능력. 별로 달갑지 않죠. 그런데, 초능력자들이 마음만 잘 못 먹으면요, 사회적으로 정말 물의를 일으킬만한 능력들도 꽤 많이 나와요. 가령 영화 <데스노트> 같은 경우,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사람이 죽어요.

– 물론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쟎아요.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거든요. 근데 이 사회가 사람들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능력에는 범위가 있어요. 그걸 넘어선다면 언제나 문제가 되죠. 너무 똑똑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일종의 초능력자들인데 그들 역시 대부분 사회생활 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데스노트> 쯤 되면 아주 무시무시하죠.

근데 사실 초능력자가 되면 머리는 아주 나빠질 것 같기도 해요. 우리들은 모두 초능력자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에겐 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이 있거든요. 이 능력 다른 동물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 인간은 초능력자처럼 보이겠죠. 몸은 비리비리한 것들이 어떻게 저런 괴상한 도구를 만들어서 우리를 이기지? 하면서… 우리는 지능을 키워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이죠.

하지만 다른 초능력에 너무 의존하면 지능을 쓸 일이 없어지고, 결국 바보가 되겠죠.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가면 갈수록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초능력에 너무 의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따지고보면 덕 라이만 이나 스필버그, 카메론 같은 사람들이 진짜 초능력자…

Q. <데스 노트L:새로운 시작>에서는, ‘전인류 말살프로젝트’를 저지하려는 L의 모험이 시작되어요. 지금의 인간은 악이기 때문에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사신’의 불신과, 이를 막기 위해선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L의 믿음.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줄거리였는데요….

–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같은 경우는 철없이 초능력에만 의지하려는 미성숙한 우리 모습을 대표한다면, L의 입장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역할이예요. 초능력으로 한방에 뭘 해결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이성적으로, 노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죠.

Q. 오늘 영화 속 초능력으로 말을 나눠서 그렇지 초능력, 초자연, 심령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혹 당하기도 하는 게 현실 속의 이야기에요. 어떤 심리 테스트에는 1. 투시, 2. 예지 3. 순간이동 4. 염력 5.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능력, 6.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중 어느 것을 가지고 싶은가? 뭐 이런 걸로 심리 테스트도 있던데…영화 속 초능력, 박사님은 어떤 능력이 부럽던가요?

– 저도 성격검사 도구를 개발할 때 비슷한 질문을 넣은 적이 있어요. 투명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평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염력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게으르거나 남들을 놀래키는 힘을 원하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물론 예지능력이 제일 부러워요.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시작한 거거든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인데 이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예요. 지금도 그런 예지능력을 가진 도구를 개발하려고 연구하고 있고요.


수퍼맨이 좋아요, 스파이더맨이 좋아요?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 주 어떤 내용으로 만나볼까요?

– 글쎄요.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늘 염두에 두는 요소 중에 하나가 반전이거든요. 반전 강박증이라고 할 만큼.. 반전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 영화 속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영진공 짱가

“샤이닝”, 내 속의 또 다른 나

공부하면서 읽은 발달심리학 책의 정체성(identity)에 관한 부분의 서두에 인터뷰 기록이 있었는데, 이게 상당히 재미있다. 그것은 “너는 누구니?” 라는 질문에 대해서 4살짜리와 8살짜리, 그리고 13살짜리가 한 대답을 녹취한 글이었다.

4살짜리는 아주 천진난만하다. 내 이름은 아무개이고, 나는 오렌지색 강아지와 아빠 엄마와 누나 둘이랑 같이 살고, 나는 힘도 세고 알파벳도 하고 숫자셈도 할 줄 안다고 자신 있게 자랑한다. 물론 그 아이는 알파벳도 제대로 못하고 숫자셈도 잘 못한다만, 상관없다. 이 나이때는 세상의 중심은 자기자신이니까.

8살짜리는 4살짜리와 약간 다르다. 남이 어떻게 보던 상관없는 나의 모습을 신나게 떠들던 4살짜리와는 달리 이 8살짜리 아이는 남의 눈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그 아이는 “나는 아주 인기가 있어요”라고 말한다. 인기는 내 능력만으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나도 인기를 얻기는커녕 왕따가 될 수도 있다. 독불장군이라는 말처럼, 혼자서는 장군이 될 수 없고, 혼자서는 인기인이 될 수 없다. 남들이 그렇게 봐줘야 하는 거다.

즉, 인기는 내가 보는 나(철학자들은 이것을 주관적 자아라고 말한다)가 아니라 남들이 보는 나(이것은 객관적인 자아이다)의 문제이다. 남이 보는 나를 의식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 의문이 생긴다.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왜 남들은 내 언니를 더 예쁘다고 하는 걸까 … 나는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왜 산수시험 성적이 나보다 좋은 애가 있을까 … 이 흔들림이 자아를 성장시킨다.

13살짜리는 더 달라진다. 그 아이의 인터뷰 첫 마디는 “나도 내가 어떤 애인지 잘 모르겠어요” 로 시작한다. 생각이 깊어지면서 스스로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하면, 얻는 가장 중요한 깨달음이다. 인간의 자아는 간단명료하지 않다. 내 속에는 희망과 절망, 선의와 악의, 정직과 위선이 뒤섞여 존재한다. 천사와 악마는 모두 내 속에 존재한다.


multiple personality disorder by ~freys on deviantART

다중성격장애(Multiple Personality Disorder)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어쩌면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실제로 정확히 다중성격장애로 진단된 사람은 거의 없다. 전문가들도 이 장애가 진짜 있는 건지 아니면 영악한 범죄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일 뿐인지에 대해서 여전히 논의가 분분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 증상에 대해서 대단한 호기심을 보인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모두가 한번쯤은 “내 속에 존재하는 다른 나”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듯,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속은 모른다는 옛말은 바로 우리 각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만약 내 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존재가 숨어있다면, 이거 상당히 무서운 얘기 아닐까?

『수퍼맨』 같은 만화 속 영웅들의 대오각성도 결국 자기 속에 숨어있던 영웅스러움을 발견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내가 잘 아는데 결코 영웅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속에 숨겨진 미지의 존재는 영웅의 반대쪽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만약 자기 속에 숨겨진 게 영웅이 아니라 골룸 같은 비루함이나 짐승 같은 잔인함이라면? 내 마음속의 심연에 그런 괴물이 또아리를 틀고 앉아있다면? 아마 그 어떤 공포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을 거다.
 
다른 괴물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다. 그 괴물과 맞서 싸워서 운이 좋다면 제거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나 자신이라면 나는 도망칠 수도, 싸워 이길 수도 없다. 내가 존재하는 한 괴물도 존재할 것이니까 말이다.

학교에서 교사로 일도 하고 소설도 쓰는 한 남자가 한겨울 콜로라도산 속의 빈 호텔에 들어선다. 그는 널럴한 마음으로 폭설로 도로가 끊겨 5개월 간 휴관하는 이 호텔을 관리나 하면서 소설을 쓸 심산이었다. 그런데 호텔 지배인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 몇 년 전에도 어떤 남자가 이 호텔이 휴관할 때 임시 관리인으로 왔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회까닥 돌아버려서는 자기 가족을 다 죽였다는 거다. 얼마 후, 주인공은 호텔에 존재할 리 없는 사람들을 마주치기 시작한다. 주인공은 그들에게 그 살인사건에 대해서 물어본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한다. “그 살인마가 바로 당신이잖소!” 라고 말이다.


『샤이닝』은 우리의 근원적인 공포를 다룬다.
내 속에 존재하는 살인마에 대해서, 내 마음속 심연에 존재하는 괴물에 대해서, 그것이 눈을 뜨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자기 속의 괴물을 느껴본 사람에게 이 영화는 정말 남의 얘기가 아니다.

영진공 짱가

아이언맨 유감, 시대 유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는데?

앞서 아이언맨에 대해서 투덜거린 바(http://0jin0.com/1350) 있는 짱가 입니다.
여러분의 좋은 지적 잘 봤습니다.  그래서 앞서 글의 2번째 버젼을 올립니다.  

지난 번 포스트에서 투덜거리긴 했어도, 영화 <아이언 맨>은 분명히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일단 CG를 적절히 사용한 화면빨이 끝내주고, 말 그대로 업그레이드 해가는 과정을 그럴듯하게 보여준데다, 카리스마 지수 매우 높은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씨가 주연을 맡고 기네스 펠트로양이 조연으로 활약해준 덕분에 그 만화같은 설정들이 정말 진짜 처럼 보여지기도 했지요. 그 덕분에 아직도 전세계 극장가에서 훌륭한 흥행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이 영화의 미덕들에 많은 관객이 공감했다는 뜻일 겁니다.



다우니 주니어씨…

하지만 저는 여전히 이 영화에서 씁쓸한 뒷맛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워지기는 커녕, 씁쓸함은 갈수록 더 커집니다.
그것은 아마도 오지랖과 주제파악에 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제가 보기에 <아이언맨>은 지나치게 넓은 오지랖을 자랑하면서 자기 주제파악에는 어설픈 존재입니다. 그는 영웅이라기 보다는 천덕꾸러기이고 문제아입니다.

무슨 만화원작 영화를 가지고 그렇게 따지냐고요?
게다가 수퍼 히어로물들이 대개 그렇지 않냐고요?

음, 몇 명의 다른 수퍼 히어로들의 오지랖과 주제파악을 분석해보죠.

1. 배트맨
우선 배트맨이 있습니다. ‘첨단테크닉으로 떡칠한 부자 수퍼히어로’라는 점에서 아이언맨과 매우 비슷한 컨셉을 가진 수퍼 히어로죠. 하지만 배트맨의 행동은 아이언맨과 많이 다릅니다. 그는 우선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감춥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저지르는 짓이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되지 못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죠. 그는 범죄자들을 체포하기 보다는 직접 처단하니까요. 배트맨 자신도 그게 별로 타당하지 않은 행동임을 알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자신이 범죄자에 대한 복수심에서 탄생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덜떨어진 경찰들만 가득한 도시 고담은 그런 배트맨에게 의지하니 둘은 짝짝궁이 잘 맞습니다. 그래서 배트맨은 자신의 도시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영역은 고담 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뭘 하는지 안다는 점에서 주제파악이 분명하고 자신의 한계를 지킨다는 점에서 오지랖도 적당합니다.


어둠의 간지 배트맨…

2. 스파이더맨
그럼 스파이더맨은 어떨까요? 그는 좀 오지랖이 넒은 것이 사실입니다. 단칸방 월세도 못내 쫒겨날 위기에 처해있으면서 뉴욕을 지키기 위해 맨날 거미줄을 쏘아대니까요. 하지만 그 역시 자기가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자꾸 악당들이 그를 찾아오거든요. 그는 단지 삼촌이 죽어가며 남긴 유언이 자신의 좌우명이 되어 그 원칙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할 뿐이죠. 오지랖은 약간 범위를 초과해도 워낙 주제파악이 겸손합니다. 그게 그의 매력이고, 덕분에 스파이더맨은 가장 서민적인 히어로로 공감을 얻습니다. 그 겸손함이 사라지자 얼마나 찌질스러워지는 지는 모두들 3편에서 보셨을 겁니다.


피터가 춤추는 장면 움짤을 못찾아서…

3. 수퍼맨
그럼 수퍼맨은 어떤가요? 음… 그는 맨 중의 맨입니다. 그는 애초에 인간이 아닙니다. 저 먼 별나라에서 내려오셔서 우리를 굽어 살피시는 천사의 상징이죠. 그가 아무리 엄청난 오지랖을 자랑하셔도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는 지구의 수호자이니까요. 물론 영화 속에서는 주로 미국 그것도 뉴욕에서만 그것도 자기 여친 주변만 돌아다니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산타 할아버지가 단 24시간 만에 전 세계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시는(그것도 우는 아이는 빼고) 기적을 행하시듯, 수퍼맨 님 역시 그러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분의 오지랖은 애초부터 무한하며, 주제파악 역시 본인의 신분에 딱 맞습니다.


맨 중의 맨…

4. 아이언맨
이제 아이언맨의 순서입니다.
아이언 맨님의 직업은 방위산업체 사장입니다. 그것도 영화에서보니 소총에서부터 전투기를 거쳐 최첨단 미사일까지 안건드리는 게 없는 초거대 문어발 재벌 방위산업체 사장이죠. 그는 처음부터 최고의 테크놀러지를 집안 전체에 떡칠해 놓고 사시는 매우 럭셔리한 분입니다. 그런 그가 생사를 가르는 체험을 계기로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사실은 원래 하던 짓을 계속 하십니다. 지금까지 만든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낸 것이죠. 바로 아이언맨 자신입니다. 그는 이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악당들을 찾아 부십니다…만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분탕질을 치는 미군에 대해서는 손끝하나 건드릴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도 바로 미군 장교인데다 그는 애초에 뼛속까지 미국인이거든요. 자 이제 문제입니다. 그런 그가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미국 내에서 난장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원래 모든 맨들이 자기 동네를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가 세계로 나가면 정치적인 공평성에 문제가 생깁니다. 미제 무기를 수입해 나쁜 짓을 하는 아프간 군벌은 작살내면서 왜 똑같이 미국 무기를 수입해서 팔레스타인을 들쑤시는 이스라엘은 건들지 않나요? 그는 과연 정의라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그저 더 쎈 미군에 불과할까요?

더욱 큰 문제는 그의 주제파악 부분입니다. 그는 자기 하나를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놓고는 혼자서 모든 일을 감당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그냥 들러리가 되고 말죠. 그가 단순히 돈 좀 있는 엔지니어였다면, 그런 행동을 이해해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초거대 군산복합체의 사장입니다. 정말로 그러길 원한다면, 세상을 정의롭게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혼자서 수트입고 깝치는 것보다는 훨씬 많을 겁니다. 그에겐 엄청난 조직과 시스템이 있으니까요. 가슴에 달린 에너지원만 해도 그렇죠.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겠냐고요… 하지만 그는 그걸 전부 자기를 돋보이게 하는 용도로만 사용합니다. 아프간의 동굴에서 그를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 홀애비 과학자 양반(제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던 인물)이 과연 그가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걸 알면 참 좋아 하시겠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의 모든 것은 저에겐 낭비로 보였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는 여전히 치기어린 어린애이고 자신의 장난감을 계속 업그레이드 해나갈 뿐입니다.


뭘.. 앞으로도 계속 업그레이드만 할거면서..

물론 바로 그런 모습이 남자들의 로망을 자극하기는 합니다.
게다가 원래 만화 주인공들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안됩니다.
이 아이언맨이 자꾸 요즘 눈에 밟히는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거든요.

5. 시대유감
그 분은 경제규모 13위 국가의 대통령입니다. 하지만 그 분이 대통령이 된 후 제일 처음 한 일은 전봇대를 하나 뽑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밀가루 대신 쌀로 국수를 만들어먹으라는 지시를 내리셨고, 그냥 마늘과 깐 마늘값의 차이를 모른다고 직원들에게 쿠사리를 먹이셨으며, 서민 물가품목 50개를 만들어놓으라는 교시를 내리셨죠. 뭐 그 중간에 자동차가 몇 대 안다니는 낭비성 톨게이트가 있다고 부득부득 우기셔서 결국 어떤 톨게이트의 직원들이 해고되는 일 같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직접 일선 경찰서까지 달려가서 범인을 잡아내라고 야단 치셨을 때는 사람들이 꽤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만… 부지런한 거는 좋지만 대통령이 할 일과 동사무소 직원이 할 일은 따로 있는데 대통령이 그런 것을 하나 하나 다 챙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권한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 결과 졸지에 한 국가의 운영패턴이 중소기업의 그것과 같아져 버리고요. 물론 그 분은 국내에서와는 달리 해외에 나가시자 통이 갑자기 커져서는 카트라이더 한판 땡긴 기분으로 미제소고기를 죄다 수입해주기로 하셨고, 갑자기 북한에게 말 몇 마디로 시비를 걸어서 통미봉남이니 뭐니 하는 국제정치 상황도 만들어내셨습니다. 게다가 토건업을 하시던 분이라 그런지 대통령이 되어서도 자꾸 나라 전체를 토건업장으로 만들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운하도 파고 싶고, 공항도 옮기고 싶고, 뭐 그렇대요.

저는 이런 모습이 자꾸 <아이언 맨> 같습니다.


가운데 수줍게 앉아계시는 그 분….

뭐 아이들이 어떤 영화를 본다고 해서 그 영화에서 본대로 행동한다는 주장을 저는 별로 믿지 않습니다만, 이 분에 대해서만은 어릴 적에 너무 아이언맨 같은 소영웅주의 만화를 엄청 많이 보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그 분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할 수도 있고…

여튼 <아이언맨> 은 절라 싫군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