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수다떨기 (4), 반전에 대하여



Q. 금요일 밤에는 뭐하고 보내시나요?

금요일날 … 뭐 영화를 볼 때도 있고, 게임을 할 때도 있는데
요즘은 미국드라마에 빠져서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Q. 음 … 뭔가 박사님 이미지와는 다른 광란의 밤이 있으면, 반전일텐데 별로 그렇지 않군요.

제가 점잖고 차분해보이시나 보죠. 사람들은 이상하게 제가 생각이 깊을거라고 오해를 하더라고요. 사실은 아무 생각이 없거나 햄버거나 순대국밥 사먹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 순대국밥…. 돼지국밥도 좋아함

Q. (먹는 얘기는 그만 닥치고) 오늘 주제는 반전 영화…그 묘미와 강박이에요. 고전 영화가 처음에 만들어질 때요, 마술사들이 감독인 경우도 꽤 있더라구요, 뭔가 속임수를 써서, 색다른 것을 이끌어내는 것, 관객을 속이면서 놀라게 하는 것, 모든 감독들의 꿈 중 하나라고 하던데요?

잘 말씀하셨습니다. 멜리에스라는 프랑스 마술사가 <달세계 여행>이라는 최초의 SF영화를 만들었죠. 자기 마술기법을 사용해서 달나라로 떠나는 우주여행 이야기를 영화로 찍었는데요. 최초의 특수효과가 사용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영화는 마술과 비슷한 면이 많네요. 속이고 놀라게 하고 거기서 즐거움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다 그렇긴 하지만, 요즘 마술들도 거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되어가고 있죠.


멜리에르가 만든 세계최초의 SF영화 <달세계 여행>,

이 영화에는 에디슨이 엮인 슬픈 전설이 있다는…
그 전설이 알고싶으시면 이 링크를 =>
http://enterfactory.net/206?category=0

Q. 잘 만든 반전 영화, 보고 나면 괜히 입이 간질간질, 그 반전을 말해주고 싶은 경우도 있어요.

네, 물론 그런 행동은 남의 재미를 빼앗는 행동이라 재미를 망쳤다는 뜻으로 스포일러라고 불립니다만, 그래도 남들은 모르고 나만 알고 있는게 있다는 건 간질간질하고 재미있는 일이죠.

Q. 요즘, 특히나 스릴러 영화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요, 스릴러 영화 속에서 반전 빼놓을 수 없죠. 아카데미가 선택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액션 영화 <밴티지 포인트>, <마이 뉴 파트너> 등이 그러하구요,

뭐 반전 영화 중에 대명사라면 <식스 센스>-‘내 눈에 귀신이 보여요’라든가 <유주얼 서스펙트>-‘절름발이가 범인이다’ … 가 기억나기도 하는데요, 박사님이 기억하시는 반전 영화, 어떤 것이 있나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너무 결말이 너무 황당해서 반전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역시 지난 번에 말씀드린 <행복했던 여자>도 인상 깊었고요. 아마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유주얼 서스펙트>하고 <식스센스> 가 최고죠. 근데 두 영화의 반전 포인트가 달라요.

<유주얼서스펙트>는 주인공이 속이는 영화지만, <식스센스>는 주인공이 속는 영화죠. 저는 그래서 첫 번째를 제1종 반전, 두 번째를 제2종 반전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두 번째 유형은 최근에 많아졌어요.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몰랐어. 종류의 영화인데, 아마도 사회가 급변하면서 생긴 가치관의 혼란이 반영된 게 아닐까 싶어요.


<유주얼 서스펙트> 반전 영화의 유행을 만들다



새로운 유형의 반전 영화 붐을 연 <식스센스>

Q. 보면, 어느 정도 반전 영화의 공식이나 소재가 있어요. <아이덴티티>의 다중인격이라든가, <싸인>의 범인이 외계인이라든가, <식스센스><디 아더스>의 귀신, <범죄의 재구성>의 쌍둥이, <오픈 유어 아이즈>나 <바닐라 스카이>의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올드 보이>나 의 최면 등, 소재가 점점 다양해져요.

반전이란 게 결국은 관객들에게 예상밖의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입니다. 관객이 어떤 것을 예상하는지를 충분히 알고 있어야 그 예상을 벗어나는 결말을 만들 수 있는거죠. 그런데 갈수록 많은 기법들이 사용되니까 그만큼 새로운 것 낯선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더 다양한 소재들이 사용되는 거죠.

이렇게 그 결말로 이끌어가는 경로는 다양하지만 결국 반전의 내용은 결국 둘 중에 하나에요. 알고 보니 주인공이 거짓말한 거였다. 아니면 주인공 자신도 자기가 누구인지 몰랐었다.

Q. 관객들도 점점 영화를 보는 눈이 높아져서, 다양한 소재와 공식이 있어도 제대로 반전의 재미를 주기란 어려울텐데요….

반전영화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반드시 두 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복선이예요. 결말을 어떻게든 암시하는 내용이죠. 이런 게 영화 중간에 들어가 있어야 해요. 그래야 관객과 공평한 게임이 되거든요.

두 번째는 당연하지만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 결말입니다. 이 둘이 다 있어야 성공한 반전영화가 되요. 만약 복선없이 관객의 예상을 벗어난 결말만 제공하면 영화 전체가 황당해져버립니다. 이게 뭐야. 이런 상태가 되는거죠. 그리고 물론 복선을 너무 충실하게 주는 바람에 관객들이 이미 결말을 다 예상해버리면 영화는 그냥 시시한 영화가 되고 말죠. 니가 뭔 얘기 하려는지 이미 다 알지롱. 고작 그거야? 뭐 이렇게 되는거죠.


왜 저 아일랜드 아저씨 이름이 뜬금없이 ‘고바야시’ 지? 이것이 알고보면 복선 …


원본 크기의 사진을 보려면 클릭하세요
이건 복선이랄 건 없는데,

배역에 어울리지 않게 지명도 높은 배우가 출연하면 대개 그 인간이 범인

Q. 박사님! 강박증은 어떤 심리일까요? 현대인들 누구나 하나쯤의 강박증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을까…하는데요, 특히,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반전 강박증에 시달리기도 할 것 같아요.

강박증이란 우리 모두에게 있는 심리입니다. 정상적이고 위생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약간의 강박증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다음이나 외출에서 돌아온 다음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다는 것 같은 행동도 강박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면 병에 잘 안걸리거든요. 사실 제가 예전에는 잘 안씻었는데, 몇 년 전부터 손 씻는 습관을 들였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감기에 안걸리더라구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반전 강박에 빠지는 것도 똑같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야 관객이 재미있어하고 그래야 영화가 흥행될거라고 믿으니까요.


그는 빈틈을 참지못하는 강박증 환자였다 …

 



Q. 그렇다보니, 실패한 반전 영화들도 꽤 많이 나와요. 반전이 한 번에 제대로 충격적으로 이루어져야지 꽤 성공한건데, 반전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영화라든가, 마구잡이로 풀어놓은 반전 암시용 인물들이나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끝내버리는 영화라든가요…

아까 손씻는것에 비유하자면, 적당히 위생을 유지할 만큼 손을 자주 씻는건 좋은 일이예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손을 안 씻으면 불안해서 참지를 못해요. 이렇게 불안감 때문에 억지로 손을 계속 씻으면 위생에도 도움이 안되고 생활하는데 오히려 큰 불편이 생기죠. 그게 강박증이거든요. 반전도 강박증으로만 만들면 진짜 중요한 알맹이는 빠지고 반전만 남는 영화가 되겠죠.

사실 반전으로 유명한 영화들이 성공한 이유는 반전 때문만은 아니거든요. <유주얼 서스펙트>는 이야기 자체가 꽤나 쿨하고 재미있어요. <식스센스>같은 경우는 반전에 놀라지 않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고요. 저는 그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하고 엄마하고 차안에 앉아 대화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늘 코끝이 찡해요.

Q. 또 이 반전이요, 억지스럽지는 않지만, 너무 고난이도면 관객이 논란이 많이 이는 것 같아요. 똑똑해야하는데, 적당히 똑똑한 반전, 참 반전 영화 제작은 어렵고, 그래서 매력적인 것 같은데요? 사람들이 반전 영화에 끊임 없이 매료되는 이유,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세상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세상이 좀 반전 스럽쟎아요.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더라. 믿는 도끼가 발등을 찍고 … 진실은 저 너머에 있고 … 그게 또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 세상의 모습이기도 해요.

예를 들어. <혈의 누>하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시대는 다른데 이야기 내용이 비슷해요. 둘다 차승원이 주연을 맡았다는 공통점도 있지만, 그 차승원의 역할이 뒤늦게 숨겨진 진실을 알았는데 미처 제대로 밝혀내지도 못하고 박수칠 때 떠나는 역할이거든요.



차승원 주연의 두 반전영화

Q. 앎에 대한 강한 욕구, 때로는 그것이 정말 뒷통수를 제대로 맞는 수가 있는 반전인데도 사람들은 진실을 알려고 해요. 그런데, 또 요즘 세상은 진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사람도 많은데, 모르는 게 약, 모르는 척 하는 게 상책이라면서도 사람들의 이런 욕구나 심리, 어떻게 해석하고 계시나요?

아는 게 힘이다. 모르는 게 약이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통하는 원칙이죠.
학습된 무기력이라는게 있습니다. 내가 뭔 짓을 해도 세상은 변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무기력을 학습하게 되죠. 이런 세상에서는 모르는게 약이예요.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알기만 하면 복장만 터질테니까요.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면 아는게 힘이 되겠죠. 뭘 알아야 어떻게 할지를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특히, 너무 알려고 하면 다친다는 …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반전의 묘미와 반전의 강박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반전이 사람의 심리를 가지고 노는 것이기 때문에, 박사님이 보기에 이런 반전, 요즘 먹힐 것이다 … 싶은 반전이 있다면요?

글쎄요.. 그런 게 있으면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을텐데 …

최근 우리나라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전문가들이 바보짓을 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그걸 막는 이야기예요. 요즘 세상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겠죠. 이런 이야기와 반전을 섞으면 뭐가 나올 것 같긴 한데 잘은 모르겠어요.


사실 <괴물>이 이미 그 얘기를 했고 … 요즘 우리나라가 뭐 영화 자체고 …

Q. 급변하는 세상도 반전이면 반전이죠?

네. 인생 자체가 반전의 연속이죠. 그래서 사는 재미도 있는거고요.
모든 게 예측대로 되어가는 인생처럼 재미없는 인생도 아마 없을겁니다.

Q. 네,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에는 어떤 내용으로 만나볼까요?

다중인격이 어떨까요? 영화에서 종종 사용된 소재이기도 하고,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3), 초능력에 대하여



 



Q. 오늘, 주제는 ‘환상의 초능력’이에요. 박사님은 어렸을 때, 슈퍼맨 흉내내다가, 옥상에서 뛰거나 뭐 그런 적 없으세요? 어린시절 그런 사람들 꽤 많더라구요.

– 저는 스스로 수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어서 그런 짓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와 현실은 다른 세계라는 걸 알고 있었던 듯해요. 하지만 유리겔라가 TV에서 숟가락 구부리는 쇼를 할 때는 따라했었죠. 물론 숟가락은 전혀 구부러지지 않더군요.

Q. 왜 인간이 고통스러운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신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말이 있는데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어떤 능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 그건 어떤 심리일까요?

– 상상력 덕분이죠. 우리는 지금 현재에만 구속되지 않고 다양한 미래와 가능성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은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여기서 “어쩌면 이렇게 할 수도 있을텐데…” 라는 생각은 “왜 지금 나는 그렇게 못하지?” 라는 의문으로 연결이 되는 거죠.

아마 이런 의문이 없었다면 인류 발전도 없었을 겁니다. 날수 있다면.. 뭐도 뭣도 할 수 있을텐데 라는 상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지구 밖으로 나가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이 가능할텐데.. 라는 상상이 우주선을 만들어 내듯이요. 아서 클라크라는 유명한 SF작가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충분히 진보한 과학기술은 마술과 다르지 않다”.
과학기술이 결국 초능력에 대한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는 거죠.

Q. 뭐 초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번 숭례문 화재 때도 잽싸게 불을 끈다든지, 시간을 되돌려서 정말 엄청나게 실수했던 일을 만회한다던지, 그런 거요.

– 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죠. 문제는 시간을 되돌리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점이지만요. 이런 것들은 과거에 대한 상상인데 아무 노력도 없이 이런 상상만 하는 건 후회로 연결이 되요. 하지만 과거에 대한 상상을 좀더 구체적인 실천으로 변환시키면 역사가 되죠.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결국 과거를 통해 미래에 대비하려는 노력이니까요.


아오…

Q. 영화 <왓 위민 원트>에서는 여자의 속마음을 읽는 한 남자가 나와요. 이심전심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남자와 여자, 너무 다른 거라는 걸, 이 남자는 알아가죠?

– 그렇죠. 근데 사실 이 남자가 그 전에는 여자의 마음을 전혀 몰랐느냐 하면 그건 아닐 거예요. 우리가 평소에 생활하면서 가장 많이 머리를 쓰는 게 바로 상대방의 생각을 읽는 것이거든요. 대화를 할 때도 얘가 왜 이런 얘기를 하지?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지? 등등을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바로 그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초능력인 독심술이죠.

이 남자의 경우도 그래요. 이 사람은 바람둥이였쟎아요. 여자의 마음을 읽을 줄 모르는 바람둥이는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접근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는지 아는 것 자체가 독심술이니까요. 원래는 잘 나가던 이 남자가 곤경에 빠진 이유는 여자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의 마음은 환경에 따라 달라져요.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권한이 늘어나면서 여자들은 계속 바뀌었던 거죠. 근데 멜 깁슨은 구시대 여자들의 마음은 잘 읽었지만, 바뀐 새로운 세상의 여자는 어떻게 대해야 할지는 전혀 몰랐던 거고요.


참고로 What women want? 라는 제목은 원래 프로이트가 자기 책에 한탄하듯 쓴 글

Q. 그런데요, 이게 또 너무 속마음을 다 알아차려도 문제가 안될까..싶을 정도로 초능력이란 게 좀 무서울 때가 있어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안되는 것처럼 영원히 타인의 마음 한 켠은 모르는 것도 좋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 사실 우리의 뇌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첫째,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일, 그리고 남들은 내 맘을 맘대로 읽지 못하게 하는 일입니다. 말씀처럼 원활한 사회생활과 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음 한 켠에 남들이 몰라도 되는 것들 숨겨놓을 필요가 있거든요.
남이 내 마음을 읽는 경우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자기 자신의 마음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겁니다. 남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 남들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읽는다면 정말 무섭지 않겠어요?


내향적 일본문화에서 독심술을 거꾸로 해석한 영화, <사토라레>

Q. 영화 속 초능력 중에서 아주 많이 등장한 소재는 시간을 뛰어 넘는 것일거에요. 얼마 전 개봉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나 <빽 튜 더 퓨처>, <네스트>, 또는 다른 선택의 결과를 보여줬던 <패밀리 맨>, 한 순간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이지 않나..하는데요?

– 사람들의 소망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시간을 되돌린다는 상상은 최근에 특히 더 많아졌는데, 아마도 되감기가 가능한 매체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실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대가인 백남준씨가 예전에 한 말입니다. 그 분은 1970년대에 벌써 비디오 플레이어 때문에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아예 바뀌어버릴 것이라고 예측했고 그래서 비디오 아트를 시작했죠.

옛날 사람들이 가장 원초적으로 가진 소망이 뭔지를 보려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말하는 극락 혹은 천국이 어떤 곳인지를 보면 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 극락에는 질병이 없고, 죽음도 없고, 일하지 않아도 평생 굶을 걱정이 없으며, 전쟁이나 다툼이 없죠. 그것들이 아마 당시 사람들을 가장 많이 괴롭히던 것들일 거예요.

Q. 그리고 또, 많은 맨..시리즈들이 초능력을 다루고 있어요. <슈퍼맨 리턴즈>, 그리고 <스파이더맨>, 초능력자들의 종합세트 등. 그들은 때론 그때, 사람들이 원하는 영웅의 초상을 가지고도 있는데요?

– 그래서 계속 새로운 초능력 영웅들이 등장하는 것일 겁니다. 예를 들어, 수퍼맨은 그야 말로 모든 면에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거의 기독교의 구세주같은 존재죠. 수퍼맨은 시간도 되돌리쟎아요. 못하는게 없죠. 이건 가장 원초적인 소망의 현신이지만, 그만큼 미숙한 소망이기도 해요. 무조건 최고! 이런 생각은 너무 단순하쟎아요.

수퍼맨은 이런 초능력 영웅의 원형이지만 그 덕분에 인기도 적죠.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능력은 제한된 반면 그 제한된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좀 더 우리 삶과 닮아있어요. 게다가 능력이 부족하니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그러면 영화가 더 재미있죠. 그런 면에서 수퍼맨보다는 스파이더맨이 좀 더 현대적인 영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 스파이더맨은 2편이 최고. 그 중에서도 저 지하철 장면 마지막 부분, 시민들이 얘를 감쌀때. 엉엉…

Q. 그래서 그런가요. 영화 <점퍼>에서 점퍼들을 없애려는 ‘팔라딘’들이 있듯이, 이들을 늘 소탕하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 그것도 일종의 제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안그러면 너무 불공평하쟎아요. 한쪽은 펑펑 순간이동 하는데 나머지는 그걸 그냥 구경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불공평한 게임은 재미없어서 안봐요.


난 정말, 지금 데쓰노트만 쓸 수 있다면 여생이 절반으로 줄어도 무관함.

Q. 소탕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초능력자들의 능력. 별로 달갑지 않죠. 그런데, 초능력자들이 마음만 잘 못 먹으면요, 사회적으로 정말 물의를 일으킬만한 능력들도 꽤 많이 나와요. 가령 영화 <데스노트> 같은 경우, 노트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사람이 죽어요.

– 물론이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쟎아요. 사람은 자기가 살아가는 사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거든요. 근데 이 사회가 사람들 개개인에게 기대하는 능력에는 범위가 있어요. 그걸 넘어선다면 언제나 문제가 되죠. 너무 똑똑하거나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도 일종의 초능력자들인데 그들 역시 대부분 사회생활 하기가 쉽지 않아요. 게다가 <데스노트> 쯤 되면 아주 무시무시하죠.

근데 사실 초능력자가 되면 머리는 아주 나빠질 것 같기도 해요. 우리들은 모두 초능력자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에겐 지능이라는 정신능력이 있거든요. 이 능력 다른 동물에게는 거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이 보기에 인간은 초능력자처럼 보이겠죠. 몸은 비리비리한 것들이 어떻게 저런 괴상한 도구를 만들어서 우리를 이기지? 하면서… 우리는 지능을 키워서 살아남은 초능력자들이죠.

하지만 다른 초능력에 너무 의존하면 지능을 쓸 일이 없어지고, 결국 바보가 되겠죠. 데스노트의 라이토가 가면 갈수록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초능력에 너무 의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사실, 따지고보면 덕 라이만 이나 스필버그, 카메론 같은 사람들이 진짜 초능력자…

Q. <데스 노트L:새로운 시작>에서는, ‘전인류 말살프로젝트’를 저지하려는 L의 모험이 시작되어요. 지금의 인간은 악이기 때문에 모두 갈아엎어야 한다는 ‘사신’의 불신과, 이를 막기 위해선 세상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L의 믿음.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는 줄거리였는데요….

– 데스노트에서 라이토 같은 경우는 철없이 초능력에만 의지하려는 미성숙한 우리 모습을 대표한다면, L의 입장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역할이예요. 초능력으로 한방에 뭘 해결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이성적으로, 노력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거죠.

Q. 오늘 영화 속 초능력으로 말을 나눠서 그렇지 초능력, 초자연, 심령으로 많은 사람들이 유혹 당하기도 하는 게 현실 속의 이야기에요. 어떤 심리 테스트에는 1. 투시, 2. 예지 3. 순간이동 4. 염력 5. 투명인간이 될 수 있는 능력, 6.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 중 어느 것을 가지고 싶은가? 뭐 이런 걸로 심리 테스트도 있던데…영화 속 초능력, 박사님은 어떤 능력이 부럽던가요?

– 저도 성격검사 도구를 개발할 때 비슷한 질문을 넣은 적이 있어요. 투명인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평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격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염력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게으르거나 남들을 놀래키는 힘을 원하던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물론 예지능력이 제일 부러워요.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소망에서 시작한 거거든요.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것이 과학인데 이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는 과정 이예요. 지금도 그런 예지능력을 가진 도구를 개발하려고 연구하고 있고요.


수퍼맨이 좋아요, 스파이더맨이 좋아요?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초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 주 어떤 내용으로 만나볼까요?

– 글쎄요. <유주얼 서스펙트> 이후로 우리나라 관객들이 영화를 볼 때 늘 염두에 두는 요소 중에 하나가 반전이거든요. 반전 강박증이라고 할 만큼.. 반전이 없으면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요. 이 영화 속 반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는 건 어떨까요?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2), 잔인성에 대하여



Q. 지난 주에는 영화로 보는 ‘사랑’에 대한 심리, 다각도로 알아보면서 재미있는 시간 가졌는데요, 이번 주 주제는 ‘연쇄살인범의 초상’입니다. 그냥 살인범이 아니라 연쇄 살인범, 꼭 하나씩 하나씩 죽이는 게 더 잔인한데요?

– 많은 사람을 죽이는 살인에는 크게 대량살인과 연쇄살인이 있습니다.
대량살인은 미국에서 종종 벌어지는 총기난사 같은 경우입니다. 단 한 번에 많이 죽이는 거죠. 이런 대량살인은 극단적인 좌절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입니다. 자기감정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살인이라서 미리 예고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변 사람들이 그 감정을 알아주지 않으면 결국 터지는 거죠. 대량살인은 대개 한번으로 끝납니다. 사건과 함께 범인도 자살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건 비록 끔찍한 살인 범죄지만 어느 정도는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죠. 우리도 가끔 확 다 뒤집어엎고 싶을 때가 있쟎아요.

근데 연쇄살인은 대량살인과는 전혀 달라요. 연쇄살인자에게는 살인이 일종의 라이프 스타일이예요. 흡연자가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처럼 살인을 끊지 못하는 거죠. 살인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고, 초기에 잡지 못하면 은폐 기술이 점점 발전하면서 지능적인 연쇄살인자로 발전하죠. 물론 절대 자살하지 않지만, 누군가 자기를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듯 단서를 남겨두거나 자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와는 아예 다른 종족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간단히 말해 사람처럼 보이지만 우리 같은 사람이 아니예요.

Q. 참 끊임없이 매력적인 영화 소재에요. 언제 어디서 어떤 이웃이 그 그물망에 들어올지 모른다는 점에서 공포감과 함께 스릴도 있는, 그리고 주로 실화여서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그런 이야기라 영화의 소재가 되지 않나..하는데요, 끊임없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이유, 뭐라고 보시나요?

–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연쇄살인자들이 포악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겁도 많고 차분하고 조심스러운데 사람 죽일 때만 무자비하거나, 명랑하고 쾌활한데 바로 그런 쾌활함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 왜 <추격자>에서도 살인자가 피해자에게 정과 망치를 들이대면서도 “괜찮아 괜찮아 …” 이러면서 달래잖아요. 전혀 살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인거죠.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도 그래요. 그는 무자비한 식인 살인마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교양있는 사람이라는 양면성 때문에 인기를 얻었죠. 실제로 테드번디라는 미국의 어떤 유명한 연쇄살인자는 팬클럽까지 있었고 결혼하겠다는 여자들도 몇 명 있었어요.

Q. 연쇄 살인범에 관한 이야기, 저는 지금 떠오르는 건 <살인의 추억>과, <양들의 침묵>, <공공의 적> 등이 떠오르는데, 장박사님은 어떤 영화들 기억나나요?

저는 <행복했던 여자> 라는 영화가 기억납니다. 91년도 영화인데 코미디 배우로 유명한 골디 혼과 <나홀로 집에>의 자상한 아버지로 익숙한 존 허드라는 배우가 주연인데, 처음에는 이 남자가 정말 흠잡을데 없이 좋은 남편으로 나와요. 그러다가 갑자기 사고로 죽죠. 그래서 전 이 영화를 행복했던 여자가 남편을 잃고 고생하는 이야기인줄 알았거든요. 근데 나중에 보니까 죽은줄 알았던 그 자상하던 남편이 사실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는 사회병질자였던거예요. 그런 줄 모르고 봐서 더 무서웠어요.


골디혼만 보고 방심하고 들어갔다가 벌벌 떨며 봤던 영화, “행복했던 여자”

Q. 연쇄살인범, 악취미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심리학적 관점에서 연쇄살인자의 심리,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 그저 태어날 때부터 다른 존재라고 생각해요. 존 더글라스 라고 프로파일링 기법을 창시한 FBI의 심리분석관이 쓴 <마인드 헌터>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에 보면 연쇄살인자들은 공통적으로 어릴 적에 야뇨증, 동물학대, 방화 중 한 가지를 꼭 저질렀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이런 경험이 있다고 전부 연쇄살인마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상식을 벗어나는 것은 분명해요.

<텍사스 전기톱 살인>의 모티브가 되었던 실제 연쇄살인자 에디 게인은 자기가 살해한 시신들을 마치 짐승 사냥한 것 처럼 해체해서 집안에 여기저기 걸어두었대요. 마치 사냥한 사슴이나 호랑이 머리를 벽에 걸어두는 것처럼 사람 얼굴을 걸어둔 거죠. 근데 또 그 사람이 붙잡혀서 감옥에 있을 때는 아주 착한 모범수였다고 하더라구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존재인거죠.


더글러스의 책을 기초로 만들어진 드라마 “크리미널 마인드”

Q. 생각만해도 정말 끔찍한데요, 이미 그들에겐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는 것이겠죠? 연쇄살인자의 동기도 그러고보면 딱히 원한이나 복수가 아닐 때가 많아요?

대부분의 상식적인 살인은 동기가 있죠. 원한이나 치정 같은 거요. 그래서 살인범죄의 7-80프로는 면식범의 소행이라고 해요. 이런 살인범은 정황증거나 원한관계를 뒤지다 보면 결국 잡혀요.. <살인의 추억>에서도 송강호가 그러쟎아요. 대한민국은 땅이 좁아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니다 보면 결국 잡힌다고. 근데 연쇄살인범은 달라요. 이 작자들은 상식적으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든요. 원한 같은 게 원인도 아니고요.

Q.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것에 비롯된 난국 영화 <추격자>에서도 잘 나타나죠. 이미, 범인은 밝혀졌는데, 여러 가지 정치적인 타이밍과 정확한 물증 확보 지연으로 피해자가 더 생겨요. 아주 안타까운 경우였어요.

관객들도 손에 땀을 쥐고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설정이죠. 따지고 보면 그런 설정이니까 영화가 성공한 거 아니겠어요? 초반에 딱 잡혀버리면 단편영화 되고 말쟎아요. 재미도 없고.

Q. 이런 류의 영화를 보다보면요, 물론 끝까지 살아남아야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영화 속 범인들, 머리가 아주 비상하거나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쇄살인범의 기질이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초기에 잡힐 겁니다. 덕분에 그들은 연쇄살인자가 되지 못하는 거죠. 잡혔으니까.

근데 가끔 초기에 안 잡히는 인간들이 나와요. 머리가 좋거나, 운이 좋거나, 너무 외모가 멀끔해서 의심을 안 받거나… 등등의 이유 때문이죠. 이렇게 수사망을 빠져나간 인간들이 범죄를 반복할수록 기술이 늘고, 그러다 보면 갈수록 더 잡기 어려운 존재가 되는 거죠. 소질도 있고 기술도 늘었으니 당연한 일이죠. 게다가 이들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나는 존재들이라 상식에 의존한 수사로는 오히려 잡기가 힘들어요.

영화 <추격자>에서도 설마 집 마당에 시체를 파묻으랴 했지만, 정말로 집 마당에다 파 묻었잖아요. 머리가 대단히 좋아서가 아니라 상식을 벗어나니까 의도하지 않게 허를 찌르는 셈이죠.

Q. 영화 <추격자>의 독특함! 아마, 살인마 영민에게 관객의 연민을 부추길 만한 어떠한 살해동기도 부여하지 않는 데에서 찾을 수 있지 않나…해요. 보통은 살인범에게도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어서 동기부여가 되잖아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편들지 않더라구요?

그렇죠. 영화를 보면 이 영화 감독이 연쇄살인범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게 드러나요. 영화에서 보면 경찰 조서에 범행동기가 없으니까 서장이 채워넣으라고 하잖아요. 근데 아까 말씀드렸듯 연쇄살인자들은 특별히 동기랄 게 없거든요. 동기 없는 범죄에 동기를 묻는 불합리를 지적한 거죠.

이렇게 억지로 동기가 뭐냐고 묻다 보면 “컴퓨터 게임 때문 이예요 … 호환마마처럼 나쁜 영화를 봐서요 … 어린 시절의 심리적인 충격 어쩌고 하는 식의 변명들이 나오는 거죠. 그럼 괜히 게임회사 폭탄 맞고 … 사람 죽인 걸로도 모자라 두루두루 폐를 끼치죠.


프라이멀 피어 …

Q. 그리고 보통, 형사들이 더 험악하고, 이들은 참 꽃미남인 경우가 많아요. <살인의 추억>의 박해일 씨나, <추격자>의 하정우 씨, <프라이멀 피어>의 에드워드 노튼, 모두 전혀 험악한 인상이 아니죠?

영화에서야 대비효과나 관객을 헷갈리게 하려는 의도로 그런 캐스팅을 할테지만, 실제 세상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예를 들면, 얼굴 험악한 사람들이 의외로 순하고 착해요. 그 사람들은 얼굴만으로 이미 상대방에게 위압감을 주니까 성격까지 험해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연쇄살인자들은 정 반대죠. 실제로도 연쇄살인자들이 순하고 연약해보이거나 잘생긴 경우가 많아요. 피해자가 경계할 만큼 무서운 인상이면 오히려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힘들쟎아요. 게다가 이 사람들은 양심이 없어서 죄책감도 없고, 그러니까 표정에 구김살이 없어요. 그래서 모르고 보면 좋은 집에서 고생 없이 자란 사람처럼 보인다고 해요.


그러니 꽃미남을 조심하라 …

Q. 그러면 이런 연쇄살인자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봐야 할까요?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뇌의 작동방식 부터 조금 다르죠.

하지만 그들이 우리와 완전히 다른 존재냐 하면, 꼭 그렇게 볼 수만은 없습니다. 인류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념이나 국가나 종족, 혹은 신의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대량살인이 저질러져왔거든요. 즉, 우리의 마음 속에는 살인자의 본능이 있는 셈입니다. 그 본능은 언제 눈을 뜨냐 하면 우리와 그들을 구분할 때입니다. 따지고 보면 연쇄살인자도 그렇잖아요. 연쇄살인자들은 공감능력이 없습니다. 남들과 자신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보는 거예요. 사람도 짐승취급 하는 거죠.

마찬가지로, 우리도 공감능력을 잃어버릴 때 우리는 연쇄살인자와 크게 차이 없는 존재가 됩니다. 반대로 공감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의 인간성 역시 확장될 겁니다.

불교를 아시는 분이라면 이걸 충분히 이해하실 거예요. 부처님은 세상 만물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겼죠. 즉 그분이 위대한 것은 날벌레 한마리와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종종 그런 마음을 가지곤 해요. 집에서 키우는 개와도 공감하고, 고양이나 새와도 공감할 수 있죠. TV나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이 겪는 고통에 대해서도 공감할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인간인 겁니다.


이때 이야기를 기초로 쓴 추격자 평 -> http://kr.blog.yahoo.com/psy_jjanga/1460810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연쇄살인범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에는 어떤 내용의 이야기를 기다려볼까요?

초능력이 어떨까요? 최근에 개봉한 <점퍼> 라는 영화나 <데스 노트> 시리즈도 모두 초능력에 대한 것들인데, 이것도 우리의 심리를 드러내는 재미있는 주제거든요.



영진공 짱가

영화로 수다떨기 (1), 사랑에 대하여



6월 2일, 꼭 투표합시다!

2008년에 라디오 불교방송에서 잠깐 진행했던 코너
<금요스페셜, 장근영의 영화 속 심리학>을 글로 정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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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늘은 영화 속 심리학, -사랑-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해요. 사랑타령, 어떨 때는 지겨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 또 예술작품들, 상업품들이 ‘사랑’에 의존해 살고 있는데요, 인류사가 사랑의 역사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구요. 이게 어떻게 정의 내리기가 참 어려운 거에요.

대중문화가 사랑을 애용하는 이유는 사랑이 다양하면서도 공감이 되는 감정이기 때문일 겁니다. 일단 사랑은 아주 센 감정이예요. 김현식씨가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웃고, 운다” 고 했쟎아요. 근데 그 사랑은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했던 사람들 숫자만큼의 사랑이 있다고 할 수도 있을만큼 다양한 것이 사랑이죠.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사랑이야기는 매번 결국엔 같은 내용이면서도 그때마다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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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영화 속 사랑, 뭐 대부분의 영화가 러브 라인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어가는데요, 심리학에서는 이 사랑을 어떻게 접근하고 있나요?

심리학계에서 사랑에 대한 연구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사랑은 너무 당연한 감정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연구보다는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일 지도 모르죠. 어쩌면 심리학자들이 좀 공부만 하고 정작 실생활에서는 별로 로맨틱하지 못해서였는지도 모르고요.
 
부모의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서 보울비라는 사람이 연구를 한 것이 유명하고, 그 외에는 스턴버그라는 학자가 사랑의 삼각형이라는 주제로 연구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의 색채학 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 이론을 제시한 “존 앨런 리”는 심리학자가 아니라 사회학자로 알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적극적인 동성애 커뮤니티 운동가라고도 하더군요. 어쨌든 존 리의 사랑 색채이론이 대중적인 인기가 많죠. 사랑을 세 가지 색채로 구분하고 그 색의 혼합으로 다시 세가지 색을 더 만들어서 모두 6가지로 구분하는데, 그게 대부분의 사랑경험을 설명하기 딱 좋은 틀이거든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랑도 거의 모두 이 여섯가지 유형 중의 하나로 구분할 수 있어요.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 등장하는 좀 괴상한 사랑도 이 색채로 구분이 되죠.




Q. 영화 <게이샤의 추억>…치요가 어린시절 한 남자를 마주하고, 꿈을 ‘게이샤’로 바꿀만큼,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내거는 그런 내용에 동양적인 미가 돋보이던 작품이었는데요….

솔직히 그게 말이 됩니까. 사랑을 얻기 위해서 기생이 되다니요.
물론 게이샤가 그 시대에 농부의 딸이 전문예술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다는 점은 고려해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기생도 사실 전문 예술인이었지만, 사랑을 얻기 위해서 기생이 된다는 이야기는 없을 겁니다. 오히려 사랑에 상처받고 복수를 위해서 기생이 되겠죠.

그러니까 <게이샤의 추억>은 “서양인이 오해한” 일본적인 정서에서나 이해가 되는 이야기죠. 어쨌든 영화는 그것도 사랑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사랑은 존 리의 사랑 유형으로 구분하자면 에로스 적인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로스 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행복 그 자체예요. 동화 속 주인공처럼 이상형을 운명처럼 만나서 그 후로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마무리되는 사랑이죠. 치요도 어둡고 막막한 현실에서 잠깐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순간의 행복이 이후에 희망이 되고 동기가 됩니다. 언젠가는 꼭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 영원히 행복해질거야. 라는 희망. 이게 치요의 사랑인거죠.


Q. 자신의 인생에서 꿈과 목표가 동기부여가 ‘사랑’에 의해서 원동력을 얻어서 그것들을 이루어가면 참 해피엔딩일건데, 또 사람 사는 일이 그렇지가 않을 때가 많죠. 그랬을 때, 사랑에 의한 파괴력 또한 어마어마하게 그려지는 영화들이 많죠….

원래 효과가 좋은 약들이 부작용도 무섭거든요.
사랑도 그렇죠. 특히 매니아적 사랑이 무섭습니다.
근데 이게 인과응보예요. 매니아적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 처음에는 사랑을 하찮게 보고 게임 하듯이 남을 울리는 사랑만 하던 사람인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임자를 만나면 미치는 거죠. 게임의 본질은 속임수인데, 속임수와 열정적 사랑이 만났으니 의처증 의부증이 되는 겁니다.


매니아적 사랑의 예, 하츠모모(공리)


Q. 소개팅자리나 누구만나는 자리에 심리학 박사이기에 자신의 마음이 들킬까봐 사람들이 더 불편해한다던가 그런 거는 없나요?

십여년 전에는 정말 많이들 그랬는데, 요즘은 좀 덜 한 것 같아요.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를 해도 역시 심리학 박사는 달라… 이런 식의 반응을 받는 경우는 꽤 있죠. 근데 사실 제 경험에 따르면 실천에 강한 사람들은 이론을 파지 않는 것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겠으니까 심리학을 하는 거 같거든요.


Q. 어떤 심리학에 의하면요, 첫 눈에 반하는 사람들, 보통은 콤플렉스와 콤플렉스의 만남일 경우가 많다고들 해요. 그러니까 소심한 사람은 좀 활달한 사람을,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배려가 많은 사람을, 뭐 이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에게 반하는 경우, 많다던데요?

물론 많죠. 그 이론의 원조는 플라톤일 겁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원래 인간이 너무 강해서 신을 위협했대요. 그래서 신들이 인간을 반으로 쪼개버렸고, 그 반쪽들이 각각 남자 여자가 된거죠. 어쩌다 헤어졌던 나의 반쪽을 만나면 대퇴부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전기충격이 흐르고, 눈에서는 불꽃이 튀고… 뭐 그런 얘기죠. 그런 경우를 상호보완적인 사랑이라고 하죠.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경우죠. 말씀처럼 자신을 부족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런 사랑에 빠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그렇다면, 너무 완벽한 사람, 보기에는 멋지지만 사랑하기에는 좀 꺼려지는 사람 아닐까해요..뭔가 채울 것이 없잖아요.

왜 그런 사람들 있쟎아요.
너무 빵빵하게 가진 것이 많아서 선물을 해주기도 부담스러운 사람들.
이미 다 가지고 있으니 더 해줄 게 없고, 어줍쟎게 해주다간 오히려 우스워질 것 같은 사람들. 
사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할 때 가장 큰 걸림돌은 거절에 대한 불안이예요.
내가 상대방에게 사랑한다고 했는데, 상대방이 “미안, 우리 오빠 동생으로 지내… ” 이러거나, 아니면 “뭬야? 감히 나를 뭘로 보고!” 이러면 어떻게 하나…
그러면 정말 심장이 제대로 찢겨나가고 입장 완전히 구겨지는거쟎아요.
그러니 상대방이 너무 대단해 보이는 것도 사랑의 장애가 되죠.

게다가 너무 문제가 없는 관계도 문제예요.
문제가 없다는 건 사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거거든요.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라는 영화가 딱 그 이야기예요.


슬쩍 미스터 미세스 스미스로 넘어가고 …


Q. 집도 좋고, 차도 좋고, 직업도 좋고, 거기에다 외모까지 출중한 두 부부, 문제가 너무 없어도 문제인 그런 케이스네요. 너무 풍족한 세상에 불만이 쌓여가는 문제이기도 하구요…

위생가설이라는 게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 알러지가 문제인데, 이게 우리 환경이 너무 위생적이어서 그렇다는 가설이죠. 기생충에도 감염되고, 감기도 매년 걸려주고, 흙밭에서 놀면서 세균도 많이 접하고… 이러면 면역체계가 바빠서 딴 짓을 못하는데, 감염이 없어지면 면역체계가 할 일이 없으니까 이젠 자기 몸을 공격하는 바람에 알러지가 생긴다는 건데, 요즘 학계에서는 꽤 유력한 가설로 인정받고 있어요.

근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좀 그래요. 원래 사회관계는 전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들이거든요. 당연히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면서 관계 라는 게 발전을 하기 마련인데 아예 문제가 없으면 오히려 관계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 뭐하러 같이 살지? 이딴 의문이 생기고, 그냥 이혼이나 할까… 이렇게 되는 거죠.

이 영화에서도 브란젤리나 커플은 서로 너무 상대방의 사생활을 존중해요. 서로 터치 안하고 부부로서 각자 할 일만 하죠. 그러다 보니 불만은 생기는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고, 계속 속에서만 쌓이는 거죠. 하지만 나중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서로 죽일듯이 싸우게 되고, 외부에서 큰 문제가 닥쳐오니까 오히려 다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Q. 뭐 그렇다고 문제를 만들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뒤짚어서 지금 위기나 어려움에 부딪힌 연인이나 부부들, 함께 그 위기를 해결해가는 과정, 또 한 번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맞습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옛 말씀 틀린거 하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그건 인생의 필연이거든요.
중요한 건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죠.

Q. 사랑, 사랑인가 아닌가? 고민하는 입장도 있을거에요. 워낙 친해져서 없으면 허전한데, 또 사랑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뭔가 밍숭한, 우정에 가까운 그런 경우, 과연 어떻게 사랑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니, 그걸 제가 어떻게 압니까.
사랑은 본인이 가장 잘 아는 거라고 봅니다.
자기가 사랑이라면 사랑인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죠.
하지만 처음에도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 중에는 정말 친한 친구에 가까운 사랑도 있어요.

일단 사랑의 기본은 “너밖에 없다” 입니다. 나는 너도 사랑하고 너도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해. 이따위 말은 그냥 헛소리죠. 모두를 사랑하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요. 근데 친구 중에도 너밖에 없다는 친구가 있다면 그게 사랑일 수 있어요.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사랑의 핵심 요소는 열정, 친밀감, 책임의식 이라고 말해요. 그 중에 열정은 처음에 반짝 타올랐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사라지는데, 친밀감은 서로를 오래 알면 알수록 점점 더 축적이 되죠. 책임의식은 원칙 문제라 시간의 흐름에도 변함이 없다고 할 수 있고요. 처음에는 서로 애매하게 좋아하다가 시간이 지나도 나를 너만큼 잘 알고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구나… 그래서 너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사랑이겠죠.

Q. 이게 처음부터 열정적인 사랑이라면 괜찮은데, 우정에서 비롯된 사랑은 마음에 열정이 있더라도 표현하기가 참 민망한 경우가 있어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나 <청춘 만화>, <우리, 사랑일까요?> 이런 류의 영화처럼 극적으로 헤어지거나 다치거나 하지 않으면요.

민망하다는 그 감정의 배후에는 용기의 부족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 라는 대답이 나올까봐 두려워서 계속 진짜 친구로 지내는 거죠. 이럴 때는 “밑져봐야 본전이지” 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어차피 친구로 지내는데, 그냥 친구로 지내라는 말 듣는게 뭐 손해겠어요. 말씀하신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마지막 순간 두 주인공이 “밑져봐야 본전이지” 라는 생각으로 들이대니까 해피엔딩 되쟎아요. 청춘만화 에서도 권상우가 망가질 대로 망가지니까 김하늘이 드디어 용기를 내고요.


슬쩍 청춘만화도 건드려 주고 …

Q. 그래도 이런 친구같은 관계, 꽤 멋진 사랑의 관계가 아닐까..하는데요?

음, 당사자들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갈걸요.
뭐 원래 강건너 불구경이 보기는 더 좋지만 말이죠.

Q. 네, 오늘 이런저런 영화 속 심리학,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꽤 많이 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구요, 다음 주에는 어떤 내용으로 금요일의 시간 기다릴까요?

잔인성이 어떨까요. 최근에 관심을 받는 영화 중에 <추격자>라는 영화가 있는데 인간의 잔인성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영진공 짱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