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무협영화, 그 화려했던 역사의 겉을 핥아보자 [2부]

 

 


 


 


* 1부에서 이어집니다 *


 


 


 



 


 


 


80년도에 하나 챙겨볼 만한 작품은 홍금보의 “인자무적”이다. 성룡에겐 대사형급 선배이고 영화계에도 더 오래 몸 담고 있었지만 좀 늦게야 빛을 보게된 그인데 이 작품 역시 취권스타일의 영화로 여기에서 홍금보는  그 나름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어쨌든 성룡의 역사는 계속된다. 매년 대표작들이 나오고 더불어 홍콩영화도 번성해 간다. 82년에 “용소야” 83년에 “프로젝트 A”가 나오는데 이 작품은 홍콩 액션영화의 역량이 모두 합쳐진 영화로 성룡, 홍금보, 원표 트리오가 나오고, 그 규모가 당시까지 최대 최고 수준이라고 하겠다. 영화의 완성도가 높고, 한장면 한장면 버릴게 없다.



사실 저 트리오가 합으로 맞춘 복성시리즈가 있지만 거기서는 비중이 대사형 홍금보가 중심이었다면 “프로젝트 A”나 이어지는 “쾌찬차”는 성룡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챙겨볼 배우는 역시 해적대장 롤을 맡았던 적위다. 액션 그자체로만 본다면 견자단이란 배우가 나오기전까지는 당연히 적위가 최고였다. 이 영화에서는 트리오를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여유있게 제압하기도 한다.


 


 





 


이 배우가 확실히 각인된 건 2년 뒤에 나오는 양자경의 “예스마담”에서 악당사장의 보디가드로 나와서 멋진 발차기를 보여줄 때이다. 검은 교복스타일의 의상을 입고 내지르던 그 발차기. 냉혹한 인상으로 악역으로만 다수의 배역을 맡지만 그 존재감은 대단했다.


 


82년에는 최강의 콤비라는 뜻의 영화 “최가박당”도 나오는데, 미스터부 시리즈 허관문의 동생인 허관걸이 나오고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홍콩 액션 모험인데,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를 다 좋아한다. 물론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데이비드 주커나 웨이언스 형제들의 영화보다 이 시리즈에서 보여주는 패러디의 당혹스러움과 여유있는 비꼼이 훨씬 더 매력있다. 또 82년에는 이연걸의 “소림사”가 나오고, 83년에는 저주받은 걸작인 무협환타지 “서극의 촉산”이 탄생한다.


 


좋은 액션 배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사람 더 이야기하자면 84년작 “쾌찬차”의 베니 유키테즈가 있다. 킥복싱 챔피온이였던 배우 베니 유키테즈는 이 영화와 “비룡맹장”에서 성룡의 카운터파트로 나오는데 격투장면만 따지고 본다면 성룡과 가장 합이 잘 어울리고 파이팅으로 화려한 상대역이였고 본다.


 


85년으로 넘어가면 성룡영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폴리스 스토리”가 나온다. 성룡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고 성룡의 개성이랄수도 있는 건 바로 ‘올바름과 책임감’인데 영화 속의 성룡은 언제나 선하고 착하고 남에게 최선을 다해 배려한다. 악당조차 쉽게 용서하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고 다른이들에게 민폐없이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그야말로 고군분투 스타일이다.



그리더가 배신이 끝에 닿을 때가 되어서야 더는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한다. 바로 그런 성격에 가장 어울리는 직업이 경찰이겠다. 물론 올바른 의미에서의 경찰인지라 그는 승진이나 권력이나 재물에 관심이 없다. 가족을 사랑하고 여자친구나 동료들을 위해 목숨을 건다. 가난한 서민이나 어린이, 여성들에게 더 없이 친절하다.


 


 




 



그런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이 “폴리스 스토리”이고 작품자체의 품위도 높다. 또한 다대일 격투씬의 정수를 보여준 쇼핑몰 장면이나, 폴리스 스토리2에서 어린이 놀이터 장면은 성룡의 열정과 투쟁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최고의 격투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세번째 걸작으로 추천한다.


 


86년에는 성룡의 행보를 주춤하게 만든 무협걸작이 또 하나 나오는데, 바로 하늘도 총애한다는 주윤발의 “영웅본색”이다. 흘러간 스타 적룡 그리고 차세대 스타 장국영과 함께 주윤발이 타이틀롤을 맡은 “영웅본색”은 다시 설명이 필요없는 20세기 신무협의 총아다.



칼과 창 대신 권총과 기관총을 들고 나타난 이 영웅은, 무협 영웅들이 가진 가치관과 세계관을 그리고 협객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오우삼의 연출테크닉은 홍콩 영화의 연출제작 스타일을 일거에 변혁시켰고, 총격신들의 장면은 이전 영화들이 사람의 몸동작을 넓게 그대로 담아낸 것과는 달리 카메라 앵글과 방향, 움직임에서 무협적 박진감과 극적 긴장감이 현대적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 어떻게 어우러 지는가를 결정지어 버렸다.



사실 물량과 화력이 아닌 총격장면의 구성 그 자체만으로는 난 아직도 서구영화들이 홍콩영화들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본다. 바바리코트와 권총, 그리고 성냥개비로 기억하는 이 영화의 잔영은 80년 후반을 살던 남성들의 혼을 흔들어 버렸다.



이 영화는 우정과 의리라는, 박물관에나 있을 것같은 인간의 죽어버린 감성에 다시한번 성냥불을 붙혔다. 그리고 그 작은 불은 진정 멋졌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본색”을 네번째 걸작으로 추천한다.


 


 



19금 폭력장면 주의

 


 


그러면 우리 성룡은 놀고 있었나? 당연히 아니다.


그해 성룡은 “용형호제”를 내놓는다. 그야말로 글로벌 프로젝트 “용형호제”는 대규모 로케이션과 지나칠 정도의 위험한 스턴트 장면들로 가득한데, 성룡이 이 영화에서 죽을뻔 했던 사고 내용은 유명한 일화이고 “프로젝트 A”에서의 부상과 이 영화의 부상 충격으로 이후 성룡의 영화 제작현장에서는 큰소리로 떠들거나 소음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옆에서 큰소리로 떠들어도 성룡이 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세계의 보물을 Get하러 다니는 모험가라는 영화 소재가 매우 좋아서 이후 수많은 시리즈 프로젝트 계획안들이 나왔는데 천하의 성룡도 용형호제 시리즈 연작에는 대단히 조심스러워 했다고 한다. 그래서 2편은 한참 뒤인 90년에야 제작이 됐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역시나 성룡은 시작 전에는 조심스러워도 막상 촬영에 들어가면 미쳐버리는 구나
라는 점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해 또 재밌는 영화 한 편이 나오는데 홍금보의 “부귀열차”다. 내용은 부자들을 태운 기차를, 자기 고향의 발전을 위해 철로를 폭발시켜 멈추게 하고 그 부자들이 며칠동안 고향마을에 머물게 하려는 홍금보와 마을사람, 기차승객 그리고 그 열차의 부자들의 재물을 노리는 떼강도들이 어우러져 버리는 해프닝인데,


 


재미도 재미지만, 성룡과 성가반을 제외한 당대의 기라성같은 액션배우들과 코믹배우들이 거의 모두 다 나온다. 홍금보, 원표는 물론이고 전설의 스타 왕우가 황비홍의 아버지 황기영으로 나오는 걸 비롯해,


 


 




 


 


적위나 “강시선생”의 임정영, “천녀유혼”의 우마, 한국 출신의 황정리씨, 쿠라타 야스아키 (창천보소), 오오시마 유카리 (대도유가리) , 신시아 로즈록 (나부락), 수많은 악역 고수를 맡았던 종발, 원화 (용쟁호투 격투디자인), 고비, 양사, 맹해 등이 나오고 증지위나 오요한같은 한가락 하는 코미디 배우도 쏟아져 나온다.


 


이 영화 한편으로 홍금보의 영향력과 역량을 고스란히 볼 수 있기도 하다.


 


 




 


 


* 3부에서 계속됩니다 *


 


 


영진공 버디


 


 


 


 


 


 


 


 


 


 


 


 


 


 


 


 


 


 


 


 


 


 


 


 


 


 


 


 


 


 

“8인 : 최후의 결사단”, 중국 블럭버스터의 현주소

요즘 국내에 수입되는 중국 영화들을 보면 – 좀 더 정확히는 중국 영화들에 대한 국내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상당한 격세지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 감상의 요점이란 결국 중국 영화에 대한 우리나라 관객들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는 건데요, 홍콩의 영화 제작 기술과 배우, 스텝들이 중국 본토의 막대한 영화 시장과 자본, 정부 지원 정책 등과 만나 상당히 수준 높은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기는 좀처럼 다시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홍콩의 재능과 중국의 막대한 물량이 만났음에도 기대되는 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 을 기점으로 본격화된 컨텐츠의 천편일률성입니다.

중국 정부의 정책적 방향 때문인지 아니면 현시점에 중국 내수 영화 시장에서 요구하는 컨텐츠의 특성 때문인지는 좀 더 면밀한 고찰이 필요한 부분이 되겠습니다만 – 결국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것일 수도 있겠네요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제작되어 국내에 수입된 중국 블럭버스터들이 하나 같이 ‘전체/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스펙타클을 펼쳐 보인다 하더라도 매번 선보이는 작품들마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엇비슷한 내용과 주제만을 강조하니 식상하다는 반응을 얻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한 가지는 영화의 문화 산업적인 특성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80년대에 홍콩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미국이나 유럽과 같이 선진화된 국가의 이미지를 갖고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물 건너 온 것은 어찌되었거나 좋은 것들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다 90년대를 거쳐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음악이, 그리고 영화에 있어서 국산품이 수입품을 누르고 내수 시장을 점령하는 시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사이 홍콩은 중국에 반환이 되면서 영화 산업계의 지각 변동을 맞았지요. 이제 홍콩과 중국 영화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상황에서 국내에 소개되는 영화들은 더이상 선진 문물로서의 프리미엄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관점에서 봤을 때 역으로 중국 영화들은 분명히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헐리웃 영화가 국내 시장에서 갖는 지위를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해볼 수도 있게 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중국 본토의 관객들이 선호할 만한 소재를 찾아내고 그들의 대중적인 감성과 집단 의식을 자극하려는 전략은 <8인 : 최후의 결사단>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20세기 초 청나라 말기, 영국령이 되어버린 홍콩을 배경으로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 훗날 신해혁명으로 불리게 된 1911년 손문의 홍콩 방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 몽고족에 의한 오랜 지배와 부패, 외세에 대한 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한족들의 ‘거룩한’ 희생을 다룬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한족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역사가 바로 칭기스칸에 의해 중국 대륙이 몽고족에게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인 관계로 칭기스칸과 청나라에 대한 해석이 미국과 중국에 의해 서로 다르게 해석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시점을 다룬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청나라 황실은 혁명지도자인 손문을 암살하려고 하고 홍콩의 혁명가들은 손문을 지키려고 합니다. <8인 : 최후의 결사단>은 손문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무사히 홍콩을 다녀가기까지 암살자들의 위협을 죽음으로써 막아낸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전반부에서 이들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배치한 이후 후반부 기다리던 손문의 홍콩 도착과 함께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아날로그 액션을 전개하며 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8인 : 최후의 결사단>은 영화 만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한 마디로 더이상 손 댈 구석이 없을 만큼 세련되면서도 거의 완벽한 만듦새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년 전 홍콩 영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던 배우들 – 장학우, 양가휘, 증지위, 임달화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여명, 견자단, 사정봉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튀는 이 없이 하나의 작품 안에 완벽하게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액션이면 액션, 드라마면 드라마, 그외 미장셴과 배경음악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데가 없는 외양을 갖추었음에도 관객으로서 영화 속으로 흠뻑 빠져들지 못하고 마는 이유는 결국 그 속내가 뻔히 들여다보이는 전개 방식과 천편일률적으로 반복되는 주제 의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중적인 블럭버스터 영화가 갖는 한계는 비단 중국 영화만의 문제는 아닙니다만 지금 중국의 블럭버스터들은 온통 자기 자신들에게만 신경을 집중시키느라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못하고 있는 답답한 느낌을 주곤 합니다. 같은 중국계 영화라 하더라도 이안 감독의 작품들, <와호장룡>(2000)이나 <색, 계>(2007)가 중국인이 아닌 외국 관객들에게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들을 생각해보면 최근 몇 년과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되리라 예상되는 중국 영화들의 한계 –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도통 재미가 없는 – 는 더욱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중국 영화가 과거 한국 내 시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영광의 나날을 되찾을 수 있으려면 국내 관객들이 중화풍의 것들에 대한 선망의 시선을 갖게 되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거나, 아니면 중국 영화가 지금보다 스타일이나 내용 면에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두 가지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중국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한국영화의 해외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요. 제조에 강한 나라가 문화 컨텐츠의 강국으로 거듭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은 본래 가진 것이 많은 문화적 거대 잠룡이라고 할 수 있어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이겠지만 우리나라는 과연 국내외 관객들에게 보여줄 어떤 것들을 갖고 있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진공 신어지

ps. 글 내용 중에 언급된 중국 역사와 관련해 지적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확인해본 결과, 원나라(칭기스칸/몽고족) -> 명나라(한족) -> 청나라(여진족/만주족)이 정확한 역사더군요. 위에 언급된 내용 가운데 칭기스칸/몽고족과 청나라를 연결해서 언급한 부분은 정확하지 않은 내용이니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신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