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고 계신 그대에게 드리는 노래 …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 없이 거리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이 세상 곳곳에서 손과 마음에 촛불을 켜 자랑스럽게 들고 계시는 여러분들에게 노래 한 곡 올려드리고자 합니다.

준비한 곡은 Sting의 1993 년 앨범 “Ten Summoner’s Tales”에 실려있는 “It’s probably me”인데요, 영화 “리썰웨폰 3″와 “데몰리션맨”에 삽입되기도 하였던 그 곡입니다.

즐감하시고요, 우리 힘내자고요 ^.^



If the night turned cold and the stars looked down
And you hug yourself on the cold cold ground
You wake the morning in a stranger’s coat
No one would you see
You ask yourself, who’s watched for me
My only friend, who could it be
It’s hard to say it
I hate to say it, but it’s probably me

별님만이 그대를 내려다 보고 있는 차가운 밤,
차디 찬 땅 바닥에 누워 웅크리고 있는 당신,
모르는 이의 외투를 입은 채 아침에 눈을 뜨는 그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은 스스로에게 묻겠지, “누가 나를 돌봐준거지” 라고,
“내 유일한 친구여, 누구긴 누구겠어”
그게 누군지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게 누군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그건 나겠지,

When your belly’s empty and the hunger’s so real
And you’re too proud to beg and too dumb to steal
You search the city for your only friend
No one would you see
You ask yourself, who could it be
A solitary voice to speak out and set me free
I hard to say it
I hate to say it, but it’s probably me

배 속이 텅비고, 배고픔으로 뼈가 저릴 때,
자존심 때문에 구걸도 못하고, 도둑질을 할 만큼 뻔뻔하지도 못한 당신,
유일한 친구를 찾아 온 도시를 헤매 다니겠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은 스스로에게 묻겠지,
“누굴까,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유일한 목소리”
그게 누군지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게 누군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그건 나겠지,

You’re not the easiest person I ever got to know
And it’s hard for us both to let our feelings show
Some would say I should let you go your way
You’ll only make me cry
If there’s one guy, just one guy
Who’d lay down his life for you and die
It’s hard to say it
It’s hate to say it, but it’s probably me

당신은 사실 편하게 사귈만한 사람이 아니야,
서로가 서로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이기 힘든 사람이지,
다른 이들은 말하지, 당신의 길을 가게 내버려두라고,
그대는 나를 울리기만 하네,
그러나 만약, 단 한 사람,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또 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게 누군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그건 나겠지,

When the world’s gone crazy and it makes no sense
There’s only one voice that comes to your defense
The jury’s out and your eyes search the room
And one friendly face is all you need to see
If there’s one guy, just one guy
Who’d lay down his life for you and die
It’s hard to say it
I hate to say it, but it’s probably me
I hate to say it
I hate to say it, but it’s probably me

세상이 미쳐가고,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당신을 변호해 줄 사람은 단 하나 뿐이네,
배심원들 앞에서 그대는 법정을 훑어보겠지,
그리고 당신은 오직 하나의 반가운 얼굴을 발견하게 될 거야,
만약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또 죽어 줄 사람이 있다면,
그게 누군지 말하기 쉽지 않지만,
그게 누군지 말하고 싶지 않지만, 아마 그건 나겠지,
그게 누군지 말하기 어렵지만,
그게 누군지 말하기 싫지만, 아마 그건 나겠지,


영진공 이규훈


Candle

5월의 첫 촛불, 그날 밤 …

2008년 5월의 첫번째 촛불문화제가 있던 날.
일찌감치 일을 마무리하고 시계가 6시 10분을 알리자 곧바로 책상에서 일어나 재킷을 걸쳤다.

“원래 회사라는 곳이, 6시에 퇴근이라고 애교로 말은 하지만 기본적으로 9시까지는 일을 해 줘야 돈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다.”라는 지 혼자만의 커먼 센스를 넓다란 마빡에 붙이고 있는 듯한 표정의,

대머리 지점장의
“일 안하냐.”
라는 지적에
“오늘은 일 안 합니다. 집회 갑니다.”
라고 쏘아줬다. 평소와는 180도 다른,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평생 처음 나가보는 촛불문화제.
미선이 효순이의 억울한 죽음 앞에서도,
어이없는 이유로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 탄핵을 당할뻔한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의 비통함에도 쉽사리 발걸음을 떼지 못했건만.

그날은 달랐다.
맞붙어 싸우기보단 뒤에서 비웃기를 좋아하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그다지 크게 다르지도 않을 터인데.

하루 하루 살아가기가 물 없이 건빵 먹기보다 더 퍽퍽한,
당장 정시에 퇴근하려고 해도 당장에 프리미어 리그급 백태클이 날아오는 현실 속에,

언제나 총대를 매고 앞에 나서는 이에게만 총알을 쏟아붓는,
그래서 어린시절부터 입 닥치고 중간에만 있으란 교훈을 사방팔방에서 5.1 채널 돌비 서라운드로 듣고 살아왔던 우리들 중,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일에 자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줄까.

그래서 그날 나의 발걸음은 어쩌면,
참여하겠다는 목적보단 내 눈으로 그 숫자를 확인하고 싶다는,
비겁에 가까운 생각으로 움직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난,
당장의 현실이 어떻게 바뀌리라는 희망보단,
욕이라도 한번 해주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심정을 더하여,
그렇게 모임장소로 향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손으로 뽑아 놓은 대통령”의 두 달 동안,
그 버라이어티한 삽질들은 모든 쇼프로그램의 시청을 자제하고 시사뉴스에만 촉각을 곤두세우게 해주었다.

블록버스터가 터지면 소규모 영화들은 살아남기 힘든 법.
연일 억장이 무너지는 빅재미(?)를 선사해주시는 우리 장로 나으리의 오랄개그 앞에,
나의 완전소중 거성 형님의 몸개그도 맥을 추지 못했다.

나는 그저, 연일 쏟아지는 엄청난 뉴스 앞에 망연자실 하거나,
혹은 대한민국의 30%들을 향해 허공에 욕설을 띄워 보내다가,
에라,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 비겁한 자위로 눈을 감아버렸다.

그날,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곧 입대를 앞두고 있는 내 사촌 동생들과,
매일 학교에서 급식하는 밥을 꾸역꾸역 받아 먹을 내 조카들 보기에 쪽팔려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전까진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속으로 ‘이 정도 모였으면 정말 많이 왔다.’라고 생각하고 난 후에도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모여드는 이들 중엔 … 어잌후. 내 조카들이다. 내 사촌 동생들이다.

아직 태어났을 적에 가지고 왔던 것이 분명한 피부결을 가진, 여고생이고 여중생이었다.
그들이 외쳤다.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을 것이요, 누가 이끌지도 않았을 그들이 외쳤다.

살고 싶다고.
대학에 가고 싶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싶다고,
가정을 갖고 싶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꿀 수 있는 분에 맞는 행복을 누려보고 싶다고,

새벽부터 이어지는 수업과 자습,
식사시간이나 되어야 허리 한 번 펼 수 있는 그들이,
차가운 돌바닥에 앉아 자기의 ‘살’권리를 주장하고, 세상이 바뀌길 바라고,
우리가 너무나 쉽게 내팽개친 것을 붙잡아서 소리치고 있었다. 희망, 희망을

그 외침의 울림이 내게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아저씨는 뭐하고 계시나요?”라는 응시로 쏟아졌다.

그렇게 내가 만난 오월의 대한민국은 엄연히 살아, 소리치고 있었다.
가슴과 가슴에 촛불로 너울대는 희망을 품고, 꿈틀거리는 빛의 물결처럼 살아서,
이보다 더한 고난, 이보다 더한 역경, 이보다 더한 절망 모두 이기고 살아 왔음을 알고 있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이곳에 뿌리박고 살아 나갈 것이라고.
“살” 것이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시나브로 나도 외치고 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내려 보며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않는 듯 조소하고 있는,
섬기고 듣겠다면서도 마치 소음이 삑삑댄다는 듯이 귀를 막고있는 것들의,
눈이 번쩍 뜨이고 귀가 뻥 뚫릴 때까지 울려 퍼질 그 함성에 내 작은 목소리를 보태고 있었다.

아, 대한민국, 어째도 내 나라.  질경이처럼 질긴 연이여.
이 멍청한 사람들아.  이 못난 사람들아.  이 바보 같은 사람들아.

사랑합니다.


영진공 巨衣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