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아이패드, 그걸 손에 넣기까지 필설로 형용하기 힘든 오만방정을 떨어댔다.

미국에 여행가는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애플스토어에 재고가 없다고 해서 실패했다.

미국 유학가 있는 사람에게 부탁했지만, 역시 애플스토어에 재고가 없다고 해서 실패했다.


그러다 결국 미국에 지사를 둔 회사에 이사로 재직 중인 지인이 아이패드를 산다기에 같이 얹혀서 성공했다. 결국 손에 넣기까지 한 달 이상 걸렸다. 빌어먹을 애플 같으니라고, 재고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 아, 하긴, 그렇게 불티나게 팔리니 별 수 없겠지. 부러워 죽겠다, 젠장.


일전에 [애플 타블렛, 전망이 아닌 잡상]이란 포스트에서 아무리 애플이라도 타블렛 시장은 쉽지 않을 거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지적한 타블렛의 약점은 1) 키보드의 부재 2) 필기인식의 부정확성이었다.



MS의 타블렛 PC는 윈도우 PC 플랫폼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키보드와 마우스가 와컴 전자기유도식 펜으로 바뀌었을 뿐, 실질적으로는 윈도우 PC와 동일한 물건이었다.



“내 이름은 타블렛, 별종 중의 별종이로다, 나의 위엄을 보라, 너희 얼빵한 유저들아, 그리고 절망할지어다!” (BGM : 베토벤 교향곡 운명 제 1악장)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건, 싫건, 많은 사람들은 PC를 업무용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키보드가 없으면 일을 할 수가 없다. 마우스가 없으면 일하기가 무척 불편하다. 펜으로 찍찍 글씨를 써갈기는 건 보험회사 아줌마들한테나 어울려 보인다. 아, 물론 실제로도 많은 보험회사 외판원들에게 타블렛 PC가 지급되었다(덤으로 제약회사 영업 사원들에게도).



그러나 아이패드는 이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
그야….. 이건 업무용이 아니니까…..



애플의 아이패드는 그냥 가지고 노는 기계다. 이걸로 뭔가 창의적인 작업을 하겠다고? 그러지 마세요.

이건 그냥 사진 보고, 동영상 보고, 이북 보고, 만화책 보면서 노는 데 딱 좋은 물건이에요. 보세요, 쓱쓱 벗기고, 쭉쭉 벌리고, 얼마나 좋아요? (어머, 왠지 야하네요) 아무튼 괜한 뻘짓 하겠다고 깝치지 마시라고요, 손님.



그래도 아이웍스 같은 게 있지 않냐고? 아,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걸로 문서 작업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쨌든 당장은 한글 입력도 안 되니까. 설령 한글 입력이 된다 할지라도, 24인치 모니터를 피봇시켜 놓고 리얼포스 키보드로 글을 입력하는 것보다 감동적인 경험이 될 리는 없고, 그보다 편리할 리도 없다.




그러나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쓰기엔 최고다.

홈 버튼이나 전원 버튼을 누르면 1초도 안 되는 사이에 화면이 켜진다. 로딩 시간 같은 거 없다. 말 그대로 즉석 컴퓨팅(Instant computing) 환경이다. 지하철에선 아이북스로 epub 파일을 읽고, 집에 와서 코믹글라스(ComicGlass)로 만화책을 읽고, 침대에 누워 굿리더(GoodReader)로 최근에 스캔한 PDF 파일을 보고, 에어비디오(AirVideo)로 엊그제 다운받은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팍팍 지나가 버린다.

야구 좋아해?! iPad로 해!!


일전에 잡스가 PC를 트럭에 비교한 적이 있다. MS의 스티브 발머는 그 발언에 발끈했다. 많은 사람들도 거기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PC가 예전의 웍스테이션처럼 될 거라고 생각한다. 값이 비싼만큼 성능도 훌륭하지만, 이걸 집에다 갖다놓긴 어쩐지 부담스러운 물건 말이다. 그런 걸 계륵이라고 하던가, 아니면 돼지목에 진주목걸이라고 하던가 …


그렇다면 승용차의 역할은 뭐가 차지할까? 타블렛? 아니, 그럴리 없다. 앞으로 개인 컴퓨팅 환경의 중심은 스마트폰이 될 게 뻔하다.



넓고 미려한 디스플레이, 상당히 쾌적한 CPU 성능, 게임을 즐기기에 부족하지 않은 GPU 등, 아이패드는 순전히 콘텐츠를 편하게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다. 커뮤니케이션 기능은 부족하고, 휴대성도 딸린다. 스마트폰에 비하면 범용성이 떨어지고, PC에 비하면 기능성이 떨어진다.


아무리 잘 봐줘도 중대형 승용차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자전거? 아니면 퀵보드? 롤러 스케이트? 글쎄, 최소한도 경차 정도는 될 것 같다.



어려운 조작은 싫다, 최신 콘텐츠를 넓은 화면으로 보고 싶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휴대성도 담보했으면 좋겠다 – 는 요구는 꽤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제야 그걸 현실화시킬 수 있을만큼 기술이 성숙된 것이고, 아이패드는 그 결과물 중의 하나다. 그리고 등장하자마자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처음에는 아이패드를 보면서 뻥튀기한 아이폰 아니냐면서 비웃던 사람들은 표정이 싹 바뀌고 말았다(애플 타블렛에 비관적 전망을 내 놓은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런 종류의 시장 – Nerd도, Geek도, 오타쿠도, 오덕도 아닌 평범한 게으름뱅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졸라 단순하면서도 졸라 시크한 타블렛”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업체들은 서둘러 “졸라 캐단순한데 애플보단 조금 덜 시크한 타블렛”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 … 인정할 건 인정하자. 애플보다 시크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B&O 정도밖에 없을 텐데, 거긴 타블렛을 안 만들잖냐.



문제는 그 시장이 과연 1년에 1천만대 수준일지, 1억대 수준일지, 아니면 5백만대 수준일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후발주자들은 – 삼성을 포함해 – 애플의 성공에 자극받아
종업원들을 다그치며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의 속도전을 방불케하는 속도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별 거 있냐, 대충 안드로이드 OS 얹고, 최신 CPU 넣고, 새끈하게 AMOLED 박아넣고, 이러면 애플보다 좀 더 잘 팔리지 않겠어? 잠깐만 … 근데 그거 아이폰을 상대로 맞짱 떴을 때의 전술을 되풀이하는 거 같은데?


아무튼 시장이 크다면 별 문제 없다. 대충대충 만들어진 제품이라도 팔릴 테니까. 하지만 시장이 예상보다 작다면? 타블렛 업체들은 일찌감치 공멸의 길로 접어들고, “타블렛은 MS가 하든 애플이 하든, 똑 같이 대책없는 제품”이란 개념이 굳어지게 될 것이다.



과연 앞으로의 세상에서 타블렛은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인가? 아무래도 단정짓긴 어렵다. 좀 더 두고 볼 수밖에.


분명한 건, 지금 당장은 애플이 장사를 정말 잘 하고 있다는 사실이랄까. 아아, 그래 … 아이패드, 이놈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지상 최강의 야만화 뷰어렸다!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