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S 7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렇다. 나도 깔아봤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iOS 7 베타를 아이패드 미니에 깔아본 것이다. 깔아본 소감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콘은 아주 못봐줄 정도는 아니네? 후진 건 사실이지만.

 


2. 이 미칠듯한 흰색과 아이보리의 배합은 뭐지? 눈이 아파서 못봐주겠네.


 


3. 글자는 왜 이렇게 가늘어? 잠깐만…. ‘손쉬운 사용’ 설정에 볼드체로 바꾸는 게


    숨어 있네? 이럴 바엔 그냥 볼드체로 보여주면 될 거 아냐?


 


4. 뉴스스탠드는 무조건 전체화면으로 열리고, 음악 앱은 만들다 만 거 같고, 사파


    리 북마크 바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 베타 버전이니까 참고 봐 주려고 해도, 


    이건 베타 버전의 완성도가 아니다.


    잘 봐줘야 개발자 프리뷰 내지는 알파 버전이다.


 



전반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무엇보다도 대폭 단순화된 GUI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급진적인 변혁을 시도한 걸까?


 


스큐 …… (나도 안다, 스큐어모피즘 skeuomorphism. 이 괴상한 용어를 이제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어쩌구하는 걸 추종하던 스콧 포스탈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큐어모피즘(Skeuomorphism)

1. 물건을 담는 그릇 또는 도구를 뜻하는 그리스어 skeous와 형태를 뜻하는 그리스어 morphê를 합하여 만든 용어로, 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컴퓨터 인터페이스 용어로 자리잡았다.


2. 어떤 대상물의 형태와 성질을 본따서 상징물을 만들어내는 디자인의 통칭이다.


 


스큐어모피즘의 대표적 사례


 


 


 


음, 글쎄, 우리나라야 죽은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국가 비밀 문서를 자기 꼴리는대로 공표해 버리는 인간들이 넘쳐나고 있지만, 애플 본사에 이미 쫓겨난 부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GUI를 싹 갈아엎을 정도로 덜 떨어진 인간들이 넘쳐날 것 같진 않다. 그건 비합리적이다.



그라데이션과 상징적인 도형으로 단순화된 GUI가 보여주는 앞길은 비교적 예측하기 쉽다. 그것은 비트맵이 아닌 벡터다.

iOS 7 베타 버전의 시계 아이콘의 시침과 분침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화하는 시간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다.그것은 비트맵이 아닌 벡터로 구현됐다고 한다. 지금은 단순히 시계침을 구현하는 데서 그치고 있고, 관련된 API도 공개되지 않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체 화면에서 벡터 렌더링을 실행하면 CPU와 GPU에 엄청난 부하가 걸린다. 소비 전력과 속도의 문제로 현재 모바일 기기에선 이걸 처리하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계 아이콘의 시침이나 분침처럼 일부분에만 사용하는 거라면 문제 없다.

아마도 애플이 바보가 아니라면 조금씩 관련 API를 공개하면서, GUI에 벡터 그래픽을 도입할 것이다. 지금의 단순화된 GUI는 그것을 위한 초석이리라.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뭐,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엉터리일 뿐이고, 애플은 증오의 정치가 횡행하는 회사라는 게 증명될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지 않을까?


 


 


 


영진공 DJ Han


 


 


 


 


 


 


 


 


 


 


 


 


 


 


 


 


 


 


 


 


 


 


 


 


 


 


 


 


 


 


 

플래시의 죽음

 

 


 


 


죽었다, 드디어 플래시가 죽었다. DC 코믹스의 플래시 말고 어도비 모바일 플래시 말이다. 이젠 안드로이드 앱스토에서도 플래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모바일 플래시가 왜 죽었는지에 관해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죽은 잡스가 산 어도비를 엿먹였다는 얘기부터 시작해, 어도비가 이미 AIR와 HTML5로 갈아탈 준비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순서였다는 주장도 있고, 그게 죽든 살든 어차피 대한민국이란 나라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거니와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젖은 타올의 곰팡내를 없애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정보라며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음, 글쎄, 일단 젖은 타올은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확실한 건, 스티브 잡스가 모바일 플래시의 죽음에 별로 대단한 공헌을 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안드로이드 OS 시장은 iOS 시장보다 커졌다. 어도비가 진작에 터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모바일 플래시를 내놓고, 구글과의 협상을 통해 아예 안드로이드 OS에 기본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면, 애플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그러지 않았다. 잡스와 멱살잡이를 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어도비의 수익 모델은 개발 툴이며 이미 어도비가 드림위버에서 HTML5 지원을 하는 데다가 Edge라는 HTML5 디자인 툴을 내놓았기 때문에 모바일 플래시가 죽는 건 당연한 순서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쪽만 본 단견에 불과하다. 플래시 역시 엄연한 어도비의 수익 모델 중 하나였다.


 


물론 최종 사용자들은 플래시 런타임이 무료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웹에서 배포되는 플래시 플러그인이 공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사용할 땐 얘기가 다르다. 기업에서 자기네 기기에 플래시 런타임을 프리인스톨해서 출하하려면 어도비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즉,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은 장래유망한 (줄 알았던) 돈벌이 하나를 통채로 포기했다는 뜻이다. 어도비 입장에선 입맛 씁쓸한 일일 수밖에 없다.


 


 




 



어도비는 작년에 모바일 플래시를 포기하는 대신 플래시 개발자들이 어도비 AIR로 (주로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주력할 거라고 발표했다. 플래시 개발자들은 귀가 솔깃할 얘기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AIR는 플래시와 웹킷을 중심으로 벼라별 API를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갖다붙인 런타임 엔진이다. AIR앱은 네이티브 개발 툴로 만들어진 앱보다 퍼포먼스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원 API의 한계로 인해 개발 역시 수월하지 않다. 이게 모바일 앱 개발의 중심이 되길 기대하느니 LG 트윈스가 올 시즌 잔여경기를 전승으로 이끌고 4강에 진출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게 낫겠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 플래시는 어째서 미움받는가? 2 ) 어도비는 플래시를 개선하겠다며 공약속을 남발하며 기업 시장에서 불신을 키웠다. AIR 역시 플래시 엔진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무거운 퍼포먼스와 빈약한 API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의 여파는 장기적으로 PC브라우저에까지 미칠 것이다. 플래시 플러그인은 점차 사용 빈도가 떨어질 테고 그 자리를 다른 신기술들이 채울 것이다. 그게 HTML5가 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플래시 개발자가 줄어들게 되면 플래시 엔진을 중추로 하는 AIR 역시 존속을 위협받게 될 게 뻔하다.


 


 





 


어찌 되든간에 어도비에겐 심각한 타격이 아니다. 어도비는 이거 말고도 돈 벌 거리가 많은 회사니까. 하지만 플래시나 AIR에 기대고 있던 개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탈출하지 않는 사람은 그 배의 선장이거나, 아니면 정신나간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뿐일 테니까 말이다.


 




 



영진공 DJ Han


 


 


 


 


 


 


 


 


 


 


 


 


 


 


 


 


 


 


 


 


 


 


 


 


 


 


 


 


 


 


 


 

MS 서피스, 제품 포지셔닝의 애매함

 

 


 


 


 


 



 


 


10여년 전, 빌 게이츠가 야심차게 내놓은 타블렛 PC의 실패 요인은 대충 다음과 같다.


 


 



1) 스타일러스 펜은 키보드와 마우스에 비해 느리고 불편했고,


 


2) 스타일러스 펜의 (단점을 희석시키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OS도 없고 앱도 없었다. MS가 내놓은 윈도 타블렛 에디션은 기존의 윈도 OS에 필기인식 기능만 추가했을 뿐이었다.


 


써드파티 개발사들을 위한 지원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하다못해 타블렛 PC용 UI/GUI 가이드라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3) 게다가 와콤 디지타이저 또는 감압식 필름 사용으로 인해 단가가 뛸 수밖에 없었고,


 


4) 펜 입력방식의 한계로 인해 제조사들이 어쩔 수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들시키면서 단가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5) 오피스를 비롯한 기존 MS의 업무용 프로그램을 그대로 쓸 수 있긴 했지만, 펜 입력만으로 오피스를 쓴다는 건 그저 악몽 같은 경험일 따름이었다.


 


 


제품 기획을 할 때 신제품을 만들겠다며 이것저것 기능을 잡다하게 모아놓다가 결과적으로 아무런 특징도 없이 값만 비싼 어정쩡한 물건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당시 MS에서 추진했던 타블렛 PC 플랫폼은 딱 그런 종류의 제품이었다.


 


값만 비싼 어정쩡한 물건 – 결과적으로 타블렛 PC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틈새 시장에서나 약간의 판매량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5년 내로 대부분의 PC는 타블렛 PC가 될 것이다”라는 빌 게이츠의 호언장담은 철지난 개그 취급 당하면서 잊혀져 버렸다.


 


그렇다면 최근 MS가 발표한 서피스 타블렛은 어떨까?


 


1) ARM CPU 기반의 RT 버전은 멀티 터치 입력방식만 지원하지만, 인텔 CPU 기반의 프로 버전은 터치 입력과 스타일러스 펜 입력을 동시에 지원한다.

 


2) 서피스를 지원하기로 예정된 윈도 8부터는 아예 터치에 최적화된 메트로 UI가 윈도 8의 기본 UI로 탑재되었다. 타블렛 버전은 물론이고 데스크탑용 윈도 8에서도 메트로 UI를 써야 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3) 프로 버전은 와콤 디지타이저를 탑재했기 때문에 당연히 단가가 올라갈 것이다.


 


4) RT/프로 버전 모두 키보드가 내장된 커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게 번들이 될 지 옵션으로 판매될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5) RT/프로 버전 모두 오피스가 번들될 예정이다.


 


 


 



 



10여년 전에 비하면 좀 나아졌다곤 해도 총체적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어정쩡하다. 특히 5)번의 오피스 번들이 그렇다.


 


여기서 잠시 아이패드의 경우를 돌이켜 보도록 하자. 초창기 언론에 흘러나온 아이패드의 사양과 가격은 노트북도 아니고 PDA도 아닌, 굉장히 어정쩡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소파에 앉아 웹브라우징을 하고 이북을 읽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아이패드를 “컨텐츠 소비형 기기”로 포지셔닝 시켰다.


 


그 결과,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냈다. 그리고 다른 경쟁자들은 애플의 제품 포지셔닝 전략을 모방한 타블렛을 만들기 급급했다.


MS에서 타블렛이 컨텐츠 소비형 기기가 아닌 생산성 향상 제품이 될 거라고 여기고 과감하게 오피스를 넣기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패드나 안드로이드 타블렛을 압도할 비장의 무기로 오피스 카드를 꺼낸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오피스 번들은 서피스가 다른 타블렛들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특장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트북과 비교한다면 어떨까?


 


글쎄,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


 


 



 


 


서피스 프로는 단가 상승 요인이 추가된만큼 가격대 성능비에서 울트라북을 앞설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생산성 측면에서 볼 때 디지타이저와 터치 조합은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 조합에 뒤질 것이다. 키보드 커버? 그걸 쓰느니 기계식 키보드를 사는 게 낫겠지.


 


서피스 RT는 더 심각하다. 현재의 윈도 앱은 모두 인텔 바이너리다. 초창기에 내세울만한 생산성 앱이라곤 오피스밖에 없을 테고, 메트로 UI를 지원하는 ARM 바이너리 앱이 활성화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평균 이상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그냥 노트북을 구입하고 말리라.


 


아무리 뜯어봐도 MS 서피스의 제품 포지셔닝 전략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컨텐츠 소비형 기기로써의 타블렛 시장에 뛰어들려는 건지, 견고하게 형성된 노트북 시장을 대체하려는 건지,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길을 가려는 건지, 확실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시제품 발표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홍보 활동이 없는 걸 보면 MS 마케팅 팀에서조차 서피스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음, 아니, 어쩌면 서피스는 빌 게이츠의 타블렛 PC를 현대적으로 재포장해서 소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겠다. CEO나 대주주의 개인적인 야망이나 욕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중시하는미국 회사에서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천만의 말씀, 애플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거 왜 있잖냐,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큐브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만들어낸 파워맥 큐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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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DJ Han




 


 


 


 


 


 


 


 


 


 


 


 


 


 


 


 


 


 


 


 


 


 


 


 


 


 


 


 


 


 



 

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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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