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1차전 완승, 요인과 향후 전망


 


 

 


 


 


 



 


 


 


삼성이 한국 법정에서 애플에 ‘완승’을 거뒀다며 신문에서 요란하게 떠든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애플이 미국 법정에서 삼성에 ‘완승’을 거뒀다는 뉴스가 터졌다. 미국 법정에서는 애플의 삼성 특허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고, 삼성의 애플 특허 침해만 인정해서 무려 10억 달러를 물어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걸 두고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다느니, 예상대로의 결과였다느니, 자칭 전문가들마다 입방아를 찧느라 바쁘다. 보통 사람들의 의견도 제각각이다. 애플 편을 드는 사람들은 따라쟁이가 받아야 할 벌을 받게 됐다고 떠들고, 삼성 편을 드는 사람들은 편파적인 판결이라고 떠들고, 안드로이드 팬들은 혁신의 길이 구닥다리 특허법에 막혔다고 아우성을 쳐대고, 표준 특허가 파멸의 위기에 처했노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다.


 


처음에 애플이 디자인 특허나 UI/GUI 특허로 삼성을 공격한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삼성에게 “우리 디자인 베끼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이때 삼성이 취할 수 있는 길은,


1) 차기 제품부터 독자디자인을 채택하고 이전 제품은 애플과 적당히 타협하거나,


2) 가지고 있는 특허를 총동원해서 애플에 맞서 싸우거나,


둘 중 하나였다.


 


 


잡스 못지 않은 자존심과 패션 감각을 자랑하시는 삼성 제국의 황제 건희제께서는 2)번을 선택하신 거 같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명을 받잡아 실무자들이 꺼내든 반격 카드는 표준 특허였다.


 


삼성전자는 오래 전부터 휴대폰을 만들던 회사답게 3G 기술 표준에 이미 자사 기술을 포함시켰다. 해당 기술에 걸린 특허는 표준 특허로 인정받아 삼성전자에 짭짤한 특허 수익을 안겨다 주는 데 일조했다.


 


그런데 아이폰(3G 이후 모델)은 3G 휴대폰답게 당연히 3G 기술을 사용하고 있었고…… 삼성은 애플이 자사의 특허권을 침해했으니 손해를 배상하고 판매를 중지해야 한다면서 소송을 낸 것이다.


 


문제는 이게 자충수였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비표준 특허는 업체별로 로열티를 차별 부과하든, 리베이트를 받든 마음대로다. 하지만 강제성을 가진 표준이 아니기 때문에 확산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테면 SRS WOW HD 음장효과가 그렇다. 쓰면 좋지만, 안 써도 별 문제가 되진 않는다. (물론 MP3 처럼 비표준 특허 기술이 사실상의 표준(Standard de facto)이 되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기는 하다)


 


 









 


 


하지만 표준 특허는 다르다.


 


3G, LTE, CDMA, MPEG-1/2/4 등등 기술 표준은 한두 개 회사가 뚝딱 만드는 게 아니다. 여러 회사가 공동으로 컨소시움을 맺고 서로 협력해서 기술 표준을 제정하는 것이다. 이 때 굉장히 많은 기술이 사용되는데, 여기 걸린 특허는 표준 특허로 선정된다.


 


표준 특허가 되면 이젠 다들 잘 알고 있을 FRAND(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조건이 적용된다. 지극히 간단히 말하자면 해당 기술을 사용하는 모든 회사에게서 공평하게 같은 로열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대신, 표준이 널리 확산되면 확산될수록 전세계 기업을 대상으로 막대한 로열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FRAND 조건을 위배하는 경우엔 어느 나라에서나 엄정한 철퇴를 가한다. 예를 들어 2009년, 우리나라 공정위는 퀄컴이 CDMA 로열티를 징수할 때 업체별로 로열티를 차별 부과하고 리베이트까지 지급한 데 대해 2600억원의 과징금을 선고하기도 했다( 해당 기사 ->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 ··· 403.html ).


* 공정위 퀄컴 특집 : http://blog.daum.net/ftc_news/13391649


 


 



 


 


그런데 삼성은 하필이면 표준 특허로 애플을 공격한 것이다. 이 때 애플 법무팀의 심정은 “이게 웬 떡이냐!”라는 것이었으리라.


 


 



표준 특허 침해에 대한 애플의 대항 논리는 두 가지였다.


1) 모뎀 칩 제조사에서 이미 로열티를 지불했기 때문에 삼성전자의 특허권 권리는 이미 소진되었다는 특허 소진론


2) 삼성이 FRAND 조건에 위배되는 높은 로열티를 요구했다는 주장이었다.


 


 


애플 아이폰에선 3G 통신 모뎀 칩으로 인피니언 칩을 사용하고 있었다. 도중에 인피니언은 인텔에 인수되었고, 최신 아이폰에서는 모뎀 칩이 퀄컴 제품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칩셋 회사들이 그렇듯이 인피니언과 퀄컴은 삼성에 이미 3G 표준 특허의 로열티를 지불해 왔다. 애플은 자신들이 이미 칩 회사에서 로열티를 지급해 특허권이 소진된 칩셋을 구매했기 때문에 또 다시 로열티를 지불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유럽은 물론 한국 법원에서도 퀄컴 칩에 대해선 특허가 소진되었다고 인정해 특허 침해 대상은 인텔(구 인피니언) 칩을 사용한 구형 아이폰으로 정리되었다. 인피니언은 삼성과의 계약이 종료되어 로열티가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정황이 인정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여기서 자세한 사항이 공표되진 않았지만, 아마 애플은 삼성에서 요구한 로열티가 다른 회사들이 삼성에 지불하는 로열티와 ‘다르다’는 것을 법원에서 입증하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르다’는 거다. 이를테면 삼성이 표준 특허의 로열티로 퀄컴에서 1달러의 로열티를 받는다고 할 때, 애플에게 2달러를 요구해도 안 되지만 0.5달러를 요구해도 안  된다는 것이다. 특정 회사에 낮은 로열티를 부과해서 특혜를 주는 것 또한 FRAND 위반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삼성전자의 FRAND 위반이 문제시되어 반독점 위반 예비조사까지 들어가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 회사에 대한 차별이라느니 어쩌구 하면서 목소리 높일 일이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도리어 이번 한국 법원의 판결이 훨씬 더 문제가 많아 보인다. 삼성이 FRAND 조건을 위반했는데도 불구하고 애플 제품의 판매금지를 시행할 수 있다는 판결은 FRAND 조건의 존재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판결은 앞으로 두고두고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이번 미국 법원의 판결에서는 FRAND 위반을 따지기도 전에 특허 소진론이 전적으로 받아들여져 애플의 삼성 특허권 침해가 전혀 인정되지 않기에 이르렀다. 역시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인피니언/인텔이 해당 모뎀 칩을 판매하면서 삼성에 정당한 로열티를 지급했다는 증거가 제출됐다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쨌든 삼성전자는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이미 유럽 등지에서 진행된 재판 결과 때문에 삼성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제품 디자인과 UI를 지속적으로 바꿔야만 했다. 그 결과, 가장 최신 제품인 갤럭시 S3 같은 건 아이폰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다. 애플이 디자인 특허를 라이센스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만큼, 특허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쭉 지속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무기라 믿었던 표준 특허가 발등을 찍은 게 뼈아프다. 이건 순전히 법무팀의 실수다. 공격을 하려면 표준 특허가 아닌 독점적인 비표준 특허를 무기로 삼았어야 했다. 중간 부품 업체가 이미 로열티를 지불했을 가능성이 있는 특허도 피했어야 했다. 실수에 실수가 겹치면서 삼성전자는 별 실익을 챙기지도 못한 채 엄청난 법정 비용만 쏟아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삼성에게 너무 불리하다고 난리법석 떨 건 하나도 없다.


 


어차피 재판은 항소에 재항소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1, 2년은 더 끌 것이다. 판결이 뒤집어질 수도 있고, 배상금액이 대폭 줄어들 수도 있다. 어쩌면 애플과 극적인 합의를 이룰 수도 있다. 게다가 IT 업계에서 1, 2년은 다른 업계의 수십년에 해당된다. 그때쯤 되면 갤럭시 S1, S2, 갤럭시 탭 구형 모델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내려지든 뉴스조차 되지 않을 것이다. 좀 김 새는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특허 소송은 그렇게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다.


 


업체들이 표준 기술이나 표준 특허에 등을 돌리는 거 아니냐는 걱정도 역시 필요 없다.


 


세계 각지의 굵직굵직한 기업들이 참여한 협의체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차세대 동영상 표준이나 통신 표준 등 각양각색의 표준 기술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각 기업들은 서로 자기네 기술을 표준으로 채택시키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절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표준 기술로 선정되어 전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면 가만히 앉아 막대한 로열티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이렇게 남는 장사를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없을 것이다.


 


특허 분쟁 때문에 혁신이 가로막혀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게 됐다고 떠드는 건 …… 역시 터무니 없는 소리다.


 


 


 



 


 


 


나라고 해서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판때기가 딱히 대단한 혁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스크롤 바운스나 밀어서 잠금해제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그게 가장 좋아 보이고, 그 외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보다 더 멋진 디자인이 나올 것이고, 훨씬 독창적이면서도 편리한 UI와 GUI가 나올 것이다. 그런 걸 만드는 게 진짜 혁신이다.


 


삼성전자는 기술적인 면에선 많은 진보를 이뤘지만 디자인과 UI/GUI에선 애플 제품을 안이하게 모방하는 데 안주했다. 좋게 에둘러 말하면 벤치마킹이었겠지만, 툭 까놓고 말하면 대 놓고 베낀 거다. 그게 혁신일 리는 없지 않은가?


 


물론 이번 재판 결과로 가장 크게 웃는 건 애플이다.


 


배상금이나 판매 금지 조치는 별로 중요치 않다. 앞서 말했듯이 그런 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세계 경쟁업체들에게 “우리 디자인 베꼈다간 JOT 될 걸?”이란 메시지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기업끼리의 특허 소송은 길게는 몇 년씩 끌기도 한다. 그동안 쏟아부어야 하는 비용은 장난이 아니다. 완패하기라도 했을 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물어야 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야 이 정도 비용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규모가 작은 회사에겐 엄청난 부담이다. 이를테면 HTC(나 그보다 작은 회사) 같은 데 말이다. 이런 회사들은 일찌감치 꼬리를 내리고 적정선에서 타협하거나, 재판까지 가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심하거나 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제조업체에서 제품을 만들 때에는 경쟁업체의 기술 특허뿐만 아니라 디자인 특허, UI 특허까지도 철저하게 검토하는 관행이 자리잡게 될 것이다. 또한 디자인/UI 특허에 의한 공격이 유효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니만큼, 다들 독창적인 디자인과 UI를 개발해 특허를 내는 데 힘을 쏟을 것이다.


 


이게 진정한 혁신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더 지독한 특허 전쟁 시대로 이어질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뭐가 어찌됐든간에 삼성전자 법무팀 사람들은 지금쯤 좌불안석일 것이다. 애플과의 분쟁으로 덩치도 엄청나게 커지고 입김도 세진 데다가 예산도 빵빵했을 터에 …… 말 그대로 날벼락을 맞았으니까.


 


과연 삼성 제국의 황제 건희제께서는 이들에게 설욕할 기회를 주는 자비를 베풀 것인가, 아니면 패배자를 과감하게 쳐 내는 피의 숙청을 단행할 것인가? 그거야말로 진짜 흥미진진한 볼거리렸다!


 


 


 


영진공 DJ Han


 


 


 


 


 


 


 


 


 


 


 


 


 


 


 


 


 


 


 


 


 


 


 


 


 


 


 


 

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cfile23.uf.13455E4A4E92438F323033.bmp

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

아이폰, 결론은 소프트웨어!!!

드디어 아이폰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언젠가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라 기대하며 공짜폰(?)으로 질렀던 SKY 매직키패드 폰을 잠시 내려다봤다. 매직키패드 폰, 이름 그대로 참
매직스러운 폰이었다.

슬라이드되는 하단 LCD에 표시되는 현란한 키패드는 실내에선 그럴싸했지만, 밝은 햇빛이 쏟아지는 실외에선
전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순식간에 LCD가 꺼지는 바람에 타이핑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혼란스런 인터페이스는 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동안 이런 걸 썼다니, 젠장!


나는 매직키패드 폰의 주소록을
백업하기가 무섭게 아무 미련없이 책상 한구석에 내던져 버렸다. 툭, 털썩, 배터리가 분리되며 책상 밑 쓰레기통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내 눈은 아이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주변에 전화번호가 바뀐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다들 아이폰을 지른 거다. 휴대폰의 실용성이나 편리성보다는 심미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조차 아이폰을 지르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겉모습만으로도 뽀대 만빵이니까.

그래서인지 아이폰 앱의 판매량은 순식간에 일취월장했다. 거래처인 모 회사 사장님께선, 자기네가 판매중인 앱이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한국 앱스토어에서만 하루만에 수천 달러 매출을 올렸다고 귀띔해 줬다, 세상에나.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심대하다. 삼성이나 LG는 겉으론 여전히 태연한 척 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거다.
그래도 대기업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자본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인력도 충분하다.하지만 MP3, MP4, PMP,
전자사전을 만들던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아무 대책도 없다.

MP3? 아이폰 하나면 되잖아. MP4나 PMP?
글쎄, 아이폰에서 재생 가능한 동영상 포맷은 MP4 하나뿐이지만, 팟벗이나 다음 팟인코더로 변환해 보면 그만이잖아. 쿼드코어
CPU로는 30분짜리 하나 인코딩하는 데 5분이면 충분하고 말야. 전자사전? 앱스토어에 올라온 전자사전이 몇 개더라? 이미 수십
개는 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 사업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아이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걸로 방향을 전환하는 거다. 아, 하나 더 있다.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망하는 거.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게 되리라.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폰은 전능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 – 21세기 초엽의 이 시점에서 – 가장 쓸만한 휴대용 기기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바로 엊그제 술집에 갈 때는 다음 지도를 열어서 현재 위치와 술집 위치를 비교해 가며 길을 찾았다. 화장실에선 네이버 코믹을
보고, 지하철에선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본다. 병원에 갔을 땐 트위터를 하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보낸다. 음, 그래, 그리고
가끔 전화도 해야지. 문자도 보내고 말이야.

언론에선 아이폰의 매끈한 외관과
멀티터치 화면, 화려한 인터페이스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잡스가 애플을 뛰쳐나간
뒤 오만가지 삽질을 하며 만들었던 넥스트스텝이 MacOS X으로 꽃을 피웠다면, 아이폰 OS는 화룡정점이다. 여기에 잘 정비된
(무료) 객체지향 개발환경과 20년 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이 덧붙여져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1988년에 나온 NeXTSTEP OS

당시 경쟁상대이던 BeOS

불행히도 너무나 불행히도, 이미 화강암 수준으로 머리가 굳어진 윗분들께선 1) 멋진 디자인 2) 죽여주는 GUI 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기즈모도에서 조롱이나 당하는 옴니아 II같은 괴상한 물건이 나올 수밖에. 나이와 지위만을 내세워 세상에 맞서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밤을 패며 고생했을 삼성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UI 기획자들에게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노키아나 삼성, LG나 모토롤라 같은 대기업들이 한두 번의 실패로 전의가 꺾일 리 만무하다.
그들은 차세대 휴대폰 –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폰에 대항할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허나 핵심은 이거다. 소프트웨어!
스마트폰의 심장이자 두뇌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OS와 개발 툴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다. 삼성이나 LG는 오랫동안 윈도우 모바일에만 의지해 왔다.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여전히 터치 UI에
최적화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윈도우 모바일은 사실상 퇴출 직전이다. MS가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계획을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제조업체는 시큰둥하다. 대안으로 나온 안드로이드 OS는 공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와 크롬 OS 둘을 동시에 진행시키며 저울질을 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떡칠하고 있다. 별 수 없다. 그 외엔 딱히 밀어줄 것도 없으니까.

심장과 두뇌를 다른 회사에 떠맡긴 게 실수란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삼성이나 LG는 뒤늦게나마 독자 OS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무 늦긴 했지만.

하지만 상황이 아주 비관적이진 않다. 애플도 사람이 만든 회사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예상대로 파죽지세의 성장을 거듭할 수도 있고, 삼성이나 LG의 독자 OS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이렇게 단언한다.

아이폰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