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결론은 소프트웨어!!!

드디어 아이폰이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언젠가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올 것이라 기대하며 공짜폰(?)으로 질렀던 SKY 매직키패드 폰을 잠시 내려다봤다. 매직키패드 폰, 이름 그대로 참
매직스러운 폰이었다.

슬라이드되는 하단 LCD에 표시되는 현란한 키패드는 실내에선 그럴싸했지만, 밝은 햇빛이 쏟아지는 실외에선
전혀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순식간에 LCD가 꺼지는 바람에 타이핑을 하기도 쉽지 않았다. 혼란스런 인터페이스는 덤이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동안 이런 걸 썼다니, 젠장!


나는 매직키패드 폰의 주소록을
백업하기가 무섭게 아무 미련없이 책상 한구석에 내던져 버렸다. 툭, 털썩, 배터리가 분리되며 책상 밑 쓰레기통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미 내 눈은 아이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주변에 전화번호가 바뀐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다들 아이폰을 지른 거다. 휴대폰의 실용성이나 편리성보다는 심미성을 추구하는 여성들조차 아이폰을 지르는 데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이미 겉모습만으로도 뽀대 만빵이니까.

그래서인지 아이폰 앱의 판매량은 순식간에 일취월장했다. 거래처인 모 회사 사장님께선, 자기네가 판매중인 앱이 아이폰 출시와 동시에 한국 앱스토어에서만 하루만에 수천 달러 매출을 올렸다고 귀띔해 줬다, 세상에나.

제조업체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심대하다. 삼성이나 LG는 겉으론 여전히 태연한 척 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있을 거다.
그래도 대기업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자본도 있고, 기술도 있고, 인력도 충분하다.하지만 MP3, MP4, PMP,
전자사전을 만들던 중소기업들은 사실상 아무 대책도 없다.

MP3? 아이폰 하나면 되잖아. MP4나 PMP?
글쎄, 아이폰에서 재생 가능한 동영상 포맷은 MP4 하나뿐이지만, 팟벗이나 다음 팟인코더로 변환해 보면 그만이잖아. 쿼드코어
CPU로는 30분짜리 하나 인코딩하는 데 5분이면 충분하고 말야. 전자사전? 앱스토어에 올라온 전자사전이 몇 개더라? 이미 수십
개는 되는 걸로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들의 선택지는 둘 중 하나, 사업을 정리하거나, 아니면 아이폰 액세서리를 만드는 걸로 방향을 전환하는 거다. 아, 하나 더 있다. 우왕좌왕하다가 그냥 망하는 거. 아마 대부분의 회사는 그렇게 되리라.

어쩔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아이폰은 전능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 바로 지금 – 21세기 초엽의 이 시점에서 – 가장 쓸만한 휴대용 기기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바로 엊그제 술집에 갈 때는 다음 지도를 열어서 현재 위치와 술집 위치를 비교해 가며 길을 찾았다. 화장실에선 네이버 코믹을
보고, 지하철에선 음악을 듣거나 동영상을 본다. 병원에 갔을 땐 트위터를 하면서 지루한 대기시간을 보낸다. 음, 그래, 그리고
가끔 전화도 해야지. 문자도 보내고 말이야.

언론에선 아이폰의 매끈한 외관과
멀티터치 화면, 화려한 인터페이스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이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잡스가 애플을 뛰쳐나간
뒤 오만가지 삽질을 하며 만들었던 넥스트스텝이 MacOS X으로 꽃을 피웠다면, 아이폰 OS는 화룡정점이다. 여기에 잘 정비된
(무료) 객체지향 개발환경과 20년 전부터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사용자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이 덧붙여져서 파괴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1988년에 나온 NeXTSTEP OS

당시 경쟁상대이던 BeOS

불행히도 너무나 불행히도, 이미 화강암 수준으로 머리가 굳어진 윗분들께선 1) 멋진 디자인 2) 죽여주는 GUI 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러니 기즈모도에서 조롱이나 당하는 옴니아 II같은 괴상한 물건이 나올 수밖에. 나이와 지위만을 내세워 세상에 맞서는 아저씨와 할아버지들의 비위를 맞춰주느라 밤을 패며 고생했을 삼성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UI 기획자들에게는 참으로 맥빠지는 결과일 것이다.


어쨌든 노키아나 삼성, LG나 모토롤라 같은 대기업들이 한두 번의 실패로 전의가 꺾일 리 만무하다.
그들은 차세대 휴대폰 – 스마트폰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해서 아이폰에 대항할 제품을 내놓을 것이다.

허나 핵심은 이거다. 소프트웨어!
스마트폰의 심장이자 두뇌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즉 OS와 개발 툴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회사는 많지 않다. 삼성이나 LG는 오랫동안 윈도우 모바일에만 의지해 왔다. 노키아의 심비안 OS는 여전히 터치 UI에
최적화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윈도우 모바일은 사실상 퇴출 직전이다. MS가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 계획을
선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제조업체는 시큰둥하다. 대안으로 나온 안드로이드 OS는 공짜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글은
안드로이드와 크롬 OS 둘을 동시에 진행시키며 저울질을 하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T 전문가들은 안드로이드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떡칠하고 있다. 별 수 없다. 그 외엔 딱히 밀어줄 것도 없으니까.

심장과 두뇌를 다른 회사에 떠맡긴 게 실수란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삼성이나 LG는 뒤늦게나마 독자 OS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너무 늦긴 했지만.

하지만 상황이 아주 비관적이진 않다. 애플도 사람이 만든 회사다.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할 수도 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예상대로 파죽지세의 성장을 거듭할 수도 있고, 삼성이나 LG의 독자 OS가 의외의 대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세상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이뤄져 있으니까.

미래를 예측하기란 어렵다. 사실상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현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감히 이렇게 단언한다.

아이폰 이전과 이후는 결코 같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영진공 DJ Han

하드웨어 스펙을 높이면 잘 팔릴 거라고? 글쎄올시다!




IT 분야에서 이름난 블로그나 커뮤니티 사이트의 하드웨어 리뷰는 거의 예외없이 스펙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기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숫자가 높으면 높을수록 열광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1) 이거 봐, 이 PMP는 DIVX에 XVID, WMV9, 거기다가 H.264까지 재생한다는 거야. 이걸 안 사면 도대체 뭘 사겠어?
2) 이건 AMOLED라고. 10000:1이 넘는 명암비를 자랑한단 말야. 엄청난 숫자 아냐? 이건 무조건 질러야 해!

이런 사용자들의 입심에 힘입어 한국의 IT 하드웨어 업체들은 용감하게 신기술을 도입하고 과감하게 수십 가지 기능을 박아넣는 데 아낌없이 돈을 투자했다. 그래, 이거저거 집어넣으면 값이 좀 비싸도 잘 팔릴 거야! 틀림없어!
하지만 그 결과는?
지속적인 마진율 악화와 수출 부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내수 시장의 불황으로 자금난에 허덕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그 이유는 간단하다. 스펙에 열광하는 건 일부 마니아나 얼리어답터에 한정될 뿐이다. 그나마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쉽사리 돈을 쓰지도 않는다. 이거저거 따지고 재는 사람들이 돈지갑을 설렁설렁 열 리가 없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은 기술엔 별 관심 없다. 액정을 AMOLED로 박아넣건, 신기술을 무지막지하게 집어넣건, 그런 건 별로 귀기울여 듣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보다는 a) 가격이 싸거나, b) 폭풍간지를 불러일으키는 쉬크함과 새끈함을 겸비하거나, 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무조건 기능이 많은 걸 좋아한다고? 그런 건 근거 없는 도시괴담 수준의 신화다.

외국 시장의 현실은 이보다 더 각박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인터넷 쇼핑몰보다 대형 양판 체인이 유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애플이나 필립스, 소니 같은 대형가전업체에 비해 이름값이라 할만한 게 없는 한국의 중소 IT 업체가 이런 양판점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따라서 a)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하거나 b) 어쨌건 엄청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해야 하고 c) 뭐가 어찌 됐건 무지막지하게 싼 가격으로 승부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하드웨어 스펙을 무지막지하게 올렸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는 덴 한계가 있다. 그나마도 애플 아이폰/아이팟 터치의 성능을 쫓아가기조차 벅차 숨을 헐떡일 지경이다.
일례를 들어 보겠다. 아이폰/아이팟 터치에는 3D 가속 칩셋 외에 주문 제작된 2D 가속 칩셋도 들어가 있다. 이것은 bitblit 함수를 가속 처리하는 칩셋으로 화면 처리속도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켜 준다. 터치 스크린에서 아이콘을 끌어당기면 아무런 시간 지연 없이 움직이는 건 순전히 이 칩셋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가속 칩셋이 없는 다른 디바이스들은 터치 스크린에서 아이콘을 끌어당기면 0 콤마 몇 초 후에나 반응이 일어나기 일쑤다. 이건 3D 칩셋만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거 하나 해결하겠답시고 2D 가속 칩셋을 주문 제작한다는 건 보통의 하드웨어 업체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짓이다.
아니, 주문 제작 칩셋이고 뭐고를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천만이나 억 개 단위로 부품을 구입하거나 라이센스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대형 가전업체의 구매력을 쫓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이다. 따라서 고만고만한 한국 중소 IT 하드웨어 업체가 원가율을 낮추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동급 가격대에서 대형 가전업체의 최신, 최고 스펙의 제품보다 한 단계 딸리는 제품을 만드는 게 고작이다.

이름값도 없고, 그렇다고 기능이 정말 엄청나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게다가 가격 경쟁력까지 없다면, 해외 시장에서 애플이나 소니, 필립스를 이긴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날개돋친 듯 팔린다는 건 기대할 수조차 없다. 기껏해야 몇 천, 몇 만대를 팔고선 [의미있는 숫자]라고 자축할 뿐인데, 그 정도 숫자로는 해외 법인 유지비도 나올까 말까다.

이런 냉엄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블로거들은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한국 업체들에게 끊임없이 충고할 것이다. 하드웨어 스펙을 높이라고.
하지만 그 충고가 과연 얼마나 쓸모있는 충고일까 하는 점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적어도 여태까지의 결과만 놓고 보면, 정말 무쓸모한 충고였으니까!

영진공 DJ.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