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의 죽음

 

 


 


 


죽었다, 드디어 플래시가 죽었다. DC 코믹스의 플래시 말고 어도비 모바일 플래시 말이다. 이젠 안드로이드 앱스토에서도 플래시를 찾아볼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모바일 플래시가 왜 죽었는지에 관해선 여러 가지 말이 나오고 있다. 죽은 잡스가 산 어도비를 엿먹였다는 얘기부터 시작해, 어도비가 이미 AIR와 HTML5로 갈아탈 준비를 했기 때문에 당연한 순서였다는 주장도 있고, 그게 죽든 살든 어차피 대한민국이란 나라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하거니와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젖은 타올의 곰팡내를 없애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쓸모없는 정보라며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다.


 


음, 글쎄, 일단 젖은 타올은 세탁기에 집어넣어야 한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 다음으로 확실한 건, 스티브 잡스가 모바일 플래시의 죽음에 별로 대단한 공헌을 하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미 안드로이드 OS 시장은 iOS 시장보다 커졌다. 어도비가 진작에 터치 인터페이스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모바일 플래시를 내놓고, 구글과의 협상을 통해 아예 안드로이드 OS에 기본으로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면, 애플도 태도를 바꿀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도비는 그러지 않았다. 잡스와 멱살잡이를 하며 언론 플레이를 펼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어도비의 수익 모델은 개발 툴이며 이미 어도비가 드림위버에서 HTML5 지원을 하는 데다가 Edge라는 HTML5 디자인 툴을 내놓았기 때문에 모바일 플래시가 죽는 건 당연한 순서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이건 한쪽만 본 단견에 불과하다. 플래시 역시 엄연한 어도비의 수익 모델 중 하나였다.


 


물론 최종 사용자들은 플래시 런타임이 무료 소프트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웹에서 배포되는 플래시 플러그인이 공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에서 사용할 땐 얘기가 다르다. 기업에서 자기네 기기에 플래시 런타임을 프리인스톨해서 출하하려면 어도비에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즉,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은 장래유망한 (줄 알았던) 돈벌이 하나를 통채로 포기했다는 뜻이다. 어도비 입장에선 입맛 씁쓸한 일일 수밖에 없다.


 


 




 



어도비는 작년에 모바일 플래시를 포기하는 대신 플래시 개발자들이 어도비 AIR로 (주로 안드로이드용) 모바일 앱을 개발할 수 있도록 주력할 거라고 발표했다. 플래시 개발자들은 귀가 솔깃할 얘기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다시피 AIR는 플래시와 웹킷을 중심으로 벼라별 API를 누더기처럼 덕지덕지 갖다붙인 런타임 엔진이다. AIR앱은 네이티브 개발 툴로 만들어진 앱보다 퍼포먼스 면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원 API의 한계로 인해 개발 역시 수월하지 않다. 이게 모바일 앱 개발의 중심이 되길 기대하느니 LG 트윈스가 올 시즌 잔여경기를 전승으로 이끌고 4강에 진출해 한국 시리즈에서 우승하길 바라는 게 낫겠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 플래시는 어째서 미움받는가? 2 ) 어도비는 플래시를 개선하겠다며 공약속을 남발하며 기업 시장에서 불신을 키웠다. AIR 역시 플래시 엔진의 한계를 벗어던지지 못한 무거운 퍼포먼스와 빈약한 API가 발목을 붙잡고 있다.


 


모바일 플래시의 개발 중단의 여파는 장기적으로 PC브라우저에까지 미칠 것이다. 플래시 플러그인은 점차 사용 빈도가 떨어질 테고 그 자리를 다른 신기술들이 채울 것이다. 그게 HTML5가 될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리고 플래시 개발자가 줄어들게 되면 플래시 엔진을 중추로 하는 AIR 역시 존속을 위협받게 될 게 뻔하다.


 


 





 


어찌 되든간에 어도비에겐 심각한 타격이 아니다. 어도비는 이거 말고도 돈 벌 거리가 많은 회사니까. 하지만 플래시나 AIR에 기대고 있던 개발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탈출하지 않는 사람은 그 배의 선장이거나, 아니면 정신나간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뿐일 테니까 말이다.


 




 



영진공 DJ Han


 


 


 


 


 


 


 


 


 


 


 


 


 


 


 


 


 


 


 


 


 


 


 


 


 


 


 


 


 


 


 


 

MS 서피스, 제품 포지셔닝의 애매함

 

 


 


 


 


 



 


 


10여년 전, 빌 게이츠가 야심차게 내놓은 타블렛 PC의 실패 요인은 대충 다음과 같다.


 


 



1) 스타일러스 펜은 키보드와 마우스에 비해 느리고 불편했고,


 


2) 스타일러스 펜의 (단점을 희석시키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OS도 없고 앱도 없었다. MS가 내놓은 윈도 타블렛 에디션은 기존의 윈도 OS에 필기인식 기능만 추가했을 뿐이었다.


 


써드파티 개발사들을 위한 지원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는데, 하다못해 타블렛 PC용 UI/GUI 가이드라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3) 게다가 와콤 디지타이저 또는 감압식 필름 사용으로 인해 단가가 뛸 수밖에 없었고,


 


4) 펜 입력방식의 한계로 인해 제조사들이 어쩔 수 없이 키보드와 마우스를 번들시키면서 단가가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5) 오피스를 비롯한 기존 MS의 업무용 프로그램을 그대로 쓸 수 있긴 했지만, 펜 입력만으로 오피스를 쓴다는 건 그저 악몽 같은 경험일 따름이었다.


 


 


제품 기획을 할 때 신제품을 만들겠다며 이것저것 기능을 잡다하게 모아놓다가 결과적으로 아무런 특징도 없이 값만 비싼 어정쩡한 물건을 만드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당시 MS에서 추진했던 타블렛 PC 플랫폼은 딱 그런 종류의 제품이었다.


 


값만 비싼 어정쩡한 물건 – 결과적으로 타블렛 PC는 보험회사 영업사원을 대상으로 하는 틈새 시장에서나 약간의 판매량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리고 “5년 내로 대부분의 PC는 타블렛 PC가 될 것이다”라는 빌 게이츠의 호언장담은 철지난 개그 취급 당하면서 잊혀져 버렸다.


 


그렇다면 최근 MS가 발표한 서피스 타블렛은 어떨까?


 


1) ARM CPU 기반의 RT 버전은 멀티 터치 입력방식만 지원하지만, 인텔 CPU 기반의 프로 버전은 터치 입력과 스타일러스 펜 입력을 동시에 지원한다.

 


2) 서피스를 지원하기로 예정된 윈도 8부터는 아예 터치에 최적화된 메트로 UI가 윈도 8의 기본 UI로 탑재되었다. 타블렛 버전은 물론이고 데스크탑용 윈도 8에서도 메트로 UI를 써야 한다는 것이 문제지만.


 


3) 프로 버전은 와콤 디지타이저를 탑재했기 때문에 당연히 단가가 올라갈 것이다.


 


4) RT/프로 버전 모두 키보드가 내장된 커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게 번들이 될 지 옵션으로 판매될 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5) RT/프로 버전 모두 오피스가 번들될 예정이다.


 


 


 



 



10여년 전에 비하면 좀 나아졌다곤 해도 총체적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어정쩡하다. 특히 5)번의 오피스 번들이 그렇다.


 


여기서 잠시 아이패드의 경우를 돌이켜 보도록 하자. 초창기 언론에 흘러나온 아이패드의 사양과 가격은 노트북도 아니고 PDA도 아닌, 굉장히 어정쩡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를 발표할 때 소파에 앉아 웹브라우징을 하고 이북을 읽고 사진과 동영상을 보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아이패드를 “컨텐츠 소비형 기기”로 포지셔닝 시켰다.


 


그 결과, 아이패드는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냈다. 그리고 다른 경쟁자들은 애플의 제품 포지셔닝 전략을 모방한 타블렛을 만들기 급급했다.


MS에서 타블렛이 컨텐츠 소비형 기기가 아닌 생산성 향상 제품이 될 거라고 여기고 과감하게 오피스를 넣기로 결정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패드나 안드로이드 타블렛을 압도할 비장의 무기로 오피스 카드를 꺼낸 것인지,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오피스 번들은 서피스가 다른 타블렛들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특장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트북과 비교한다면 어떨까?


 


글쎄,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데.


 


 



 


 


서피스 프로는 단가 상승 요인이 추가된만큼 가격대 성능비에서 울트라북을 앞설 가능성이 없다. 그리고 생산성 측면에서 볼 때 디지타이저와 터치 조합은 여전히 키보드와 마우스 조합에 뒤질 것이다. 키보드 커버? 그걸 쓰느니 기계식 키보드를 사는 게 낫겠지.


 


서피스 RT는 더 심각하다. 현재의 윈도 앱은 모두 인텔 바이너리다. 초창기에 내세울만한 생산성 앱이라곤 오피스밖에 없을 테고, 메트로 UI를 지원하는 ARM 바이너리 앱이 활성화되려면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평균 이상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그냥 노트북을 구입하고 말리라.


 


아무리 뜯어봐도 MS 서피스의 제품 포지셔닝 전략은 모호하기 그지없다.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컨텐츠 소비형 기기로써의 타블렛 시장에 뛰어들려는 건지, 견고하게 형성된 노트북 시장을 대체하려는 건지, 이도저도 아닌 제 3의 길을 가려는 건지, 확실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리고 시제품 발표로부터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홍보 활동이 없는 걸 보면 MS 마케팅 팀에서조차 서피스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음, 아니, 어쩌면 서피스는 빌 게이츠의 타블렛 PC를 현대적으로 재포장해서 소생시키기 위한 프로젝트일지도 모르겠다. CEO나 대주주의 개인적인 야망이나 욕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중시하는미국 회사에서 그런 일이 있을 리 없다고? 천만의 말씀, 애플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거 왜 있잖냐, 스티브 잡스가 넥스트 큐브의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스럽게 만들어낸 파워맥 큐브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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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진공 DJ Han




 


 


 


 


 


 


 


 


 


 


 


 


 


 


 


 


 


 


 


 


 


 


 


 


 


 


 


 


 


 



 

삽질과 뻘짓 사이: MS는 뭘 하고 있는가???




 


 


 


 


최근에 MS 서피스 발표회와 윈도우폰 8 발표회를 연달아 가졌다. 여기서 보여준 MS의 모습은 업계 관계자들이 평소에 두려워하던 끝판왕이 아니라, 빨간 바가지가 잘 팔릴까 노란 바가지가 잘 팔릴까 고민하며 갈팡질팡하는 노점상 아저씨에 가까웠다.













 


서피스가 서로 호환이 안 되는 ARM과 인텔 플랫폼으로 나왔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키보드 달린 마그네슘 커버를 씌우는 순간 울트라북과 별 구분이 안 된다는 것은 물론, 가격과 발매일조차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는 사실에 이르기까지, 서피스 발표회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사실은 MS가 감히 OEM 하드웨어 벤더들의 나와바리를 찝적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에이서나 아수스 같은 파트너들조차 사전에 전혀 통보받은 바 없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을 정도다(http://techit.co.kr/5583 ).


 


하지만 이것조차도 윈도우폰 발표회에서 보여준 난감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MS는 새로 나올 윈도우폰 8 OS의 장점을 한껏 설명한 다음, 마지막으로 윈도우폰 7 하드웨어는 윈도우폰 8으로 업그레이드가 안 될 거라는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러면서 기존 윈도우폰 7 사용자들을 위해 7.8 업그레이드를 내놓을 거라며 생색을 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얘기를 듣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윈도우폰 7을 샀던 사람들은 다들 얼굴빛이 시뻘겋게 달아올라서 아우성을 쳐댔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해상도 지원 확대니, 멀티 코어 지원이니, 윈도 8과 같은 커널을 쓰고 개발 환경이 호환된다는 점이니, 졸라 빠른 IE 10 모바일이 탑재되었다느니 하는 장점들은 순식간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진짜 대박은 윈도우폰 8이 가을에나 나올 거란 대목이었다. 다시 말해 불쌍한 노키아는 가을이 올 때까지 윈도우폰 8으로 업그레이드도 안 되는 찐따 윈도우폰 7 스마트폰 재고를 잔뜩 떠안은 채 빌빌대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MS는 과연 이 사실을 노키아에게 미리 귀띔이라도 해 줬을까? 글쎄, 서피스 발표회의 전례를 보면 절대 그랬을 거 같지 않은데.


 


이 와중에 에이서 창업자 스탠 시는 서피스는 MS가 파트너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며, 다른 제조사들의 윈도우 8 타블렛이 늘어나면 MS가 발을 뺄 거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관련기사 http://www.digitimes.com/news/a20120619PD224.html ). 순진한 노친네 같으니라고.


 


만일 서피스가 대박이 터진다면 MS는 후속 기종을 내놓을 것이다. 잘 팔리는 걸 왜 안 만든단 말인가? 반대로 서피스가 쪽박을 찬다면 그 어떤 제조사도 윈도우 8 타블렛을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고, 결국 MS는 혼자서라도 후속기종을 계속 내놔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윈도우폰 7 스마트폰을 만들고 판매하는 회사는 사실상 노키아밖에 없는 상황에서, 윈도우폰 7 8 업그레이드 불가 정책을 발표한다는 것은 노키아의 심장에 말뚝을 박는 짓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MS는 그 짓을 해치웠다. 아주 태연하게.


 


이걸 두고 이미 여러가지 추측과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MS가 본격적으로 하드웨어 사업에 뛰어들 거라는 둥, 결국엔 스마트폰도 직접 만들 거라는 둥, 노키아를 인수할 거라는 둥, 하여간 나올 수 있는 이야기는 다 나오고 있다.


 


하지만 막상 MS의 입장은 굉장히 어정쩡하다. 서피스를 발표하면서 가격과 발매일은 언급하지 않은 걸 보면, 실제로 제품을 판매할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가장 충실했던 파트너인 노키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리면서도 노키아를 포함한 윈도폰 파트너들을 자랑스럽게 발표하는 걸 보면, 뻔뻔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미쳤다고 해야 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이해는 된다. 애플이나 구글이 엄청 잘나가는 꼴을 보면서 가만 있을 수는 없겠고, 자기들도 하드웨어 사업에 뛰어들어야겠다 생각해 일을 저질렀지만, 아직까지도 회사의 가장 큰 수익원이 윈도 OS와 오피스란 점에선 기존 파트너들 눈치를 아예 안 볼 수 없겠고, 나름대로 큰 그림을 그리며 윈도폰 OS을 업그레이드하다 보니 기존 제품 지원은 물건너 가버렸고, 그렇다고 이 시점에서 발표를 미뤘다간 구글하고 애플 뉴스에 파묻힐 거라고 마케팅 부서가 항의를 하고 ……















그런 식으로 꼬이고 꼬인 끝에 작금의 상황에 도달했으리라는 건 대강 짐작이 간다. 하지만 소비자나 파트너는 물론 투자자 중에서 이런 상황을 반길 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삽질은 혼자서만 피곤한 거다.


하지만 뻘짓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지금 MS가 하는 짓거리는 의심의 여지 없는 뻘짓이다.


과연 MS는 이런 뻘짓을 벌이고도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뻘 속에 가라앉을까?







영진공 DJ Han



































































스마트 TV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CES 2012에서는 다양한 신제품이 발표되었다. TV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많은 제품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OLED TV 였고 그 다음은 스마트 TV였다. 특히 전세계 TV 시장에서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의 스마트 TV 플랫폼은 관심의 촛점이었다.


당장 인터넷상에서 볼 수 있는 국내외 평가를 종합해 보면 호의적인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상과는 달리 안드로이드 OS를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반응속도나 사용자 UI는 썩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siri 만큼 똑똑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음성인식 기능에 동작인식까지 덤으로 갖췄고, 스마트폰과의 콘텐츠 공유 기능인 Allshare는 애플의 airplay보다 훨씬 더 쓸만해 보였다. 그리고 앵그리버드가 아무 문제 없이 휭휭 돌아가는 모습을 선보이는 장면에선 다들 감탄사를 내뱉었다, WoW!

하지만 궁금한 건 이거다. 내가 이걸 왜 사야 하는 거지? 50인치 대화면 TV에서 앵그리버드를 하려고?

아무래도 대부분의 스마트TV 기획자나 개발자들은 스마트폰(이라기보다는 아이폰)의 성공 공식에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즉,

1) 뛰어난 사용자 UX,
2) 오만가지 앱이 득시글거리는 앱스토어,
3) 인터넷과의 연동

이 스마트 TV를 성공시킬 열쇠라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제아무리 “스마트”란 단어를 공유한다 할지라도 폰은 폰, TV는 TV다. 둘의 성공 공식이 동일할 리 없다.

핸드폰은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누고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걸 주목적으로 하는, 그 태생부터 굉장히 능동적인 기기다. 데이터 통신망을 이용해 웹브라우징을 하고, 짧은 문자 메시지를 긴 이메일로 확장시킨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게임은 이미 피쳐폰 시대부터 쏟아져 나왔다. 이런 기능을 제대로 쓰려면 편리한 UI를 갖춰야 하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거실 TV는 굉장히 수동적인 기기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무식한 게으름뱅이를 위한 바보상자이다. 쇼파에 반쯤 드러누운 자세로 귤을 까먹으며 아무 생각없이 드라마를 보다 말고 갑자기 TV 화면에 이메일을 띄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거라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는 편이 훨씬 빠를 텐데.

하지만 TV에서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기능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게 VOD(Video on Demand)다.

여기서 잠시 미국 시장으로 눈을 돌려보도록 하자. 미국은 TV소유 세대수의 약 8할이 케이블TV나 위성방송, IPTV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부터 이들 대형 케이블 TV업체들은 iPAD를 비롯한 타블렛 대상의 방송 서비스에 일제히 힘을 쏟기 시작했다.

타임워너 사의 조사에 따르면 2006년 당시 정시방송의 주당 시청 시간은 31.7시간이었지만 VOD(video on demand) 시청 시간은 주당 0.4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런데 2011년에는 VOD의 시청 시간이 주당 2.5시간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2.5시간이라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이건 고연령층까지 포함한 평균치란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세대만을 계산에 넣는다면 이 수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 요즘은 내 주변에서도 셋탑 박스나 IPTV에서 필요할 때마다 영화를 사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꿋꿋하게 토렌트나 웹하드를 뒤지는 인간들의 숫자가 훨씬 많긴 하지만.

MP3 플레이어의 킬러 콘텐츠가 음악이고, 스마트폰의 킬러 콘텐츠가 앱이라면, 거실 TV의 킬러 콘텐츠는 영상일 수밖에 없다. 아이팟은 음악을 유통하는 뮤직 스토어를 통해 MP3 플레이어 시장을 평정하고, 아이폰은 앱을 유통하는 앱스토어를 선보이며 핸드폰 시장을 뒤흔들었다.

그렇다면 거실 TV가 스마트 TV로 진화하기 위한 열쇠는 자명하다. 그것은 영상물 유통의 혁신에 있다.

어느 나라든  TV 콘텐츠 시장에서 절대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건 주파수를 독점하고 있는 공중파 방송국이다. 그 다음은 지역별로 난립한 케이블 TV 회사들이다. 이들 방송에 비하면 DVD, 블루레이, VOD 등 홈비디오 시장의 비중은 굉장히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방송 시장의 총 매출 규모는 10조를 넘어가는 반면, 홈비디오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3, 4백억 정도에 그칠 뿐이다.

지난 수십년간 TV는 브라운관이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고, HD 해상도로 바뀌고, 아예 브라운관이 사라지고 PDP와 LCD로 바뀌는 등, 재탄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하지만 바뀐 건 물리적인 부분일 따름이었다. 실질적으로 콘텐츠를 틀어쥔 게 방송국이란 사실엔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가전회사는 주연이 아닌 조연에 불과했고, TV는 방송국이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드라마나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기 위한 깡통에 불과했다!




그런데 … 지금 가전회사에게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 것이다. 방송국 눈치를 보지 않고, 직접 방송국에 맞먹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말이다. 그것도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고 전세계를 상대로 장사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전세계 TV 시장에서 탑을 달리는 삼성전자의 작년 한 해 평판 TV 판매량은 대략 4300만대, 올해 목표는 5천만대라고 한다. 만일 삼성이 자사 TV 물량을 고스란히 스마트 TV로 전환한다면, 그리고 공중파 방송국에 준하는 콘텐츠 유통 플랫폼을 개발해 탑재시킨다면, 매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에 필적하는 5천만명의 시청자를 기본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만한 숫자라면 VOD는 뒤로 미뤄놓고 광고만 팔아도 돈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가기 위해서 풀어야 할 숙제가 한둘이 아니다. 저작권자들과 지리한 협상을 통해 컨텐츠를 확보하고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국가에선 어떤 식으로 컨텐츠를 공급할지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숙제는, 공중파나 케이블보다 더 쉽고 간단하고 편리하게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공중파 방송은 안테나만 세우면 볼 수 있다. 케이블 TV에 전화 한 통만 넣으면 채널이 순식간에 백여 개로 늘어난다. 그렇다면 스마트 TV는 전원선만 꽂으면 즉각 수백 개의 채널을 저렴하게(또는 공짜로), 그리고 손쉽게 볼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워야 한다. 대체 어떤 식으로?

글쎄, 그걸 잘 모르겠다. 그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궁리해야 하는 건 삼성이나 LG같은 제조사들의 몫이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스마트 TV에 스마트폰의 기능을 우겨넣는데 급급한 것 같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TV를 파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국가의 방송국을 능가할 수도 있는 절대적인 방송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는데,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기껏 내놓은 스마트 TV라는 건 스마트폰의 화면을 가로세로로 뻥튀기한 물건에 불과하다.

하긴 뭐, 아이패드도 처음엔 아이폰의 뻥튀기판에 불과하단 비아냥을 들었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패드는 들고 다닐 수도 있고, 침대에 누워서 만지작거릴 수도 있고, 후장을 자극하는 치질의 고통과 맞서 싸우기 위해 화장실에 가져갈 수도 있다.
 

반면에 거실 TV는 …… 흠, 더 이상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어쨌든 당신은 그 리모컨조차도 맘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그건 당신 게 아니라 사모님 거니까!


영진공 DJ Han



 

애플의 기억






1984년,
아버지가 이상한 놈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 금성 칼라티브이에 이놈을 꼽더니 말씀하셨다.

“니가 말한 게 이거냐?”
“아니, 이게 아니라 MSX라니까 아빠.”

애플2와의 첫 만남이었다.

MSX는 카세트테이프로 게임을 로딩시킬 수 있었던 반면 애플은 팩이 있어야 했다.
기껏 국민소득 1000불(이건 명확치 않다.)을 갓넘긴 대한민국 보통의 중산층 가정에서 게임팩 가격은 어린이가 지불할만한, 혹은 어린이를 위해 지불할만할 금액이 아니었다.

산 걸 무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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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직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름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래밍 책을 한권 더불어 사주셨다.

한달 가까이 실수와 실수의 반복을 계속하면서 만든건 무슨 양궁게임 같은 거였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프로그래밍이었다.
명절 때 모은 돈으로 한 두어개 팩을 산 뒤 그 놈이 어디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마 이사갔을 때 버리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MSX도 애플도 사라져갔다.

이들의 뒤를 이었던 건 IBM이었다.
XT에서 AT로 그리고 대망의 386 시대가 나의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열렸다.

1992년 16mhz 클럭속도의 AT, 50메가 하드, 8비트 스테레오 애드립, 2400bps mnp모뎀, 메가VGA로 중무장한 컴퓨터를 80칼럼 삼성 도트프린터와 함께 구매했을 때 가격은 150만원이었다. 아래한글 1.2, 경북대에서 만든 이야기 4.0, 도스 5.0, 그리고 M이 나오기 전까지 활개를 쳤던 L과 함께 신세상이 열렸다.

케텔은 1200bps, 피씨서브는 2400bps속도로 통신서비스를 했다. 통신인구는 94년 군대 입대할 때까지 2만명이 되지 않았다. 피씨서브 유머동에서 나는 웹상 최초로 방망이 깍던 노인, 허생전을 패러디 해 꽤 유명해지기도 했다. 별사랑 동호회에서 로마 신화를 외웠다. 게오르규만큼의 신화에 대한 안목이 있을 수는 없었지만 여자를 꼬시기에 이만큼 좋은 스킬은 또 없었다.

케텔은 코텔에서 하이텔로, 피씨서브는 천리안으로 이름을 바꿨다. 천리안은 국내선 전화요금으로 웹에 접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시행했다. 모자이크. VGA급 사진 한 장을 받는 데 8시간이 걸렸다. 당연히 전화요금은 끊임없이 올라갔으며 전화요금 고지서 때문에 엄마에게 맞는 일이 잦아졌다.



군대를 가고 제대를 했다.
사람들은 GUI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아니, 도스는?’


애플을 만들던 회사에서 제안한 GUI는 윈도우에서 꽃을 피웠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샀던 컴퓨터와는 이별을 하기로 했다.

펜티엄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133클럭의 씨피유와 16메가 부두 3D, 그리고 250메가에 이르는 하드디스크는 운동장이었다. 모터레이스2, 울프3D, 그리고 툼레이더는 과거 인디아나존스, 킹스퀘스트, 울티마에 받았던 충격 이상을 주었다.

56k  속도로 동작하는 모뎀은 과거 통신환경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켰다. 유니텔, 천리안, 하이텔 그리고 엘지(이름이 기억 안남.)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었다. 나우누리는 대학생들을 타깃으로 한 서비스에 집중했다.

수도 없는 벙개를 나가 끊임없는 내상을 입으며 내린 결론은 ‘이쁜 여자는 만날 놈도 많은데 왜 채팅을 하겠냐?”였다. 미련이란게 쉽게 떨어지면 미련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불쌍해서 천당에 보내줄만큼 폭탄들을 제거했다. 심지어 집에까지 바래다 준 적도 있었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어는 여인네를 부축하면서 누가 볼까봐 고개를 못든 적도 많았다.

1999년. 1년을 작정하고 모은 돈으로 산건 씽크패드 버터플
라이 키보드가 달린 70* 모델이었다. 350만원짜리 중고. 발표수업 때 빔프로젝트로 연결된 노트북을 본 순간 120명의 학우들이 경외의 눈빛으로 나를 봤던 건 잊지 못하겠다. 당연히 A+일줄 알았던 학점은 D였다. 출석미달. ㅅㅂ.

졸업을 하고 입사 첫해까지 썼던 그 노트북과의 인연으로 X30, X31, T40까지 아이비엠 빠돌이 역할에 충실 했던 삶이 바뀐건 2005년이었다.

SD에서 HD로 넘어가는 방송환경에서 과거의 편집장비는 방송사에서도 큰 부담이었다. 프리미어는 턱없이 부족했고 에딧박스는 기존 장비와 가격차가 없었고 아비드는 방송용 편집과 어울리지 못했다. 파이널컷프로는 이러한 방송환경의 요구를 적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페이드 아웃시 한 프레임이 빠지는 문제가 디졸브 시 한 프레임이 비는 몇몇의 문제가 있었지만 장비 가격은 0이 하나 두개 빠지면서도 동급의 효과를 낼 수 있게 구현되었다.

애플은 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나는 아범 빠돌이에서 최초로 조우했던 애플과 다시 만났다.

2006년,
20년이 넘게 지나서 나는 다시 애플과 만났다. 맥북.


6개월만에 키보드 하단이 뭉개지는 취약점이 있던 망할놈이었지만 키노트와 파이널컷프로의 매력을 버릴 수는 없는 놈이었다.

키노트는 PT계에서 절대강자였다. PT 승률의 50%는 키노트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폰이 나왔다.

이루어질 것 같지 않던 데이터 요금이 거짓말처럼 무제한 요금제로 바뀌었다. 피쳐폰은 유물이 되었다. 불쌍한 내 전지현폰 미니스커트는 6개월만에 애물단지가 되었다. 미니스커트를 사면 전지현이 혹여나 한번 나타나 주지나 않을까 하는 속된 욕망이 부끄러워졌다.

어디서나 이메일을 요금걱정 안하고 보게 되었고 웹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기다리는 게 지루해지지 않았다. 한게임 고스톱을 치건, 헬키드를 하건 팔라독을 하건 엠파이어워를 하건 할 건 넘쳐났다.

사이즈의 차이가 효용의 차이를 만든다는 걸 아이패드를 통해 배웠다.

맥북프로로 업무를 보고 파이널컷프로로 편집을 하고 키노트로 PT를 진행하고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패드로 시간을 때우는 나는 완벽한 앱등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잡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서른 아홉해 중에 20년을 컴퓨터와 함께 살았고 그중 7년을 애플과 함께 살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 이룬 저변 위에서 애플이 바꾼 건 환경이었다.

고맙고 감사하다. 그 덕분에 나는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영진공 그럴껄